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강해(17)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토기장이 비유의 오해와 진실(렘18:1~10)_2023-02-26(주일)

by 갈렙 posted Feb 26,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vSh4coE1tDs`
날짜 2023-02-26
본문말씀 예레미야 18;1~10(구약 107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토기장이의비유,구원론,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교리,구원론,성경적구원론,하나님의절대주권,자유의지,순종여부

2023-02-26(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예레미야강해(17)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토기장이 비유의 오해와 진실(렘18:1~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Sh4coE1tDs [또는 https://tv.naver.com/v/33751082]

 

1. 들어가며

   예레미야서에는 이사야서와 더불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하는 '토기장이의 비유'가 나오는 몇 안 되는 책이다(렘18:1~10). 여기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인류 역사에 관하여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선한 뜻을 행하실 수 있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장로교에서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매우 강조한다. 사람이 구원받고 멸망받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보통 한국의 장로교회에서 따르고 있는 이러한 구원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오는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구원론에 관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교리는 과연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 알려져 있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교리가 얼마나 오해되어져 왔는지룰 한 번 살펴보고 그 참된 진실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2. 토기장이의 비유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성경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애가서를 포함한 예레미야서 그리고 로마서에만 나온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토기장이의 비유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비유가 그 내용이 길고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전체적인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는 말씀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비유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관한 완전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려주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앞두고서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내신다. 그리고 토기장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게 하신다. 그것은 토기장이가 녹로(물레)를 이용하여 토기를 빚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때 토기장이는 어떤 토기가 자신이 원하는 그릇으로 빚어지지 않자 그 진흙을 이겨서 다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로 이 토기장이처럼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절대 주권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렘18:3~6). 이것이 토기장이의 비유의 핵심이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여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어떤 나라를 하나님께서 새롭게 시작하실 때에, 그 나라가 하나님 보시기에 계속해서 악한 것을 행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다고 하신 것이었다.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남유다의 멸망에 대해서 미리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반대로 어떤 민족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에 그 민족을 제거해 버리고자 하시는데, 그 민족이 자신의 악에서 돌이켜 떠나게 되면, 그 민족에게 내리리라고 생각했던 재앙에 대해서 뜻을 돌이키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을 알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3. 오늘날 장로교와 같은 개혁교회에서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한 민족과 국가, 더 나아가서는 개인에 대한 앉고 일어섬의 주권을 주님께서 갖고 있다는 말씀을 장로교와 같은 개혁 교회에서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혁 교회에서는 이러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론에 관한 교리를 성경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자로 예정하고, 어떤 사람은 멸망받을 자로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한 번 구원하기로 예정했던 사람은 어찌하든지 구원받은 상태로 남아 있게 하시기 때문에, 그 사람은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한 번 선택받은 사람은 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개인의 구원에 관한 절대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토기장이가 마치 그릇을 만들 때에 하나는 귀히 쓸 그릇으로,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롬9:20). 그래서 지음받은 물건이 어떻게 지은 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반박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멸망의 그릇으로 만드셨든지 아니면 구원의 그릇으로 만드셨든지 아무런 말대꾸를 하지 말고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사29:16).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교리는 올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4. 우리가 교리를 따르려고 할 때에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

  구원론에 관한 교리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다. 오늘날에 두 교리는 각기 다른 교단에서 채택하고 있다. 그중에서 칼빈주의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매우 강조하는 교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칼빈주의 교리는 한 마디로 이중예정론을 지지하고 있다고 정의내릴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를 미리 정해 두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몇 가지의 성경 구절을 이 교리의 근거로 제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성경 구절이 과연 그 교리를 정확히 지지해 주는 말씀인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에 관한 교리를 잘못 알고 있다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을 가지고 결정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주권은 개인 구원의 영역이 아니라 어떤 민족의 흥망성쇠에 관한 것이며, 또한 개인에 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도 역시 개인의 쓰임(사역)에 관한 예정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인 구원에 관한 예정은 성경에 나오지 않고, 사역에 관한 예정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 구절은 대체 무엇일까? 여러 구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요10:28~29의 말씀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그러한 교리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조건 영생을 주실 자를 정해 놓았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생도 일종의 조건절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은 번역에 오류를 가지고 있는 본문이다. 왜냐하면 이 본문 말씀은 보다 더 원본에 가까운 대문자 사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 나온 사본으로서 약간의 변형된 본문을 대본으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헬라어 원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먼저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한글 개역개정 성경부터 살펴보자. 

