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25)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탈옥(행12:1~25)_2015-04-08(수)

by 갈렙 posted Apr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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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920fipZwKzw
날짜 2015-04-08
본문말씀 사도행전 12:1~25(신약 20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야고보의 순교, 헤롯왕의 죽음, 교회의 간절한 기도, 베드로의 투옥, 베드로의 초자연적인 탈옥, 수호천사

  오늘 우리는 두 명의 사도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의 사도는 그 시기에 순교를 당했지만 다른 한 명의 사도는 탈출하여 목숨을 건지게 된다. 무엇 때문에 그런 차이가 난 것일까? 그들은 바로 요한의 형 야고보와 안드레의 형 베드로였다똑같이 둘 다 위기의 상황에 처했는데, 그때 야고보사도는 죽임을 당하고, 베드로사도는 건짐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편애하시는 것은 아닐까? 믿는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기에 고난이나 죽음을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야고보 사도는 그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왜 그러한 일이 발생한 것일까?

  사도행전은 크게 양대산맥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베드로를 중심으로한 유대인의 복음전파이고(행1~12장) 또 하나는 바울을 중심으로한 이방인의 복음전파다(행13~28장).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교회와 사도바울을 중심으로한 안디옥교회가 그 축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로 구성된 예루살렘교회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데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주는 데에 많은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베드로의 눈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바로 그 이야기가 바로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회심사건이다(행10장~11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교회는 여전히 이방인전도에 관해 인색하였다. 그때였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핍박을 또 다시 허락했다. 이번에는 사도 야고보의 순교였다. 그것도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아닌 유대정치지도자인 헤롯 아그립바왕에 의해서 말이다.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속국으로서 유대와 사마리아지역에 분봉왕으로서 헤롯 아그립바1세가 통치한 지 6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헤롯 아그립바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획책한 사건이 바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여기고있는 예수추종자들을 처단하는 일이었다. 그때 요한의 형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붙들려 갔고 그만 목베임을 받고 만 것이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왜 야고보의 순교를 지켜만보시고 계셨을까?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정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첫째는 예루살렘교회의 기틀형성에 그의 순교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둘째, 하나님께서 그의 희생을 통해 사탄진영의 사람들을 심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셋째, 야고보의 말처럼(막10:38~40) 그의 말이 예수님의 귀에 들린대로 시행된 것은 아닐까?

  첫번째 가정의 시례는 참 많은 것 같다. 특히 스데반의 순교가 이를 증명해 준다. 하나님은 스데반의 일로 사탄진영의 최대의 일꾼인 사도바울을 빼낼 수 있었다. 두번째 가정은 헤롯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위해 야고보의 순교를 허락했을 수도 있다. 세번째 가정은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와 대답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주의 영광 중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요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한 목소리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나이다."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그들의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여기에서 '잔'은 고난의 잔을 가리키며, '세례'는 죽음의 세례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고난과 죽음의 현장이 찾아왔을 때,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그곳에 남아 있었지만 야고보는 그만 도망치고 말았다. 결국 야고보는 자신이 말한대로 그는 잔과 세례를 맨 처음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 만약 세번째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입술에 더욱 더 파숫군을 세워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귀에 들린대로 시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민14:28). 그렇다고 사도 야고보가 죄로 죽었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언제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을 것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열 한 사도가 다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2:30).

