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여 거기에서 나오라(창19;12-29)_2013-11-03

by 갈렙 posted Oct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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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3-11-03
본문말씀 창세기 19:12-29
설교자 정병진목사


  내 자녀가 스스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빠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를 거기서 강제로라도 끄집어 내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눈물로 중보기도해야 옳은가? 창세기 19장의 롯의 소돔성 탈출사건은 이럴 때 우리의 선택을 도와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롯은 소돔성에서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에게 믿음이 있긴 있지만 자기자신을 구원할만한 믿음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도 소돔성을 더 귀중히 여기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 그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놓은 공적이 거기에 있었고 신분과 지위가 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삶의 터전이 거기에 있었고 그동안 쌓아놓은 재물도 그리고 가축과 종들도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이미 시집간 딸들과 사위들 그리고 외손녀자와 외손녀들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롯은 어떻게 되어서 소돔성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것을 2가지 이유로 정리해본다면 이렇다. 하나는 그나마 그에게 조그마한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삼촌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그네를 자신의 목숨처럼 보호해주려고 한 사실과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가 폭력과 음란으로 향하고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해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벧후2:7-8). 그리고 그가 소돔성을 빠져나올 때 끝까지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는 면에서도 그는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뒤를 따라오고 있던 아내가 발에서부터 소금기둥으로 변해가면서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끝내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의 삼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이다(창19:29). 이것은 결정적인 이유다. 왜냐하면 비록 롯이 자그마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절대 소돔성을 빠져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조카 롯이 살고 있는 소돔성이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조카 롯을 끄집어내러 가지 않았을까? 전에는 그 거리보다 더 멀리에 붙들려가 있던 롯을 구출한 일도 있었는데 말이다. 당시 한나절이면 아브라함은 롯을 찾아서 끄집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롯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여기서 중보기도의 능력과 아울러, 믿음은 조금 가지고 있지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자들에 대한 구출방법을 심도있게 생각해봐야 한다.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조카 롯이 과거 북부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경우와 지금의 경우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에 북부연합군에 잡혀간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다른 것이다. 롯은 자의에 의해 지금 소돔성에 살고 있다. 삶의 터전이 그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신의 식솔들도 함께 살고 있다. 비록 소돔성이 폭력이 난무하고 음란과 호색과 동성연애가 가득한 타락한 도성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살고 있는 도성인 것이다. 그는 그곳을 스스로 선택하여 살고 있다. 그럴 때에는, 그에게 아무리 설명을 잘해 준다해도 끄떡하지 않는다.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아직 없으니까. 아브라함은 스스로 선택하여 소돔성에 머물고 있는 롯을 구출해내는 일은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되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기도를 선택한 것이다.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한 것은 과연 잘 한 일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어야 옳았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자녀가 어릴 적에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지금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다고 해보자. 어떻게 다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를 도울 수 있을까? 무조건 윽박질러 그를 끌어다가 교회에 앉혀놓으면 되는 것일까? 또한 WCC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서 그들더러 마귀라고 외치고, 저주를 받으라고 하고, 인분을 뿌려도 되는 것인가? 왜 자신이 하나님이 할 일을 대신하려 하는가? 지금 WCC참가자들은 자신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비록 WCC에 참여하고 있어도 마귀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 돌이킬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또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 그들을 위한다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방식을 취하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이 아니겠는가?(계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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