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되려면(마3:13~17)

by 갈렙 posted Jan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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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8ptCxM5-wVk
날짜 2016-01-10
본문말씀 마태복음 3:13~17(신약 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예수님의 세례, 세례요한의 사역, 하나님의 뜻을 위한 행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2016년 소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니뭐니해도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왔던 것일까?

  A.D.27년경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자 그는 그들에게 물세례를 베풀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께서도 그 세례받는 무리들 사이에 그에게 나아오는 것이 아닌가? 늘 성령충만했고 기도를 많이 했던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자 즉시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 보고는 예수님을 말렸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를 가지고 있는데, 어찌 내게로 나아오시나이까?" 하지만 예수님은 완강했다. 그리고 그에게 던진 한 마디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고만다. 대체 그는 무슨 말을 들었으며, 세례요한은 대체 왜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신 것일까?

  우선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예수께서 받은 세례는 우리가 받는 세례하고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인이기에 자기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세례를 받지만 예수님은 죄가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처녀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탄생한 죄없는 둘째 사람이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세례요한이 죄인이니까 예수님에게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세례받으시려는 것을 계속해서 만류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가 그의 생각을 바꾸어 버렸다. 그 말씀 한 마디는 "이제 너는 허락하라(내가 하려는 것을 내버려두라). 왜냐하면 우리가 이와같이 행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 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집행해야 될 일이라는 뜻이다. 대체 그 일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왜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그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분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것은 예수를 세상에 드러내야 할 책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고 있다가 예수님을 소개해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마11:13).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니라(요1:31)" 그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메시야를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할 책임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날도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분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 아니라 그분을 메시야로 소개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자기가 누군가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성령이 내려서 그이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분이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었다(요1:33~34). 그때 세례요한은 자기가 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곧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성령을 세례를 베푸실 이로서 메시야이신데, 그분이야말로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세상 죄를 지고 갈 유일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요1:29). 그래서 자기가 주는 세례는 그분의 죄를 사해주기 위한 회개의 세례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전가하기 위해 세례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례요한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에게 안수하여 인류의 죄를 넘기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제사장이자 선지자로서 그럴만한 자격을 갖춘 자였던 것이다(마11:11). 그리하여 예수께서 자기에게 "모든 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네가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그분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 인류의 죄는 예수님에게 전가되었고,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없이할 유일한 속죄양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늘이 열렸는데 셋째하늘까지 쫙 열렸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으며,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이 들렸던 것이다. "이 사람은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요, 내가 그의 안에서 기뻐하였다"라고 말이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수세장면과 하늘의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그 뜻과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사생애와 공생애를 구분짓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말하기도 하며, 죄인이 어떻게 세례를 받는 것인지 예표로서 행한 행동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은 이제 예수께서 공생애를 막 시작하려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제 매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생애를 시작하고 있는 예수님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주고 힘을 주기 위한 격려의 메시지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바른 해석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잘 감당하라고 미리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하나님의 격려차원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예수께서 막 수행했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격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례요한을 통해 인류의 죄를 전가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셔야 할 구속사역의 완성을 위해 예수께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간 행동이었음을 시사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때가지 두 번 기뻐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피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실 때에 그러하셨고, 두번째는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전가받아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실 때에 그러하셨다.

  그렇다. 예수께서 그날 하늘로부터 하나님에게서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앞으로 그에게 공생애 사역을 잘 감당하라는 뜻에서 들려준 음성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인류구속사역을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 발을 내딛게 되자 그 일을 기뻐하시면서 격려를 해 주신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해주시고 자신을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교회는 칼빈의 예정론과 성도의 견인교리에 물들어져 있고, 무엇보다도 문맥을 무시하거나 원문에서 빗나간 성경번역본을 진짜 진리로서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 때문에 자기는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니다. 다음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기록되어 왔던 것같이, 우리가 모든 날을 당신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도살당할 양같이 간주되었다는 것처럼(롬8:36)" 여기서 과연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오늘도 주님을 위해 죽임을 당하고 있고 도살당한 양처럼 핍박받지만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는 자들이 그렇게 된다는 뜻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고 날마다 죄만 짓고 있으며 죄를 버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한 발자국조차 내딛지 않는 자가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모든 사람을 위해 피흘려 죽으셨고 모든 사람을 그토록 사랑하셨건만 그 사랑을 끝내 받지 못할 사람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빛으로 이 세상에 왔지만 계속해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는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요3:19). 또한 아무리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고싶어도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오지 않는다면 영생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요5:40~42).

  올 해 2016년이 시작된 지로 벌써 10일이 지나가고 있다. 과연 올 해를 어떻게 보내려고 하고 있는가? 아무런 결단도 없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그 어떠한 반응도 없이 또 일 년을 보내려고만 하는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오늘도 주님의 뜻을 향하여 예수님처럼 한 발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어둠의 일이라면 그것을 벗어던져버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향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면 올 일 년은 여러분에게 놀라운 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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