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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1-07-07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1:1~34(신약 27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여자가머리에쓰는것,예배포사용,베일사용,성만찬의오용,애찬과성찬식,주의몸과피,예배의무질서,남녀평등,수찬자의바른삶

여자들은 왜 긴 머리를 하고 사는 것일까? 그리고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을 성경에 제시하는 곳이 있다. 고전11장이다. 고전11장에는 여자가 교회에 나올 때에는 왜 머리에 베일을 써야 하는지 3가지 이유로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달라졌지만 성만찬 때에 왜 애찬이 문제가 되어서 그것이 성만찬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는지를 말해준다.

1. 들어가며

  고린도전서 11장은 고린도전서 7장부터 시작된 문제들 곧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 바울이 제시하는 목회적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의 두 가지로서 사도바울은 공적 예배시에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다. 그것의 하나는 공적예배시에 여성의 예배포(머리에 쓰는 것)의 착용에 관한 문제(고전11:2~16)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성찬(고전11:17~34) 때에 음식을 먹는 것에 관한 문제다. 특히 고전11장부터 14장까지는 공적예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대표적인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바, 고전11장에서는 위의 2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고전12~14장에서는 성령의 은사들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오늘날에도 예배포를 사용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개신교인들도 예배포를 사용해야 하는지와 혹 그것을 써야 한다면 왜 써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더불어 성찬식을 행할 때에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당시 고린도교회에서 여성의 예배포 사용과 성찬의 집례의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당시 고린도교회의 여성의 예배포의 착용문제는 교회내의 남녀간의 평등 및 질서문제와 연관되어 논란이 되고 있었으며, 교회의 하나됨을 확인하는 자리인 성찬식이 오히려 빈부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여 성찬의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러자 사도요한은 왜 여성이 예배포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다루며, 성찬식의 핵심사항이 무엇인지를 집중해서 말한다. 

  먼저, 고전11:2~16에 나오는 여성의 예배포 착용문제를 살펴보자. 이 문제는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인 배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 헬라에서는 여인들이 외출하거나 공적인 모임에 참석할 경우 반드시 머리를 수건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자가 남자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표시였다. 물론 이것은 당시 남성우월주의 사상에 대한 반영이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일단의 여자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 갖는 자유를 근거로 더 이상 자신이 속박당하지 않겠다면서 교회에 출석할 때에 그만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에는 전혀 문제될 것은 아니다. 지금은 여자가 공적인 모임에 참석할 때 머리에 수건을 쓰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는 상당히 중대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문화적인 배경하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있는 여자는 창기(창녀) 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도들이 교회에서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모르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마치 부도덕한 자들의 집합소로 오인하게 만들 수 도 있었다. 이에 바울은 당시의 남성우월사상을 지지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질서와 창조질서(고전11:3~10) 및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사회적 관습(고전11:13~15)에 따라 여성들의 예배포 착용이 합당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여성은 교회에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전 11:17~34의 말씀은 성찬 곧 주의 만찬에 관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고린도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만찬은 이제 주의 만찬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 중에 일부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훼손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주의 한 몸됨에 참여하는 거룩한 의식으로서 주의 만찬이,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일그러진 잔치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주의 만찬의 의의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만찬 참여자의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3. 여성도들은 왜 교회에서 기도하거나 예언할 때에 예배포를 착용해야 하는가?

 요즘에는 여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기도할 때에 예배포(머리에 쓰는 너울 같은 것)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단쪽에서는 쓰는 것 같다. 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예배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긴 머리는 예배포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사도바울이 말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울 당시 고린도교회에서 예배포를 사용하지 않는 사례가 있어서 그것이 옳은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사도바울은 교회내에서 여자 성도들이 왜 예배포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3가지 차원에서 설명을 하였다. 

  당시 여자가 예배포를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머리의 권위가 있지 않다는 것을 표시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생각한 일부의 여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기도할 때나 예언을 할 때에 예배포를 착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 안팎으로 상당한 물의를 일으켰다. 왜냐하면 여성이 공적인 자리에서 너울을 쓰지 않는 것은 본인이 창녀인 것을 드러내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여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공적인 예배를 드릴 때에는 예배포를 사용하라고 권면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영적 질서의 차원에서 여자는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3~7절). 왜냐하면 영적인 질서상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고전11:3).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요 질서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치고 자신이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없고,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여자로 태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로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영적인 질서상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하셨다. 또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긜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머리"라는 개념은 권위의 우선순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머리가 몸에 비해 더 권위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도 이 땅에 아들로 오셔서 사역하실 때에는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으시고 아버지의 권위를 받아들이셨다. 그러므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아드로가 아버지의 관계일 경우에 아들이신 예수께서 철저지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셨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여자의 머리가 남자인만큼 여자는 남자의 권위에 순복해야 한다. 곧 이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영적인 하나의 룰이기 때문이다. 

