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강해(24) 부활의 몸과 부활의 영광(고전15:35~58)_2021-10-20(수)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Oct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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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2Bc_nhb-A3s
날짜 2021-10-20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5:35~58(신약 28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부활의몸,부활의영광,부활의시기,그리스도의재림,사망의파멸,열심

성도들은 죽음 다음 언제 부활하게 되는가? 그리고 부활할 때에는 어떤 몸을 가지고 부활하는가? 지금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가 변화되어 그것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영의 몸으로서 부활하는가? 오늘날 성도들은 대체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주적으로 부활할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죽은 성도들은 그때까지 무덤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가 다 똑같은 신분이 되어서 다 똑같이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다스릴 것인가? 여기 그 속시원한 해답이 있다.

1. 들어가며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많이 알려진 본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부활절 예배 때에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이 장은 부활에 관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중요성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과 더불어 종말론과 천국에서 받을 상급과 영광에 대해서도 아울러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오로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고 성도들의 부활에 관한 진리의 증거 자료로만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과연 그리스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부활은 충성된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천국의 소망에 관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제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는지에 관한 말씀(고전15:1~34) 다음에 나오는 본문으로서, 부활이 어떻게 이뤄지며 또한 그때에 성도들은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있을 부활의 순간의 변화는 어떠하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수고가 왜 주 안에서 의미가 있는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부활은 어떻게 가능한가?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것인지 관하여 의문을 품고 있었으며, 또한 사람이 부활할 때에는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었다(고전15:35). 이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관하여 먼저 언급을 하였다. 그것은 첫째, 밀이나 다른 식물의 씨앗이 죽은 뒤에 어떤 형체가 나오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고전15:36~37). 그때 식물을 씨앗의 형태로만 보았을 때에는 장차 이 식물이 어떤 모습을 갖춘 식물이 될른지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겠지만, 그 씨앗이 죽고 나면 멋지고 아름다운 형체를 갖추게 되듯이 성도들의 부활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부활 후에 어떤 형체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대로 된다고 언급하였다(고전15:38). 그렇다. 사람이 어떻게 부활의 몸을 갖느냐 하는 것은 씨앗만을 보고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은 뒤에 씨앗이 식물의 형체를 나타내 보일 때에 알 수 있듯이, 사람도 죽은 후에 새로운 몸을 갖게 될 때에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3. 사람은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죽은 후에 사람의 부활의 몸은 어떤 몸을 갖게 되는가? 사도 바울은 이제는 부활의 몸을 동물의 모습을 가지고 설명한다. 그것은 육체를 갖고 있는 동물들이 동물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것이지만 하나는 사람의 모습, 하나는 짐승의 모습, 하나는 새의 모습, 또 하나는 물고기의 모습이 서로 다르듯이 천국에서 부활의 몸을 가질 사람들의 모습도 역시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고전15:39). 다시 말해, 부활 안에서 성도들이 입을 부활의 모습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짐승과 새와 동물들이 식물에 비교했을 때에는 다르지만 서로 간에는 비슷하듯이 부활의 몸도 서로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부활의 몸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았을 때에 입었던 몸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한다(고전15:40). 그러므로 이 땅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알로스(같은 종류의 다른)'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이 땅에서의 몸과 부활의 몸의 차이를 말할 때에는 "헤테로스(아예 종류가 다른)"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다시 말해, 부활의 몸은 이 땅에 살았을 때 입었던 몸(형체)과는 질적으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몸은 이 땅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몸과 비슷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갔을 때의 우리의 모습은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았을 때 가졌던 모습과 흡사한 것이지 전혀 상관이 없는 모습으로 부활하지는 않을 것이다. 

 

4. 부활의 영광은 어떻게 다른가?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어서 부활의 몸이 비슷하면서도 서로 차이가 있듯이 부활 안에서 성도들이 차지할 영광도 서로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부활의 몸이 장차 들어가서 살게 될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광은 각자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천국에서의 서로 간의 차이는 이 땅의 몸과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가 입을 몸의 차이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입게 될 부활의 몸이나 혹은 그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차이는 둘 다 '알로스(같은 종류의 다른)'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누리게 될 서로들 간의 영광은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 간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 팩트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3가지로 구분해서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 우주에 속한 행성들을 가지고 설명하였는데, 천국에서 부활의 몸이 누리게 될 영광은 가장 큰 것으로는 '해'의 영광이 있고, 그 중간으로는 '달'의 영광이 있으며, 맨 마지막의 작은 것으로는 '별'의 영광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들 각자의 영광 안에서도 또한 영광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즉 '별'도 영광을 가지고 있지만 별이 가지는 영광도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서, 별들과 별들의 영광이 각각 다르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에서 성도들이 부활의 몸을 입고서 누릴 영광도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의 차이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별이라 할지라도 그 영광의 정도에 있어서 각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영광을 가진 자로서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일까? 

 

5. 부활이 일어날 때 성도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사도 바울은 죽은 자가 부활 후에 얻게 될 부활의 몸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땅에 속한 자의 영광과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얼마나 큰 질적인 차이를 갖게 되는지를 알려 준다.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다 썩을 것이며, 비천한(욕된) 것이요 연약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활의 몸은 썩지 아니할 것이요, 영광스러운 것이요, 강한 것이라고 말하였다(고전15:42~43).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사람에게 혼의 몸이 있다면, 저 천국에서 살게 될 영의 몸도 있다는 것이다(고전15:44). 그런데 순서는 혼의 몸이 먼저 있을 것이고, 이어서 부활 후에 영의 몸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고전15:44,46).