  하지만 베드로는 당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지금 예루살렘교회를 대표하고 있고, 지상에 있는 교회의 대표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순교한다면 교회의 구심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맡은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그는 붙들어 주셨고 보호해 주셨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인해 그가 감옥에서 구출받은 것은 아니다. 철통같은 감옥에서 그가 풀려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였다(행12:5). 당시 사도 야고보가 순교당하고, 베드로마저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예루살렘교회는 즉시 기도에 들어갔다. 그들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 그러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아는가? 기도하고 있던 그들 자신도 믿기 힘든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두 명의 군인이 베드로의 양 손에 쇠사슬을 매고 있었고, 두 명이 또한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것도 이중으로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베드로의 쇠사슬을 풀어버렸고 두 명의 보초가 보지 못하도록 눈까지 감겨버렸다. 그리고 시내로 통하는 파숫문을 열어젖혀 버렸다. 놀라운 사실은 이 장면은 군인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천사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든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그들의 눈을 멀게해서 그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놀라운 광경을 직접 경험하고 있던 베드로는 자신이 꿈인지 생시인지 처음에는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감옥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오고 천사가 떠나갔을 때에 비로소 베드로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실제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한 마음으로 드리는 간절한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절대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이 아니면 아니 되는 경우에는 하나님도 그 순간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신다. 천사를 파송하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마가요한의 어머니집으로 찾아온 베드로를 예루살렘교회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베드로가 왔다는 계집아이 로데의 전갈을 받고는 로데가 미쳤다고 했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베드로의 천사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유대인의 사고방식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고 있다. 즉 그들은 베드로가 죽임당하자 그의 천사가 와서 그 소식을 자신들에게 전하라 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두드리는 소리에 그들이 대문을 열어젖히자, 그들은 그가 베드로인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그곳까지 구출해서 그곳까지 오게 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이내 즉시 그곳을 떠나갔다. 헤롯이 보낸 자들이 또다시 그곳을 급습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성도들이여, 기도했으면 그대로 받게 되는 줄을 믿으라. 이처럼 기도해놓고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라. 하나님은 분명 우리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 즉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비는 성도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결국 야고보의 순교는 헤롯가문의 심판을 가져온다. 그때는 헤롯 아그립바가 유대나라의 분봉왕이 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므로 그는 훨씬 오랜 기간동안 왕위에 앉아 다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여 무고한 하나님의 종을 죽이고 또한 죄없는 사도들을 없이하려는 헤롯 아그립바를 하나님께서는 가만두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때였다. 헤롯의 관할백성은 아니더라도 헤롯의 영토에서 나는 양식을 사다 먹고있던 두로와 시돈사람들이 가이사랴까지 찾아와 헤롯 아그립바왕을 알현하였다. 그러자 헤롯은 왕좌에 앉아 왕복을 입고 그들에게 연설을 했다. 그때였다. 두로와 시돈사람들이 그의 연설를 듣고는 "이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다"라고 추겨세웠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당신들에게 양식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비를 내려주시고 태양 빛을 비춰주시어 곡물을 여물게 하셨기 때문이나,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시오."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명예와 인기에 눈이 멀어있던 그는 두로 시돈사람들의 칭송을 그만 받아먹고 만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심판하여 복통이 일어나게 하셨다. 그는 그날부터 5일동안 복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날 헤롯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5일동안이나 심판을 지체하신 것일까? 그것은 그 기간에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5일동안 살아있으면서 헤롯 아그립바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5일이 지나자 음부가 그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자기자신의 삶에 어려움이나 사고 등이 발생하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그것은 회개하는 일이다. 빨리 하나님앞에 부끄러운 자기자신의 모습을 아뢰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간을 헤롯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허비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벌레에 먹혀 죽고 말았다.

  그런데 어찌 이러한 일을 오직 헤롯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랴? 아니다. 이 일은 누구에게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성도들이여, 그리고 특히 지도자들이여, 지나친 칭찬과 아부에 결코 편승하지 말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되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영광받아야 할 일이 생기거들랑 오직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과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받은 직책이나 직무를 오랫동안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이 될 것이다. 헤롯 아그립바, 그는 아쉽게도 6년만에 그 놀라운 권력의 자리인 유대와 사마리아왕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으며, 비참하게 그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성도들이여, 이제부터라도 결코 자리에 연연해하지 말라. 다 썩어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다 사라질 안개같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 당신에게 그런 일이 맡겨진다면 자신이 본분을 성실히 감당해야 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돈을 쓰거나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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