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지를 알려주는 생명책의 비밀과 그 진실(계3:5)_2023-11-12(주일)

by 갈렙 posted Nov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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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0v6W-l0I-28
날짜 2023-11-12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3:5(신약 402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구원의증거,탈피의고통,구원과천국,생명책,일만달란트빚진자의비유,한번구원영원한구원,구원타락,구원취

2023-11-1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지를 알려주는 생명책의 비밀과 그 진실(계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0v6W-l0I-28 [또는 https://tv.naver.com/v/43804088]

 

1. 들어가며

  갑각류와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곤충 가운데는 탈피를 하는 동물들이 있다. 탈피란 이러한 동물이 성장하기 위해 허물이나 껍질을 벗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외피가 몸이 자란 만큼 같이 자라지 않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동물들이 탈피를 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피를 한다. 하지만 탈피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뱀의 경우 한 번 허물을 벗을 때 살을 찢는 고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는 데에도 역시 탈피의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교리나 교단의 신학이 신앙 성장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통과의례다. 그러한 탈피의 하나가 바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가 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탈피과정의 하나인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가의 문제를 하늘에 있는 생명책을 통해서 또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하여 놀라운 신앙의 성장이 있기를 바란다. 

 

2.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

  신앙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예수께서 누군지에 관한 신앙고백이 있다. 보통 신자의 경우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어진다(마16:16). 그러나 이것은 예수께서 살아 계셨을 당시에 베드로의 입에서 나오는 최고의 신앙고백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의 신앙고백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주의하지 못한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에 의해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되어졌는데도 말이다(요20:28). 같은 예수님이시지만, 육체를 입고 계실 때의 신앙고백보다 그분이 부활하신 후의 신앙고백이 더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보통 신자의 경우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머물러 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고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은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아들의 성육신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그분을 한 분 하나님의 입장에서 신앙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것에 대해서 망설이고 주저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어긴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딤전3:16의 말씀을 보라.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다고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도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고백하던 방식만을 고집해서는 아니 된다. 교리를 따라서 믿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성경 66권에 나와 있는 성경 말씀을 따라서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는 성도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을 한다거나(딤전3:16),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곧 하나님의 피였다고(행20:28) 말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끝까지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적으로 예수님을 신앙고백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온전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리로 실제적으로 우리가 귀신과의 영적인 싸움을 할 때에, 전능한 주 하나님이신 예수의 이름에 대한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고 또한 맛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3.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일반적인 구원론과 천국론은 어떠한가?

  회개와 천국복음연구소는 그간 10년에 걸쳐 성경적인 구원론과 천국론을 증거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그러면서 여러 번의 강을 건너야 했다. 때로는 힘들고 오해도 받았고 또한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은 탈피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기고 나니, 너무나 명확한 구원론을 정립할 수 있었고 또한 천국론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뛰어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정립하게 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온전한 구원론과 천국론이 어떤 것일까? 그것을 질문 형식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한 번 얻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으로서 주신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고정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을 가졌다가 탈락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이 공히 증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딤전1:19~20, 딤후3:1~8, 히6:4~8, 계3:5). 왜냐하면 이미 받은 구원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을 믿게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는 것인가? 이것도 올바른 정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과거의 죄를 하나님께서 덮어버리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누구도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지은 죄를 다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면 이 세상 사람치고 구원을 받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사람의 과거의 죄를 덮어버리신다. 죄없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짓고 있는 현재의 죄와 장차 짓게 될 미래의 죄들은 반드시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죄 때문에 구원을 못 받을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셋째,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이 받을 저주는 다 처리되었는가? 그것은 원칙론적으로 맞는 것이다(갈3:13). 하지만 그것이 내게 주관적으로 체험되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백함으로 죄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백하지 않고 용서받은 것 때문에 우리 안에는 여전히 저주를 주는 귀신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죄용서는 하늘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백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끝내버린 저주로부터 온전하게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내 조상들이 지은 죄들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며 회개를 안 해도 되는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알고 생활하면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서 천국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의 80~90%는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귀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우리 몸안에 들어와 있으면 우리가 병이 들고 가난해지며 앞길이 늘 막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조상죄를 회개하지 않고 지낸다면 우리는 저주로부터 온전한 해방을 경험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열심히 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는 자기 대에만 하나님께서 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손 3~4대까지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20:5). 

