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구원(45)] 한 편 강도는 어떤 회개를 했으며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눅23:39~43)_2024-07-14(주일)

by 갈렙 posted Jul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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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YAZ6BaMs7N4
날짜 2024-07-14
본문말씀 누가복음 23:39~43(신약 138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회개,누가복음,누가복음의회개,회개의사건3가지,회개의비유3가지,한편강도의회개,강도의믿음과회개,회개의결과,낙원과천국

2024-07-14(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바른 구원(45)] 한 편 강도는 어떤 회개를 했으며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눅23:39~4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YAZ6BaMs7N4

 

1. 들어가며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가는가? 그것을 아는 것은 실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과제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만약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땅에 살면서 과연 나는 구원을 받았는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자가 되었다면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떻게 해야 죄와 죽음과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인가? 대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이필요한 것인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한 편 강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구원받기 위한 최소조건으로 회개와 믿음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천국을 준비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2. 누가복음은 어떤 책인가?

  누가복음은 어떤 책인가? 요한복음이 '생명'의 책이라고 한다면, 누가복음은 '회개'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는 생명이라는 단어가 무려 32번이나 나오는데, 누가복음에서는 회개에 관한 이야기 무려 6가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즉 생명이라는 단어가 마태복음에서는 7번, 마가복음에서는 4번, 누가복음에서는 5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무려 32번이나 나오기 때문에 요한복음은 생명의 복음서라 할만 하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누가복음에는 상대적으로 회개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이 나온다. 총 6가지가 나오는데, 회개의 실제사건이 3번 나오고, 회개의 비유가 3번 나온다. 회개의 실제사건으로는 누가복음 5장에서 고기잡이 기적 이후의 베드로의 회개사건이 나오고, 누가복음 19장에서 여리고 세리장 삭개오의 회개사건이 나온다. 그리고 누가복음 23장에서는 한 편 강도의 회개사건이 나온다. 그리고 3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하나는 소용없는 회개에 대한 비유로서,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오는데 그중에 부자의 회개가 그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의 2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하나는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회개가 나오고,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가운데 세리의 회개가 나온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한 편 강도의 회개(눅23:39~43)는 회개의 실제 가운데 3번째 사건이라고 하겠다. 

 

3. 한 편 강도의 회개는 어떤 종류의 회개인가?

  그렇다면 한 편 강도의 회개는 어떤 종류의 회개를 가리키는가? 한 편 강도의 회개는 회개의 실제 사건 가운데 세 번째 사건이다. 첫번째 사건은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회개다. 베드로의 회개는 통회자복하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조디고 있는 회개 사건이며,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회개는 의지적인 결단이 강조되고 있는 회개사건이라면,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한 편 강도의 회개는 지적인 측면이 강조된 회개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 편 강도가 회개하게 된 것은 느닷없이 혹은 갑자기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계속된 회개의 준비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섭리를 따라 회개하고 천국간 사건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4. 한 편(오른편) 강도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서 한 편 강도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 우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에 대해서 공관복음서에는 2가지로 소개한다. 하나는 강도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행악자라는 것이다. '강도'라는 표현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그를 소개하는 단어이며, '행악자'라는 표현은 누가복음에서 그를 소개하는 단어이다. 

  먼저, 한 편 강도는 '강도'라는 자들을 가리킨다(마27:38, 막15:27). '강도'는 헬라어로 '레스테스'(robber)라는 단어인데, 이는 '강도, 노상강도, 도적' 더 나아가서는 '혁명가'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공관복음어세는 예수께서 성전을 청소하실 때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는 표현에 나오는 바로 그 단어이다(마21:13). 그러나 이 단어는 고대에는 전리품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는 군사나 용병에 사용된 단어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보통 나쁜 의미로 사용되어서 '약탈자, 강도, 산적, 해적' 등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37?-100? 혹은 95년)는 '레스테스'라는 단어가 '열심당원(열혈당원=젤롯인)'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당시 열심당원들은 유대지도자들의 지휘아래 로마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로마군인들을 죽인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레스테스'를 도적으로 간중하지 않고 애국자라고 불렀다. 

  둘째, 한 편 강도는 '행악자'인 자들을 가리킨다(눅23:39). 이는 헬라어로 '카쿠르고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카코스'(악한, 나쁜)라는 단어와 '에르곤'(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악한 일을 행하는 자' 곧 '행악자'라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분명 그들은 유대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자들로서 '혁명가'이기는 하나 그들의 행동은 분명 악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행악자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폭력과 살인과 방화도 정당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폭력과 살인과 방화를 정당한 행위라고 말하지 않는다. 특히 신약시대에 이후 이러한 일들을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이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대제사장들의 보낸 자들에게 의해 결박당할 때에 베드로가 대제사장이 보내 종들의 하나인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을 때, "칼을 칼집에 꽂으라"(요18:11),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예수께서 진정 자신의 사람들을 일으켜 로마로부터 유대나라를 건지려했다면 제자들을 열심당원처럼 키워서 그러한 일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나하면 그가 세우려는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왕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세우시려는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왕국이었기 때문이다(요18:36). 만약 예수께서 이 세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했지만 자신의 종들로 싸워서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이다. 

