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강해(07) 율법을 주신 목적과 그 한계(2)(갈3:10~4:11)_2020-09-16(수)

by 갈렙 posted Sep 16,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3kmhETBNEY
날짜 2020-09-16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3:10~4:11(신약 340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율법을주신목적,율법이란,율법의기능,율법의한계,초등교사(몽학선생),초등학문,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복음만 있으면 되는가? 이들에게 율법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유대인들에게 지켜야 할 법도이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폐지해버리셨기 때문에 관심밖에 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을 자가 없으니, 율법은 폐기처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연 그게 맞는 주장인가? 율법은 2천년전에 이미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성도들에게도 필요한 것인가? 이 율법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1. 들어가며

  바울이 말하려는 율법이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인가? 바울은 "율법의 행위들"과 그리고 "율법"을 어떻게 구분하여 말을 했는가? 그리고 오늘날 현대인들의 주장처럼, 할례를 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외치는 사도바울은 과연 율법무용론자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율법지속론자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가 이방인들의 교회였던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증거하였던 율법관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는 왜 믿음은 강조하면서도, 회개는 강조하지 않았던 것인가? 율법과 관련하여 그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은 참으로 많다. 그런데 그것의 상부부분이 갈라디아서와 그리고 로마서에서 답을 해 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바울의 율법관에 관하여 좀 더 넓고 포괄적으로 폭넓게 살펴보려고 한다. 과연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고 언급하고 있는가? 그리고 율법은 과연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율법이 지난 한계는 대체 무엇인가? 이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2.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와 율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에 관하여 2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율법의 행위들"에 관하여 말하고, 또 하나는 "율법" 자체에 관하여 말한다. 사도바울은 먼저 "율법의 행위들"과 "믿음(언약)"을 비교한 다음, 이어서 "율법"과 "믿음(복음)을 비교하여 말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다른 복음"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갈라디아 지역에서 전했던 그 복음이 아니라 전혀 다른(헤테로스, different) 복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 갈라디아성도들을 엄히 책망하는데, 그때 바울이 말했던 "다른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다가 율법의 행위들 특히 율법의 의식법들까지 지켜야 칭의도 얻고 구원도 얻는다는 복음이었다. 고로, 여기서 바울이 말했던 "율법의 행위들"이란 율법 중에서 주로 의식법을 가리키고 있는 바, 할례를 행하고, 절기도 지키고, 음식도 가려서 먹고,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지도 않는 것들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바울은 율법자체를 부정했다고 말하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완성하심으로 폐했던 의식법의 규례들을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다가 추가한 것을 가리켜 "다른 복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과 그 기능을 소개하고, 이어서 율법의 한계까지를 언급한다. 이것은 율법이 결코 복음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오기 전까지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그 이유를 밝히 말하려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결코 율법의 무용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율법의 행위들 곧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켜야만이 칭의도 얻을 수 있고 구원도 얻을 수 있는 주장을 반박하려는 것이었지,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셔야 했던 이유와 목적을 밝힌다.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신 것인가? 그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세분하여 말하면, 4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첫번째 목적은 사람들이 범법(법을 위반함)함으로 추가된 것이라는 것이다(갈3:19). 왜냐하면 율법이 없으면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추가로 주신 것이다(롬3:20). 그러므로 사도바올은 로마서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증거하였던 것이다(롬3:20). 둘째,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두번째 목적은 죄인으로 하여금 심히(한층 더) 죄가 되게 하기위함이다(롬7:13). 무엇이 죄인지를 규정하는 항목이 없다면 자신이 죄인인지를 잘 모를 수 있지만, 무엇이 죄인지를 규정하는 항목이 있다면 그것을 보면 자신이 정말로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세번째 목적은 범죄(탈선, 이탈)이 더 많아지게 하려 함이다(롬5:20). 율법을 모르고 있는 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 자인자 잘 모르고, 자신은 단지 몇 가지 죄만 지은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말씀을 더해줌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죄들을 짓고 있는지를 뚜렷히 알게 되어 자신이 정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자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네번째 목적은 자신이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얻고도록 하기 위함이다. 곧 율법은 모든 사람들을 죄인들이라는 하나의 군으로 만들어 그리스도께서 인도해주는 초등교사의 일을 하도록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4. 율법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고로 바울은 율법은 그전이나 현재나 초등교사로서 그 기능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만약 율법이 없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서 삶의 현장에서 숱한 역경과 환란들에 노출되면서 비로서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율법이 주어짐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상태에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게 되어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한결같은 탄식은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질문이다. 그것을 본인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데까지는 나아가지만,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에게 가면 그 문제가 해결받을 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것들은 율법들 중에서도 의식법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고로 사람들은 의식법들의 규정을 통하여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게 되는데, 그것은 율법에 있는 의식법들을 통하여 의식법에 나오는 것들의 실체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분에게로 가면, 율법의 의식법들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사람이 안식(쉼)을 얻고자 함인데, 사실 이땅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는 안식이 없는 것이다. 일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은 일요일에 조금 쉴 수 있을른지는 몰라도 영혼은 항상 고단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만들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붙잡으면 된다. 그러면 안식일의 규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깨닫게 하시고 주시고자 하는 안식이 실현되는 것이다. 고로 율법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며, 또한 적극적으로는 예수 안에는 안식이 있고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점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지금도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참된 안식과 치료와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5. 율법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율법말씀만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구원받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키고, 도덕법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율법 자체만으로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 한 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율법이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갈3:21).