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얻는 길(요6:32~40)

by 갈렙 posted Oct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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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poWGlAwrq9U
날짜 2015-10-18
본문말씀 요한복음 6:32~40(신약 15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영생얻는방법, 칼빈주의자의주장, 예정론과구원의 상관관계, 누구든지예수님께나아오는자, 계속해서믿는자, 주님을따라가는자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두들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으나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가정할 때, 그사람이 믿는 시점만을 이야기하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믿고 있는 그 과정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구원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정론을 믿고 있는 칼빈주의자들은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그가 이미 구원받을 자로서 택정함은 입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구원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어느 누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이미  만세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에 따라 하나님이 그를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순간적으로 믿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구원이란 어떤 순간적인 시점에 받는 것이 아니라 믿는 과정을 통해서 죽을 때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과연 어떤 주장이 맞는 것일까? 정말 칼빈주의자들처럼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그 순간 그가 믿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구원에 관한 소식을 누군가가 듣고 믿음의 길을 시작하게 되지만 때로는 실패의 과정을 거치고 회개를 거쳐 마침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일까? 정말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언제일까? 그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일까? 아니면 끊임없는 어떤 믿는 과정을 통해서 그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떤 개인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그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의 말씀과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듣고 스스로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을 위한 유효적인 신앙고백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러한 신앙고백의 기본은 최소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일 것이다(마16:16). 그는 이렇게 예수님을 향해 고백했다 "당신은 (구약성경에 약속된) 그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음부의 권세와 음부의 뒤를 따라오는 사망의 세력에서부터 그를 건져준다(마16:18). 하지만 이 신앙고백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신앙고백 말고도 다른 한 가지 신앙고백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이다(요20:28).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낱 피조물인 마귀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진정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그리스도로 믿고 있으며,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흠없는 속죄제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는가? 그리고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와 같은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구원의 여정 안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세 가지 신앙고백을 하되,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이러한 신앙고백을 계속 해야 하는가? 칼빈주의자들은 한 번의 신앙고백만으로 사람이 영생을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앙고백은 어쩌다 그렇게 되어진 것이 아니라,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뜻에 따라 된 신앙고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그 어느 누구도 구원받기 위해 스스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인간은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기에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편 칼빈주의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구원받을 자로 예정된 자만을 예수님 앞으로 보내셔서 그를 구원받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어찌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를 만세전에 미리 예정놓으셨다는 말인가?(딤전2:4). 그렇다면 멸망으로 들어가기로 예정된 사람은 얼마나 자신의 멸망을 억울하고 불공평하게 여길 것인가? 그리고 구원받을 자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예수님 앞으로 가지도 못하도록 막으신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그래도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구원얻을 자만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신다고 주장한다. 도무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렵다. 그런데 만약 우리 하나님이 진짜 그러한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얼마나 편파적인 하나님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시고, 어떤 사람은 멸하기로 예정해놓으셨으니 말이다. 그리고 칼빈주의자들은 어떤 사람이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작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모든 인간이 구원얻기를 바라시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어떤사람을 지옥보내기로 만세전에 작정해 놓으시고 그것은 선한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왜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얻을 사람들을 만세전에 예정해놓으셨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또한 하나님은 그렇게 예정하신 사람들만 불러내어 구원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들의 십중팔구는 자신이 믿고있는 칼빈교리가 극히 성경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과연 성경적인 것일까? 이제 우리는 칼빈주의자들이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특히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성경구절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인데, 먼저 그러한 대표적인 성경구절로서 주로 등장하는 요6:39절의 말씀을 살펴보자. 그 구절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다.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 말씀을 보라.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시는 모든 자는 예수께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이 구절에 나오는'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를 주목한다. 그래서 칼빈주의자들은 예수께서 '내게 주신 자'라고 말씀하신 대상은 성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이미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으신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은 성경원문에 따른 해설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내게 주시는 자"라는 표현을 주석할 때에 그들은 '성부가 예정해놓은 자'라고 해석하는데, 이것은 성경적인 해석이 아니라 칼빈주의자들이 자신의 교리에 따라 꿰맞추어 주석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첫째, 이 본문에 대한 헬라어원문을 직역해보면, 한글번역에 있어서 약간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들이 일어날 시점에 대해 칼빈주의자들이 해석하고 있는 것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이렇다. "이것은 (과거에) 나를 보내셨던 분의 뜻(의지, 열망, 의도)이다. 그분이 내게 이미 주셨던 모든 자들을 내가 (미래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일으키도록"이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을 주목해 보라. 첫번째, 한글개역성경에는 원문에 없는 단어가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도"라는 부사어가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문에는 없는 '하나도'라는 낱말을 끼워넣은 것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한 잘못된 번역이다. 두번째, 예수께서는 과연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셨던 자를 언제 잃어버리지 않게 하실 것이인가를 말씀하셨는지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시점을 칼빈주의자와 성경원문은 각각 다르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 시점은 언제일까?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낸 자는 그때 주님 앞에 나오고 있는 그들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이 그들을 부활시키는 그 미래의 때에 주님께 속한 자들을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지는 것은 곧 아버지의 뜻이며 열망인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는 꼭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소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둘째,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그들이 누군지에 대해서 이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가지고 들어온다.  자기들의 교리를 가져다가 이 말씀에 끼워넣어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란 만세전에 아버지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해 두셨던 자들이라고 해석한다. 그렇지만 이 말씀의 앞뒤 문맥을 보라. 아버지께서 과연 예수께 주시는 자가 누구일 것이며, 또 누가 될 것인지 정확히 나와 있으니 말이다(요6:35,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자들은 문맥에 이미 나와있는 대상은 내팽개쳐버리고 자기들의 교리를 가져다가 이 말씀을 꿰어맞추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문맥에서 나오는 '그들'이란 대체 누구일까? 우선 바로 앞에 나오는 37절의 말씀을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그때에도 계속해서 주님께 보내고 있는 자들(동사,직설법,현재,능동태)'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스스로 주님에게 계속해서 나아오는 자(동사,분사,현재,중간태수동태디포)'이다. 더욱이 그들이 누구인지 보다 다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구절은 35절에 들어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생명의 떡인 줄을 알고 그분을 향하여 나아오는 자들로서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 나오는 자들(동사,분사,현재,중간태수동태디포)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생명의 떡으로서 주님을 취하는 자인들이란 믿음을 한 번만 갖는 사람들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라고 되어 있다( 동사,분사,현재,능동태). 그렇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붙여 주신 영혼은 만세전에 작정된 자도 결코 아니며, 어쩌다 한 번 주님 앞에 나온 자도 아니다. 계속해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곧 영생의 공급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분 앞에 나오는 자다. 언젠까지 이런 자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혹은 개인적으로는 종말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런 자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지옥의 형벌로 결코 내쫓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어떤 자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 위의 말씀처럼 계속해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곧 영생의 공급자이신 예수님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오는 자들이다. 그들은 한 번 나온 자들이 아니다. 또한 만세전에 작정된 자 어떤 개인이 아닌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야말로 영생의 공급자이시다. 그러니 나를 향하여 계속해서 나오는 그가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 중에는 영생을 얻지 못할 자도 생기는 것인가? 그것은 만세전에 성부께서 그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지 않아서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영생을 얻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딤전2:4). 그들이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스스로 나아가기를 계속해서 거절하기 때문이다. 요5:39~40을 읽어보라.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지금도 계속해서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한편, 칼빈주의자들은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아와 구원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는 멸망으로 들어가도록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올 수도 없을 것이며, 회개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작정되지도 않은 사람이 믿고 회개라도 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깨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성부께서 그 사람을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지도 않았는데, 그가 예수님 앞에 나와 회개하며  믿겠다고 하면 큰 일 나기 때문이다. 그날에는 성부의 뜻이 무산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한다. 조건없이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그분 앞으로 나와야 한다. 성도들이여, 성경을 다시 보라. 구원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구원얻기를 원하면,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으로부터 값없이 생수를 마시면 되는 것이다(요7:37~38). 누구든지 그분 앞으로 나아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이다(요3:16).

