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강해(16)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과 부모자식 및 상전과 종들 간에 지켜야 할 윤리(엡5:31~6:9)_2021-02-24(수)

by 갈렙 posted Feb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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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IHud0FsvDU
날짜 2021-02-24
본문말씀 에베소서 5:31~6:9(신약 31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남편과아내의관계,부부의도리,그리스도와교회의비밀,아담과하와,부모와자녀의관계,효도관,자녀관,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유비는 아담과 하와, 남편과 아내간에게도 있다. 예를 들어, 하와는 흙이 아니라 아담의 살과 뼈 곧 아담의 몸으로 건축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하와는 교회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에 담긴 영적인 비밀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결혼관 과 효도관 및 자녀교육관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 이때 특별히 신경써야 할 중요한 3가지 관계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꼭 접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3가지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던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상전과 종들간의 관계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것을 중에 부부간의 올바른 관계를 살펴보았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오늘은 이 말씀에 이어서, 부부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모형론적인 예표로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도 살펴볼 것이다. 특히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모는 자려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살아가야 할 관계들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2.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는 어떠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주에 가정의 시작인 부부간의 도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을 위해서 그것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아내들은 자기의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주님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적인 질서로 볼 때,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엡5:22~23). 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이것을 좀 더 풀어서 보면, 첫째는 여자(하와)가 남자(아담)로부터 나왔기 때문이요(고전11:3,8), 둘째는 여자(하와)를 지은 목적이 남자(아담)를 돕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며(로전11:9), 셋째는 여자가 꾀임을 받아 먼저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딤전2:13~14). 그리고 사도바울은 남편들에게 권면하기를,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였다(엡5:25). 왜냐하면 아내는 남편의 몸 곧 자기 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엡5:28~29). 그 누구라도자기의 몸을 사랑하지 아니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기의 몸을 내 준 것 같아야 한다고 했다(엡5:25). 그리고 여자는 더 연약한 그릇인만큼 돌볼 때에도 아낌없는 배려를 해주어야 하며,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엡5:29).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교회를 위해 내주었던 것인가?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자기 옆에 세워 파트너로 삼되,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남편과 아내의 바른 관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관계와 같다는 하였다. 살펴 보니, 하와는 아담의 잠듦에서 나왔었다. 이는 아담의 죽음을 통하여 하와가 건축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교회가 건축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을 만든 육체의 재료가 흙이었다면, 하와를 건축한 재료는 아담의 살과 뼈 곧 아담의 몸이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몸이기에,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여기에 근거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정의하였던 것이다(엡1:23, 골1:18). 

 

3.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인 부부의 결혼관은 어떤 것인가?

