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주의 일꾼의 자세(마20:1~16)

by 갈렙 posted Oct 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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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LLH_JnL4w4w
날짜 2015-10-04
본문말씀 마태복음 20:1~16(신약 3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합당한 주의 일꾼의 자세, 행한 대로 상을 받음, 상을 받는 기준(시간과 양과 태도), 자기의 의를 드러냄, 감사치 않음, 하나님의 속성을 탓함, 자비로우신 하나님, 심판의 기준

  오늘날에 먼저 주님을 알고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는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봉사해야 하는 것일까?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니까 천국을 더 차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의 일을 감당하려는 자도 있으며, 심지어 총력전도 기간에는 남이 애써 공들여놓은 전도대상자를 중간에서 가로채서 등록하려는 열심이 특심인 전도자도 있다. 열심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과연 천국에 가서도 상급이 되는 것일까? 과연 오늘날의 주의 성도들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어떤 태도와 자세로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오늘 본문은 쉽게 볼 본문이 아니다. 구원에 관한 본문처럼 보이기도 하고 상급에 관한 본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베푸신 것일까? 그것은 베드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보면, 마20장 1절은 "가르(because of, 왜냐하면)"라고 하는 이유의 접속사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20장의 포도원품꾼의 비유는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앞에 있었던 사건과 그 교훈에 관하여 덧붙혀진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대체 베드로는 무엇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예수님의 베푸신 포도원품꾼(마20:1~16)의 비유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오늘 본문의 비유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본문 앞에 나오는 사건부터 주목해야 한다. 이미 어떤 한 사건이 있었고 이어서 주님의 비유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부자청년의 청원에서 시작된다(마19:16~30). 한 부자청년이 자신이 먼저 천국에 들어갈 줄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이 맞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께 질문한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당시 부자였고 유대인들 중에 관원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했던 대답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잘 지켜왔기에 부자도 될 수 있었고, 관원도 될 수 있었으니 자신은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 것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청년이여, 네가 온전한고자 한다면 너는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19:21)" 주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 부자청년이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먼저 된 자였다. 그는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면 자신이 먼저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그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결코 합당치 않으며, 만약 그 상태로라면 천국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아마 제일 꼴치의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가 이 세상의 물질에 너무 집착과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가 이때까지 십계명을 잘 지킨 것은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 지켜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 순서가 틀린 것이다. 천국에 가서 상급을 얻기 위해 십계명을 잘 지킬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하늘의 잔치에 초대받은 것에 감사한 마음에서 즉 자신을 먼저 불러주신 주님께 보답하는 차원에서 십계명을 잘 지켜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뒤바껴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십계명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때까지 자신이 모은 재산을 절대 포기할 수가 없기에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 청년을 바라보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아마도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야" 그때 제자들은 부자이자 관원이었던 그 청년이 천국에 먼저 들어갈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가 천국에도 들어가기도 어려운 존재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즉시 이렇게 말했다. "주님,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따르던 초기부터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즉 배와 가족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가?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 가서 얻을 것이 참 많겠죠?"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도 일한대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때였다. 주님께서는 "그러나 천국에서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고, 나중된 자라도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베드로처럼 먼저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주님을 따르고 있다 해도 나중될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제자들처럼 먼저 선택을 받아 주님을 따르고 있다 하여도 먼저 부름받은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천국에서는 오히려 맨 나중에 될 수 도 있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주의 일꾼들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비유를 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 말씀은 부자청년이나 제자들처럼 자신은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 들어야 말씀이다. 이 비유의 촛점은 오후5시에 들어온 자가 아니라 이른 아침에 들어온 자이며 그리고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렇다면, 먼저 부름받아 일하는 주의 일꾼들은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먼저 부름받은 자들은 자신이 늦게 부름받을 자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을 가지고 더 많은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일한대로 보상을 받을 것이지만 혹시 늦게 부름받은 자들이라도 주님의 긍휼에 따라 더 많은 상급을 받을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부름받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이 말씀에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천국은 상급받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상급이란 천국에 들어가는 것 자체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상급은 분명 일한대로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분량만큼 받을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믿어 주의 일을 행하는 자들은 상급에 너무 초점을 맞추어서는 아니 된다. 너무 상급에만 초점을 맞추어 일을 하다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 측면에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것이 아주 분명하기 때문이다.

