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우상은 사실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먹어도 되는 것인가? 사도바울은 처음에는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지나서는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믿음 약한 형제를 위해서라도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왜 우상의 제물은 우리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을 이제 정리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먹어도 되는가? 얼핏 읽어보면 그래도 된다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 바울은 왜 처음에는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일까? 그러나 결국에는 먹지 말라고 그렇게 끝을 맺었던 것일까? 우상에게 제물이 바쳐지면, 그 제물에게 어떤 변화라고 생기는 것인가? 오순절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이 다 깨끗하다고 하셨으니(행10:15), 어떤 것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아니한가? 바울은 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의 취식문제를 고린도전서 8장에서 시작하여 10장에 가서 비소로 마치고 있는가?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를 왜 고린도전서 8장에서 완전히 끝마치지 아니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도들에게 늘 고민이 되는 우상의 제물의 과연 그리스도인이 먹어도 되는 것인지를 심도있게 살펴보려고 한다.
2. 고린도전서 8장은 고린도전서에서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가?
고린도전서 8장은 고린도전서의 본론의 초반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린도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입부가 1:1~9까지이며, 본론부는 1:10~15:59까지다. 그리고 끝으로 결론부는 16:1~24까지다. 이중에서 본론부(1:10~15:58)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이중에서 전반부(1:10~6:20)는 고린도교회의 분쟁과 도덕적 무질서에 대한 책망과 훈계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7:1~15:58)은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 문제들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인 답변을 다루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문제들은 근친상간의 문제(5장), 소송의 문제(6장), 결혼과 이혼과 재혼의 문제(7장), 우상의 제물 취식문제(8,10장),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와 성찬식 문제(11장), 성령의 은사의 문제(12~14장), 부활의 문제(15장)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고린도전서 8장은 고린도교회가 당면한 아주 심각한 음식 취식 문제로서, 우상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을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먹어도 되는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작게는 12개의 신전이 있었고, 섬기는 신들이 무려 36개나 있었다고 하니, 우상의 신전에 바쳐지는 제물이 어마어마했었다. 그러므로 신전에 바쳐진 제물의 일부는 다시 일반시장으로 유통되어 시민의 식탁에도 오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과연 먹어도 되는 것인지, 혹은 우상의 신전에 가서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에 관하여 늘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예루살렘공의회게 결정한 사항(행15:20,29)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사랑과 자유와 절제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세우는 방향에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3. 미혼녀(처녀)의 결혼여부와 과부의 재혼에 관하여 바울은 어떤 답을 제시해 주었는가?
처녀의 결혼 문제나 과부의 재혼 문제나 바울은 항상 독신으로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고전7:25~40). 왜냐하면 그것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임박한 환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요(고전7:26), 또 하나는 주를 섬김에 있어서 독신이 훨씬 더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전7:32~34). 그러나만 이것도 자신의 권면일 뿐 본인의 결정하라고 하였으며 바울도 그것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먼저, 첫째로 처녀의 결혼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어떤 답을 제시했을까? 그것은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워 임박한 환난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할 수만 있으면 홀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고전7:25~26). 왜냐하면 만약 누군가 결혼하게 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하면 남편을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염려할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서로 나누인다는 것이다(고전7:32~34). 그렇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주의 일에만 골똘하여 몸과 영을 다 주님께서 헌신할 수 있는 잇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을 권면하는 바울의 대전제는 주님의 재림이 자기시대에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은 성취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너무 임박한 재림사상을 갖고 있어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기보다는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하면서, 오늘 내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들에게 말하기를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창1:27~28).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독신의 은사를 소유한 것이 아닌 이상, 다 결혼하여 자손을 번성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바울은 혼기를 꽉 채운 처녀딸을 둔 부모가 자신의 딸을 과연 결혼시킬 것인가 아니면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자신의 약혼녀와 결혼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런데 고전7:36에 나오는 말씀은 그 대상이 결혼적령기를 앞둔 딸을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약혼녀를 말하고 있는지가 조금 애매하다. 그러므로 이전의 개역한글판에서는 전자의 입장을 가지고 이 부분을 번역했지만, 개역개정판으로 넘어오면서 후자의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어떤 번역이 되었든지 상관없이, 결혼을 앞 둔 사람의 결혼을 중단시킬 것인가 아니면 결혼을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 질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에게 부모나 약혼자라도 결혼하게 하는 것도 죄짓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면 그것도 잘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결혼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잘한 선택지라고 말했다(고전7:36~38).
마지막으로 바울은 과부에 대한 재혼의 문제도 언급한다(고전7:39~40). 사도바울은 남편과 사별한 과부는 자유롭게 시집갈 수 있다고 했다. 단, 주 안에서만 재혼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과부라도 시집가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했다. 사도바울은 항상 현재 자신이 처한 형편을 받아들이면서 그거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을 권한다.
4. 사도바울은 성도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 있다고 했는가 먹을 수 없다고 했는가?
