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10) 예수님의 12가지 신앙고백에 대한 영적인 의미(03)(요1:35~51)_2022-08-10(수)

by 갈렙 posted Aug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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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NIUSyIdnaM
날짜 2022-08-10
본문말씀 요한복음 1:35~51(신약 14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랍비, 메시야(그리스도),모세가율법에기록한이,여러선지자들이기록한이,요셉의아들나사렛예수,이스라엘의왕,인자

2022-08-10(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0) 예수님의 12가지 신앙고백에 대한 영적인 의미(03)(요1:35~5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NIUSyIdnaM  [혹은 https://tv.naver.com/v/28492123 ]

 

1. 들어가며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주제는 성경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이며 또한 우리들이 가진 신앙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아는 일은 곧 우리의 영생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기도하실 때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 시대에도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고 촉구했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가들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호2:19~20).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분량만큼 우리의 영생의 분량도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두 시간을 통하여, 요한복음 1장에 있는 세례 요한의 신앙고백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다섯 명의 첫 제자들에 의한 예수님의 신앙고백을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일곱 가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분량 한층 더 깊어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요한복음 1장에 있는 세례 요한과 첫 제자 5명이 고백했던 신앙고백 12가지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 두 시간을 통해,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신앙을 고백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총 5가지였다. 세례 요한은 첫째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고백했다(요1:29). 그리고 둘째로, 그는 그분을 '먼저 계신 이'고 했다(요1:30,15). 셋째와 넷째로 그분을 '성령이 머물러 계신 이(요1:33a)'이자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요1:33b)'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다섯째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요1:34)'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신앙고백을 분석해 보면 먼저 예수님의 본질적 특성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먼저 계신 이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어서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적 특성으로서 그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으며, '성령이 머물러 계신 이'이자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첫 다섯 명의 제자들의 고백을 통해 일곱 가지 신앙고백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그분이 '랍비'이자(요1:38,49), '메시야(그리스도)이며'(요1:40),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이'이자(요1:45a),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이'이며(요1:45b),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이자'(요1:45c), '이스라엘의 왕'이며(요1:49), 그리고 제자들이 고백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이 누구라고 언급했던 명칭으로서 '인자'(요1:51)가 있다. 

 

