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다윗이 드린 묵상기도다(시19:1~14)_2022-09-04(주일)

by 갈렙 posted Sep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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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IAHdHsQ02_c
날짜 2022-09-04
본문말씀 시편 19:1~4(구약 81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묵상기도,통성기도,시편19편,다윗,광야,50대중반,찬양시,지혜시,깨달음,인격의성장,성숙,자연계시,특별계시

2022-09-04(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이것이 다윗이 드린 묵상기도다(시19:1~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IAHdHsQ02_c  [혹은 https://tv.naver.com/v/29009169 ]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향단의 향을 사르는 것과 주의 사항이 가장 일치하는 기도는 역시 주기도였다. 그런데 주기도문은 매우 균형을 갖춘 모범적인 기도문이었다. 즉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기도와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각각 3가지씩 있었으며,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로 영혼육을 위한 기도이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위한 기도로 균형있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과연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중에서 발성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우리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발성학적으로 볼 때에 기도는 크게 부르짖는 기도와 읊조리는 기도가 있다. 다시 말해 '통성기도'와 '묵상기도'가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묵상기도'란 대체 어떤 기도이며, 묵상기도는 언제 드리는 기도인 것인지 그리고 묵상기도를 하면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통성기도와 묵상기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는 발성학적으로 보았을 때에 '통성기도' 즉 부르짖는 기도가 있으며, '묵상기도' 즉 읊조리는 기도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빈도수를 보면, 묵상기도보다는 통성기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많큼 우리의 삶에는 통성기도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성기도는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가? 통성기도는 보통 환란과 고통 중에서 자신을 건져주시기를 구할 때 사용하게 된다(출2:23, 삿3:9). 그리고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도 자주 부르짖는 기도를 했었음을 발견할 것이다(시18:6, 34:6). 그리고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부르짖는 기도를 했으며 또한 그렇게 기도 해야 함이 언급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행7:59, 눅18:7).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생활에 통성기도는 매우 필요하고 중대한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처럼 묵상으로 기도할 필요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묵상기도는 묵상기도가 주는 놀라운 영적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도 기도의 여러 유형들 가운데 하나에 속하며, 어떤 특별한 목적에 따라 매우 중요하기 쓰이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묵상기도'란 어떤 기도를 가리키는가? 시19:14에 보면, 다윗이 묵상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때 '묵상'이라는 말은 '힉가욘'이다 이 단어는 속삭이듯이 그리고 읊조리듯이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다윗이 어떻게 묵상으로 기도했으며, 다윗이 그때 묵상으로 기도함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었던 유익은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자. 

 

3. 다윗은 어디에서 언제 묵상으로 기도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다윗은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묵상으로 기도한 것일까? 시편19편은 '찬양시'이자 '지혜시'로 알려져 있는 매우 유명한 시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시편은 표제어가 달려 있는데, 표제어에 따르면, 이 시는 '다윗의 시, 인도자(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이것은 다윗의 기도이기는 하지만 시의 형태로 지어진 것이며, 또한 지휘자를 따라 노래 부르기 위해 지어진 시이다. 그럼, 다윗은 언제 어디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인가?

  첫째, 다윗이 대체 '어디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인가? 다윗은 이 시를 어디에서 지었을까? 표제어에는 그것을 살펴볼 수 없으나, 시편 19편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가 어디에서 이 시를 지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늘과 궁창'(1절), '날과 밤'(2절), '해'(태양)(4절), '정금과 송이꿀'(10절), '반석'(14절)이 나온다. 고로 다윗이 시를 지은 장소는 틀림없이 '광야'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그는 광야의 대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지혜로 가르쳐준 것들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그 장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어떤 깨우침을 받은 가운데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 

