갈라디아서강해(05) 율법의 행위와 믿음 그리고 언약과 율법의 비교(2)(갈3:1~29)_2020-09-02(수)

by 갈렙 posted Sep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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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XzYPc-cGn4U
날짜 2020-09-02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3:1~29(신약 30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갈라디아서강해, 갈라디아서3장강해,율법의행위들과믿음,율법을주신목적,율법의정의,율법의구분,율법완성,예수께서오신목적,율법의기능

누가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믿음"과 비교한 것은 "율법의 행위들"이었는가 아니면 "율법"이었는가?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상당수가 자신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다 OK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 점치러 가고 있다면 그는 과연 천국 들어갈 수 있을까?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믿고도 우상숭배하고, 예수믿고도 간음해도 천국간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보자.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시간에 갈라디서 3장 강해 첫번째 시간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았다. 갈라디아서 3~4장은 교리편으로서, 믿음과 율법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둘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는 말씀이다. 특별히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율법의 행위들과 믿음"을 비교하면서 언급한 것은 사람의 의롭게 되거나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들로부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얻게 된다는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 대한 실례로 바울이 어떤 한 사람을 언급하는데, 그는 바로 "아브라함"이다. 우리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가 어떻게 복을 받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상관관계를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바울이 말하려고 했던 "율법의 행위들(원문)"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이 율법과는 어떤 상관이 있는지 그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갈라디아서 3~4장에 보면, "율법의 행위"의 반대편에 있는 "믿음"에 관하여 말씀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들려주시고자 했던 믿음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도바울에 의하면, 그것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데에 필요하며 또한 사람이 성령을 받게나 성령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필요한 것으로 언급된다. 즉 사람이 죄사함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또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꼭 필수한 것이 "믿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칭의에서 시작하여 천국에 입성하기까지 꼭 필요한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며, 대체 무엇을 믿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칭의에서부터 천국 입성을 위해 꼭 필요한 "믿음"이란 대체 어떤 믿음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가리키는 "믿음"은 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대체 누구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것이 바로 그 믿음인 것이다. 한 마디로 오직 예수만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에 대한 대표자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믿음"도 당연히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져야 한다. 보통 "하나님을 믿으면 땅을 기업으로 받고 자손이 많아지는 축복을 얻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뛰따라오는 축복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진짜 복은 그의 씨(후손)으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다는 것이며(창18:10,14, 요8:24,28,58), 그와 같이 일을 행하신 한 분 하나님을 믿을 때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창22:18, 요8:56).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가진 자는 결국 대적 사탄마귀의 문을 차지하는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창22:17). 결국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적어도 공적인 진술에 속하는 것으로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용서해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한 분 하나님 자신이시며,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그분이 피흘려 죽으신 것을 내가 확실히 믿습니다."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믿는 자들은 흔히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진술은 진정 사실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즈레 자기는 율법과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도 되지만 안 지켜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첫째,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며 이방인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을 폐지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셋째, 사도바울도 사람이 의롭게 되고 또한 성령을 받게 된 것이 율법의 행위이 있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오로지 예수님만 믿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녕 그게 사실인 것인가? 우리는 갈라디아서에서 네 구절, 로마서에서 세 번에 걸쳐 등장하는 '율법의 행위'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한다.

 

가. "율법의 행위"라는 문구는 어디에서 등장하는가?