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또한 죄를 심히 죄되게 할 뿐더러 죄가 더 많아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죄지은 자들이 회개한다면 그 죄을 씻을 수 있도록 인도한느 역할도 감당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할지라도 율법이 그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생명은 오직 아들을 통해서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은 자신이 받은 생명을 오직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만 믿는 자들에게 주기 때문이다. 즉 오직 아버지께서 아들에게만 주신 그 생명을, 아들은 또 보혜사 성령에게 보내시어서, 모든 믿는사람들 속에 집어넣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자기자신을 잘 다스리고 통제한다고 할지라도 죄된 본성까지는 다 이겨낼 사람은 없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거기에서 궁극적인 안식과 평강와 구원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붙들어야 생명의 은혜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회개를 통하여 죄사함은 줄 수는 있을른지 모르지만 결코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서, 율법지상주의에 빠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6. 오늘날에도 율법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인가? 율법을 과거의 구닥다리의 유물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나 아니다. 결코 아니다. 율법은 지금도 여전히 소극적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에게까지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여전히 소극적이지만 그 기능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는 율법은 죄를 짓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죄가 죄되게 하고, 죄가 더 많아지게 함으로 예수님을 붙잡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은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아뢰고 또한 그분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일을 돕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전혀 없으며, 율법의 행위로서는 결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무엇보다도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있을 것이라는 갈3:19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율법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율법이 아니고서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은 죄인인지를 잘 모를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율법이 없기 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있었고, 그러한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로 죽지 않고 계속 살았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출애굽하여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는 그들이 과거 애굽 땅에서 어떠한 죄를 짓고 살아왔는지를 깨우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이 세상에서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죄를 지으면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소와 양의 짐승의 제사로는 인간의 죄가 용서될 수 없으며, 진짜 흠없는 사람이 오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할 것임을 미리 가르쳐준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실 때까지의 임시법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한시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은 더이상 필요없는가? 그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사역을 완성해 버렸으니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죄된 본성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기(네피오스)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로마시민들에게서 있는 초등교사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기까지는 초등교사로부터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초등교사는 주인의 아이들을 일정기간동안 보호하고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을 맡는데, 그때 주인의 아들이 상속자가 될 때까지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고 지도하고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이다. 이것을 "초등교사(몽학선생)"라 부르는 것이다. 이때 초등교사는 그 집의 있는 종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로마의 초등교사의 역할이 곧 율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초등교사에도 나이에 따라 두 종류의 교사가 따라붙게 되는데, 그들은 "후견인"과 "청지기"라고 불린다(갈4:1~2). 그런데 후견이니나 청지지가 나 종들이다. 먼저 첫째로 주인의 아들은 후견인의 양육과 지도를 받아야 한다. 이는 주인의 아들이 보다 더 어렸을 때(~14세까지)에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초소양교육을 그로부터 받는 것이다. 이는 후견인은 만4세에서 14세가지의 중인의 아들 곁에서 그를 교육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25세까지는 "청지기"에서 붙혀서 상속자로서의 소양교육을 받게 한다. 아들일지라도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상속자가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독립적으로 상속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아들들은 청지기의 지도하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자신을 이끌어갈 수 없는 미성숙한 자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는 율법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초등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두고서 사도바울은 "초등학문"이고 불렀다. 즉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기초소양, 기초원리를 가리켜 "초등학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주인의 아들에게 초등교사가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유대인의 율법이라 할지라도 성도가 되면 대부분은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율법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 이외에 그 어떤 사람도 죄된 본성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신의 공격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그리고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보조적으로 율법을 곁에 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이란 도덕법(십계명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7. 나오며

  바울의 서신 가운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칭의"를 매우 강조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이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믿는 자들 마음 속에 내주하도록 보내주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는 그러한 구조로 편지(책)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구하고 오늘날 과연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되는가? 아니 성령이 누구시며 어떻게 자기를 인도하는지를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몇이나 되는가? 이렇듯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반드시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도록 보내어진 성령을 받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더라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자들에게 율법은 일종의 죄에 대한 책망교과서가 되어준다. 율법이라고 부지런히 읽고 그것으로 자신을 비춰보아서 자신이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자백함을 통해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율법이라고 곁에 놓고 공부하고 읽어서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살펴보고, 죄목이 발견될 때마다 즉시즉시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죽는 날에 자신이 지었던 죄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면 최소한 율법을 읽고 배워서 거기에 나온대로라도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는 최종관문은 결국 죄를 회개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는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죽는 날에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하여 죄를  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만이 결국에 죽어서도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살아서는 귀신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니, 저주가 떠나가고 질병도 사라지며, 건강하게 살고,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을 받게 되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9월 16일(수)

정병진목사

 

 


Articles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