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02) 요한복음 대체 어떤 책인가(02)(요1;1~5)_2022-05-25(수)

by 갈렙 posted May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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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yxPTZQMhBt8
날짜 2022-05-25
본문말씀 요한복음1:1~5(신약 14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요한복음개론,요한복음구조,요한복음서론,요한복음저술목적,요한복음저자,요한복음기록시기,요한복음기록장소,요한복음순서,요한복음의표적,7가지표적

요한복음은 대체 어떤 책인가? 가장 영적인 복음서요 또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건이나 말씀 자체가 그것을 위하여 선별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예수께서 누군지를 계속해서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셨던 것이고 주려고 하는 것 곧 생명을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주신 생명을 마지막에 가서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이심과 구원자이심을 흔들려고 하는 자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시켜주려고 요한은 이 책을 썼다. 오늘은 요한복음 서론 두번째 시간으로서, 요한복음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드론을 타고서 정교하게 들여다 볼 것이다.

 

2022-05-25(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02) 요한복음 대체 어떤 책인가(02)(요1:1~5)_2022-05-25(수)

https://youtu.be/yxPTZQMhBt8

1)요한복음의기록자와 기록시기와 기록장소와 수신대상

2)요한복음의 특징

3)요한복음의 구조

4)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표적들

 

1. 들어가며

  요한복음은 과연 어떤 책인가? 그리고 왜 기록한 책인가? 그리고 어떤 순서로 기록되어 있는가? 또한 요한복음은 누가 기록했으며, 언제 어디에서 기록한 책인가? 오늘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요한복음이 어떤 책인지를 살펴보았다. 요한복음은 한 마디로 영적인 복음서요,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복음서였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모두가 다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을 보면, 그 출발이 예수님의 출생 기사부터 싣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선재하신 분이요, 아버지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말씀한다. 요한복음도 역시 예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그 기원과 시작이 영원한 시간으로부터 그리고 하늘 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차원이 다르다. 이 놀라운 복음서를 오늘 우리가 우리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이 위대한 복음서를 통하여 우리의 지각을 열어 깨닫게 하시고 영의 눈을 뜨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길 빈다. 

 

2.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왜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인가?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고, 또한 요한복음에 대한 초기 교부들의 기록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다른 복음서 곧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누가복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정황히 여러 번 나온다. 또한 초기 기독교회사를 쓴 책들을 살펴보더라도 요한복음의 저자는 공관복음서에 있는 내용은 가급적 쓸지 않으려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요한복음의 저자는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혹은 주 하나님)이자 그리스도(혹은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사건들과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려고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요한복음 20:30~31에 있는데, 여기에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요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0-31[헬라어직역]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 앞에서 이 책을 기록된 채 있지 아니한 바, [같은 종류의] 다른 표적들 역시 참 많이 행하셨다. 그런데 이것들이 기록된 채 있다. 너희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고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너희가 믿고 있으면서 그분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계속] 갖고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책을 다른 목적이나 용도로 쓴 것이 아니라, 딱 2가지 이유 때문에 쓴 것이다. 하나는 이 복음서의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그분을 믿고 그 이름 안에서 생명을 갖고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이 복음서의 독자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심을 계속해서 믿고 있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어떤 일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전제(前提)한다. 그것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은 유대인들의 노골적인 박해와 초기영지주의자들의 미혹 때문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거나 요한복음을 공부할 때에 만약 이 책의 저술목적을 상실한 채 책을 읽고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때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것을 더욱 더 알기를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얻은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3. 요한복음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에게' 기록한 책인가?

  요한복음은 대체 누가 언제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에게 기록한 것인가? 먼저, 첫째로, 요한복음의 기록자가 누군지부터 살펴보자. 요한복음이 누가 기록했는지는 분명하다(요21:24~25). 단지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을 뿐이다. 

요21:24-25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21:24-25[헬라어직역] 이이는 이 일들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는 제자이다. 그리고 이 일들을 기록했던 [제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진실하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다. 그런데 역시 예수께서 행하셨단 바 [같은 종류의] 다른 것들도 많은 것으로(많이) 있다. 만약 어떤 그것들이 하나씩을 따라 [계속] 기록된다면, 나는 세상이 책들로 기록되고 있는 것들을 수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다. 

