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왕적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창22:1~11)_2022-11-27(주일)

by 갈렙 posted Nov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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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K1hUurNGbfc
날짜 2022-11-27
본문말씀 창세기 22:1~11(구약 2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아브라함과이삭과야곱의하나님,천국에들어간자,천국에서왕노릇할자,이삭의신앙기초,신앙의절정,성숙한자,온유,헌신과희생

2022-11-2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이삭이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왕적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창22:1~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K1hUurNGbfc [또는] https://tv.naver.com/v/31251510

1. 들어가며

  창세기에서 이삭 이야기는 주로 다른 사람과 겹쳐서 나온다. 즉 이삭 이야기는 자신의 부친이었던 아브라함과 겹쳐서 나오고, 자신의 아들이었던 야곱과 겹쳐서 나온다. 그러므로 굳이 이삭 이야기만 단독적으로 나오는 것은 창세기 26장, 단 한 장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서 이삭 이야기는 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사건은 주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라는 주제가 부각되는 것일 뿐, 이삭의 헌신과 희생이라는 주제로 잘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출3:16).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삭의 부분도 대강 넘어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삭도 천국에서는 왕적 지위를 누리는 한 사람으로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삭은 어떻게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또한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2.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을 알려면 그 반대를 살펴보면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죽어 12진주문을 지나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며, 천국에서도 왕 노릇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줄 알고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그날 심판 때에 주님으로부터 모른다고 내침을 받고 성밖에 쫓겨난 사람일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죄를 짓고 살았다면 그는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응당 그래야 한다고 수용할 것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교회 생활을 했는데 그만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난다면 그것처럼 불쌍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장차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다(눅13:26~27)

눅13:26~27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언급한 사람들 가운데,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다(눅13:28~29). 왜냐하면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 안으로 장차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자들의 대표 주자들이다. 그것은 구약성경이 공히 증거해 주는 바다(신30:19).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어떻게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되어서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그중에서 오늘은 이삭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이삭의 신앙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삭은 어떻게 신앙이 형성된 것일까? 우리는 창세기 22장에서 비로소 이삭이 아버지에 의해 번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을 보면서, 이삭이 묵묵히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그의 나이는 요세푸스가 쓴 유대 고대사를 보면 25살이라고 나오고, 미드라쉬나 야살의 책을 읽어 보면 37세였다고 나온다. 어찌되었든지 그는 30살 정도의 총각 시절에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총각 시절에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던 믿음은 대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최소한 창세기 22장 이전에 형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루 아침에 자신을 번제물로 드릴 만큼 갑자기 신앙이 좋아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자신을 번제물로 바칠 때에, 이삭이 자신을 주님께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면, 아마도 그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을 것이다. "이 양반이 실성을 했나"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삭의 신앙은 대체 어떻게 되어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인가? 그것은 그 이전에 등장하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이삭이 젖 뗄 무렵에 돌잔치 비슷한 것을 했는데, 그때 자신보다 13년 먼저 태어난 형 이스마엘이 자신을 놀리는 것을 자신의 어머니 사라가 목격하게 되면서부터다. 어머니 사라는 이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아버지 아브라함의 기업을 상속받을 자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준 애굽 여인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심히 근심한다. 왜냐햐면 비록 첩을 통해서 난 아들일 지라도 그도 역시 자신의 아들이요 장자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너는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어라. 왜냐하면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창21:12)"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사라는 무슨 권리로 남편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요구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을 장막 문 뒤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내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서 나은 아들 이삭만이 후사가 될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창17:19~21). 그리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게 되고 아브라함의 집에는 이삭만 남게 된다. 그러니 훗날 이삭이 자신을 번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어머니 사라의 신앙 교육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지금 천국에 올라가 보면, 천국은 24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24장로들 중의 하나가 '사라'라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렇다면 사라는 어떻게 되어서 천국에서 왕적 지위를 얻는 사람이 된 것인가? 그것은 사라에게 있어서 자신의 남편 아브라함이 24장로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들 이삭을 24장로의 한 사람으로 앉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사라는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이 24장로의 반열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이삭의 신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삭의 신앙 형성은 자신의 어머니 사라의 신앙 교육 때문이었던 것이다. 젖 뗄 무렵이니까, 아마도 이삭의 나이 3~5살 정도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이미 사라는 이삭에게 그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별하셨는지를 철저하게 교육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나이 30살 때에는 이미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쳐도 그것이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신앙의 부모나 영적 지도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우리가 장차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지도받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 오늘날 누가 과연 약속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사람이 되는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에서 여종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 그리고 자유하는 사라와 그의 아들 이삭이 왜 어떤 자는 아버지의 후사가 되지 못하고 또 어떤 자는 아버지의 후사가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당시 육체를 따라 났던 이스마엘이 약속을 따라 났던 이삭을 핍박한 것 같이, 오늘날도 역시 종의 법인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이 성령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되었더라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고 육체를 따라간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갈5:18~21). 그렇다. 우리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태어나 성령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우리가 여전히 옛사람인 육체를 따라간다면 우리 중에 그날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 곁에서 떠나가라"라는 말을 들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종의 신분으로 천국에 들어가고, 신약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가 아들의 신분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구약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자는 다 아들의 신분이자 상속자의 신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신분을 가진 자라도 모두가 다 천국에서 상속자의 신분을 갖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도 역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간다면 상속자의 신분을 갖지 못할 뿐더러,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는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쫓겨나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이삭이 자신을 번제물로 바친 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삭이 자신을 번제물로 기꺼이 바친 사건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이삭이 자신을 번제물로 바친 사건은 신약시대에 아들이신 예수께서 자신을 골고다 언덕에서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친 사건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삭이 자신을 번제물로 바치는 그 순간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OK라는 사인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신앙은 약 30살 때에 이미 절정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삭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그의 신앙을 인정하셨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이 사건이 있은 후에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날 이삭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그때부터 이삭은 하나님께 바쳐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는 인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자면, 첫째, 그 사건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직접 나타나셨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창26:1~20). 즉 하나님과 그는 대면하여 말할 수 있었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 그가 손대는 모든 일에도 복을 받았다. 왜냐하면 평생을 목축업만 해 오던 이삭이었지만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 백 배의 수확을 거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고, 그의 집에는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으며, 종들도 심히 많게 되었던 것이다(창26:12~14). 이 모든 것은 이삭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복들이다.  