  둘째, 다윗은 '언제' 이 시를 지은 것인가? 다윗이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도 사실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1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그가 자신의 허물을 낱낱이 깨닫게 되었고 숨겨둔 허물을 고백한 후에 이 시를 지었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알고 있으면서도 죄를 지었던 뻔뻔스러운 자신을 회상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는 자신의 부하였던 우리야 장군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간음을 행하고 우리야를 죽었던 자신의 과거를 암시하는 말들이 등장한다. 고로 그가 이 시를 지었던 시기는 적어도 밧세바 간음사건과 우리야 살인사건을 겪고 난 후 그 죄로 인해 자신이 징계를 받은 경험을 가졌던 시기 이후였던 것 같다.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은 후에 어느 날 광야의 천막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때 묵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4. 다윗이 이때 깨달은 진리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다윗이 묵상으로 기도하면서 깨달은 진리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자연에서 배운 계시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운 계시다. 앞의 계시를 '자연계시'라고 부를 수 있겠고, 뒤의 계시는 '특별계시'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는 대자연 속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1~6절). 그것은 하늘과 궁창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들었고, 동쪽에서 떳다가 서쪽으로 지는 태양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들었다. 하지만 하늘과 하늘에 있는 것들과 태양을 창조하시고 이것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불신자의 눈에는 하늘도 그저 보이는 하늘일 것이고 태양도 그저 떠오르는 태양에 불과하겠지만 산전수전을 이미 겪었던 다윗에게 대자연은 아주 훌륭한 교과서였던 것이다. 그때 그의 귓가에는 결코 들리는 소리가 없었어도, 날은 날에게 말을 쏟아내고 있었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묵상기도의 효력인 것이다. 자신의 귓가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는 자연의 숨결 속에서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 모든 생명체가 빛을 받고 또한 온기를 받아 살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고 있었다는 비로소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것이다. 

  둘째, 그는 장막에서 읽고 있던 율법(토라)를 보면서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7~14절). 그는 완전한 토라의 말씀을 읽으면서 자신의 우둔함을 깨닫고 눈이 어두워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지혜롭게 하며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기록된 말씀이 없었다면 그는 자신이 어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고, 뻔뻔스럽게 죄를 범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5. 다윗은 이때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

  자연과 그리고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다윗은 그때에 나지막이 그리고 조용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드린 '묵상기도'라는 것이다. 그는 이때 자연만물을 보면서도 그들이 던지고 있던 메시지를 도무지 듣지 못했고, 기록된 말씀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숨겨진 허물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알면서도 죄를 짓고 있는 뻔뻔스러움에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기도하고, 그 죄들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기를 기도로 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흠이 없게 되고 죄악으로부터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때 많이 울면서 기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 과거에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었는지를 말이다. 왜 그때에도 똑같은 자연에 자신이 있었었고 그때에도 똑같이 장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면서, 한없이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날들도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6. 묵상기도의 효력은 무엇인가?

  다윗은 그때 자연만물이 말은 하지 않아도 고요히 자신의 역할을 후대에 전수해주고 있는 놀라운 일들을 보고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음에도 나단 선지자가 들려준 '작은 암양새끼'의 비유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이제 그가 과거에 지었던 죄악들을 두 번 다시 짓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묵상기도를 하다보면 반드시 인격적인 성숙을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묵상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나지막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계시는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적인 깨달음은 통성으로 기도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통성기도는 자신의 죄를 내뱉어 악한 영들을 내보낼 때에라 효력이 있는 것이지만, 깨달음의 기도는 오직 묵상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묵상기도란 무엇인가? 묵상기도란 주님이 곁에서 길을 같이 걸어가면서 나의 말을 들어주는 느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과 나누는 친밀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나의 옆에서 친구처럼 나의 말을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깨달음이 금방 오게 된다. 곁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비로소 내가 너무나 분주히 살다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온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겠노라고 주님께 나지막히 각오를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묵상기도'다. 그러므로 묵상기도는 필연적으로 자기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인생의 중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열납되는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침이 되면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보면서 자연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라. 나무도 어제 보았던 그 나무이고 어제 보았던 그 풀들이겠지만 오늘 보는 그것들은 어제의 그것들과 사뭇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 것이다. 그리고 기록된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라. 성경도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들려줄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진정 우리의 입술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기도로 나온다면 그것이 바로 '묵상기도'가 되는 것이다. 

 

 

2022년 09월 04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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