3. 예수께서는 어떻게 '랍비'라 칭함을 받았을까?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의해 다섯 가지로 증언된 바 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 의해 소개를 받은 자로서, 예수님을 따라갔던 세례 요한의 두 명의 제자도 예수님을 증언했다. 이때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안드레'였고 또 한 사람은 사도 '요한'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갔을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찾는지를 물어보셨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랍비여'라고 칭한다(요1:38).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어서 처음 만난 예수님을 향하여 '랍비'라고 칭했던 것일까? 이러한 칭호는 요한복음에서 8차례나 등장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안드레와 요한이 그리고 두 번째는 나다나엘이 그렇게 칭한 것이고(요1:49), 이어서 산헤드린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그렇게 칭했다(요3:2). 그리고 나머지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칭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 혹은 "다윗의 자손"이나 "만물의 주재"라고 호칭하지 않고 '랍비'라고 칭했던 것일까? 먼저 그 뜻부터 알아보면, '랍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의 선생님(스승, 교사)'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분을 존경한다는 의미이자 존중한다는 의미로 부르는 칭호다. 그러다가 '랍비'라는 용어는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굳어져 갔다. 왜냐하면 이러한 칭호는 적어도 율법 말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랍비'라는 용어는 정식으로 율법 교육을 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 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당시 안드레나 요한 그리고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향하여 '랍비'라고 칭했다는 것은 이들 자신들도 율법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음을 알려 주며, 그들이 예수님을 적어도 율법 말씀을 증언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율법 교사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백성들로부터 이러한 칭호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는 서로에게 랍비라고 칭함을 받지 말 것을 권하셨다(마23:8). 왜냐하면 제자들은 다 같은 형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 13장에 보면, 예수께서 '주'와 '선생'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가리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고 말씀하셨다(요13:13). 그분은 '주님'이자 '선생님'으로서 그들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에게 참된 영적인 스승은 예수님이시요, 또한 예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예수님에 대한 일곱 번째 신앙고백으로서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첫 제자들에 의해 고백되어진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은 어떤 고백을 가리키는가? 이것은 안드레가 고백한 용어이다(요1:41).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 그분을 만나 본 후 안드레는 자기의 형인 베드로를 찾아가서 말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말이다. 이때 '메시야'라는 용어는 히브리어로 '마쉬아흐'에 대한 한글 음차로서,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메시야'라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용어는 예수님에 대한 어떤 신앙고백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자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처음에는 왕으로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는 이에게 붙여진 용어로 쓰였기에, 예수님이야말로 이 땅에 이스라엘의 왕이자 유대인의 왕이며 더 나아가서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공적 사역을 수행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마쉬아흐'라는 용어는 대체 누가 제일 처음 사용했던 것일까? 그것은 구약 시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이었던 다윗이 자신의 선왕이었던 사울에 대해 사용했던 단어였다(삼상24:6).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마쉬아흐)'를 죽일 수 없다고 자기의 사람들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사울을 지정하여 그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삼상9:16).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다. 그후로 이스라엘에서 왕이 될 자들은 늘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다. 다윗도 그랬고 솔로몬도 그랬다. 다윗은 어렸을 때(약 15세쯤)에 베들레헴에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1차로 기름부음을 받았고(삼상16:13), 2차로는 헤브론에서 유다 사람들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아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다(삼하2:3~4). 그리고 또다시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로부터 세 번째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두 번째 왕으로 등극한다(삼하5:3). 한편 시편 기자도 역시 다윗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기록하였다(시2:2). 이것은 다윗이 장차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사역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땅에 유대인의 왕이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으며, 훗날에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철장 권세를 가지고 재림하실 분이기 때문이다(시2:9, 계2:27, 19:15~16). 고로 처음에는 감람유로 왕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이것은 예표이자 모형이고, 실제로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그가 메시야가 될 수 있는 것이다(사61:1, 슥4:1~6). 사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그분이 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마3:16).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훗날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켜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곧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에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내려오신 성령을 받아서 기름부음을 받고 그의 공적 생애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메시야'라는 칭호가 붙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날 '그리스도'라는 말은 오직 예수님을 지칭하는 공적인 칭호가 된 것이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아 공적으로 사역하였던 구약의 직분은 왕이라는 직책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제사장인 아론도 기름부음을 받아 대제사장으로서 사역을 시작하였고(출29:7), 한 번의 예만 나오는 것이지만, 엘리사도 선지자 엘리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로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왕상19:16). 고로 오늘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라는 말이 통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그분은 역시 왕이자 선지자요 제사장으로 사역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 그분은 왕으로 칭함을 받았으니, 나다나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칭해졌고(요1:49),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하던 날에는 군중들로부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 왕이시여(요12:13)'고 칭함을 받았다. 그리고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영적 세계의] 왕인 것을 말씀하셨으며(요18:37), 그분의 죄패에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붙여졌다(요19:19). 또한 둘째로, 예수님은 선지자로도 칭함을 받았으니, 요한복음 4장에 가면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고백했으며(요4:19), 누가복음 24장에 가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역시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다고 고백하였다(눅24:19). 그리고 셋째로,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도 사역하셨으니, 그분은 영원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 오셨으며(시110:4, 히5:5~16), 마지막 만찬 후 예수께서는 다락방에서 대제상적인 기도를 드리셨다(요17장).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드리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대제사장으로서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죄일 제사를 드리시고 기도의 분향단에 향을 사르는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5. 예수님에 대한 여덟 번째 신앙고백으로 '율법에 기록된 이'란 어떤 뜻인가?