  한편 이 땅에 속한 몸이 부활의 몸 곧 하늘에 속한 몸을 입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사도 바울은 그때에는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없이는 하늘에 속한 부활의 몸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에는 첫 사람 아담의 후손으로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되지만, 죽고 부활하게 되면 이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첫 아담'이란 인류의 시조인 바로 그 아담을 가리키며, '마지막 아담'이란 하늘에서 와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이 땅에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가 질적으로 다르다고 하였다. 둘의 차이는 '알로스'의 차이가 아니라 '헤테로스'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은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으려면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힘입어야 한다. 

 

6. 성도들은 언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언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0~52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언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지를 말해 주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지게 될 터인데 그때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에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눈 깜짝할 사이에) 홀연히(갑자기)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순서도 말했다. 그때 죽은 자가 먼저 부활할 것이고 그 다음에 비로소 살아 남아 있는 자가 부활할 것이라고 했다. 즉 죽은 자가 먼저 부활의 몸을 입음과 동시에 살아 남아 있던 자도 순식간에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때에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피와 살덩이가 그만 순식간에 부활의 몸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하는 부활의 몸으로 바뀐다고 했다(고전15:50).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입고 있는 이 땅에 속한 혼의 몸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 땅에 속한 모든 것은 다 이 땅에서 끝날 것이기 때문이며, 이 땅에 살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그날 순식간에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 주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는 그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오직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 말한다(고전15:45).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그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이다(이때 거듭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활의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가 사도 바울이 살아 있을 당시에 일어날 것을 예상하여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시기에 대해 사도 바울이 여기에 언급한 것이 전체인 것인 양 이해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을 성도들도 아주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성도들의 부활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가? 안타깝게도 오늘날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은 성도들의 부활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의 죽은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말하는 것처럼 죽은 성도들이 다 무덤에서 잠자듯 쉬고 있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부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의 후기 서신과 요한계시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의 비교적 초기의 서신이었던 데살로니가전서나 고린도전서에서는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를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기의 서신이었던 디모데후서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때에 이르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 먼저 있을 것임을 예측하였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자기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부활체를 입을 것이 아니며, 그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딤후4:18). 또한 A.D.95년경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보라. 거기에 보면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이미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 사망은 어떻게 되는가?

  사도 바울은 사망을 인격체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고전15:55~56).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되면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사망도 궁극적으로 멸망받을 것이라고 했다. 사망의 파멸에 대한 말씀은 이사야 25:8의 말씀을 그가 인용한 것으로써, 사망의 완전한 파멸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사망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부터 이미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럼 그때는 언제였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때였다. 왜냐하면 그날 사망 권세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 이외에는 그 어떤 자도 사망을 이겨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사망의 뒤를 따라와 집어삼키는 음부의 권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던 날 사망 권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부가 집어삼킬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께서 주신 부활 생명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죽어도 음부에 들어가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미 무력화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망'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히브리서 2:14의 말씀에 따르면, 사탄 마귀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다. 그는 사망 권세를 휘두를 권세를 가진 자다. 그런데 그가 그만 예수님에게 불법을 사용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기 때문이다. 죄 없는 자에게 사망 권세를 사용한 것이다. 사실 악한 사탄 마귀라도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맘대로 권세를 휘두를 수 없다. 그도 자기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권한만을 행사할 뿐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17의 말씀에 따라, 그는 죄지은 사람에게만 사망 권세를 행사해야 했다. 하지만 사탄은 예수님에게 그 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불법으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망 권세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그러나 실제로는 자기의 죽을 권세로 자기를 죽음에 내어준 것임).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죽임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에 구약의 약속한 대로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즉 사망 권세를 받고 죽임을 당해 음부에 들어가셨으나 3일 만에 음부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사망 권세가 모든 인류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부터 부활 생명을 받은 자를 음부도 역시 가둘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금 죽어도 음부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사망의 완전한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그때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시기 때부터 무력화되기 시작한 사망 자체를 멸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사망과 음부가 동시에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20:14).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도 천사와 같은 어떤 세력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위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불법을 저질렀던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때려잡는 방법이 되었다. 고로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은 죄를 범한 인류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범죄한 사탄 마귀와 귀신들을 위해 준비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완전히 박살나게 될 사망을 향하여 이렇게 강력하게 선포하였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하나님의 말씀)이라"(고전15:55~56).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출현하기 800년 전에 호세아 선지자가 외쳤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여, 주 예수의 부활의 능력을 강력하게 증거한 것이다(호13:14). 

 

8. 그리스도인들이 주 안에서 수고하는 모든 일은 왜 가치가 있는가?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이제 사망과 음부의 모든 권세로부터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전15:57). 왜냐하면 사망과 음부, 사탄 마귀와 그의 세력들로부터 승리하는 모든 근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제 주 안에서 우리 성도들이 행하는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부활의 승리가 우리에게는 항상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을 사망과 음부가 붙잡아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들은 죽으면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고전15:58)". 그렇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부활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다면 성도들의 부활도 역시 확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예 고린도전서의 한 장을 할애하여 부활에 관한 말씀으로 채웠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예고된 일이었음과 동시에 실제로 그 일이 역사적으로 일어났음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그 증인들이 그 시기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도들의 대표자인 베드로와 평신도의 대표자인 야고보와 그리고 이방인 선교의 대표자인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기 자신에게도 그분이 나타났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분의 부활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역시 그것을 믿고 있지 않았느냐면서 반문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언제부턴가 관행처럼 죽은 성도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 일행도 죽음을 무릅쓴 채 기꺼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활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가? 그리고 부활의 몸과 부활의 영광은 대체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식물의 변화와, 동물의 종류 그리고 천체의 빛의 차이를 들어서 그것을 설명해 주었다. 결국 인류가 사망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오직 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으며,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에게 부활 생명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수고하는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도 명심하고 또 명심하자. 그리고 힘차게 그날을 위하여 달려가 보자. 

 

2021년 10월 2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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