성도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 처음에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말로 시작은 한다. 그렇지만 끝에 가서는 자기자신은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해 고기조차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0장에 가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 자체가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전10:20). 그렇다면, 왜 사도바울은 처음에 성도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을까? 그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도바울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 특히 믿음이 약한 지체를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혹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는 성도들 중에는 "이런 것들 먹으면 안 될텐데..."하면서 먹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런 자들에게 우상을 제물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게 되면, 그들은 이때까지 귀신을 먹고 마셨으며 귀신과 교제한 사람이었다고 정죄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래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우상일지라도 자신이 그것을 우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상이 아니라고 했다. 왜냐하면 오직 살아계신 한 분 하나님만이 신중의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서 이것을 말한다면, 이 명제는 사실상 실재가 불가능한 가정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수많은 우상들이 있는데, 거기에 누군가가 와서 절을 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향을 피우면, 귀신들이 와서 그 경배를 받고 또한 음식을 먹고, 향의 냄새를 맡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상의 배후에는 반드시 귀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맞지만, 그것을 섬기게 되면 그 조형물에게 귀신이 달라붙어 귀신이 경배를 받고 귀신이 음식도 받아먹는다. 그러므로 실제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상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은 당연히 귀신의 소유가 되기 때문이며, 귀신도 그 제물에 달라붙어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이 달라붙은 음식을 누군가가 먹게 된다면, 귀신은 당연히 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크게 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5.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바울 이외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는 어떠한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에서 살펴볼 때에 그렇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도 그렇게 말했고, 오순절 성령강림후 교회시대에서 그렇게 권면했으며,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첫째, 구약시대에 시편106편 기자는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으면 그 행위로 주님을 격노하게 만들며, 그렇게 됨으로 재앙이 크게 유행하게 된다고 했다(시106:28~29). 그러니까 만약 자신이 주님을 노하게 만들기를 원하고 재앙받기를 원한다면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려면 우리는 결코 우상의 제물을 절대 먹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 오순절 성령강림후 교회의 시대의 견해를 살펴보자. 그것은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최초의 교회회의의 합의사항으로서 그 기록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때 예루살렘공의회에서 수장격이었던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15:19-20)" 그렇다. 이방인 중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한 주의사항으로서, 3가지를 주의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우상에게 바쳐진 더러운 제물들, 둘째로는 피, 셋째로는 목매어 죽인 것들, 넷째로는 먹는 것은 아니지만 "음행"을 멀리하라고 정한 것이다. 사실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었다. 하지만 단 하나,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만큼은 더러운 제물이므로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행15:29). 그러므로 아무리 성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상의 제물을 함부로 먹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셋째,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교회를 향한 권면의 말씀 가운데 들어있다.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들 중에서 '두아디라교회'와 '버가모교회'를 향하여 주께서는 "우상의 제물"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셨다. 첫째로, 누군가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된다면 주님께서 그를 당신의 검으로 싸울 것이라고 하셨다(계2:16). 이는 그를 죽이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둘째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를 질병의 침상에 던질 것이며,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그의 자녀를 사망으로 죽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계2:22~23). 이것 또한 질병과 환난과 자녀의 죽음이니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
6. 사도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로서 제시한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에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 하나를 제시한다. 그것은 믿음 약한 형제를 위해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높은 지식이 있어서 우상의 신당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가 그것을 본다면 그도 우상의 제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러면 그 형제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자신은 지식이 있어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형제의 양심을 한다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만일 음식이 자신의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자신은 영원히(세상이 존재하는 한) 고기 자체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전8:13). 왜냐하면 자신의 자유로 인하여 믿음 약한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렇다. 모든 그리스도인에는 저마다 자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혹 걸림돌이 된다면 그 자유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곧 자신이 가진 자유와 지식의 남용이 형제를 실족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성도들은 우상의 제물은 먹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주께서 그 형제를 위해서도 죽으셨는데, 왜 그 형제로 죄를 범하게 하여 주님의 죽으심을 무효로 만드느냐고 책망한 것이다.
7. 사도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에 중요한 잣대로 여겨야 할 사항을 무엇이라고 했는가?
고로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다. 즉 그것은 자기가 우상에 대하여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자기 맘대로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록 자신은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어도 형제를 위해서 먹을 것을 자제하느냐 하는 것이다(고전8:1~3).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데에 있어서 지식을 좇지 말고 사랑을 좇아가라고 말한다. 이는 다음과 같이 말로 요약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그렇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자유로운 것이지는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고전6:12).
8. 나오며
사도 바울이 우상의 제물에 관하여 말하였던 것을 종합해보면, 결국에는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행위이며, 그것은 자신을 결국 귀신과 교제하는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한 결론적인 언급은 8장이 아니라 10장에 등장한다. 그는 먼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상은 아주 없는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만 한 분 계시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깊게 들여다보면 역시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함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는 자들을 실족하지 않기 위한 배려였으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은 얼마든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 우상의 제물은 먹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에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며,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결코 주보다 강한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격노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이는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에 달랑 우상의 제물만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다보면 어떤 경우에는 우상숭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와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뤼를 각각 다른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동일한 행위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해서라도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서는 아니 된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귀신이 우리 몸 속에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요 그러면 저주를 나타나기 때문이다.
2021년 06월 09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