  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은 구원받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행위구원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당신은 알고 있는가? 영생의 공급자이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취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그들이 행위구원이라고 주장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행위구원이란 그런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행위구원이란 다음의 2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이 없이도 말씀을 지켜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적인 변화없이 외적인 행위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며, 지금의 로마카톨릭의 성도들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때 예수님이 없이도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내면의 변화가 없이도 오직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며 정결한 음식을 먹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또한 로마천주교의 경우를 보라. 그들도 유대인과 비슷하게 내면의 변화가 없이 오직 세례를 받고 교회에 물질적인 기부를 하고 선행을 쌓게 되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 없이 그리고 내변의 변화없이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이런 자들이 바로 행위구원론자인 것이다.

  그렇다.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자기조치인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행위로 구원받으려 한다고 매도하지 말라. 그러면 예수님도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아니다. 예수님 없이도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 내면의 변화없이 어떤 외적인 행위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행위구원인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최소한의 책임마저 없애버리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해 줄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이여,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등떠밀어서 예수님 앞으로 보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죄를 지었으면 우리가 회개할 일이지 하나님께서 대신 죄를 회개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영생을 가지고 계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수고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인간의 최소한의 몫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회개하는 일도 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둘째,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아들이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식별하여보고 그분을 믿되 그분을 끝까지 믿어야 하는 것이다(요6:40).