  둘째, 창조의 질서의 차원에서 여자는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8~10절).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기 때문이며, 또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고전11:8~9). 그러므로 여자는 권세 아래에 있다는 표시 머리에 베일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창조순서에 있어서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 후에 여자가 지음을 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자를 돕는 배필로서 여자가 창조되었다. 고로 창조의 질서유지 차원에서 여자는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은 여자들은 천사들 때문에도 예배포를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원래 하나님을 수종드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그들 중의 일부가 그것을 거절함으로 귀신이 되었듯이, 여자들도 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을 표하기 위해서라도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또한 다르게 해석하면, 최초의 범죄가 하와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때 하와는 자신의 머리인 남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른 머리 곧 뱀의 말을 들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다시는 자신의 남편의 말 이외에 다른 머리는 따르지 않겠다는 표시로 예배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본성 및  사회문화적인 관습의 차원에서도 여자는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13~16절).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럼이 되지만, 여자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을 본성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통념상 여자가 자기의 머리에 뭔가를 쓰지 않고 돌아다닌다면,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창녀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에라도 여자들은 자기의 머리에 베일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면, 혹시 이러한 논거를 빌미로 남자가 남성우월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사도바울은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아니하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다는 것과 맨 처음에는 여자도 남자에게서 나왔지만 그후부터는 여자 없이 남자는 결코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여자는 결코 남자에게 종속적인 것이 아니며, 둘은 상호 동등한 관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고전11:11~12). 

 

4.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성만찬을 할 때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었는가?

  이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공적예배를 드릴 때에 발생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것은 주의 만찬을 먹을 때에 잘못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자들이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어버림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고 책망한다. 왜냐하면 부자들이 자기들이 싸온 음식을 자기들이 먼저 갖다 먹음으로 자기들은 먹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가난하거나 없는 사람들 혹은 노동자들은 미처 저녁식사를 준비도 못하는 상황에서 굶주리는 가운데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당시 이러한 일들일 생겨났는지를 살펴보자.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교회가 주일 새벽에 모이든지 아니면 주일 저녁에 모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때에 이방인의 세계에서는 공휴일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로마 시민에게 비로소 일주일에 하루를 쉬게 한 때는 그때로부터도 한 참이 지나간 후인 A.D.321년이었다. 고로 일요일이 공휴일로 선포되기 전까지 모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에도 다 일을 해야 했다. 그러므로 아침 일찍 모이거나 퇴근후에 교회로 모였던 것이다. 그런데 저녁에 모일에 때에는 음식을 각자 싸오게 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종들을 시켜 좋은 음식을 맛있게 장만해올 수 있었겠지만 노동자들은 그럴한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기 때문에 음식을 가져온 자들이라도 다같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부자들이 기다리지 못한 채 자기들이 싸온 음식을 먼저 갖다 먹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는 배불렀고 취한 사람이 발생하는가 하면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은 시장한 상태에서 성만찬을 집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실시하는 성만찬이 그만 주님께서 교회에게 성만찬을 하라고 하신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전해주신 성만찬예전의 본래의 취지가 무엇인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왜 성도들 중에 성만찬을 행한 뒤에 연약한 자가 생기고 병든 자도 생기며 또한 죽은 자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주의 떡과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성만찬이 한 떡에 참여케 함으로 모든 식구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인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성만찬의 자리는 무슨 죄를 지은 자라도 다 용서를 받는 사죄의 은총의 자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고린도교회에서의 성만찬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애찬과 성찬의 집행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먼저 자기자신을 살핀 후에야 주의 살과 피를 기념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하나된 주의 몸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게 되면, 자기의 죄(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고전11:29). 그러기 때문에 믿는 자들 중에도 성만찬에 참여할수록 건강이 더 약하게 되고,  병든 자도 나오며, 심지어 죽은 자도 나온다는 것이다(고전12:30). 그러므로 성만찬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5. 나오며

  이처럼 사도바울은 고전11장에서 여자가 공예배에 참석할 때에 머리에 베일을 써야 한다고 하였고, 주의 뜻에 합당한 성만찬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음식을 먹고 오든지 아니면 교회에서는 기다린 후에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번 옳은 지적이라고 본다. 사실 남녀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 동등하며 상호의존적인 존재들이다. 다만 영적 권위의 관점에서 볼 때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해당하며, 창조론적 관점에서 남자가 우선적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여자의 창조목적이 남자를 돕기 위한 것이었으며, 아담에게서 하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마땅히 자신의 머리에 권세 아래있다는 것을 표로서 면사포를 써야 하는 것이다. 혹히 써야할 면사포가 귀찮다면 긴 머리로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 여자들이 머리에 쓰지 않고 있으면 세상사람들이 볼 때 교회의 여성도들 창녀들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영적인 질서, 창조의 목적 및 인간의 본성과 당시의 사회적인 관습에 따라, 여자는 교회에 나와 기도하거나 예언할 때에 반드시 예배포를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그 누구라도 거룩한 성찬예식을 참여하면서 그것을 이용해 자기가 부자인 것을 자랑해서는 아니 되며, 그것을 빌미로 가난한 자들을 괴롭혀서는 아니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당시 성찬에 앞서 있었던 애찬이 이미 주의 만찬의 합당한 개념에서 빗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애찬 때에 자기의 음식을 먼저 가져다가 먹음으로 부자들은 배불렀고 가난한 자들은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말한다. 사실 자기가 싸온 음식을 자기가 먹을 것 같으면 굳이 교회에 그것을 가지고 와서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집에서 먼저 먹고 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위화감도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애찬과 성찬을 같이 먹기 위해서는 아무리 모임 시간이 저녁시간이고 또한 배가 고프다고 할지라도 같이 먹기 위해서는 기다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주의 만찬이 부자와 약한 자를 갈라세우는 용도도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죄가 되어 약해지고 병들고 죽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21년 07월 0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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