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동기생들이 걸어간 완전히 달랐던 두 갈래의 갈림길(행6:1~6)_2025-02-23(주일)

by 갈렙 posted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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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9nmOVd9azu8
날짜 2025-02-23
본문말씀 사도행전 6:1~6
설교자 정보배목사
주제어 예루살렘교회 일곱집사,스데반과빌립,니골라,하나님의일꾼,사탄의일꾼,

2025-02-23(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믿음의 동기생들이 걸어간 완전히 달랐던 두 갈래의 갈림길(행6: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9nmOVd9azu8

 

1. 들어가며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를 일컬어 우리는 '동창생'이라고 부른다. 동창생에는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 대학원 동창, 신학교 동창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이라도 졸업하면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전혀 다른 신분의 사람이 되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같은 날 임직을 받았던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안수집사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실 한 날 한 시에 안수집사로서 임직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길은 각기 세 갈래로 갈라졌다. 왜 그랬을까?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안수집사는 어떻게 되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걸어간 길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 시대에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항은 대체 무엇인가?

 

2. 예루살렘 교회가 봉사의 일을 위해 임직한 일곱 안수집사는 누구였는가?

  예루살렘 교회가 과부들의 구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사역을 위임하는 것이었다. 이때 12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로 하고, 구제하는 일은 봉사자(집사)를 세워서 그들로 일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때 12사도들은 자기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회중에게 안수집사를 추천하게 하였다. 그러자 회중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일곱을 추천하였다. 그러자 사도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한 후 안수함으로 안수집사로 세우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때 추천받은 7명의 사람들이 전부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중에 6명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방인이었으나 유대교로 개종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헬라파 유대인과 이방인의 비율이 6대 1이었던 것이다. 이때 안수받은 7명의 이름은 스데반과 빌립, 브로고로와 니가노르, 디몬과 바메나 그리고 니골라였다. 이중에서 마지막 사람 니골라는 이방인으로서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출신의 이방인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교회일원이 되어 회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후에 드디어 안수집사가 된 것이다. 

 

3. 일곱 명의 안수집사는 과연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가?

  그런데 이러한 7명의 안수집사들은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핍박으로 흩어진 이후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것을 분류하면 세 가지 유형의 길을 걸어갔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비교적 초기부터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과 복음전파에 쓰임받았던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자들로는 스데반과 빌립이 있었다. 이들 중에 스데반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최초로 순교한 자가 되었으며, 빌립은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여 지상에 두번째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둘째는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과 복음전파에 귀히 쓰임받았던 자들이 있었다. 이들로는 브로고로와 니가노르, 디몬과 바메나 등 4명의 안수집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교회의 초기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이들은 자신의 이름마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들이었으나 나중에는 여러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각 지역의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셋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일꾼이었으나 나중에는 변질되어 사탄의 일꾼이 된 자도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안디옥 사람 니골라였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나 유대교인 되었고 다시 예루살렘 교회에 합류한 사람이엇다. 

 

4.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안수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니골라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우리는 사도행전 6:5의 말씀을 통하여, 니골라가 예루살렘 교회의 최최의 일곱 안수집사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추천받은 안수집사였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 안수집사의 이름이 당시 신임을 받은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니골라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사도행전 6:1~6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회중들에 의해 사도들에게 안수집사로써 추천된 인물들주의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7명의 사람들이 추천받은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었다. 첫째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회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칭찬을 듣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격을 갖추어 추천받은 마지막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골라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니골라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 사도행전의 기록으로만 보면 니골라는 안수집사의 명단에서만 딱 한 번 나올 뿐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누군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2세기 경의 초기교부였던 이레네우스가 그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은 이레네우스 본인이 쓴 책인 "이단에 대항하여(이단반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6:5에 나오는 니골라가 바로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침투한 니골라당의 교리를 만든 자다." 그렇다. 일곱 안수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안디옥 출신의 이방인이었던 니골라 집사가 바로 훗날 니골라당의 교리를 만든 장본인이었던 것이다(계2:6,15).

  그런데 감사하게도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배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계2:6). 그때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니골라당의 교리를 배척한 것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셨다. 그러나 다만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 중에 일부가 잘려나가서 니골라 당의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말한다(계2:15). 그러자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니골라당에 대해 매우 책망을 하신다. 

 

5. 같은 동창생이었으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았던 스데반과 빌립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한 날 한시에 안수를 받았던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집사들 가운데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은 인물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은 바로 스데반과 빌립이다. 스데반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집사들 중에 가장 먼저 뽑힌 인물이다. 그리고 나머지가 뽑혔다. 거기에 가장 먼저 빌립 집사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럼, 이 둘은 어떻게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게 된 것인가?