  안드레 및 베드로 한 동네 사람이었던 빌립이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을 때 그는 자기의 친구였던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바돌로매) 찾아가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다. 그때 그가 나다나엘에게 알려준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했던 그이'로서 그분을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하였다. 이것이 그의 신앙고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그만큼 나다나엘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에 심취해 있었으니, 그렇게 소개하면 그가 금방 알아들을 것 같아서 그렇게 소개한 것이다. 또한 그가 나다나엘을 찾아갔을 때에도 그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율법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그분을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한다. 그러자 나다엘은 빌립이 제대로 자기에게 이야기해 준 것인가 하고 의구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메시야는 베들레헴 출신이어야 하는데 그분을 나사렛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요1:46). 그러나 실은 율법을 제대로 공부를 못해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이지, 율법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라면 그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신앙고백이 아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율법에 기록된 이'라는 신앙고백의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예수님은 그냥 메시야가 되신 것이 아니다. 자신이 그렇다고 선언하여서 그렇게 되신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예언된 바를 그대로 이루셔 그렇게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메시야는 이미 구약 성경의 율법에 예표로서 등장하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을 그대로 이루는 자라야 메시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율법에서 증언되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율법'이라 함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세가 쓴 모세 오경의 책들에 나오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창세기와 출애굽기, 레위기와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에서 메시야는 어떤 예표로 그려져 있을까? 그것은 적어도 10가지 이상 된다. 첫째로, 메시야는 '여자의 씨'로 오셔야 한다고 했다(창3:15).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박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태를 빌려 오신 것이다. 둘째로, 메시야는 '아브라함의 씨'로 와서, 대적의 성문들을 차지하고 천하만민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창22:17~18).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 원수의 성들을 차지하고 천하만민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고 있다. 셋째로, 메시야는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다고 했다(창18:10,14). 요한복음 8:24,28,53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던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넷째로, 그분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다고 했다(출12:5~6). 그래서 그분은 죄없는 곧 흠없는 유월절 양이 되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사망 권세를 이기게 하셨다(고전5:7). 다섯째로, 그분은 광야의 만나로 오신다고 했다(출16:13~13,31).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무리들에게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6:48~50). 여섯째로, 그분은 성막의 대제사장으로 오신다고 했다(출애굽기). 그리하여 예수께서 직접 이 땅에 당신의 육신으로 성막을 치시고 우리 안에 거주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셨던 것이다. 일곱째로, 그분은 인류의 구속을 위한 속죄 제물로 오실 것이라고 했다(레위기). 그래서 그분은 대속 제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여덟째로 그분은 대속죄일 제사의 아사셀 양으로 오신다고 했다(레16장).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안수받아 십자가를 지고 성문 밖인 골고다 언덕으로 가셔서 버림을 받으신다. 아홉째로, 예수님은 민수기의 21장에 나오는 놋뱀이 되시어 그를 쳐다본즉 살게 하시신다(민21:9, 요3:14~15). 이는 그분을 놋뱀 곧 인류의 죄를 전가받아 죄있는 육신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 그분 자체는 독이 없는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돌아가신다. 마지막 열째로, 그분은 신명기에서 모세가 약속한 바대로 '나와 같은 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인류에게 전달하시고, 회개를 외치셨으며, 종말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 

 

