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이 성탄절에 베들레헴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눅2:1~5)_2023-12-24(주일)

by 갈렙 posted Dec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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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kcbIHh3iPTw
날짜 2023-12-24
본문말씀 누가복음 2:1~5(신약 89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3-12-24(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대강절] 이 성탄절에 베들레헴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눅2: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kcbIHh3iPTw [또는 https://tv.naver.com/v/45421431]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으며 또한 어떻게 오셨는가? 그것은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꼭 알고있어야 할 주제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강절을 맞이하여 지난 4주 동안 4가지 사실을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왜 '여자의 씨'와 '아브라함의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는가? 그리고 자신의 씨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요셉의 법적인 부친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그는 어떻게 담당했는가? 족보상에 나타난 마리아의 가문에 따른 메시야의 비밀까지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제 대강절 마지막 시간으로서 예수께서 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이 나라 대한민국 고대국가였던 가야(가락국)에 전해진 예수님이 어떻게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예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했는가?

  왜 예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살고 있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탄생하지 않고 또한 당시 유대 나라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에서도 탄생하지 아니하고 유대 땅 작은 고을이었던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요셉 때문이었다. 요셉이 이미 임신한 채 있는 마리아와 장차 태어날 아기를 보호할 목적으로 호적을 하기 위하여 베들레헴까지 데려갔기 때문이다(눅2:3~5). 이는 만약에 이미 임신한 채 있는 마리아를 나사렛에 두고 호적하러 갈 경우 그녀에게 불어닥칠 시련과 위험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요, 주의 천사가 밤에 꿈속에서 가르쳐 준 바대로 그녀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장차 인류를 죄가운데서 구원할 메시야이기 때문에 그 아기를 보호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둘째, 보다 더 앞선 이유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칙령 때문이었다(눅2:1~3). 당시 로마의 1대 황제였던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재위 B.C.27~14)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가 자신의 속국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와 세금 징수를 위해 호적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이었고 또한 그의 아버지의 고향이 베들레헴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신고를 해야 했다. 그래서 베들레헴까지 가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 통치자를 쓰신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상을 통치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셋째, 이것보다 더 앞선 이유는 하나님의 예언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장차 태어날 아기는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가 선지자는 B.C.700년경의 사람으로서, 유대 땅 베들레헴이 비록 작은 고을이지만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태어나서 이스라엘을 장차 목양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미5:2). 그러므로 제일 처음 원인은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3.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했던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예수께서 꼭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했던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그곳의 지명 이름에 숨겨진 비밀로서, 베들레헴이라는 곳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에 담겨 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그 지명의 의미가 심상치 않다. 왜냐하면 그 지명의 이름이 '벧(집)+을레헴(떡)'으로서, '떡집'이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으려면 고깃집에 가야 하듯이, 떡을 먹으려면 떡집에 가야 한다.

  그러하면 예수님의 조상들은 언제부터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었는가? 누가복음 기자는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성읍)'라고 분명히 알려 준다(눅2:4,11). 그곳은 다윗이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이 태어났을 때에 이미 그곳에는 그의 아버지 이새가 살고 있었고, 그 윗대로서 오벳이 살고 있었으며 그리고 더 윗대로서 보아스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룻기서를 읽어 보면 보아스는 유대 땅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였다. 그러니까 보아스 이전부터 그 땅에 예수님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라고 불려졌던 것인가? 그것은 베들레헴이 아주 작은 고을이었고 별 볼일이 없는 동네였지만 그곳에서 위대한 성군 다윗이 태어났으며, 다윗이 그곳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왕도를 세웠으며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왕으로 다스렸듯이, 믿는 우리들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다 보면,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곳에서 왕 노릇할 수 있다는 것을 임기응변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예수께서 장차 떡집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4. 왜 떡집으로서 베들레헴은 중요해졌는가?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은 원래부터 있던 지명은 아니었다. 그곳은 야곱 당시에는 에브랏이었기 때문이다(창35:19, 48:6). 야곱의 둘째 부인이었던 라헬이 그만 베냐민을 낳다가 그곳 에브랏 길가에서 죽었었다. 그러므로 '에브랏(에브라다)'이라는 지명의 이름은 '가볍다, 덧없다'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장차 메시야가 탄생해야 할 것이고, 그분이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생명의 떡으로 자신을 내어 줄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곳 이름이 어느새부턴가 '떡집'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베들레헴이라는 지명 이름이 '떡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탄생하실 장소로서, 베들레헴이라는 지명이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6:33,35,48~51). 이는 그분이야말로 모든 인류에게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오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무리들을 먹이신 후에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 떡은 예수께서 주시는 것이며, 그것은 영생이라고 하셨다. 비록 떡의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은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육체의 양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을 주실 것인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믿고 취하여 먹는 자는 영원히 굶주리지도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장차 죽으신 후에 성령을 통해서 생명을 공급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류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 그분은 떡집에서 탄생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 황제도 이 뜻에 따라 칙령을 내렸으며, 요셉도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는 그녀를 데리고 굳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간 것이다. 