  첫째, 스데반은 말씀을 붙들어서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일꾼이다. 왜냐하면 그가 행한 공회석상의 설교를 잘  들어보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얼마나 술술 나오지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시대 가운데서도 말씀 전문사역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산헤드린 공회원의 죄를 책망할 뿐만 아니라, 성전 무용론을 들고 나오자,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그에게 참람죄를 적용하여 돌로 쳐서 죽여버린다. 그리하여 스데반은 교회시대의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빌립은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붙들어서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일꾼이다. 그런데 빌립은 달랐다. 그는 말씀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 전문가였다. 왜냐하면 그가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중풍병자가 나았고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도 나았으며,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빌립집사는 한 마디로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사역했언 사역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6. 같은 동창생이었으나 그만 변질되어 사탄의 일꾼으로 쓰임받았던 니골라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같은 동창생이었지만 니골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다음과 같은 2가지를 끝까지 고집피웠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쳤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갔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와 능력은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니면 사탄의 역사인지 측량하기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교묘히 자신의 주장을 표장하여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의 편이 되게 하였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의 이름인 '니콜라오스'에서도 발견되며 또한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곧 발람의 가르침과 동일하다는 것에서도 역시 발견된다.
  첫째로, 그의 이름을 보자. 그의 이름은 '니콜라오스'인데, 이는 '니카오'(정복하다, 군림하다, 승리하다, 이기다)라는 동사에다가 명사 '라오스('백성')이라는 단어를 합친 말이다. 그런데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니골라가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진지 약 30~35년 지난 시점에 그의 교훈이 곧 발람의 교훈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람이라는 이름 자체가 니골라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니골라(니콜라오스)는 헬라어로서 '백성 위에 군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선지자 발람의 이름도 이와 똑같은 의미다. 다만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발람은 '벨라'(정복하다. 군림하다. 승리하다, 이기드)에다가 '암'(백성, 무리)을 합친 말이기 때문이다. 고로 니골라는 초기교회 때부터 시작된 영지주의의 뿌리로서, 하나님의 백성마저 미혹한 다음, 십계명을 어겨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음행을 저질러도 상관없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이들은 원래 육체는 악한 것이며 영은 선한 것이었는데, 그가 한 번 영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 사람의 영은 자신의 육체의 더러움에 의해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도 상관없고 음행을 저질러도 상관없다고 가르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율법말씀으로서 도덕법인 십계명을 철저히 부정한 것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은 것은 우상숭배와 동일하게 십계명을 어기는 죄가 되는 것이며, 음행도 역시 십계명을 어기는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가 A.D.49년경 개최했던 바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이방인들 중에서 주께로 돌아온 자에게는 율법의 멍에를 지게 하지 말자고 결의한 후에 이방인일지라도 4가지는 꼭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의 앞 2가지는 우상의 제물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행15:19~20). 그런데 니골라는 교묘한 가르침을 통하여 사람들을 미혹했고 그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십계명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합법화시켜 주었다.  이는 당시 교회문화와 세상문화의 충돌에 대한 인간적인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교회에 수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A.D.95년경 당시 이방지역에서는 자기 마을의 수호신 축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 축제에 참여하면 상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그런데 그 신전축제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시간이 있었고 또한 신전여사제와 음행을 갖어야 했다. 그러나 성경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이고, 음행도 역시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었기에 금기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니골라의 가르침이 들어와서 그것이 허용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므로 니골라는 결국 자기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마저 가감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더욱이 니골라가 위험한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영적 지식이 혹시 틀릴 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가진 지식이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합당한 것인지를 점검하기를 거부했다. 이는 자기보다 훌륭한 영적 사역자들인 사도들에게 물어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과 바나바의 경우를 보라. 이방인들이 과연 율법을 준수해야 하느냐에 대하여 합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문제를 예루살렘의 총회에 회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니골라는 자신의 영적 지식이 과연 합당한지를 사도들에게 전혀 묻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니골라는 결국 사탄의 쓰는 일꾼이 되어 인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7. 오늘날 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게 될 것인지 사탄의 일꾼으로 쓰임받게 될 것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집사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장차 어떤 일꾼으로 쓰임받게 될른지도 짐작해볼 수 있다. 그것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끝까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으려면 2가지를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데반처럼 말씀을 붙들든지 아니면 빌립집사처럼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철저히 붙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이 말씀을 붙들든지 아니면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붙들든지 상관없이 꼭 지켜야 할 것은 회개를 한 다음에 붙들든지, 아니면 회개를 하고 있으면서 그것들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든지 니골라처럼 사탄의 일꾼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끝까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으려면 반드시 자신보다 영적으로 권위있는 자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빌립 집사는 자신의 전도활동이 과연 합당한 것이었는지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였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점검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는 사도들에 주셨던 성령받게 하는 능력은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골라는 묻지 않았다.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을 선포했고 그것을 회중들에게 선포함으로 회중들을 미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그들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 위에(라오스) 군림하다(니카오)"는 말이 그의 이름(니콜라오스)이 된 것이다. 

 

8. 나오며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종의 길을 가는 것은 두 갈래의 갈림길이 있다. 하나는 말씀의 종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성령의 종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할 것은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말씀의 종으로 살아가든, 아니면 성령의 종으로 살아가든 상관없이 그는 다 하나님의 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자기의 주장을 교리화시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탄의 일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과연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지도 않는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 역시 니골라처럼 사탄의 일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나는 과연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탄의 일꾼이 되고자 자신을 맡기고 있는가? 우리는 어렵더라도 철저히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2025년 02월 23일(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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