요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사실 이 말씀만을 딱 떼어놓고 읽는다면, 한 번 받은 영생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을 가진 자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 영생을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본문의 '그들'이 대체 누구인가? 과연 누구에게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이 본문을 헬라어 원문인 대문자 사본으로 읽게 되면, 앞의 것과는 전혀 다른 뜻이 나온다. 그럼, 대문자 헬라어 사본으로 이 본문을 살펴보자. 

요10:27~29[직역] 나에게 속한 양들은 내 음성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도 그것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나를 [계속] 따르고 있는 중이다. 28 내가 그것들에게 '시대의 생명(영생)'을 준다. 그러면 그것들은 '그 시대까지(영원히)' 스스로 결코 멸망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들을 내 손으로부터 장차 낚아채 가지 못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채 있는 그것은 모든 것들(만물)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낚아채는 것을 할 수 없다. 

  그렇다. 요10:28에 나오는 '그들'은 바로 주님께 속한 양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누구에게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는 양들로서 또한 주님을 계속해서 따르고 있는 양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만세 전 개인 구원 예정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만세 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것은 양떼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오는 양들을 끝까지 잘 인도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바로 어떤 것이었다. 그것에는 권세와 능력, 지혜와 총명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주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끝까지 따라가는 자가 결국 구원을 얻게 될 것이며, 그러한 자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과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그들을 빼앗아 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지 않고 있고, 예수님을 계속해서 따라가지 않는 자는 결국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멸망받을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5. 예레미야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토기장이의 비유는 대체 어떠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것들에 대해 절대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과연 만세 전에 이미 멸망받을 자를 정해 놓으셨는가 하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 여부를 어떻게 결정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것들에게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는가를 보자(렘18:4,6,7~8,9~10). 그것은 사람의 개인 구원에 관한 절대 주권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민족의 사역에 관한 절대 주권을 주께서 갖고 계신다고 말씀이다. 즉 어떤 개인이나 민족을 과연 어떤 그릇으로 사용하실 것인가에 대한 절대 주권 곧 개인과 민족의 쓰임(용도)에 관한 절대 주권을 주께서 갖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과연 만세 전에 이미 멸망받을 자를 예정해 놓으셨는가를 보자(렘18:4). 만세 전 예정 구원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로 예정해 놓으셨고 그 뜻을 그대로 성취해 가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또한 성경 어디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 없다. 예레미야서에서는 토기장이가 어떤 용도로 쓸 그릇을 만들고 있다가, 그것이 뜻대로 빚어지지 아니하니까, 그 진흙을 다시 이겨 자신의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으로 만들더라고 나온다. 그렇다. 어떤 토기장이라도 어떤 그릇을 만들 때에 그것을 깨뜨려 버릴 목적으로 만들지는 아니한다. 다들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어떤 용도에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세 전부터 멸망하기로 예정하고 창조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과연 인간의 구원 여부를 어떻게 결정하시는가를 보자(렘18:7~8,9~10). 사실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민족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실 것인가 하는 것(용도)을 미리 정해 놓고 그릇을 빚으신다. 그렇지만 그것은 용도에 관한 것이다. 사실 구원의 문제는 이미 만세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실 뿐이다. 특히 멸망받을 자는 만세 전에 정해 놓으셨다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를 이 땅에 내려 보내시는데,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용도로 쓰시기 위해 내려 보내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선한 용도로 사용하시려는 배경하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도 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 보니 자기 조상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저질러 온 민족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선민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을 행하고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다면, 그에게 주리라고 약속한 복을 철회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렘18:9~10). 이것이 바로 남유다 제17대 왕이었던 여호야김 시대의 남유다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태어나 보니 자기가 이방신을 믿고 있고 악을 행하는 민족과 집안에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통해 혹은 오늘날에는 선교사나 전도자나 먼저 믿는 자들을 통해, 자기가 믿고 있는 신은 신이 아니라 우상이요 귀신이었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반드시 심판받아 마땅할 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리리라고 생각했던 재앙에서 그를 건져내신다(렘18:7~8). 그 예가 바로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니느웨 백성의 경우다. 우리가 요나서를 읽어 보면, 니느웨 백성은 악한 용도로 쓰임받고 있는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북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회초리의 목적으로 그들을 이용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스스로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요나라는 선지자를 파송하신다. 그러자 그들은 왕으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님을 믿으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금식하며 회개하기를 시작했다. 그것도 짐승까지 40일을 금식하면서 말이다. 그때 그들은 그 기간 동안 울며 통곡하면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고 행하던 악한 일을 그쳤다. 그러자 그들이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어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욘3:10). 그렇다. 하나님은 이처럼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다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죄를 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개인이나 민족은 결국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고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만세 전부터 멸하기로 작정된 자를 이 땅에 보내시어 그를 마침내 멸망으로 이끌어 가시는 그러한 폭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누구든지 회개하기만 하면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6. 하나님의 만민 처우 원칙은 무엇인가?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를 미리 정해 놓고 그렇게 이끌어 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만민 처우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멸망의 자식으로 예정하여 지옥 보내려고 만들어 이 땅에 내려보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토기장이가 처음부터 깨뜨려 버릴 목적으로 그릇을 빚지는 아니하시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죄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셔서 이 땅에 사명자로 내려보내는 이들이 있다. 