  요한복음은 요한복음 1:1~21:23절까지 기록한 자가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다. 그럼, 그 제자는 누구인가? 바로 앞 문맥을 보면 그는 베드로 아니면 "예수께서 사랑하고 계셨던(그리고 아직도 사랑하시고 있는) 바 그 제자"다(요21:20).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제자는 베드로는 아니다. 이 책을 쓰기 약 30년전에 순교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살아있는 제자인 것이다. 그는 예수의 품에 기대여 눕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였던 제자였다. 그러므로 그 제자는 사도 요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초기 교부들과 기록들도 역시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요한복음 21:24~25에는 또 한 분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는 "우리"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25절에서는 "나는"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다. 그럼, 사도 요한의 이 증언들을 알고 있던 "우리"라고 말하고 있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아마도 사도 요한 이후에 사도 요한이 썼던 이 요한복음을 최종적으로 세상에 내놓은 자가 아닌가 싶다. 신학자들은 이들은 '요한공동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마치 모세가 죽은 이후의 기록이 담겨있는 신명기의 책을 모세의 저작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아니면 모세 사후 어떤 사람(여호수아?)로 볼 것이냐와 비슷한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이들이 신명기의 저자를 모세로 보듯이, 요한복음의 저자를 예수께서 사랑하고 계셨던 제자 곧 사도 요한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둘째로, 이 책은 언제 쓴 것인가? 이 책이 언제 쓰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요1:1~21:23절까지는 사도 요한이 쓰고 죽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얼마 나 시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요21:24~25의 문장이 덧붙여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요한은 언제 죽었는가? 역사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사도 요한은 로마의 제11대 도미시안 황제(재위 A.D.81~96) 때에도 살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제13대 트랴얀(재위, A.D.98~117) 황제 때에도 살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외에도 여러가지 정황들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사도 요한이 이 책을 저술했던 시기는 A.D.90~96년 어간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셋째로, 이 책은 어디에서 쓴 것인가? 이 책은 어디에서 쓰였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역사의 다른 기록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죽은 장소가 에베소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에베소에 가면 사도 요한이 무덤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무덤도 있다. 그러므로 아마도 사도 요한이 죽기 전에 에베소에 머물러 있을 때에 이 책을 쓴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넷째로, 마지막으로 이 책은 누구에게 쓴 책인가? 우리는 이 책이 누구에게 쓰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편지 형식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어디에서 썼는지를 명확히 밝혀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의 독자들은 대부분 아마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거기에는 유대인인 그리스도인들도 들어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들도 대부분 히브리어를 잘 모르고 유대인들의 절기를 잘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책의 저자는 "메시야'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라고 따로 쓰고 있다(요1:41). 이런 예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요1:38),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1:42).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요9:7).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히브리어 단어를 헬라어로 따로 번역해주고 있다. 이는 이 책의 독자가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절기를 소개할 때도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요6:4),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요7:2). 그렇다. 이들은 유대인들의 명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부러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이 책의 독자들은 주로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이 책은 유대인 회당에서 "출교"를 당할 위험성도 언급하기 때문에(요9:22, 12:42, 16;2) 이방인지역에 살고 있는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는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4. 요한복음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관복음서에 비하여 어떤 부분이 좀 특별한가?