  이어서 사도바울은 부부의 관계의 시작 곧 결혼관에 대해 언급하였다. 어떻게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지를 아담과 하와의 만남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 그것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엡5:31). 그런데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창세기 2:24의 말씀을 다시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이것을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엡5:32).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잘 살펴보면, 결혼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해서 한 몸이 되어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는가? 그것은 에베소서 5:31에 그 답이 들어있다. 우선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번역해보자. "이것에 상응하여, 사람(남자)이 장차 그 부모를 남겨두어야(καταλείπω) 한다. 그리고 그는 장차 자신의 아내를 향하여 달라붙어야(προσκολλάω) 한다. 그리고 그 둘이 장차 한 육체 안으로 있어야 한다(엡5:31,헬라어직역)" 이 말씀을 보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기 위해서는 첫째, 남자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헬라어원문을 보면, 이때 남자는 자기의 부모를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남겨두는(~의 뒤에 남겨두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가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남자가 독립해야 할 것은 비단 경제적인 독립만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불어 의지적인 독립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을 했으면서도 자꾸 부모님을 의지하고 결정을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아내에게 묻지 않는다면 부모로부터 독립한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결혼관계가 깨질 수가 있다. 둘째는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향하여 달라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쓰인 헬라어는 달라붙다는 단어는 '프로스콜라오'라는 동사(~을 향하여 부착하다, 달라 붙다, 결합하다, 합일하다)로서, 아내를 향하여 남자가 달라붙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말은 남자와 여자간의 육체적인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한 남자가 한 아내에게 달라붙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셋째로, 두 사람은 하나의 육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결혼이란 성적인 결합과 정신적인 결합과 더불어 영적인 결합까지 같이 가는 것이다. 이것들 중에 하나라도 성립되지 않으면 결혼생활은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삶에서 성경말씀대로만 살아야 한다고 못 박을 수는 없을 수 있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원칙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의 원점에서 검토해보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자녀의 성경적인 효도관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자녀는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된 자녀라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한다면, 응당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있으니 그것을 사람들은 "십계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십계명에 보면, 자녀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명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총10가지다. 그런데 이것을 중에서 인간계명으로써 첫번째 계명은 바로 "부모공경"의 다섯째계명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부모에게 해야 할 것을 2가지로 언급한다. 하나는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엡6:1). 그리고 또 하나는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엡6:2). 어찌 보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둘은 다른 것이다. 순종하는 것은 말이나 행동에 관련된 것라면, 공경하는 것은 태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종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헬라어로 "아포쿠오(ὑπακούω)"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아포(~아래에서)"와 "아쿠오(듣다)"가 합쳐진 말로서, "아래에서 듣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낮은 자세로 듣고 부모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공경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티마오(τιμάω)"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티메"라는 명사에서 나온 말이다. 참고로 "티메"라는 단어는 "값, 가격, 가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을 매우 가치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자기를 낳아준 생명의 원천을 매우 값지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경의 문제는 바로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십계명을 살펴보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만 나올 뿐이다. 더욱이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그를 죽이라고까지 명령하고 있다(신21:18~21). 이 말씀은 우리가 혹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가 살다보면,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할 수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회 가지 마라. 예수 믿지 마라" 등등의 명령들은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권면했던 것이다(엡6:1). 이는 주님의 말씀과 부모의 명령이 충돌될 때에는, 우선순위를 주님의 말씀에 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혹 믿는 자녀가 있는데 믿지 않는 부모의 명령에 거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식은 결단코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부모공경에 대한 축복이 있는가? 있다. 사도바울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2가지나 된다고 말했다. 첫째는, "네가 잘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이 땅에서 형통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땅 위에서 장수할 것이다"고 했다. 이것 역시 효도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내려지는데 그것은 수를 다하는 축보, 곧 장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십계명에서 약속하고 있는 바일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도 다시 확증해주고 있는 말씀이다(출20:12). 

 

5. 부모의 올바른 자녀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아버지들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2가지를 권면하고 있다. 하나는 자녀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엡6:4a).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불공평하게 대하거나, 편애할 때 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녀가 생각할 때에도 항상 부모는 자녀에게 합당하게 처우해야 한다. 또 하나는 양육할 때에 가르치는 모든 지침이 주님의 훈련과 권고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엡6:4b). 그렇다. 부모라고 부모에게 힘이 있거나 돈을 가지고고 있다고 해서 자녀를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된다. 부모라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잘 돌보아주고, 양육하고 가르치고 훈계해야 하는 것이다. 

 

6. 나오며

  가정은 부부로부터 시작된다(창2:24). 또한 그렇게 시작된 가정은 사실 강력하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나서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면, 어떤 세찬 비바람도 다 막아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남자는 그 누구의 지지를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내의 지지만 받게 된다면 백배의 힘을 낼 수가 있다. 그만큼 아내의 지원과 격려가 남편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남편을 머리로 생각하는 아내의 기지가 정말 필요한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현숙한 아내를 둔 남편은 그녀를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그런 아내를 위하여 남편은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시작된 가정에는 필히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그때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마디로, 잘 양육해야 한다. 자녀가 어릴 때에 받은 상처는 아이에게 더 깊게 패이고 오래 가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지도할 때에도 주의 말씀을 가지고 훈육하고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랄 때에 울분을 품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하지 말고, 편애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다. 혹시 그러한 일이 있었음이 조금이라도 드러나게 된다면, 부모라 할지라도 빨리 시인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반대로 자녀는 부모의 말씀에 항상 순종해야 하며, 부모를 대할 때에는 언제나 그분을 가치있고 존귀한 분으로 존중해 드려야 한다. 그것이 마땅한 바요 합당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나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음주에는 상전과 종들간의 문제와 더불어 영적 전쟁의 필수적인 아이템인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2월 2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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