  자, 먼저 "율법의 행위"라는 말씀이 등장하는 성경구절부터 살펴보자.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갈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렇다. "율법의 행위"라는 말씀은 오직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만 나오는 아주 특별한 문구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 사람이 "칭의"를 얻는 데에 필요한 것으로서, 그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라고 얻는 것이라고 하는 문장들에 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만약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칭의를 얻고 성령을 받았던 자가 율법의 행위를 중요한 것으로 돌이킨다면 그는 저주 아래로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 "율법의 행위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비교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들"과 "믿음"이지, "율법"과 "믿음"이 아니다. 다시 말해, 칭의를 얻든지 성령을 받든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듣고 믿음을 통해서 그것들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도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들"이란 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율법 중에서 어떤 행위들을 수반하는 특별한 것들 곧 의식법을 가리키는가? 즉 율법 중에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며, 음식을 가려먹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는 그런 종류의 율법을 가리키는 것인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행위들"은 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데,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율법"과 "믿음"을 비교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의 행위들과 믿음"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노모스(율법, 법)"라는 단어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율법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특별히 "율법의 행위들"과 "믿음"을 비교한 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의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고로 우리는 "율법의 행위들"이라는 것은 율법 전체를 가리킨다고도 말할 수는 있겠으나, 정말 정확한 의미는 율법 중에서 어떤 의식을 통해서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것에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할례, 안식일 준수, 여러 절기를 지킴, 음식을 가려서 먹음, 불결한 것과 접촉을 조심함" 등이 있다. 특별히 바울이 언급했던 "율법의 행위들"이란 율법 중에서도 의식적인 것들을 언급하고 있음을 갈라디아서 본문은 말한다. 그럼, 그가 율법의 행위를 말할 때에는 어떤 것을 염두해 두고 말한 표현이었을까? 

갈4:9-11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5:2-4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그렇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도 얻고 성령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율법주의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다시 날(안식일, 금식일)을 지키고, 달(초하루=월삭)을 지키고, 절기(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를 지키며, 해(안식년, 희년)를 지키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래야만 자기도 의로워질 것 같고, 구원에 더 가까이 이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미 믿음을  통해 구원의 노정에 들어선 이가 다시 할례를 받게 된다면 그는 율법전체를 행할 의무가 생긴 것이요 그렇게 하면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님의 구속은총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때문에 오히려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것이고 은혜로부터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울은 율법의 의식적인 행위들을 통해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자들을 두고 다른 교회(골로새교회)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골2:20-22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렇다. 사도바울은 골로새교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그리스도 말고 다른 어떤 규례를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들을 향하여, 이미 지나간 초등학문이요 장래 일의 그림자인 율법의 규례들을 붙들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림자가 아니라 몸(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구약의 의식적인 법들을 다 이루심으로 완성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의식적인 행위들을 다시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얻으려고 시도하느냐고 책망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들을 지켜서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칭의에는 다른 어떤 것도 거기에 끼어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4. 예수께서는 율법과 율법의 행위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율법에 관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 의하면, 당신은 스스로 계신 자존자요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주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만나서 "네 씨"를 약속하셨던 여호와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요, 모세에게 나타나 율법을 수여하신 분도 역시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바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율법에 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율법말씀"에 관한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다른 것은 그것을 기준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렇단 예수께서는 율법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그것을 축약한다면 산상수훈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5:17~20절에 나온 말씀의 그것의 핵심이다. 우리는 이 말씀에 더하지도 말아야 하고 빼지도 말고 그대로 믿고 받아야 한다. 