  그렇다면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공관복음서에 확연히 다른 부분을 요한복음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유월절을 세 번 지키셨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요2:13, 6:4, 11:55). 그래서 오늘날까지 요한복음의 기록을 따라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셨던 기간이 3년반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요한복음에서만 유대인들의 절기로서 '초막절'(요7:2)과 '수전절'(요10:22)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 요한복음은 성전청결기사가 처음 유월절 기간에 있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에는 마지막 유월절 기간에 성전청결기사를 기록하고 있다. 셋째, 요한복음의 구조가 매우 불균형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공생애의 3년반의 기사는 1장에서 12장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고, 13장부터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의 기사만 무려 5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13~17장). 그리고 예수님의 체포와 심문과 죽음이 18~19장에 기록되어 있으니, 요한복음의 약1/3이 하루 24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그때 일어났던 사건과 예수님의 말씀이 중요했을 것임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넷째, 요한복음의 기록내용은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어있는 것들고 비교하면 92%가 전혀 다른 독립된 기사라는 것이다. 다섯째, '천국'이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가 딱 2번 나올 뿐이고(요3:3,5), 귀신축출 기사는 아예 한 번도 수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섯째,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지만, 초기 영지주의에 맞서 예수님의 인성도 빼놓지 않고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피곤해 하셨고(요4:6), 울기도 하셨으며(요11:35), 목말라 갈증을 느끼셨으며(요19:28), 피흘리셨고(요19:34), 죽으셨기 때문이다(요19:30). 이것은 인간이기에 하실 수 있는 것들이다. 일곱째, 요한복음에 나오는 단어들 가운데,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이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만 나오는데 무려 25번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선언인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이라는 표현도 요한복음에만 나오는데, 절대적인 자기선언과 더불어 은유적인 자기선언도 무려 7번이나 나온다.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아버지를 표현하실 때에 "나를 보내셨던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자신의 목숨도 스스로 버린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도 요한복음에만 있는 표현들이다. 여덟째는 요한복음에서는 예전으로서 세례를 주라는 말씀과 성만찬을 하셨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홉째는 요한복음 1장부터 20장까지는 실현된 종말론(예수님을 대신하는 보혜사 성령의 내주)이 주로 언급되지만, 21장에 가면 비로소 미래적 종말론(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재림)이 언급된다는 것이다. 

 

5. 요한복음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요한복음은 총 21장의 책인데, 이것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요한복음은 1~12장까지 전반부와 13~21장까지의 후반부로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이중에서 1~12장까지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와 그리고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생애가 기록되어 있으며, 13~21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부터 시작하여 잡히시고 심문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까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의 신약학 신학자인 레이몬드 E  브라운은 1~12장을 '표적의 책'이라고 명명하였으며, 13~21장까지는 '영광의 책'이라고 구분하기도 하였다. 훌륭한 구분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3년반의 공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1~12장 안에는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7가지 표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13장부터는 예수께서 원래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과정 중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주옥같은 말씀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조금 더 세분해 본다면, 요한복음의 전반부(1~12장)는 다시 서막(1:1~18)인 그리스도의 찬가 부분과 2장부터 12장까지 7가지 표적들로 구성된 표적 기사가 있다. 그리고 후반부(13~21장)는 다시 다락방강화(13~17장)와 예수의 붙잡힘과 심문과 죽음 부분(18~19장) 그리고 예수의 부활(20장), 부활후 사명(21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6.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표적들은 무엇인가?

  '표적의 책'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의 전반부(1~12장)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7가지 표적들을 만나게 된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 가운데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기적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표적'이라고 명명했는데, 여기에는 총 7가지의 표적들이 나온다. 그럼, 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과 기적들이 아주 많은데, 왜 그것들 중에서 7가지 기적만을 여기에 기록해 은 것인가? 그것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그 표적들이 말하는 영적 의미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그리스도 곧 약속된 구원자이신 것을 믿고, 또한 그분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려고 전반부에 7가지 표적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이러한 7가지 표적들을 볼 때에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만약 거기에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요한복음을 잘못 읽은 것이다. 특히 이러한 표적들 중에서 사람을 고치시거나 살려주신 기적들이라도 그러한 기적은 예수께서 단순히 기적을 일으킨 분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의 모든 기적은 다 그 기적을 통하여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배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7가지 표적을 통하여 기적을 뛰어넘어 예수께서 누군지를 소개해주는 영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7가지 표적들은 무엇이며, 그것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사건이다(요2:1~11). 이 사건은 예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물론 가나혼인잔치의 기적은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기적이 예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시는 것 외에도 다른 많은 영적인 의미들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에 이 사건은 예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 기적은 예수께서 장차 피흘려 죽으시고 인류의 죄를 속죄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사건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 

