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03) 교회의 분열과 그 치유책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2)(고전1:10~31)_2021-04-07(수)

by 갈렙 posted Apr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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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4IVPPI09PMk
날짜 2021-04-07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10~31(신약 26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고린도교회의분열해결책,공통분모,그리스도,십자가에못박힌그리스도,십자가,십자가의의미,고전에나타난그리스도17가지항목,하나님의능력,하나님의지혜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최소 4개의 분파가 있었다. 바울이 이 심각한 분열의 문제를 인편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렇다면 서로 분쟁으로 다투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어떻게 하나될 수 있도록 권면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2가지였다. 하나는 그들의 공통분모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예수께서 달려 죽으신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대체 그 공통분모란 무엇을 가리키며, 십자가는 또한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오늘은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해결책 2가지를 알아보자.

1. 들어가며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교회의 분열에 대한 치유책으로서 두번째 방법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한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 문제가 생겼다.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약 10가지 정도가 된다. 그래서 바울은 A.D.55년경 봄 무렵에 소아시아지역의 에베소서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가야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에 자신이 개척했던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편지를 써보내는데, 그 첫번째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다. 고린도전서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고린도교회의 영적 그리고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권면 및 교회생활과 관련한 제반질문사항에 대한 목회적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이것들 중에서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에 대한 소식을 들었던 바울이 그 문제에 대한 해격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중의 하나인 서로간의 공통분모인 그리스도에 관하여 소개하였고, 오늘은 그중의 두번째 요소인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정교하는 않지만 이 한 편의 설교를 통하여,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겪고 있는 분열과 분쟁에 관한 불씨들이 해소되고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 고린도전서 1장이 차지하는 위치는?

  우리는 지난 번에 서론(머릿말)(1:1~9)부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는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당면한 10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의 첫번째 부분은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다가 시간관계상 끝맺어야 했고 오늘 그 다음 부분을 다루고자한다. 오늘 우리가 다룰 부분은 1:10~4:20까지 나오는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에 관한 부분인데, 그중에 1:10~31으로서 이 문제 앞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고린도교회의 분열에 대한 책망과 아울러 바울 자신의 사역을 실례로 들어 고린도교회의 분열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그 첫번째 해결책으로서 그들이 공통분모인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다(1:10~17).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열에 대한 두번째 해결책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소개한다(1:17~25). 특히 이 부분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자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소개한다(고전1:25). 그리고 그리스도 못박혀 돌아가셨던 십자가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소개한다(고전1:18). 그런데 바로 이것이 바로 교회의 분열을 해결하는 두번째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출신성분과 아울러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이 누군지를 3가지로 소개함으로 1장을 마무리한다(1:26~31). 

 

3. 교회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첫번째 열쇠로서 고린도전서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는 대체 누구신가?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성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 또한 자신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느냐고 반문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 못박히신 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가 고린도교회에 와서 사역했든지 모두다 세례를 줄 때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모두에게 공통분모인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세워진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교회가 4개의 분파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분파는 교회를 개척했던 바울을 따르는 바울파였다. 그리고 두번째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를 교육하고 든든하게 세웠던 아볼로파, 그리고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영향을 받아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게바파,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은 그리스도파로 하여 자신을 자신의 스승 밑에 놓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분열과 분쟁의 사실 앞에서 바울이 선택한 비장의 무기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분열과 분파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세례를 주었거나 사역했던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로 뭉쳐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특히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편지를 쓸 때 수신인으로서, "우리나 너희나" 똑같이 그리스도를 주로 부르는 자들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고전1:2). 이는 오직 주 예수만을 불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며 대체 누구인가? 고린도전서는 그리스도가 누군지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보화주머니다. 그래서 세어보니 적어도 17개의 항목이나 된다. 우리는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도가 누군지에 앞으로 총17개 항목에 대해서 보다 더 자세히 공부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다만 그 항목의 기본개념만을 집고 넘어가고자 한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전해주고 있는 그리스도는 총 17가지 항목이나 된다. 첫째와 둘째는 그분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이다(고전1:15). 셋째와 넷째와 다섯째는 그분은 하나님의 지혜로서, 3가지 것들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라고 소개한다(고전1:30). 여섯째는 그분을 "영광의 주님"이라고 소개한다(고전1:8). 그리고 일곱째는 그는 그분을 교회공동체의 "기초"요, 신앙의 "기초"라고 소개한다(고전3:11). 여덟째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유월절 양"이라고 소개한다(고전5:7). 여기서 "유월절 양"이라 함은 헬라어로 "파스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분은 유월절 양을 포함하는 "유월절 그 자체"라는 것을 원문으로 알 수 있다. 아홉째, 열째, 열한째는 고린도전서 10장에 나오는 개념들인데, 바울은 그리스도를 "신령한 음식"(고전10:3), "신령한 음료"(고전10:4), 쪼개진 "신령한 반석"(고전10:4)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신령한 음식"이라 함은 그분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참 떡이라는 의미이며, "신령한 음료"라 함은 그분의 쪼개어진 반석에서 나오는 생명의 물(생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분을 "쪼개진 신령한 반석"이라 함은 생명의 산출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열두째로서 그리스도는 "머리"로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머리는 모든 사람의 머리이자 교회의 머리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는 그분이 모든 사람의 통치자이면서 교회의 주관자되심을 언급하는 것이다. 열셋째로서 그리스도는 "몸이자 지체"라고 소개된다(고전12:1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이란 교회를 가리키며, 교회는 또한 여러 지체들로 구성되고 있는 바, 바울은 그리스도를 몸이자 지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열넷째부터 열일곱째까지는 고린도전서 15장(부활장)에 등장하는 개념들인데, 여기에는 총 4가지 항목이 있다. 먼저 열넷째로 소개되고 있는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열매"이시다(고전15:20). 여기서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이시라고 함은 구약의 성도들 중에서 단 한 명도 부활체를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이 부활의 첫 열매로서 아버지 앞에 간 첫번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죽은 후에 하늘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영체의 상태로 들어갔으며, 낙원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참으로 나눌 이야기가 많다. 그것은 고전15장 강해 때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열다섯째로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 소개되고 있으며(고전15:45), 열여섯째로 그리스도는 "살려주는(생명주는) 영"으로 소개되어 있고(고전15:45), 마지막으로 열일곱째로 그리스도는 "둘째아담"으로 소개되어 있다(고전15:47). 그리스도가 마지막 아담이자 둘째 사람이라 함은 그분이 사람으로서는 두번째 사람이지만 그분이 마지막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첫번째 사람이었던 아담의 씨를 받아서 태어나는 천연적인 사람 곧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하나를 더 얻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생명이자 영원한 생명이요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 생명이다.  결국 예수님은 생명주는 영이 되시는 것이다. 그때 생명주는 영으로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육적으로는 첫째 아담으로부터 첫번째로 태어나지만, 이 땅에 살 동안에 반드시 둘째아담이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거듭태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만이 결국 천국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아담으로만 태어난 천연적인 사람은 만약 죽기 전에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는 죽을 때 이 땅에 남겨지게 될 터인데, 그가 들어갈 처소는 지구의 땅속인 음부요 불못이다(계21:8). 

