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는 눈(06)]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두 번째 키워드 ‘제사장'(히7:22~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by 갈렙 posted Aug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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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xxp90A6Tn3A
날짜 2024-08-25
본문말씀 히브리서 7:22~28(신약 360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4-08-25(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성경을 보는 눈(06)]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두 번째 키워드 ‘제사장'(히7:22~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xxp90A6Tn3A

 

1. 들어가며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가?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요5:39). 만약 우리가 성경을 읽었는데 여기에서 영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성경을 잘못 읽은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일대기가 기록된 복음서들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부활 승천하신 후 하늘에서 그분이 누구시며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요한계시록이 결론이자 열매의 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복음서가 과정의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바로 씨앗의 책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구약성경에서 공히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번 시간에는 그분이 제사장이라는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제사장이 되셔야 하셨는가? 그리고 그분은 어떠한 제사장이 되셨는가? 그리고 그분이 제사장이 되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과연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 

 

2.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딱 2가지 측면에서 증거한다. 하나는 그분이 누구시냐 하는 관점이고 또 하나는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누구로 증거하는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그분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한다는 것이다(마16:16). 이것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증거한다는 것이다(요20:28). 이는 도마의 신앙고백이라고 부른다. 

  둘째로,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다고 증거하는가? 이것은 3가지다. 첫째는 예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러 오셨다고 증거한다(막10:45). 그리고 둘째는 예수께서 우리 인류에게 생명을 공급하러 오셨다고 증언한다(요10:10). 그리고 셋째로, 예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고 증언한다(요일3:8). 

 

3. 예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속량하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고, 원래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신 이유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분이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러 오셨다고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함으로 인간은 죄사함을 받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떤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한 것인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그분이 왕직을 수행하신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분이 제사장직을 수행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그분은 선지자직을 수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는 그분이 왕직을 수행하셨는지 아니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셨는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그분이 선지자 직무를 수행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성경을 제대로 본 것이 된다. 

 

4. 예수께서는 어떻게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그분이 사람이 되시어 수행하셨던 직무 가운데 어떻게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신 것인가? 그분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신 것은 그분이 기본적으로 인류의 죄악을 처리하시려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이 땅에 세우신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악을 속량하시려고 구약시대에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어 그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맡기셨다(출28:15, 30:30). 고로 비록 제사장이 하는 일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제사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직무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것이다. 즉 속죄제사를 드려서 사람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일이 제사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이를 위해 세워진 최초의 제사장이 바로 모세의 형인 아론이다. 레위 지파 사람으로서 아론이 최초로 제사장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자손만이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직무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제사장의 직무는 대속죄일 제사를 집례하는 것이다(레16장). 대속죄일 제사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한꺼번에 속죄하는 제사를 가리킨다. 이때 대제사장은 성막의 지성소에까지 들어가 법궤 위 속죄소에 속죄제물의 피를 뿌려야 했다. 그렇게 해야 온 백성의 죄를 속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제사장이 되신 것은 이러한 제사장의 직무이자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시려고 그렇게 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5. 제사장이 제사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려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제사장이 제사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즉 제사장이 제사를 지내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려면 2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 죄인 대신 죽어야 할 흠없는 속죄제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사를 드릴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를 지내더라도 아무데서나 지내면 아니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한 장소로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제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려면 죄인 대신 죽어갈 흠없는 속죄제물이 필요한 것이었고, 또한 속죄제물을 잡을 장소로서 성막이나 성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어떻게 제사장이 되셨고 제물이 되셨으며 성막이 되셨는가?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속량하려고 이 땅에 사람되어 오신 분이시다. 그래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제사장이 되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실 수 있었는가?

  첫째, 그분은 레위 지파의 사람이 아니었으나, 나실인이 되시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셨다(마2:23). 예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오직 레위 지파의 사람으로서 아론과 그의 후손만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어떻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분이 나실인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제사장권이 타락하여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에는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니어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서원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를 나실인 제도라고 부른다(민6장). 왜냐하면 제사장권이 타락했어도 죄인들은 속죄제사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나실인이 바로 사사기 13장에 나오는 '삼손' 사사이며, 또한 엘리 제사장 때에 출현했던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엘리 제사장권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통하여 서원기도를 하게 하셨고 그래서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였고, 삭도를 대지 않았으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러한 또 한 사람이 더 있으니 그는 누가복음 1장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이다. 예수께서 나실인이 되셨다는 것은 마2:23에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바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말에서 그 연유를 찾아낼 수 있다. 왜냐하면 '나사렛'이라는 말은 '나지르'라는 말인데, 이는 '나자르'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자르'라는 뜻은 '구별된, 성별된, 봉헌된'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어디에서든지 사실 수 있었지만 그분이 굳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시게 된 것은 그분이 나실인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둘째, 그분은 본인이 직접 흠없는 제물이 되시어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어 주신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나실인으로서 제사장이 되시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셨는데, 특히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대속죄일 제사를 치러야 했는데, 그럴려면 대속제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로 대속죄일 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안수를 받아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곧 속죄양이 되셨기 때문이다(요1:29). 예수께서는 흠없는 송아지나 염소 혹은 양을 제물로 삼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물들은 그때 그해의 속죄제물로만 쓰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이시므로 항상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제물되심은 영원한 희생제물이 되심과 같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를 속량할 속죄제물은 오직 예수님의 몸만이 가능하였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내어 놓으셨다. 그래서 자신의 피로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심으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는 속죄제물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 양으로도 죽으신 것이다(고전5:7).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속죄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된다. 

