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02) 교회의 분열과 그 치유책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1)(고전1:10~31)_2021-03-31(수)

by 갈렙 posted Mar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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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G5l85raENU
날짜 2021-03-31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10~31(신약 26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고린도교회의분열양상,바울파,아볼로파,게바파,그리스도파,분열치유방법,일치점,이세상의지혜,필로의알레고리컬성경해석

1. 들어가며

  성경에 등장하는 교회들 가운데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회를 고르라면 그 교회는 아마도 고린도교회일 것이다. 지난 주에도 잠깐 살펴보았지만 고린도 교회에는 당시 약 10가지 문제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중의 첫번째 문제은 분열과 분쟁의 문제였다. 교회가 여러 개의 분파로 나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를 제일 처음으로 거론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책망과 권면의 말씀을 하면서 그들을 타이르기도하고 어우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오늘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들 가운데 첫 번째 문제였던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중에서 오늘은 이 문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그 문제에 대한 2가지 치유책 중에서 첫번째 치유책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고린도전서 1장 10~31절의 말씀의 위치는?

  고린도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장1~9절은 도입부, 1장 10절~15장 58절은 본론부 그리고 제16장의 종결부로 되어 있다. 지난주에는 도입부까지 살펴보았는데, 도입부에서는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칭찬과 인사가 들어가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본론부(1:10~15:58)가 시작되는데, 본론부는 다시 1:10~6장까지의 전반부와 7~15장까지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이것들 중에 전반부인 1:10~6:20은 주로 고린도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즉 고린도교회 내의 분쟁 및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다루고 있다. 또한 그중에서 1:10~4장까지는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에 관한 책망과 권면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고전1:10~31의 말씀은 고린도교회의 분열에 대한 책망과 바울자신의 사역을 실례로 한 분열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3. 고린도교회의 분열 및 분쟁의 소식이란 어떤 것이었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칭찬과 인삿말을 건넨 직후 그들에게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글로에의 집 편으로 듣게 되었었던 교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소식을 언급한다. 교회가 각각 바울파와 아볼로파와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 등의 4가지 당파로 분열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데, 어찌 나뉘어질 수가 있느냐며 질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이 고린도에 간 것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지, 어떤 파당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례를 들어 교회가 분열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4. 고린도교회는 어떻게 해서 4개의 분파가 생겨났던 것일까?

  그렇다면 고린도교회는 어떻게 해서 4개의 분파가 생겨난 것일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4개의 분파가 생겨난 것을 순서적으로 적어 놓고 있다. 맨 처음으로는 바울파,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볼로파, 그 다음 순서로는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어찌 그리스도께서 나뉘었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왜 고린도교회는 이렇게 4개의 분파가 생겨난 것일까? 먼저, 바울파를 생각해보자.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장본인이다. 바울이 자신이 2차로 전도여행(A.D.49~52)을 하면서, 고린도지역에 1년 반가량을 머무르면서 교회를 개척했다(행18:11). 당시 고린도는 아가야지방의 수도로서 여러가지 면에서 헬라의 중요한 중심 도시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떠난 이후 아볼로가 그 교회에 가서 사역했다. 아볼로는 당시 헬라철학의 중심지 였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언변이 좋았고 성경에 능통한 자였다(행18:24). 그가 일찍이 주의 말씀을 배워 예수에 관한 것을 열심히 전하며 가르쳤지만, 그는 단지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 뿐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이름으로 주는 세례와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자 그가 에베소에 왔을 때에, 이미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길을 정확히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가 고린도로  가고자 하자, 추천서를 써주어 아가야 교회가 아볼로를 잘 영접해주도록 부탁하였다. 그래서 바울의 대를 이어 고린도교회에 가서 사역한 사역자가 바로 "아볼로"라는 인물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말고 다른 편지에서 그를 율법교사로 소개하고 있으며(딛3:13), 고린도전서에서는 자신의 형제로 두는 자라고 했다(고전16:12). 결국 우리는 고린도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바로 세운 사람이 아볼로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서 헬라철학에 매우 조예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설득력있는 말로 사람들을 잘 가르칠 수 있었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학자출신의 목회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상당했었던 것 같다. 고로 이제 고린도교회에는 개척멤버로서 바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고, 이어서 아볼로에 의해서 예수믿고 세례받고 성도가 된 자들은 아볼로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기를 지지하는 그룹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를 지도해준 스승을 자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어느 노선에 있는지는 자기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 하는 것과 또한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이어서 게바파가 생겨났다. 왜냐하면 바울이나 아볼로에게서 세례를 받지도 아니하고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 이들이 고린도교회에 합류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들중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게바(베드로)에게서 직접 세례를 받았거나 아니면 게바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자가 고린도에 와서 고린도교회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과정에서 자신을 게바파라고 헸을 것이다. 사실 게바(베드로의 아람어식 원이름)가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했는지는 지금까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기록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게바는 주로 팔레스틴 지역 곧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그리고 안디옥 등지에서 사역한 사역자였다.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주고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주는 등의 일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전9장에 보면, 베드로가 자신의 아내된 자매를 데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바울이 언급이 나온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선교사로서 고린도까지 와서 복음을 전해주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다. 그러다보니, 고린도교회는 이제 개척멤버파인 바울팔,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파인 아볼로파 그리고 베드로를 따르는 원조파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이것도 저것도 줄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그리스도파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고린도교회에는 무려 4가지 파벌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파가 생겨난 이유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들은 자신의 스승을 누구로 두었는가 하는 자부심이 강한 나머지 분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고린도교회는 자신에게 누가 복음을 전해주었느냐에 따라 그리고 누구로부터 말씀을 배웠느냐에 따라 자신을 지도해준 지도자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이 잘못 변하여 파당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5. 바울은 분파주의로 인한 고린도교회의 분열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시도했는가?