 

6. 번제물 사건 이후 이삭이 보다 더 성숙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삭이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친 사건 이후 이삭은 보다 더 성숙해졌다. 그것은 그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했고 반응했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이삭이 그랄 땅에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농사가 풍년을 이뤘다. 평생 농사만 짓던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잘 되는 것을 볼 때 시기 질투심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자 그들은 가서 이삭의 우물을 메꾸어버렸다. 그러자 이삭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우물을 팠다. 그런데 하나님께 바쳐진 이삭에게 형통함의 축복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물이 솟아나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랄 사람들이 자기네 땅에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우물을 빼앗아 갔다. 그래도 이삭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그랄 사람들이 오지 않을 장소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물을 팠다. 그랬더니 거기에서도 우물이 나왔다. 이처럼 이삭은 이미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온유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원수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가는 곳마다 그에게 복을 주신 것이다. 그러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자신의 친구 아훗삭과 함께 그리고 그의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이삭을 찾아왔다. 서로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온 것이다. 그때 그랄 왕은 말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26:28~29)" 그랬다. 아무리 그의 백성들이 이삭의 일을 훼방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랄 왕이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이삭이 자신들의 땅에 침범해 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뻔하니까,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찾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이삭은 하나님과 사람들이 인정하는 온유한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과연 누가 천국의 땅을 기업으로 얻는 자가 되는 것일까?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천국 복 8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그중에서 세 번째 복은 이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그렇다. 온유한 자는 천국에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예수께서 이삭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당신 스스로를 말씀하실 때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다(마11:29). 그렇다. 우리는 이삭의 성숙한 성품을 통해 온유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며 그곳에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늘 체크할 수 있어야 한다. 

 

7. 나오며

  이삭은 훌륭한 신앙을 소유하는 데에는 사실 이삭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좋은 신앙의 부모나 영적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미래가 여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떤 말씀으로 양육을 받느냐가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실 이 땅에 태어나서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데, 한 번도 천국은 어떻게 들어가며, 그곳에서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를 못 들어 본 사람은 그 나라를 사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를 준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달랐다. 그의 어머니 사라가 철저하게 그에게 신앙교육을 시켜 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나이 서른 살 정도가 되었을 때 이미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좋은 부모가 없다고 환경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다. 내가 좋은 신앙의 부모를 못 만났다면, 좋은 영적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그리고 나는 그러한 부모를 만나지 못했어도 나 자신이 내 자녀에게 좋은 신앙의 부모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 날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죄짓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니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내 성품이 환경에 따라 흔들려서 그만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수준이라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지런히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우고 이삭처럼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온유한 자가 되어 있을 것이며,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2년 11월 2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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