6. 예수님은 어떻게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이'이신가?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율법에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이'라고 소개했다.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했던 그분은 대체 누구신가? 구약 시대 중에서 사무엘(B.C.1102~1018)부터 시작된 선지자의 활동은 말라기 선지자(B.C.516년경 활동)를 끝으로 구약 시대를 마감한다. 이때는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만 무려 16명인데, 그중에 메시야에 관하여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예언을 하였다. 그것을 종합해 보면 크게는 그분의 본질적인 부분과 그분의 사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그분의 사역은 또다시 예수님의 잉태와 출생, 공생애 그리고 그분의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까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그분의 본질(신격)에 관하여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며(사41:4, 44:8, 48:12),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사9:6, 계1:8).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소개함으로써(계1:17, 22:13), 구약의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확인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분의 사역에 관하여 낱낱이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그분의 잉태와 출생부터 살펴보자.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처녀에게서 잉태되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임을 예언하였다(사7:14). 그리고 이사야는 장차 태어날 메시야는 한 아기이자 아들로서 태어나실 것이지만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자 기묘자인 모사(보혜사)라고 예언하였다(사9:6). 그리고 미가 선지자는 예수께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미5:2).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사실 것 예언하였으며(사11:1), 그분의 공생애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사40:3~5, 눅3:4~6))인 선구자부터 천거를 받게 될 것이고, 선구자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와서(말4:5~6,눅1:17) 그분을 주님의 사자(말3:1)로서 소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분은 하늘로부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실 것이라고 했다(사61:1~3, 눅4:18~19). 그리고 그분은 긍휼이 많으셔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했다(사32:3, 마12:20). 그리고 그분은 공적 사역을 주로 갈릴리에서 진행하실 것이며(사9:1~2, 마4:14~16),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갇힌 자에게는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의 자유의 해방을 선포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다(사61:1~3).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는 그분은 지상에서 인자라고 불릴 것이며, 선한 목자로서 일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겔34:15). 또한 그분은 인류를 대신하여 고난받으실 것도 예언되어 있었다. 곧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며,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53:5, 벧전2:24). 그리고 그분이 죽고 무덤에 묻히실 때에는 부자의 묘실에 묻힐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는데(사53:9), 진짜로 그분은 부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해 둔 부자의 묘실에 묻히게 된다(요19:38~42). 그리고 요나 선지자는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무덤 속에 삼일 삼야를 있다가 부활할 것이라고 했는데(욘1:17, 마12:40), 예수께서는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신다. 그리고 요나의 표적처럼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신다(욘3:4).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처럼 그가 승천하셨던 장소인 감람산으로 다시 오시게 될 것이다(슥14:4~5).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7. 예수님은 어떻게 되어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셨는가?

  한편 우는 예수님의 혈통에 대하여 그리고 그분이 사셨던 곳에 대하여 빌립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그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다나엘로 하여금 과연 예수님이 메시이신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왜냐하면 나다나엘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갈릴리 나사렛에서는 무슨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요1:46).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히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사심으로 인하여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자가 말했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마2:23). 먼저, 그분의 혈통과 관련하여 그분은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리셨다. 누가복음의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눅3:23). 그랬다. 누가는 정확히 기록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는 바에 의하면 요셉의 아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 족보상의 부친은 요셉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요셉은 그의 아내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가 두 딸들(마리라와 살로메)만 두었기 때문에 같은 유다 지파사람으로서 두 집안을 하나로 이어받은 자였다. 요셉은 마리아의 아버지(헬리)의 조상을 이어받았고, 자기 친가의 조상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마리아와 결혼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다윗의 아들 나단으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다윗의 후손이었고(눅3:23~31), 요셉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부터 갈져 내려온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에(마1:1~16),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지만, 족보상으로는 솔로몬의 대를 잇는 왕의 후손이자, 나단의 대를 잇는 선지자의 후손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었다. 이는 사실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 주는 대단히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는 어떤 예언자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마2:23). 그럼,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어떤 예언을 따라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하게 되셨을까? 우선 구약 성경에서 2가지 예언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것은 첫째, 그분이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바쳐진 자라는 뜻일 수 있다(삿13:5).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나실인처럼 구별되어 바쳐진 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둘째, 이것은 더욱더 개연성이 있는 주장인데, 그것은 그분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룬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이사야 11:1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히브리어에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가지가 나 오고 그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다. 그런데 이새의 줄기에서 한 가지가 나올 것인데 그분이 예수님이고, 그리고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와 열매를 맺게 될 것인데 그분도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새의 자손이자 이새의 뿌리가 되신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요 다윗의 뿌리가 된다는 요한계시록의 예언과도 일치한다(계22:16). 그런데 히브리어가 알려 주는 귀중한 정보가 있다. 그것은 줄기에서 나오는 가지를 '호테르'라고 부르고, 뿌리에서 올라오는 싹을 '네째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호테르'와 '네째르'는 목자가 가지고 있는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리키는 것인데, 막대기는 양을 치려는 동물들을 후려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며, 지팡이는 양떼를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둘 다로 예언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뿌리에서 올라오는 '싹'은 히브리어로 '네째르'라고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정보인데, 왜냐하면 여기에서 '나사렛'이라는 용어가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인류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할 선한 목자로서 예수님이 네째르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나올 것이 예언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째르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싹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새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지만, 실제 그분은 이새와 다윗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은 인류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지만 동시에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8.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빌립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나다나엘은 빌립의 강권적인 인도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신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의 속에 간사(간계,교활함)것이 없도다(요1:47)" 그러자 깜짝 놀란 나다나엘이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를 향하여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요1:48)"고 대답하신다. 그러자 그는 말하기를 "랍비여(율법 선생님이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왕)이로소이다(요1:49)"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다나엘은 단지 자신의 과거를 맞추었다고 예수님을 과대 포장하여 언급한 것인가? 아닌 것이다. 그는 즉각적으로 그분을 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 땅에 오기 전에 그의 영이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비밀스럽고 영적인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나다나엘이 헬라어로 '오이다(직감으로 알다)'를 한 것이다. 그냥 알아지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배워서 그리고 경험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의 감각으로 그냥 알아버렸던 것이다. 성숙한 인간의 영이 자신을 창조하고 보내신 분을 몰라보겠는가? 그러자 곧 나다나엘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신 분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분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특히 그가 언급한 '이스라엘 왕'이라는 말은 구약 시대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로서 다윗과 같 왕과 같은 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며,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분으로 다윗 같은 왕적 능력을 소유한 메시야이셨던 것이다. 