  그렇다면, 분파주의로 인하여 분열된 고린도교회를 바울은 어떻게 하나가 되게 해야 했을까? 바울은 우선 자기가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은 분파를 만들라고 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당시 분파는 자기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는데, 그는 고린도교회에서 세례준 자가 몇 명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고린도지역에 간 것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지 결코 세례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세례를 주었던 사람도 딱 두 사람뿐으로, 당시 고린도의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와 또한 한 사람 가이오 뿐이었다고 언급한다. 이는 그가 세례를 주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 자랑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울은 귿르에게 "내가 과연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고 반문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든 상관없이 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어 구원얻게 된 것도 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때문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므로 서로 나뉘어있는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그리스도"라는 공통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스도라는 공통됨을 찾아야 비로소 서로간의 분열이 없어지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이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또한 자신이 누구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바울은 [어디서 세례를 받았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그곳 출신의 사람이었던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도 한 번 더 세례를 베풀었다고 언급하면서, 그 외에는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의 분파를 더 이상 지칭하거나 만들지 말라는 명령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울은 그곳에 보내 교회를 세우게 하심은 세례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고전1:17).

  그러므로 사람이 분파주의에 휩쓸려 하나됨을 파괴하고 분열하게 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도 바울의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가 있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서로 팽팽하게 싸우고 있는 양 편 혹은 여러 편의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하나되게 하려면, 양쪽과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서 그들이 서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이 비울 바울파라고 하든지 아니면 아볼로파라고 하든지, 게바파라고 하든지 그리스도파라고 하든지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 하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들 누구라도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도 받았기 때문이다. 고로 자기들에게 와서 누가 사역했든 상관없이 그들이 모신 것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를 배우게 된 것이다. 고로 오늘날 교회에서 분쟁이나 분열이 발생할 때에는 바울이 가르쳐준 이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때에는 서로 싸우는 앙편진영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그것을 묵상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로서 천국에 가면 서로 남남이거나 대적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가서는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한 형제와 한 자매이기 때문이다. 

 

6. 고린도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되지 못하게 했던 2가지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러한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을 바울은 2가지로 언급한다. 하나는 유대적인 사고방식이요, 또 하나는 헬라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은근히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고전1:22). 그렇다면 헬라인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도 역시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었다(고전1:22)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 모두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힌 돌아가신 그리스도는 하나의 걸림돌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저주의 십자가에서 달려 죽은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또한 헬라인들도 역시 예수께서 사람들을 규합하여 가르치기는 했어도 많은 제자들을 규합하지 못한 채 죽었기기 때문에 또한 유대의 한 촌 동네에서나 활동하던 무명의 청년 정도로만 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이 하신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헬라인들에게 예수님은 결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헬라철학을 바탕으로 우주의 근원과 우주의 존재목적을 지혜로 풀면서, 가장 잘 우주의 이치를 잘 설명하는 사람을 따르기를 좋아하였고 또 새로운 사상이 나오면 그것에 열광하면서 그렇게 듣기 위해 몰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은 그들에게 관심거리가 될 수가 없었다. 로마에 대항하다가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이요, 죽을 때에도 가장 잔혹한 형벌을 받아 죽임당한 반역 죄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누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헬라철학을 가지고 해석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결코 그들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렇다.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데에는 기적만으로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헬라철학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다. 고로 능력이나 기적, 혹은 이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또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에 관하여서는 시간관계상 다음주에 계속해서 이어서 설명하겠다. 

 

7. 나오며

  그렇다.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이유이든지 하나님의 뜻과는 역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음을 하루 앞둔 채 마가다락방에서 기도하셨을 때에도,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와 항상 하나였듯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도 서로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요17:11,21~22). 또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에 따르면, 분열과 분쟁은 성도가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고 죄된 본성을 가진 육체를 따라가며 살 때 맺게되는 육체의 열매라고 나온다. 다시 말해 분열은 사탄의 속성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은 늘 이간질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사람과 사람 사이이를 이간질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서로가 하나되기 위해 힘써야 할 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하나님도 한 분이시요, 주님도 한 분이시요 세례도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고 권면하였던 것이다(엡4:4~6). 이를 위해서 우리는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를 늘 생각하고 말할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과연 어떤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지를 늘 확인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으로 인하여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 싸우거나 분쟁할 이유가 점차로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3월 3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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