 

5. 오늘날에 생명의 떡을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에 생명의 떡을 먹으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도 떡집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떡은 예수님을 가리킴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가야 한다. 지금 예수님이 계신 집은 바로 '교회'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떡을 주셨다. 그런데 그 떡을 보관하는 장소를 마련하라고 했으니,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성막에 두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성막 안에 있는 떡상 위에 매주일 밀떡을 올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매안식일에 떡이 새로 올라갔고 물려낸 떡은 제사장의 식구들이 양식으로 취했다. 그런데 그 성막이 성전으로 바뀌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의 몸이 성막이 되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에 계시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생명의 떡을 얻으려면 우리는 교회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으로 선포되는 곳에서 우리는 생명의 떡을 취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건강한 떡을 먹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 교회에서 말씀을 먹여 주는 지도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설교를 통해서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 오셨다는 것이다. 사실 그분은 첫 사람 아담과는 달리 자기 안에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요5:2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생명을 가진 채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성육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생명을 이땅에 가져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은 자기 안에만 있는 생명을 해방하는 것이었으며, 그분의 부활은 그 생명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었다. 즉 생명의 확장이 곧 그분의 부활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분의 공생애 기간에 자주 생명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분은 늘 자신을 '생명' 그 자체라고 말씀해 주셨다(요14:6, 11:25~26). 그래서인지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을 나눌 때에 그분은 자신이 주는 물을 곧 '생명의 물', '생수'라고 하셨다(요4:13~14). 그리고 그분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다음에, 자신이야말로 사람들이 먹기 좋게 준비된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요6:35). 그리고 초막절 때에 그분은 자신은 어두운 밤을 빛춰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빛'이라고 하셨다(요8:12). 그렇다. 그분은 생명의 모든 것이 되신다. 그분은 생명 그 자체요, 생명수이며, 생명의 떡이자, 생명의 빛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분이 이 땅에 생명을 주려고 오셨다는 것을 다양한 형태로 말씀하신 것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는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요10:10). 한편 공관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를 흘릴 수가 없으니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실 속제제물로 오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막10:45).

 

7. 이 땅 대한민국에도 과연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전해졌을까?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서 예수님의 사후 약 11년 만에 A.D.41년경 한국 땅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사도 도마(A.D.2~72)에 의해서다. 사도 도마는 인도 선교사로 파송되었는데, 인도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실크로드 상인을 따라 땅끝이라고 불리워진 동방의 나라로 왔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이 알려진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 방면에 38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온 정성을 기울여 온 학자가 있으니 그는 바로 조국현 교수다(A.D.1955~). 그는 대구 경북 엑스포 이사장을 맡고 있는 분이신데, 도마가 한국 땅에 왔으며, 한국 사람 최초로 가락국(가야국)의 시조였던 김수로왕에게 세례를 주어 기독교인이 되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기독교 국가를 세우게 했다고 전한다. 사실 가야라는 나라는 한동안 일본식민사관에 의해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채 있어 왔다. 하지만 가락국이 있었다는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나오고 일연의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을 통일했던 김유신 장군의 12대 조상이 김수로왕이라는 것과 그가 A.D.42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 나라의 이름을 금관국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나온다. 하지만 그 나라도 532년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나온다. 그런데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정말 대단하다. 거기에는 '가락국기'라는 형태로 그 나라가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구지와 같은 설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야국이 기독교 국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조국현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이제 관광해설사들이 해설을 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 가야국과 그 나라의 고분군들이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으니 실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7. 가야에 도마가 왔으며, 도마가 김수로왕에게 전해 준 복음은 무엇이었는가?

  가야에 도마가 왔는지가 여러 가지 고고학적 유물들과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2가지다.