  다섯째, 천국은 믿음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가?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믿음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에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계22:14). 고로 믿음만으로 들어간다는 종교 개혁자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여섯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지워질 수 있는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가 천국의 시민권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그는 천국에 주민등록증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 중에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가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 신앙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지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계3:6).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라도 그것이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구약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모세(출32:32~33)와 다윗이다(시69:28).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어도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지워버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의인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악을 행하면 그의 이름을 지워버린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일곱째,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성도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가?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성도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은 일종의 바램이다. 그것은 하나의 소망인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을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벧전1:1~2,9).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자는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서 성도는 크게 섬김을 받는 자와 섬기는 자로 구분한다. 섬김을 받는 자는 144,000명의 성도들을 가리키고(계7:1~8), 섬기는 자는 허다한 무리들을 가리킨다(계7:9~17). 그리고 섬김을 받는 144,000명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종으로써(계7:3, 22:5) 하나님으로부터 인침을 받은 사명자들(계7:4~4)과 처녀로서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계14:1~5)는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은 많지 않다. 

  여덟째,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 성밖으로 떨어질 자가 있는가?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라도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어도 성밖으로 던져질 자가 많다. 그러한 자들로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마25:1~13)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마25:14~30).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십계명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지 않았던 자도 역시 성밖으로 내던져진다(계22:15). 

 

4.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서 구원을 얻게 되는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을 보내 주신다. 그러면 성령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맘속에 들어오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게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기록천사들을 시켜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나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신다. 그러고는 즉시 그를 지키고 보호하는 수호천사 2명을 그에게 보내 주신다. 그러므로 그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그에게 과연 수호천사가 붙어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생명책을 떠들어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영적 수준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것을 알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성령충만을 받아서 방언을 말하게 되고, 예배드리고 찬송하는 것이 기쁘고 즐거우며, 천국을 준비하는데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은 자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5.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알려 주는 구원의 비밀은 무엇인가?

  한 번 구원얻은 사람은 그 구원이 어찌하든지 계속 유지가 되는가 아니면 구원이 취소되기도 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알려 주는 놀라운 비유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천국에 관한 비유로 말씀하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이다(마18:23~35). 여기에 보면 하나님을 의미하는 '주인'이 나오고, 죄인을 의미하는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나온다.