 

4.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두번째 열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을 끝낼 수 있는 두번째 열쇠는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그것을 일컬어 "십자가의 도(말씀)(고전1:18)"라고 말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할 때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고전1:23)"라고도 하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고전2:2)"이라고 했다. 이것을 종합해보면,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을 종식키킬 수는 해법윽로서 공통분모는 "십자가"인 것이다. 주께서 달려 죽으신 십자가, 바로 그 십자가가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을 없애주는 두번째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가 분열과 분쟁의 없애주고 화목을 가져다주는 열쇠가 되는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에 대한 개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5. '십자가'란 어떤 의미이며, 십자가가 처리해놓은 10가지 사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과연 "십자가"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십자가의 개념은 불신자들이 볼 때와 성도들의 볼 때가 각각 다르다. 불신자들의 눈에 십자가는 한 마디로 "저주의 십자가"로서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로마에 반역하는 자들을 죽이기 위한 극형도구로서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가장 잔인한 살인도구로서 사람을 죽을 때에 가장 수치를 느끼게 해주는 도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러한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거기에서 숨을 거두심으로 십자가의 의미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죽음에 넘기우는) 도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다름 아닌 모든 것을 끝내는 도구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있어서 십자가는 우선 자신이 지고 가야할 사명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라는 의미는 자신의 사명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고, 고난이나 고통, 수치와 멸시라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어렵도 힘든 고통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개념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소극적인 모든 것을 다 끝낸다는 의미를 가리킨다. 그래서 방루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바울이정말 자랑했던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십자가는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다 못박아 끝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체 무엇을 끝내셨는가? 예수께서는 그때 십자가 위에서 대체 무엇을 끝냈는가? 그리고 멸하셨으며 무효화시켰으며 없애버리셨고 약화시켜버린 것인가? 신악성경에 나오는 것으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쵝소한 10가지 항목이 된다. 그것을 이 시간에는 항목만이라고 살펴본다면, 첫째, 죄와 죄들이다. 둘째, 사탄마위와 귀신들이며, 셋째는, 세상을, 넷째는, 육신을, 다섯째는, 옛사람을, 여섯째는, 자아를, 일곱째는, 옛창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덟째는 율법을, 아홉째는 사망을, 열째는 저주를 예수께서 완성하시고 없애버리셨다. 그런데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들 모두는사탄에게 속하는 소극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것들 중에서 단 하나도 이길 수 없다. 사람은 이들에게 포로로 잡혀 있든지 노예가 되든지, 이것들의 소유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전에, 이것들로부터 사람을 구출해내어 해방시켜줄 존재나 시스템과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타나심임으로 인하여 그리고 십자가에 그것을 가져가서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 이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다 무력화시켜버렸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늘도 예수께서 이루신 일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이 모든 혜택을 다 누릴 수가 있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가? 그러므로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사도바울은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앞에서 언급한 10가지 항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6.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로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3가지 혜택은 무엇인가?

  이제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로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3가지 유익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방금 앞에서 보았듯이 십자가가 처리한 것들 중에는 사탄에게 속한 부정적인 10가지 항목이 있다. 하지만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혜택 즉 긍정적인 항목에도 3가지가 있다.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 못박힘ㅇ느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3가지가 있는 뜻이다. 그것은 고전1:30에 나와 있다. 그 항목을 원문으로 보면,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인데, 이것도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가 되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 3가지가 있다는 것, 곧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적극적인 혜택이 3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넘어가기로 하자. 

 

7. 나오며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은 의외로 심각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문제의 해결에 사활을 건다는 각오로 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분쟁의 문제를 무려 4장에 걸쳐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만약 고린도교회가 갖고 있는 이 분열과 분쟁의 모습이 종식되지 않는다면 고린도교회는 교만하여져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분열과 분쟁을 겪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그 분열과 분쟁을 극복할 수 있는 처방전으로 어떤 것이 있다는 것도 같이 제시하였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와 그분이 못박혀 죽으신 "십자가"다. 고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공통분모로서 붙들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이시며, 체험으로 통해 소극적인 것은 끝내고 적극적인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들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사탄에게 속한 소극적인 것들이 끝나지 않는다면,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날마다 소극적인 것들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운 채, 적극적인 것들은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분열과 분쟁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그리스도만을 추구하고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1년 04월 0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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