  첫째, 나중에 자기가 받은 상급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 적다고 여기면 분명히 자기가 행한 의를 들추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침 일찍부터 고용된 자들은 나중에 들어온 자들이 자신과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을 보고 불평을 했다. 그리고 자신은 얼마나 힘들게 일을 했는지에 대해 주인에게 늘어놓았다. "저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온 종일 수고하고 더위를 견디어냈나이다." 하지만 천국은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나를 선택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하루치의 품삯을 받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주인은 그것을 약속대로 줄 것이며 그들은 약속대로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둘이 계약한 것이 아니겠는가!

  둘째, 그렇게 되면 자기가 먼저 부름받아 일찌감치 구원에 동참한 것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린 채 오히려 상급을 적게 받았다고 불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부터 일하던 자들은 훗날 감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짜증만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주인에게 언제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다. 만약 그날 아침에 그들이 그 주인에게 선택받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날 어찌 되었을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날 혹시 고용되지 못해 빈 손으로 집에 돌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인지 그들은 그 주인의 눈에 띄었고 고용되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먼저 써 준 주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이 늦게 들어온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보고 불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상급만을 바라보고 일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셋째, 그렇게 되면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부당하다고 여길 뿐더러, 고용된 종인 주제에 자신을 채용한 주인을 오히려 능멸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그들은 주인이 늦게 들어온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후하게 임금을 쳐 준 것에 대해 나무라듯 말했다. 그리고 주인이 자신에게 한 데나리온만 준 것은 부당하다고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그날 일하여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계약하고 들어왔던 자들이 아닌가? 주인은 분명 그들에게는 일한만큼 임금을 준 것이다. 주인은 결코 그들에게 부당한 처우를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불쌍한 노동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눈치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주인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 사실 주인은 그날 오전 6시에 사람들을 채용한 다음, 시장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 아침에 이미 필요한 인력만큼 일꾼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인은 다른 주인들과는 좀 달랐다. 그것은 그날 고용되지 못해 서성이고 있는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주인은 오전 9시에 시장터에 나가보았다. 하지만 그때에도 일감을 얻지 못해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자 주인은 특별히 더 일할 일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품꾼들을 자기의 포도원 안으로 들여보냈다. 상당하게 쳐준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정오에도, 오후 3시에도 그리고 오후 5시에도 나가 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에 그때까지도 채용되지 못해서 서성이고 있는 품꾼들이 있었다. 그러자 주인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여기에서 서성이고 있소?" 그들이 말했다. "우리를 품꾼으로 채용해주는 주인이 없어서입니다." 그랬다. 그날 그 주인은 채용되지 못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약하고 불쌍한 품꾼들의 눈물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주인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못났으면 그날 아무도 그들을 채용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지만 우리 주 하나님은 약하고 무능한 사람도 사랑하신다. 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침 일찍 고용된 이들은 먼저 선택받은 '유대인들'을 의미하며, 나중에 4차례씩 계속해서 고용된 이들은 '사마리아인들'이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떻게 했는가? 자신이 모든 민족들 중에서 먼저 선택을 받아 부름받았다면 그 책임을 다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출19:5~6). 그것은 자기민족이 먼저 선택받은 것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겨 복을 받은 후에 다른 민족들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만 복을 받아야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늘 불순종하였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들을 버젓이 섬겼던 것이다. 그러고도 그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그들도 구원하려고 하는 하나님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려 온 예수님을 배척했고 죽였으며 지금까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성도들이여,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것은 대단한 복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우리가 무엇이 쓸 만한 구석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주셨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그러므로 먼저 부름받은 자가 되었다면 우리는 장차 우리가 받을 보상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맡겨진 소임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일을 열심히 감당한 후에는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눅17:10)"라고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먼저 부름받은 자의 사명이요 그것이 그들의 상급이다. 그래야 훗날 우리도 우리가 일한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은 원래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시며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하시는 일을 두고서 그분에게 잘했느니 못했느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주인의 마음이다.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당신은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는가? 당신도 혹시 아버지인가? 그러면 지금도 잘 살고 있는 아들에게 관심이 더 가는지 아니면 일마다 실패하여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있는 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가는진 생각해보라. 그렇다. 당신이 진정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면, 오후 5시에 들어온 자에게 하루치의 품삯을 주었다고 주인을 부당한 주인이라고 불평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릴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요 우리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분은 오늘도 불충성하며 죄를 저지르고 제 할 일을 감당하지 않고 있는 우리을 기다려주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당신도 혹시 교회에 늦게 발을 들여놓은 신자를 만난다면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 주라. 그것이 훗날 우리가 일한대로 상급을 받게 되는 비결이다. 아니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으로부터 긍휼의 보상까지 받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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