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강해(08) 바울의 호소와 율법과 약속의 차이(갈4:12~31)_2020-09-23(수)

by 갈렙 posted Sep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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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Wupnxjx5As8
날짜 2020-09-23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4:12~31(신약 30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율법과믿음,율법과율법행위,율법와약속,아들과종,상속자와종,바울의질병,율법언약과약속언약,율법의자녀와약속의자녀,하갈과사라,이스마엘과이삭,유대종교지도자들과바울

갈라디아 성도들은 율법 아래에 있었는가 아니면 복음 아래 있었는가? 그런데 그들은 율법 아래에 있기를 원다. 그만 바울 유대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에 쉬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약속을 믿고 성령받아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율법 아래 있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율법아래 있고자 한다면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율법언약과 약속언약을 비교하여 낱낱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말씀을 듣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율법 아래 있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그것을 설명해주었다.

 

1. 들어가며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 쉽게 무너지고 말았는가? 그들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였던 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 아래서 종노릇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아들이자 상속자로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종의 영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아들인 예수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그들 속에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율법의 규례들을 준수하는 자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들은 금새 바울이 전해주었던 복음에서 떠나 율법을 규례들을 지키는 자들로 변질되어 버렸는가? 그러자 바울이 그들로 하여금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편지로 써보낸 것이 바로 갈라디아서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교리편(3~4장)에 해당하는 부분 중 마지막 부분(갈4:12~31)을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그들이 복음전파초기에 얼마나 바울을 사랑하고 따랐으며 바울에게 헌신적이었는지를 밝히면서(갈4:12~20) 이제 다시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하게 되었다면서, 그들은 원래 어떤 사람으로 구원을 받았는지 하갈의 아들과 사라의 아들의 경우를 들어서 그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2. 갈라디아 성도들은 종으로 구원받았는가 아니면 상속자로 구원받았는가?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말한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그렇다. 그들은 어리석었다. 그는 종으로 부름받은 것도 아니고 종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로 출생했기 때문이다(갈3:29,4:1,7). 왜냐하면 갈라디아 성도들은 처움부터 복음을 듣고 믿어서 구원얻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의 아들의 영을 마음 가운데 받아들여의 하나님의 아들들로 탄생했기 때문이다(갈4:5~6). 그때 그들 속에 아들의 영인 성령께서 아들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부터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이다(갈4:6).

  하지만 아무리 아들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상속자로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태어난 아들에게 초등교사(몽학선생)를 붙여 준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아들로서 그리고 상속자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그들이 어렸을 때다. 그래서 태어나서 14살 때까지 아들은 후견인의 지도를 받으며, 25세때까지는 청지지의 지도를 받는 것이다(갈4:2). 이때 "후견인"은 보다 더 어릴 때에 주인의 아들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맡는데, 후견인은 그때에 주인의 아들에게 초등학문(기본원리)을 가르친다(갈4:3). 그리고 나면 이어서 "청지기"가 그 아들을 맡아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시킨다. 그러나 후견인이나 청지기는 결코 아들이 아니며, 종이다. 한 마디로, 그는 주인의 아들을 가르치는 종인 셈이다.

  그렇지만 25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지기의 명령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아들은 없다. 아들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재산을 자기가 관리해야 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로마시대의 미성년자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와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들로 탄생했다고 할지라도 그가 어렸을 때에는 후견인과 청지기와도 같은 율법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년이 되어서 상속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속자서의 신분을 버리고 다시 종의 지도를 받으려는 사람이 되고 있느냐고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한다(갈4:8~111). 왜냐하면 갈라디아 성도들은 처음부터 종으로 아니라 아들로 태어났었고 또한 후견인과 청지기로부터 훈련을 받아 이미 상속자로서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갈4:7).

 

3. 복음전파 초기 갈라디아 성도들은 어떻게 바울을 아끼고 사랑했는가?