 

5. 한 편 강도는 어떻게 해서 믿음이 생긴 것인가?

  그렇다면 대체 십자가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한 편 강도는 어떻게 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천국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가? 그것은 첫째로, 그가 자신을 늘 돌아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가 예수님에 대해 줄곧 조사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십자가상에서 다른 편 강도에게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때 한 편(오른편) 강도는 다른 한 편(왼편)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눅23:40~41 [그런데] 하나는(딴 이는) [대답한 후에] 그 사람을 [엄히]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바로 그)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실]행한 일에 상당한(합당한) 보응[들]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실]행한 것은 옳지 않은(부당한) 것이 없느니라 하고 

  그렇다. 그는 자신이 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나 부당한 처사라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에 대해 줄곧 알아본 결과는 결단코 그가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 편 강도 자신은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과연 독립운동이라는 명분하에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살인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를 말이다. 그의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유대나라가 독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여 로마군인을 암살하는 것은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후부터 그의 관심은 유대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였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을 줄곧 살피기 시작했다.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행동을 뒷조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으며, 심지어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왜냐하면 로마군인들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부모의 아들이며, 아내의 남편이 될 수 있고, 자식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데, 그를 죽이는 것은 결국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6. 한 편 강도는 어떤 회개를 했으며, 또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러므로 한 편 강도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으며 그것을 고백하는 시간을 기다렸는데, 그만 로마인에게 붙잡혔고 십자가형이 주어져 지금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기 시작했다.

  첫째, 자신은 죽을 죄를 진 죄인이라는 고백하였다(눅23:40~41). 자신이 실행한 일은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기에 그것은 십계명을 어긴 죄라는 여긴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아무런 죽일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눅23:41). 그분은 무죄라는 것이다. 그분이 하신 말씀과 행동에는 아무런 잘못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분이 말과 행동은 옳다는 것이다. 이는 한 편 강도가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대해 조사해왔는지를 말해준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 적당히 알고 있었다면 그는 결코 예수님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 예수께 그분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실 때에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동안 예수께서 말씀해온 천국이 확실히 존재하며 그것은 죽은 다음에 들어갈 공간적인 실제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가 죽으면 그의 영혼이 예수께서 들어가는 낙원에 자신이 같이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예수께서 말씀해온 천국에 대해 믿지 못했다면 절대 이러한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이 실제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으며, 그분이 그곳에 들어가게 해 주는 분이라는 것도 함께 믿었기에, 그러한 부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7.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지각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여기서도 믿음을 말씀을 듣는 것에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롬10:17). 한 편 강도가 믿음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어느날 갑자기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다보니 그분에 대한 믿음이 생겼으며, 그분이 말씀하신 천국에 대해서도 믿음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믿음은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있는 말씀을 계속해서 들을 때에 어느날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믿음의 고백을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날마다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분이 말씀하신 천국에 대한 믿음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각을 주신 이유를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성을 이용하여 자신이 죄인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시며 우리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분을 나 자신의 구주이자 왕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8.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고침받은 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누구든지 우리는 귀를 열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 살아있을 때에 영혼의 준비를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장차 영혼이 들어갈 천국에 대해서 잘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어야 소문 중에 가장 중요한 소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다. 왜냐하면 그분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분을 갈망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면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가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간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게 되고,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고침받고 결국에는 영생까지 얻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빨리 구원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기생라합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관집을 운영하여 돈만 벌었던 것이 아니라 여관집이라는 독특한 환경을 이용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참 신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지금 누구를 통하여 일하고 계시는지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목숨을 걸로 자기 집에 유숙하러 들어온 정탐꾼을 살려준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녀가 정탐꾼들에게 목숨걸로 자비를 베풀어주었으니 장차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도 자기와 자기의 가족에게 호의를 베풀어줄 것을 요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수2:10~13). 그리고 12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서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예수님의 소문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두었던 수로보니게 여인도 역시 자신의 귀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분에게 나아왔기에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으로부터 벗어나 온전케 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9. 나오며

  사람은 누구나 귀가 다 달려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려고 준비해둔 은혜의 선물을 다 깨닫는 것이 아니다. 왜나하면 그들의 마음이 둔하고 완악하여 듣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성을 사리사욕에만 사용할 뿐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온전히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성을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깨닫기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각이라는 장치를 주셨음에 매우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깨닫고 또한 회개하여 구원도 받고 저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리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면 그는 참으로 복된 자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의 귀가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어서 그 역사가 지금까지도 계속된다는 것을 믿게 되는 자는 복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결국 회개도 하고 진리도 믿고 받아들여, 병도 고침받고 문제도 해결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2024년 07월 14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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