6:40 (왜냐하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식별하여)보고 (그리고) (그분을) (계속해서)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그를) 다시 살리리라(일으킬 것이다) 하시니라

  그렇다. 예수님이 아들인지 아닌지 대충 알고 믿지 말라. 그분이 진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인지 아닌지 식별하여 보라. 왜냐하면 예수께서 식별하여보라(헬, 테오레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대충 알아보고 믿다가 "이분이 아닌가 보네"하고 고무신 거꾸로 신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을 맡길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말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래서 진짜 알아보고 알아보니 예수님이야말로 정말 구약성경에 300가지 이상 예언되었던 바로 그 메시야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주님을 믿되 그 믿음을 이랬다 저랬다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한 번 믿게 되었다면,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분만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자신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혹 발생한다 하더라도 주님을 믿는 것을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주의에 물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다가도 시험이 들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않는 자들도 더러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과거에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은 만세전에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된 대로 된 것이니까, 언젠가는 나도 신앙생활을 잘 할 날이 오겠지. 혹시 내가 지금 정말 잘못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회개시켜주실꺼야" 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 아니다. 그렇게 있다가 죽으면 그는 바로 지옥행이다. 위에서 살펴보았지만 한 번 믿었다고 해서 그가 최종적인 구원을 받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식별하여 보고 믿기로 결정했다면,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그분을 계속 믿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영생을 얻으려면 구원을 주실 예수님을 따라가되 끝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요6:67~68).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그날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베풀어진 날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배불리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은 그들을 떠나서 산으로 가버리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배를 태워서 그곳 반대편으로 보내버리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 자신을 임금삼으려는 줄을 주께서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중들의 일부는 가버나움까지 쫓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주여, 언제 여기에 오셨나이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의 심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셨다. "너희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다. 그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지 않느냐? 그러나 이제부터는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도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해 일하라. 그것은 바로 나를 생명의 양식으로 믿는 것이다."하셨다.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표적의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그것은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만나를 먹고 살았듯이 이제는 하늘에서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들의 영적양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자기들에게 빵을 주지 않는 예수님을 더이상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주의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도다" 하면서 주님의 곁을 떠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예수께서 12명의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저들처럼 너희들도 가려느냐?" 그러자 시몬베드로가 말했다. "주여, 영생의 양식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간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예수님에 대해 빵을 공급해주는 빵장수로 생각하지 말라. 그분은 자신이 영생을 공급해주시는 생명의 수여자이시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빵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주님을 알게 도었다면 그때부터는 영생하는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주님을 구주로 믿고 제자들처럼 그분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당장 빵을 안 준다고 그분을 떠나갈 것이 아니다. 당신도 이제 영생의 양식이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기로 결정했다면 그후부터는 예수님만을 구주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생활이 조금 어렵다고 주님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가면 아니 된다. 주님을 알아보되 식별하여 확실히 알아보았다면 그때부터는 지구 끝이라고 주님만 따라가는 자가 되자. 그런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또한 칼빈주의자들은 요한복음 6장 39절 말고도 요한복음 10장 28절을 통해서도 자신들의 교리가 옳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내어 구원받을 자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영생을 줄 것이니까, 그들은 영원히 멸망받지도 아니할 것이며, 어느누구도 주님의 손으로부터 그들을 빼앗아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생을 받게 될 자는 과연 누구인가? 칼빈주의자들처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들일까? 아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자기들의 교리에 맞춰 해석한 것이다. 당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요10:27~28 내 양내 음성을 (계속해서) 들으며(듣고 있고)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계속해서)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8절에 보면, 예수님에게 나와 영생을 얻을 자는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라고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칼빈주의자들이 자기들의 교리에 맞춰 그렇게 해석한 것 뿐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바로 앞 구절 27절에 나와 있다. 그들은 바로 주님의 양들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주님의 양들 누구이겠는가? 그들은 바로 예수님의 음성을 듣되 계속해서 듣고 있고, 주님을 따르되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예정하신 다음, 때가 되면 그를 불러내어 예수님에게 붙여주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생명의 양식이 있는 예수님에게 나가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메시야인지를 식별해보았으면 그분을 계속해서 믿고 따르는 자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성경을 아무리 살펴보더라도 어떤 한 개인을 만세전에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정해 놓으셨다는 말씀은 없다. 오직 지금 이 시간도 영생을 주실 수 있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되 계속해서 나아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인지를 식별하여 보고, 그분을 믿되 계속해서 그분을 믿는 자들이 최종적으로 영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믿되, 그분이 어디로가든지 계속해서 따라가는 자라야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 그렇다. 구원예정은 오직 단체적인 예정만 있을 뿐이지, 결코 개인구원예정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성경이 말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예정론에 따라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나는 과연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자인가? 혹 나는 칼빈의 예정론교리에서 심취해 있어 넋놓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쉬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리고 죄를 지었음에도 하나님께서 회개시킬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는 것인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구원에서 멀어지고 있다. 다시 정신을 차리라. 옷깃을 여미며 주님 앞아로 나아가라. 회개하라. 그리고 주님을 붙들라. 그리고 주님을 붙잡은 손을 결코 놓지 말라.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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