  셋째, 그분은 자신이 성막이 되시어 그분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성막이 되셨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에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성전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해골 모양의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는 성 안의 성전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성밖의 언덕 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 자체가 성막이자 성전이 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어 사람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4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장막을 치신 것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은 자기 안에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성막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이 곧 성막이 되시어 그 안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굳이 예루살렘 성전 안의 번제단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의 몸이 곧 성막이자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성전 안에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장소인 법궤가 안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남유다의 말기에 어디론가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유다 말기에 성전은 우상으로 가득한 처소가 되고 말았다. 에스겔서를 읽어 보면, 제사장들도 타락하여 성전에 담무스 신상이나 하늘 여황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신지 오래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타락할 대로 타락해 버린 성전 안에서 굳이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제도권 밖으로 나가신 것이다. 이는 마치 레위기 16장에 나오는 대속죄일 제사 때에 쓰인 한 마리의 속죄양이 아사셀 양이 되어 광야의 무인지경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가셨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그 언덕 아래의 바위 속(예레미야 동굴)에 법궤가 안치되어 있었고, 그 법궤 위에 예수께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지진으로 인하여 깨진 바위 사이로 흘러들어 가서 법궤 위 속죄소에 뿌려졌던 것이다. 이것을 미국의 고고학자 론 와이어트 박사가 발견하고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인류의 속죄제사가 완성이 된 것이다. 

 

7.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심은 아론의 반차를 따른 것인가 아니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것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출신으로서 나실인이 되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셨다고 언급한다(히5~10장).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계시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아론 반차의 제사장들은 죄인들의 죄를 사죄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비해,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고 그를 축복하기 위해 존재했던 왕이자 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소개되어 있는 살렘 왕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나온다(창14:18~20). 그는 야살의 책에서는 노아의 아들 셈이었다고 한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기록인 것 같다. 어찌되었든 멜기세덱은 죄인들을 위해 제사지내기 위해 존재하는 제사장이 아니었다. 전쟁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며 그를 축복하기 위해 아브라함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제사장으로 오셨지만 아론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의 직무도 감당하신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사복음서를 읽을 때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아론 반차의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하루 전날 밤에 멜기세덱의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성만찬을 행하신 것이며, 마가 다락방에서 제사장적인 축복기도를 행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속죄제물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에 세족식을 하신 후에 그들에게 성만찬을 행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그것은 자신의 몸과 피라고 하셨다. 자신의 생명과 속죄의 피를 그들에게 주신 것이다(마26:26~28). 그리고 성만찬을 마치신 예수께서는 홀로 대제사장으로 기도하셨다. 제자들을 지켜 달라고 그들이 하나되어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를 드리셨기 때문이다(요17:11). 그렇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적인 직무도 함께 병행하여 수행하신 것이다. 특히 그분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신 것은 제사장의 원래의 직무를 감당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아론 반차의 제사장의 직무는 아담이 범죄함에 따라 필요한, 중간에 끼어들어 온 임시적인 제사장의 직무였기 때문이다. 원래의 제사장의 직무는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고 축복하는 일을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8. 천국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직분은 무엇인가?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시되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아픈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 연약한 자를 치료해 주셨다. 그리고 군중들에게 천국 말씀을 들려주시고 천국으로 초청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12제자들의 발도 씻겨 주시고 떡과 포도주를 공궤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이 성막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시어, 영원한 속죄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렇다. 제사장이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직책이 아니다. 제사장이란 남을 섬기라고 주님이 세워 주신 직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렇게 살라고 부탁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만약 예수님의 섬김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도 누군가를 다시 섬겨야 한다. 그래서 나도 이 세상에서 제사장적인 직무를 감당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그런 자들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도록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그럼 천국에서 제사장의 직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천국에서 예배할 때에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렇게 그로 하여금 영광을 얻게 하신다. 천국에서의 삶은 일상생활과 예배하는 삶으로 나눠지는데, 그것들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예배하는 일이다. 그런데 예배할 때에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좌석과 자리가 100% 다 지정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이에는 24장로들이 앉아 있고, 그리고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이 보좌에 앉아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허다한 무리들이 서서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들도 자기 자리가 정해져 있다. 아무나 앞으로 가서 예배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보다 더 앞쪽으로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그것은 예배의 자리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리이므로 이 땅에서 섬기는 자로 살았던 자가 그때에 보다 더 앞쪽으로 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까이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 분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가 속죄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에게 생명의 양식을 충분히 먹도록 도와주고 그를 위해 중보해 주는 자가 될 때 천국에서 보다 더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천국에서 행하는 제사장의 직무라는 것은 경배하고(계4:10), 찬양하고(계4:10~11, 5:9~10, 11:17~18, 14:3, 7:10~11), 기도하는 일(계5:8)이다. 

 

9. 나오며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영광스러운 자인가? 그것은 얼마나 주님 보좌 가까이에 가서 예배드리는 자가 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자들이 바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며, 제사장 노릇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국에서 왕 노릇한다는 것은 그가 일상생활을 할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그가 천국에서 예배할 때에 보다 더 주님 보좌 가까이에서 주님을 예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뵈옵고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런 자가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섬기는 자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 마귀의 포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을 공급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중보기도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천국에서 우리가 영광스러운 직무를 수행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2024년 08월 25일(주일)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