  한 종은 자기의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 한 달란트는 일당을 6만원으로 계산하면 3억 6천만원 정도가 된다. 그러니 한 달란트가 아니라, 10 달란트나 100달란트, 1000달란트도 아니라 1만 달란트를 빚졌으니 그는 주인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이다. 그러자 주인은 그의 몸과 그의 처자와 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빚을 갚겠으니 불쌍히 여겨달라고 엎드려 절을 했다. 그러자 주인이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다. 그것은 그 빚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그 빚을 덮어버려 그 빚을 당장 갚지 않아도 되게끔 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밖에서 자기에게 아주 쪼금 빚진 자인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그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였다. 그러자 그 동료 종도 엎드려 간구하여 조금만 참아주면 그 빚을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목을 조르던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은 그를 그만 감옥에 처넣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동료 종들이 그것을 지켜보면서 감옥에 들어간 종을 몹시 딱하게 여겨,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을 주인에게 고발해버렸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소환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더니, 너도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네 동료 종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면서 그를 빚을 다 갚도록 형벌주는 종들에게 넘겨버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빚을 탕감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빚을 없애주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빚을 덮어버려 없는 것으로 여겨 주었다는 뜻이다. 그때 만약 주인이 그 빚을 안 갚아도 되는 것처럼 해 버렸다면, 주인은 결코 그를 다시 소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시 소환당하여 빚 곧 그가 지은 죄값을 다시 받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주인이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줄 때에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종은 주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주인을 분노하게 했다. 그러므로 그는 소환당했다. 이날이 바로 우리가 심판받는 날이다. 우리가 주님께 소환되는 날,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죄를 탕감받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를 직고해야 할 것이다. 그때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해 합당하게 살았다면, 주께서는 탕감을 영원히 유효하게 하셔서 계속해서 그 죄를 덮어버리실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죄를 용서받은 후,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경우에는 주인도 그에게 죄값을 물으실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죄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그 죄들이 다 사라진 것이 결코 아니다. 언제라도 다시 꺼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후로 어떻게 살았느냐가 심판날에 우리의 구원의 당락을 다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빌2:12). 주님 보시기에 용서받은 자다운 합당한 열매를 남겨 주님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나 자신의 책임이다. 하나님이 대신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일지라도 심판날에 그 구원을 잃어버릴 사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6. 생명책을 통해서 살펴보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그런데 우리는 하늘에 있는 생명책을 통해서도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과연 안전한가 아니면 영원한 구원을 얻었지만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있는 우리의 이름에는 변화가 계속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구원받을 때에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하는 것을 앞서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그 뒤 생명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 아니다. 생명책의 내 이름에 많은 변화가 있다.

  첫째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자. 그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회개하고 충성하고 섬기며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킨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더욱 더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때마다 그 이름을 더 덧칠하여 그 이름이 더 굵어지게 한다. 그리고 그 이름에서 향기가 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름을 금과 보석으로 장식해 준다. 그리고 자수를 놓아 아름답게 꾸며준다. 그러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서도 지위와 신분이 높은 사람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도 있다. 둘째, 부정적인 변화를 보자. 그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지만 그 후에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며, 세상 향락과 돈 욕심에 취해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면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을 천사가 지우개로 조금씩 지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점점 더 그 이름이 옅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이름 중에서 한 글자를 파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지우개로 싹 지워버린다. 그리고 어떤 이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적힌 종이가 찢어지기도 한다. 그날은 그가 죽는 날이다. 그러면 그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 수 있는 권한이 없어진다. 그리고 죽은 즉시 성밖으로 간다. 이것은 지금 저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를 말씀드린 것이다. 

 

7. 한 번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한 번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계3:1~6). 그런데 그것의 핵심은 첫째, 지은 죄를 회개해서 자신의 더럽혀진 겉옷을 깨끗이 빨아서 흰 겉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계3:4). 그리고 둘째, 죄를 더 이상 짓지 말고 죄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계3:5). 예수님을 믿은 후에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며(계22:14), 그러면 그때 그는 성밖으로 내던져지거나 불못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계22:15). 그렇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둘째 사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하늘의 주민등록증을 받게 되었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날, 천국에 들어가게 될 때에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토록 누리게 될 높은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설령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우리는 지은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흰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그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고 거기에서 내쫓아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계3:5). 

 

8. 나오며

  사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가 받은 구원을 유지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스승으로 주신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귀신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예수 이름의 권세도 쥐어 주신다. 그렇지만 이 세상이 좋아서 이 세상의 욕심과 욕망 그리고 육체의 쾌락을 좇아서 살아간다면 그는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도 점차로 흐려질 것이다. 또한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그 구원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서, 회개하고 있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는 최소 성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고 죄가 더 클 경우에는 더 바깥 어두운 곳까지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은 죄를 저질렀다면 그는 불못에도 던져질 수 있다(계21:8).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죽기 전까지 자신의 구원을 장담할 사람은 없다. 최소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정말 힘써야 한다. 최소한 날마다 회개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불철주야 수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주의 일에 충성하고 다른 지체를 섬기면서, 그리고 인내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은 은혜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또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의 수고와 헌신과 피와 땀방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열 처녀의 비유처럼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12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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