  그렇다면, 바울이 처음에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왔을 때에 어떻게 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일까? 바울은 처음부터 갈라디아 지역들 곧 비시디아의 안디옥과 이고니온, 그리고 루스드라와 더베에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갔던 것일까? 그의 간증을 들어보면, 바울이 그쪽으로 가게 된 것은 그가 질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육체의 질병을 통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너희도 알아온 채 있다(갈4:13). 그랬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간 것은 어떤 질병 때문에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지대인 밤빌리아에서 고산지대인 갈라디아지역으로 갔던 것이다. 추정컨데 그가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고혈과 설사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지만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를 기꺼이 받아주였고 치료해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바울이 몸의 건강을 회복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육체의 연약함(아스테네이아)"에 대해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다. 어떤 이는 바울이 다메섹도상의 체험에서 눈이 고장나서 안질로 고생했다고 말하기도 한다(행9:9). 왜냐하면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울을 사랑해서 그들의 눈들이라고 빼어서 주려고 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갈4:14).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주장인듯하다. 왜냐하면 다메섹 체험이후 바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진 것은 그의 영안이 열린 경험이었을 것이고,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기들의 눈들이라도 빼어서 주려고 했다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바울을 아끼고 사랑했고 존경했으며, 그에게 헌신적이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이는 바울이 앓고 있었던 질병은 귀신들려 고통받는 "간질"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고린도후서10:10을 근거로 하는 주장인데,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보이기는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천사) 곧 귀신을 붙여주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것은 그가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큰 것이어서 스스로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귀신이 그의 몸에 들어갈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이 간질병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간질병"이라는 질병은 정신질환으로서 그의 의식(혼)이 완전히 귀신에게 사로잡혀 귀신의 통제하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키는데, 바울이 그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공부해 보면,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귀신이 들어갈 수는 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수백 마리 내지는 수천 마리의 귀신들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세력이 약한 귀신들은 사람에게 영향을 못 미치는데, 그것이 뭉치게 되거나 세력이 큰 놈이 들어가면, 몸의 어떤 부분에 질병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더라도 바울의 질병은 결코 간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 자체가 복음전파자로서의 부적격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에게 다가왔던 유대율법주의적인 성도들이 실은 어떤 자들이었는지를 들려준다. 그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열심을 냈던 것은 좋은 뜻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울로부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간질시키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들에게 열심을 내어 종노릇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갈4:17). 무엇이든지 좋은 일로 열심하는 것은 허용이 되겠지만 나쁜 뜻으로 열심을 내는 것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또다시 그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해산하는 수고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갈4:19). 왜냐하면 그들이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따라 갔는데 그것은 안타깝게도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4. 율법언약와 약속언약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신에게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상기시켜준다. 즉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누군지를 알게 됨으로 인하여, 유대율법주의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다시는 넘어가지 말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바울은 두 언약을 비교해서 그들에게 말해준다. 사람에게는 2가지 언약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율법언약"이요, 또 하나는 "약속언약"이라는 것이다(갈4:24). 그런데 사람이 만약 율법언약을 믿고 따라가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상태라 할지라도 종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로부터 약속의 언약을 듣고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처음부터 "약속의 자녀"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성도들이 종의 멍에에 매여 종노릇할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라의 자녀가 되었기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갈4:23).  

  그렇다면, 바울은 '율법언약'과 '약속언약'을 어떻게 비교해서 말한 것일까? 그것은 아브라함의 두 여인을 들어서 설명하였다. 아브라함에게는 첩을 얻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녀는 자신의 부인이었던 사라의 몸종이었다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이 된 자였다. 그녀의 이름은 '하갈'이었는데, 그녀의 신분은 종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가 첩으로 들어가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브라함의 첫아들인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떠나셨다. 그리고 13년후에 다시 와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셨다. 그것은 그가 다시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겠다는 표시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장차 그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 때가 올 텐데, 그때에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1년만에 아브라함이 정말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게 된다. 그 바로 '이삭'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이었으며,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이었던 것이다. 둘 다 아들인 것을 분명하나, 여종을 통해 난 아들은 아들이나 종과 같은 아들이었다. 왜냐하면 결국 아버지의 품에서 쫓겨나야 했으며 아버지의 재산도 상속받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인 사라를 통해 난 아들 이삭은 아들이면서 또한 상속자였다. 왜냐하면 약속을 따라 태어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삭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아 아버지의 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하갈을 "율법언약"이라고 명명했으며, 자유로운 여자 사라는 "약속언약'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리고 율법이 제정될 때에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졌지만, 그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이어져서 바울 당시 율법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런데 약속은 약속이 제정될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제정하신 것으로서,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된 것이기에,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고로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살게 되고 그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는다는 것이다. 

 

5.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요약했는가?

  그리고 그때도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이삭을 박해한 것처럼, 육체를 따라갈 것을 주장하는 유대율법주의적인 교사들이 성령으로 따라가야 할 것을 주장하는 바울을 핍박하고 있었던 것이다(갈4:29).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때 당시 여종과 그녀의 아들을 내어쫓으라고 했는데, 이것은 여종의 아들이 결단코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이어서는 아니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유대율법주의적인 교사는 이제 갈라디아교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로 하여금 그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알레고리적인 비유인 두 언약를 들어서 서로 비교하면서, 갈라디아 성도들이야말로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이자 상속자이며, 또한 성령을 따라 난 자들로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할 자들인 것을 명심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6. 나오며

  바울은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율법언약과 약속언약의 차이를 여종(하갈)의 자녀(이스마엘)와 자유로운 여자(사라)의 자녀(이삭)를 비교함으로써, 갈라디아 성도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는 유대율법주의적인 교사들을 갈라디아교회에서 당장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하늘나라의 유업을 이어받을 수 없는 자들로서 그를 따라가는 자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처음부터 종으로서 태어났던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라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종의 자식이 들어와서는 사라의 아들을 잘못 인도하더니 결국 핍박하고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성경의 가르침은 정확하다는 것이다. 하갈도 분명히 이스라엘이라는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았지만 둘 다가 결코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 종의 자녀로 살려고 하느냐면서 그들을 책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로 산출되는 모든 이방인 성도들은 처음부터 아들의 영인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에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 무엇이 죄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 아래에서 기초를 잘 닦았다면 이제는 하늘나라의 상속자이기에, 상속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 땅 위에서 펼쳐가나는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일이다. 그 방법은 다음주에 차근차근 배워보도록 하자. 

 

2020년 09월 23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