  둘째 표적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고치시는 사건이다(요4:46~54). 이 사건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이 그대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준다. 특히 하나님의 전능성은 말씀하심에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셨을 때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고 말씀하시는 그 시각에 역시 그 아들이 살아남으로 인하여 예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자인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죽은 자에서 생명을 공급해주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표적은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이다(요5:2~9). 이 사건은 예수께서 절망에 빠진 인간을 고치고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준다. 왜냐하면 당시 베데스다 못가에는 여러 종류의 환자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38년된 병자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38이라는 숫자느 이스라엘 민족이 가네스바네아에서 정탐꾼을 파송한 후에 그들의 불신앙의 보고에 따라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어나가는 기간을 가리킨다. 소망이 끊어진 상태가 38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38년된 중풍병자를 일으시킨다. 도저히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태를 주님이 오심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건이 이 사건인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절망과 사망에 휩싸인 인생을 다시 생명으로 시작하게 하실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표적은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이다(요6:1~15). 이 사건은 예수께서 먹이고 입히시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에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마실 물이 없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여주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함으로 그들을 먹고 마시게 하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광야에서 죽었지만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께서 주시는 살과 예수께서 주시는 음료를 마신다면 영원히 굶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 사건은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생명주시는 이시기 때문이다. 

  다섯째 표적은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사건이다(요6:16~21). 이것은 예수께서 자연만물의 지배자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어느날 제자들이 날이 어두워진 가운데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는 자연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신 것을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던 제자들이 건짐을 받았다. 

  여섯째 표적은 예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다(요9:1~8). 이것은 예수께서 어둠 가운데 빛이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모든 사람은 어둠 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래서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빛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쳐주시면서 당신은 어둠 가운데 빛이신 것을 말씀하셨다. 그랬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참 빛으로 계시다가  이 세상에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사망의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사야선지자가 장차 메시야가 오면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이다(사35:5~6). 그런데 이 때 소경이 눈을 뜨려고 그가 찾아간 곳은 실로암 못가였다. 생명의 물을 접하고 그는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일곱째 표적은 예수께서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려낸 사건이다(요11:17~44). 이것은 예수께서 사망을 이기실 수 있는 전능자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죽어서 썩어 그 몸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상태였지만 그를 말씀으로 불러내서 살려내신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은 부활이며 생명이시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셨다. 결국 예수께서 일으키신 7갸지 표적은 모두가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것들이지만 사실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주며, 그분이야말로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생명을 공급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7. 나오며

  요한복음은 표적의 책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이 두 가지의 큰 줄거리로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예수께서 누군신지에 관하여 그가 행하신 7가지 표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분 스스로가 자기선언의 방식을 통하여 또한 당신이 누군지를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나누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는 ~이다'고 선언들인데,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의 자기선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지를 또 한 번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7가지다. 고로 우리는 요한복음 전반부에서 7가지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다음 시간에 공부할 예수님의 7가지 자기 선언을 통해서도 역시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상의 2가지 큰 사건과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또한 생명주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반드시 발견해야 할 핵심주제들인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러 구약의 약속을 따라 이 땅에 오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다. 그분은 창조주요 전능자이며 만물의 주관자요 절망을 극복해줄 수 있는 이요 사망과 어둠을 정복한 이요 생명을 공급해주시는 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이자 나의 구원자로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 잘한 일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그것을 발견하기도 어렵겠지만 또한 어떠한 환난과 핍박과 미혹 속에서도 그것을 지켜내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서도 역시 요한복음과 똑같은 시기가 도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을 자신의 참된 하나님이자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따르게 되면 그러한 자들을 가만 두지 않는 시대가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요셉처럼 말씀이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곧 불어닥치게 될 말씀의 흉년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여름 가뭄에 생수와 같은 희소식이 되어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가장 정확하게 찾아서 알려주는 책일 뿐만 아니라 가장 깊고 풍성하게 예수께서 누군지를 알려주는 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25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