  둘째, 어떤 사람이라도 다 어떤 쓰임과 용도에 합당하도록 안배하신다는 것이다. 그중에 복을 주실 대상은 하나님께서 아예 처음부터 그러한 목적으로 빚으시고 그렇게 해서 창조된 사람을 이 땅에 내려 보내신다. 하지만 악한 용도는 처음부터 악한 용도로 사용하시려고 창조해서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이 태어나서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아 그리고 조상들의 지은 죄를 따라 살다 보니,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기 위한 악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셋째, 비록 죄를 많이 짓고 악한 영에 속하여 자신이 악한 종으로 쓰임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다면 그런 자라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비록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룰 도구로서 빚어져서 이 땅에 보내졌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게 된다면 그 사람이나 민족은 예정된 복을 받지 못한 채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7. 나오며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구원과 멸망을 만세 전에 미리 정해 놓으시고 그것을 강요하시거나 그렇게 강제로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천사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어 하나님처럼 선택의 자유의지를 주시고 따라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 결과를 멸망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 여부의 문제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또한 회개함으로 비로소 이뤄져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다(빌2:12).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행하셨다. 심지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주시기 위해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일하셨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인간은 사탄의 꾀임을 받아 저주의 길로 계속 걸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지금도 사명자를 이 땅에 내려보내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고자 어떤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여 이 땅에 내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왜 나를 그러한 종으로 만드시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땅에 노아와 같은 자, 예레미야와 같은 자, 세례 요한과 같은 자가 태어나고 있으며, 또한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러한 선지자들의 외침을 듣고 자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5천 년 동안 우상과 귀신을 숭배하던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도 역시 선교사들의 복음을 듣고 구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역사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와 천국복음을 깨닫는 자는 이 시대에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 나가야 한다. 다른 이들도 이러한 회개와 천국복음을 듣게 하여 그들도 구원받게 하는 만민의 제사장적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저 하늘에서 영원히 빛날 영예과 신분을 얻게 하실 것이다. 

 

  

2023년 02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명령과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토기장이의 비유가 어떤 비유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토기장이의 비유는 사람이나 민족이 어떤 용도로 쓰임받는 것인가에 관한 비유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은 선한 용도나 악한 용도로 쓰임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아무리 선한 용도로 쓰임받도록 처음부터 예정되었다고 할지라도 본인이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채 죄를 짓게 되면 그에게 약속된 복이 철회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 세상에서 악한 용도로 쓰임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따른다면 그에게 내리기로 되어진 재앙 역시 철회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동안 토기장이의 비유를 구원에 관한 절대주권 교리로 오해했나이다. 용서해 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님께서 우주와 인류에 관하여 절대주권을 갖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어떤 용도로 쓰실 것인지에 관하여 절대주권을 갖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주여, 이제는 아무리 잘못 했어도 회개하면 주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이제는 비록 나 자신이 선한 도구로 선택받았다고 할지라도 죄를 계속 지으면 예비된 복이라도 상실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게 하여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고 믿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믿고 순종하며, 회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구나.

2.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많이 왜곡된 교리였구나.

3. 토기장이의 비유는 인간의 창조로부터 그리고 선택과 쓰임에 관하여 하나님께 절대주권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구나.

4. 토기장이의 비유는 만세 전에 한 인간과 민족의 구원과 멸망을 미리 다 정해 놓으셨다는 비유는 아니었구나.

5. 선한 용도로 지음을 받았더라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화를 면키 어려운 것이로구나.

6. 악한 용도로 쓰임을 받았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가 있구나.


Articles

9 10 11 12 13 14 15 16 1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