마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허물어뜨리려고) 온 줄로 생각(예상)하지 말라 폐하러(허물어뜨리려고)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성취하려고)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예수께서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고로 예수께서는 율법을 그대로 다 준수해야 했다. 그리고 율법에서 부족한 것은 또 보충하기도 하셨다. 그분이 오셔서 보충한 것에는 도덕법(십계명법)이다. 특히 말과 마음의 영역까지도 죄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형제에게 "라가"라고 욕하는 것도 지옥불에 던져질 범죄라고 하셨다. 이는 형제를 해하려는 것이고 미워하는 것이 되기에 그것은 살인죄가 된다고 하셨다(마5:21~22). 또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도 간음죄라고 하셨다(마5:28). 이처럼 율법의 원 제정자이셨던 예수께서는 구약에서는 약하게 제시된 것도 더 보충하여 한층 더 도덕법을 강화시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죄인으로 하여금 확실히 죄인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율법으로부터 확실히 정죄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와서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율법 중에서 실제로 어떤 것은 그분이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신 것들도 있다. 그분께서 오셔서 율법을 허물어뜨린 것이 아니라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신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중에서 어떤 것들은 이제 더이상 사람을 정죄하는 용도로 쓰일 수 없게 된 규례들도 있다. 그러한 것들로는 "의식법"들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율법 중에서 안식일법을 포함한 절기법, 정결법, 제사법, 성막법, 음식법 등이 바로 이러한 의식법에 속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안식일을 율법의 규례대로 지키지 않아도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롬14:5). 왜냐하면 예수께서 안식일의 제정자이자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라도 그분에게 가면 안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구약의 안식일은 사실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고 예수님이 안식일의 실체이셨던 것이다. 그러한 예로서는 음식법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분에게 가면 구약의 율법에서 먹지 말라고 규정해놓은 음식들 예를 들어, 돼지고기나 오징어를 먹어도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더 정확히는 행10장의 보자기 환상에서 그것이 언급되어 있음). 뿐만 아니라 정결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둥병자나 시체와 접촉해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분을 믿을 때에 그분이 공생애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구약의 율법 중에서 완성되어버린 것이 많다. 고로 구약의 의식적인 규례들은 더이상 지키지 않아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을 지켜 행한다고 더 의로워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으며, 우리를 억압했던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좀전에도 말했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도덕법(십계명) 만큼은 한층 더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결코 도덕법을 폐지시킨 적이 없으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계명들(십계명들) 중에서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고 일컫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는데 그가 어쩌다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다면, 그는 천국에서 자신이 일찍이 쌓아두었던 상급이 허물어지고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그렇다. 예수믿고 간음하고, 예수믿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그가 받을 상급은 많이 줄어들어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가 천국에 턱걸이로라도 들어간다는 것에 가정하에 그러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21:8을 보라. 부활승천하시어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믿어도 우상숭배한 자를 불못에 던지겠다고 하셨다. 또한 간음하고, 거짓말하는 자들도 만일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불과 유황 못에 던져 그를 태우게 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로 하여금 구원얻게 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결코 말로만, 그리고 입술로만 하는 고백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지키는 믿음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렇다. 성도들이 구원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들(십계명들)을 여전히 지켜야 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여전히 지켜야 한다. 당시 로마황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 하나님"으로 부르라고 하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 중에 오직 예수믿는 사람들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끝까지 고백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고백과 함께 장렬하게 순교할 수 있었다. 

 

5. 나오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믿음" 지상주의에 그만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만 믿으면 칭의도 얻고 구원도 받는다고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믿음은 사실 갖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계14:12). 예수님을 믿다가도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면 그는 구원받기가 어렵게 되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번 믿었던 사실이 자신의 구원을 영원히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물론 그날에 죽는다면 그는 구원받을 것이다. 하지만 믿은 후에도 우리는 또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임금이 누구인가? 그는 마귀다(요12:31,14:30,16:11). 화가 난 마귀는 빼앗겨벼린 원래의 자기의 사람들이 쉽게 천국가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궤계를 잘 알고 대비해야 한다. 쉽게 천국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참된 신앙의 길은 좁은 길이라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계7:13~14). [초]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선]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도 말씀하셨다(마22:14). 그러므로 우리는 대충 믿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짓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믿었으면 그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고, 믿었다면 그는 계속해서 죽는 그날까지 회개하며 살아가야 한다. 먼저는 과거에 지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특히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짓고 있는 죄, 즉 자신이 불러들인 자범죄들을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죽는 날에 우리가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믿음으로 칭의를 얻었다고 해서, 그 칭의가 영원불변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러한 것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땅을 밟고 살아가다보면 처음 입혀졌던 흰 옷은 또다시 더럽혀질 수 있다. 생각해보라. 율법이 아니라면 내 옷이 더럽혀 있는지 깨끗한지 어떻게 알겠는가?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은 하겠지만 성령을 무시하며 살고 있는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율법은 폐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심판의 기준으로서 톡톡히 역할을 해낼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율법의 예표들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신 것인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율법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교과서요. 내 죄목을 알려주는 메뉴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율법은 더 이상 필요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우리가 짓고 있는 죄를 알고서도 무조건 덮어버리는 것과 같다. 썩어가는 상처가 있는데도 그것을 덮어버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환부를 드러내어 씻어내고 치료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회개"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율법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다. 

 

2020년 09월 02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