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정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고전15:50~58)_2024-03-31(주일)

by 갈렙 posted Mar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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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5RovxLouEhA
날짜 2024-03-31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5:50~58(신약 284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소생과부활,예수님의부활과성도의부활,부활의몸,부활의영광,부활체를입어야하는이유,생명과사망,사망의세력을잡은자,사망의실체,부활신앙

2024-03-3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주일1부] 내가 진정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고전15:50~5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5RovxLouEhA

 

1. 들어가며

  부활은 소생과 다 르다. 예수께서는 소생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다. 소생이나 부활이나 둘 다 다시 살아난 것은 똑같다. 하지만 소생은 다시 죽을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고, 썩을 육체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부활은 다시 죽지 않을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며, 썩지 아니할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공통점은 둘 다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33년 반 동안 살던 그 몸 그대로 부활하셨다. 그러나 성도들은 육체가 아니라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에게는 영의 몸 곧 부활체가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사람에게 부활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부활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2. 부활에 관하여 던질 수 있는 2가지 근본적인 질문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하여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사람의 부활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에 비해 성도들의 부활이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부활한 것이지만 성도들은 그 몸을 이 땅에 흙으로 남겨두고 영의 몸으로만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은 부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진짜 사람이 죽으면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맞는가?" 사실 우리가 부활을 경험하는 영역은 사실 육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부활하는 몸 곧 영의 몸은 우리의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진짜 부활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 "영의 몸으로 부활한다는데 대체 부활의 몸이란 어떻게 생겼는가?" 그리고 "부활할 때에는 각기 다른 영광의 몸으로 부활한다는데 부활체는 대체 얼마만큼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사실 오늘날 우리 믿는 이들 중에도 영의 몸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영의 몸은 과연 피를 흘릴 수 있는가?" "영의 몸도 나이를 먹는가?" "영의 몸은 육체처럼 먹어야 사는가??" "영의 몸은 시공간의 출입과 이동이 과연 자유로운가?" 그리고 영의 몸은 영광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 다만, 사도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부활체의 영광은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들의 영광으로 구분된다는 것 정도만 알 뿐이다(고전15:41~43). 그러므로 사람들은 부활의 몸이 대체 어떤 몸인지를 질문하게 되고, 부활의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질문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몸이 어떤 몸인지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어느 정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3. 예수께서는 왜 이 세상에서 33년 반 동안 살았던 그 몸 그대로 부활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살 때 사용하셨던 육체를 그냥 무덤에 놔두지 아니하고, 육체를 그대로 부활체로 사용하셔서 부활하신 것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만약 예수께서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예수께서 부활하셨는지에 대해 우리의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빈 무덤을 통해서 예수께서 진짜로 부활하셨다는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영원한 간증이 되시기 위함이다. 즉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가시 면류관을 쓰신 흔적을 가진 예수님의 머리와 그리고 그분의 두 손과 두 발에 있는 못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창으로 뚫린 옆구리도 볼 수가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한때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상처를 받으시고 죽으셨다는 것을 영원히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셋째, 예수께서는 흙이 육신이 된 우리 사람의 몸과는 달리 말씀이 육신이 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분의 몸은 흙이 육신이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 몸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셔야 했던 것이다. 

 

4.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정말 확실한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진정 부활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건 아까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2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빈 무덤이 그 증거다. 예수께서는 그 몸을 가지고 그대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가 놓여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들의 목격들이 그 증거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부활하신 그분을 본 사람들은 아주 많다. 첫째는 12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와 요한이 보았다. 둘째는 열한 제자들과 여인들이 보았다. 셋째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보았다. 넷째는 주의 동생 야고보도 보았다. 다섯째는 모든 사도들도 보았으며, 특히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사도 바울도 보았다. 여섯째는 그분의 승천시 500여 형제들도 보았다. 그렇다. 그분을 보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들이다(고전15:1~11).

 