 

9.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뜻인가?

  마지막으로 이것은 제자들의 고백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관하여 꼭 알아야 할 사항이므로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나'라고 칭하는 호칭 대신에 가장 잘 사용하는 호칭으로서, '인자'라는 칭호에 대해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말했던 것 때문에 네가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믿느냐?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을 네가 장차 보게 될 것이다(요1:50)"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항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하늘이 열려진 채 있는 것과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올라가고 있는 것과 내려오고 있는 것을 장차 볼 것이다(요1:51)" 그렇다. 나다나엘이나 과거의 야곱처럼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영적인 실체를 진짜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과 땅 사이의 중보자라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했다. 왜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나'라고 말씀하지 않고, 굳이 '인자'라고 표현한 것일까? 그것은 그분이 원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지만 그분이 이 땅에 왜 육신을 입고 왔는지 곧 왜 사람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싶으셔서 하신 칭호인 것 같다. 그것은 예수님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진 자  곧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자로 오셨음을 잊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수행하시고자 하는 뜻에서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하신 것을 통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그분 '인자'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분이 사람이기에 핍박받고 고난받고(마17:12) 죽으실 것(마12:40)을 은연 중에 드러내셨다라는 점이다. 그것이 그분이 사람이 되신 본래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렇듯 예수께서 인자가 되셔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지극히 높은 이름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부활할 것이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며, 능력으로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어떤 혜택을 받게 될 것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 최소한 3가지 권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분은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이다(마9:6). 그리고 둘째는 그분이 사람이 되심으로 인하여 그분이 장차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요5:27). 그리고 셋째는 그분이 사람되심으로 순종하여서 왕위에 오르시는 권세를 취득하셨기 때문이다(마19:28). 그러므로 우리들도 자신을 낮추어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10. 나오며

  오늘은 조금 많은 분량을 다루었다. 그래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다시 보고 또 보는 방법이 아주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은 우리가 얻는 영생의 분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분량만큼 저 천국에서도 영생의 분량을 더 많이 그리고 크게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되 힘써 예수님을 알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견고히 가지며, 그분의 발자취를 우리도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분이 가신 길이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완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율법 교사로서 랍비셨다. 그리고 온 인류를 구원할 자로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로서, 왕과 같은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율법에서는 예표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그리고 선지자들의 책에서는 장차 오실 분으로 예언되어 있으셨다.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그대로 성취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나사렛 사람으로 사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이셨다.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를 낮추시어 사람이 되신 분으로서 겸손과 순종으로 인하여 그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갖게 되셨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도 과연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시금석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완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찬양드리며, 우리를 위해 기꺼이 사람되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2022년 08월 1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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