  하나는 경북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산87번지에 남아 있는 도마석상과 바위다. 여기에 새겨진 도마석상은 이 사람이 부처가 아니라 서양에서 온 사람임을 알려 준다. 왜냐하면 앞뒤가 바뀐 손모양과 열 발가락이 그대로 그려진 모양 리고 왼손에 있는 십자가를 물고 있는 비둘기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석상 오른쪽 바위면에 고대 히브리어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히브리어로 타우와 멤으로서 '도마'라는 이름의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가지 그림이 같이 있는데 아마도 도마는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도마였는지 알려 주는 증거는 발 아래쪽에 중국 한나라의 예서체로 한자가 음각되어 있었으니 그 글자가 '지전행(地全行)'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땅을 다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도마의 호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는 적어도 한국 땅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땅끝으로 알고 이 땅에 왔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김수로왕 능의 쌍어문에 그려진 오병이어의 그림이다. 그렇다면 도마는 과연 이 땅에 정말 복음을 전해 주었으며, 그래서 과연 전도의 열매를 맺었을까? 그것은 그가 42년 3월15일에 세례를 주었다는 것인데, 그 대상이 바로 김수로왕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김수로왕이 도마에게서 세례를 받고 가야라는 나라를 세웠으니, 가야국은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셈이다. 그러한 사실은 그가 죽은 뒤 그의 무덤 앞에 세워진 출입문(쌍어문)의 그림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사람(아마도 '예수님'이 아닌가 한다)의 얼굴에 온통 핏방울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병이어의 그림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고기 두 마리는 수염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다섯 개의 떡은 입안의 혀의 그림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생명의 떡으로 오신 것을 형상화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분의 얼굴에 핏방울이 잔뜩 그려진 것은 그분이 우리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피 흘리신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그 내용이 잘 보존되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얼굴의 형태도 좀 달라졌고, 1987년 이후에는 이 그림에 덧칠을 함에 따라 그 이전에 갖고 있던 그림의 형태가 일그러졌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는 없게 되어 있지만, 1987년 이전에 찍어 둔 사진에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8. 오병이어의 그림은 과연 기독교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김수로왕 능의 쌍어문에 그려진 오병이어는 과연 기독교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의 바닥을 보면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오병이어의 그림이 선명하게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의 복음이 동쪽으로 전해지면서 터키 지역과 인도 지역에도 물고기 두 마리의 그림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오병이어를 상징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그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위에도 2개가 있는 것이고 아래도 두 개가 있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수로왕 능의 쌍어문에 그려진 오병이어의 그림에는 떡 다섯 개도 사람의 입 안에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입가 양쪽에 수염 형태로 두 개의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 둘 다 위아래에 각각 2개씩의 지느러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판의 그림은 보통 300년마다 다시 그렸다고 한다. 그러니 적어도 7번 이상 덧칠해진 것이다. 금관가야국이 532년에 망하고 신라의 귀족으로 합쳐졌을 때에 김수로왕 능도 그때 비로소 조성이 되었고 그 출입문에 예수님의 얼굴(?)에다가 오병이어의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그 그림이 1,500년의 세월을 잘 버텨준 것만 해도 정말 고맙기만 하다. 이것은 기독교 전파 초기에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9. 나오며

  마지막 시대가 되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머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도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동성애 및 양성평등법이 덜 적용되는 상황 속에 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기독교가 폄하되기는 하였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이 나라 사람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보나 기술적으로, 의학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 특히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정말 대단한 기독교 영성가들이 우리나라에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천국의 현상황을 잘 알 수 있으며, 귀신세계에 대해서 세계 최고의 정보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나라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더 쓰임받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가야의 사람들이 신라에게 멸망당한 뒤에도 이 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스며 들어감으로 그 피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양천 허씨, 인천 이씨와 양산 이씨가 다 이 후손들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잘 아는 허균이나 허난설헌이 사실 양천 허씨의 후손이며, 동의보감을 썼던 허준도 양천 허씨의 후손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고대 한국에 전해진 이 복음을 우리나라가 1,500년 전에 그만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하나님께서 약 120년 전에 이 나라에 서양 선교사들을 보내어 다시 예수님을 전해 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이상 예수님을 놓쳐서는 아니 된다. 회개를 통해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을 견고히 유지하여 이 신앙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이 복된 신앙을 널리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도마에게 주어진 복음 전파 사명이 이제 우리에게 넘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주여, 이제는 우리가 이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 땅끝까지 전하게 하소서. 우리도 지전행이 되게 하소서. 아멘. 

 

 

2023년 12월 24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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