5. 성도들은 왜 부활의 몸이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성도들은 부활의 몸이 필요한 것인가? 그냥 영으로 천국에 올라가면 안 되는 것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예를 들어, 지금 육체를 가진 성도들의 영이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가 천국을 보고 오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사도 바울이 들려주었다. 그것은 영이나 육체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오직 부활체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15:50~53). 피와 살을 가진 육체는 결코 천국을 유업으로 물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으려면 반드시 영의 몸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부활체'라고 한다. 반대로 영의 몸이 아니라 영만 천국에 간다고 해도 그 영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영의 몸 곧 부활체만이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받는 부활체는 이 세상에 속한 육체와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첫째는 우리의 육체는 썩을 육체이지만, 부활체는 더 이상 썩지 않을 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육체는 비천한 것에 불과하지만 부활체는 아주 영광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성도들이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해 같은 영광이요 또 하나는 달 같은 영광이며, 마지막 하나는 별들과 같은 영광이다. 그런데 별들은 그 빛의 세기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별들의 영광은 셀 수 없이 많은 것이다. 셋째는 육체는 약한 것이지만 부활체는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도들은 죽은 다음에 영의 몸을 입어 썩지 않을 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영광을 옷 입어야 한다. 그리고 매우 강한 존재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인데, 그것은 생명이 사망을 이긴다는 진리다. 예수님 이전까지 이 세상은 사망이 생명을 이겨왔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온 생명은 사망을 이기는 생명이었다. 예수께서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가지셨던 생명은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생명이 사망을 이긴다는 새로운 진리를 가르쳐 주기 전까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평생 매여 지내면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게 종노릇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마귀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들은 죄 아래 다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를 짓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죄를 짓는 자는 사망이 그를 죽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쓸모없게 하기 위함이며, 일평생 사망에 매여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시기 위함인 것이다(히2:14~15). 왜냐하면 인류가 범죄하여 지은 죄값을 예수께서 대신 치르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막10:45). 그래서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르시고 죽으셨다(고전15:3~4).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었기 때문이다(롬6:23). 

 

7. 사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죄를 지은 사람을 죽이는 사망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대체 사망이 무엇이길래 죄를 지은 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다가 결국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우리는 성경에 나온 기록들을 통해 사망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다.

  첫째, 사망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존재라는 것이다(고전15:55~56). 이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 사망아 네가 쏘는(찌르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찌르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능력)은 율법이라(고전15:55~56)." 그렇다. 바울은 사망에 대해서 소리를 지렀다. 왜냐하면 사망이 바울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이다.

  둘째, 사망은 권세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계6:7~8). 왜냐하면 사망은 영적인 피조물인 말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황색의 푸르스름한 말을 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천사들 중에서도 오직 높은 계급을 가진 천사들만 말을 탈 수가 있는데, 사망은 청황색의 말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망은 죄지은 사람들을 죽일 수가 있었다. 

  셋째, 사망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처럼 불못에 던져질 존재라는 것이다(계19:20, 20:10). 그런데 사탄의 삼위일체인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다 타락한 천사들로서 귀신들이다(계16:13~14).

  그러므로 우리는 이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망이란 사탄에게 속한 일종의 영물로서 사람을 죽이는 영적인 어떤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리로 실제로 영안이 잘 열린 분이 보았더니, 사망은 시커먼 구슬 같이 보이는데 어마어마한 숫자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발에서부터 스물스물 기어 올라와서 머리를 덮으면 사람이 그만 죽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망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영물이었던 것이다. 이는 죄가 많을 때에 사망이라는 영물이 찾아와서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지 않으려면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해야 한다. 이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는 것이다. 가장 먼저 회개할 것은 자신이 직접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개할 것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들이다. 그러면 사망의 영들이 더 이상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서 우리를 부르시기 전까지 우리는 건강하게 살다가 주님 나라로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다. 

 

8. 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의 3가지 특성은 무엇인가?

  그럼, 참된 부활신앙을 갖고 있는 자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3가지로 이야기해 주었다(고전15:58). 

  첫째, 참된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믿음이 견고하다는 것이다. 악한 영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둘째, 참된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환경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맡게 되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참된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주의 일에 항상 힘쓰는 자들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힘쓴다'는 표현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레리쉬오'인데, 이는 '넘치게 하다, 풍부하게 하다, 초과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그렇다. 참된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주님의 일을 하되 적당히 하거나 모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도록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우리가 죽은 다음, 부활체를 입은 순간 우리의 모든 수고가 다 나에게 보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헌신은 우리가 죽어서 부활체를 입는 순간,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지속될 나의 영광을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부활신앙을 가는 자는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는 것이며, 또한 일을 하되 차고 넘치도록 행하는 것이다. 

 

9. 나오며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래 죽을 수 없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그분은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살려 주시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하려고, 그분은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33년 반의 인생을 사시면서 인간의 희노애락을 경험하셨고 마지막에 가서는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대속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게 되는 자는 비록 육체는 흙이어서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그의 영은 부활의 몸을 입고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인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서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부활체를 입을 때에는 이 세상에서 살 때 주의 일을 행한 만큼 보상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차등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때 해 같은 영광의 몸을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달의 영광이나 별들의 영광만을 옷 입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은 우리가 영원무궁토록 갖게 될 영원한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때에 정신 차려야 한다. 영원한 부활체가 입을 영광을 지금 이때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육체를 사용하되 이 세상에 사는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아니다. 우리의 육체는 저 하늘나라의 기업을 준비하라고 주신 귀한 도구인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들도 주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몸된 교회로 하여금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은사와 물질과 달란트로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그것도 초과해서 말이다. 이러한 사람은 진정 복 있는 자다. 왜냐하면 그는 죽은 다음에 부활체가 얻게 될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지금부터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03월 31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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