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예루살렘교회에 핍박을 허락하셨나?(행8:1~8)_2016-06-05

by 갈렙 posted Jun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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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qfWVRn3k8iQ
날짜 2016-06-05
본문말씀 사도행전 8:1~8(신약 19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최초의 교회, 예루살렘교회, 유대인만의 교회, 흩어진 교회, 전도, 복음에 빚진 마음, 복음전파의 대상, 복음전파의 축복

  이 땅에 건설된 최초의 교회, 그 교회는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예루살렘교회였다. 하지만 그 교회가 건설된지 2~3년이 채 못되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흩어버리시기로 결정하셨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가 더 견고해지도록 그대로 두시지 아니하시고, 왜 흩어버리려고 작정하셨던 것일까? 기왕 어렵게 교회가 세워졌다면, 교회가 더 성장하도록 그들에게 힘을 주고 격려해주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예루살렘교회를 흩어버리시기로 결정하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교회도 흩어짐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A.D.32~33년경, 예루살렘교회는 상당히 큰 부흥을 이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을 허락하셨다. 그때에 일곱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집사가 죽임을 당했다. 어느날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12명의 사도들처럼 큰 기사와 표적을 그곳에서 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말로서 그를 이기지 못하자, 거짓으로 그를 공회에 고소하였고, 사형언도를 내렸다. 그는 결국 무참히 돌로 맞아 순교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스데반이 죽은 것에 대해서 교회가 아무런 대항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던 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교회의 세력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러자 "기회는 이 때다"고 생각하고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남여를 무론하고 감옥에 쳐넣었다.

  하나님게서는 왜 죄없는 스데반이 돌아맞아 죽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계셨던 것일까? 그러면 하늘의 공의가 사라지고 유대인의 법정이 더럽혀지고 마는데, 왜 하나님은 그 일에 개입하지 않으신 것일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 더 견고해지도록 그대로 놔두지 아니하시고 왜 핍박을 사용하여 그들을 흩어버리신 것일까? 분명히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결코 그냥 되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큰 부흥을 이뤄가고 있던 예루살렘교회에 왜 핍박을 허락하셨는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한 마디로 예루살렘교회가 교회의 존재목적에서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실 때에는 어떤 목적이 있으시지 않았을까? 종합해보면, 그것에는 2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음부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는 거점을 이 세상에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마16:18). 다시 말해 비록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을 음부가 흡수하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는 데에 그 존재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교회를 세우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회의 규모가 크다 할지라도 그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교회의 존재목적을 상실한 교회이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교회의 존재목적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복음전파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른채, 지금도 영문도 모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는 데에 교회의 존재목적이 있는 것이다(마28:19~20, 막16:15~16). 그렇다. 생각해보라.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기 직전,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부탁하셨는가?  그것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막16:15~16)"고 하셨다.

  하지만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의 이러한 뜻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역행하고 있었다. 벌써 교회의 구성원의 숫자가 만 명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 한 명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예루살렘에 있거나 그곳을 방문한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를 흩어버리기 직전까지, 그들은 이방인 단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주지 않고 있었고, 자기들끼리만 구제하여 돕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이 어디 제자들의 전유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만약 복음을 유대인들의 전유물로 삼으실 것 같았으면, 왜 예수께서 갈릴리 촌동네의 무식한 어부들, 세리와 같이 인간취급받지 못한 사람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여 제자를 삼았다는 말인가? 그들은 벌써 자신이 어떻게 주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받아 제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잊고 있었다. 그들도 어느샌가 과거 유대인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복음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도해서 이뤄놓은 결과에만 만족하고 기뻐할 뿐, 자신들이 해야 할 사명 곧 교회의 존재목적을 실천하는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랬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는 영혼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대나라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마리아사람들이 어떠한 상태를 당신은 알고 아는가? 그들은 귀신의 힘을 빌려 표적과 기적을 행하는 마술사 시몬에게 붙잡아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몇 년 전에 예수께서 그곳에 가서 뿌려놓은 씨앗을 중간에서 마술사가 가로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큰 하나님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하셨는가? 오직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면, 그들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 하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벌써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자신이 이뤄놓은 결과에만 도취되어,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의 영혼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잘 먹고 잘 사는 문제 즉 구제사역에만

 온갖 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는가? 약하고 천하고 소외받은 변방출신의 사람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저들은 잊어버렸단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교회가 이 세상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기는 하지만 그 교회를 흩어버리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복음을 전해줄 수 있을까? 그것은 큰 교회라는 자부심이나 자신은 특별히 선택받았다고 하는 특권의식에만 사로잡힌 자가 아니다. 그것은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조건없이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가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조건없이 복음을 듣게 하신 하나님께 "저는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아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교회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교회가 세워진지 몇 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주님의 뜻은 저버린 채, 오직 자기만족에만 도취해 있었다. 자기가 속한 교회가 바로 원조교회요 큰 교회라는 자부심만 있었을 뿐 자신을 먼저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교회의 사명을 망각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교회는 없어져야 할 교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럼 교회는 언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인가? 예루살렘교회는 복음을 전파할 대상을 제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파할 시기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사람도 주님의 명령에 주의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이방인선교에 단 한 사람도 뛰어들지 않았다. 자기들의 구제에만 관심을 기울인 채, 그 시기를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을 보라. 그는 어떻게 했는가? 그도 처음에는 나사렛파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력을 없애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메섹도상에서 그는 변화되었다. 죽고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예수께서 그에게 버젖이 그리고 확실하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사실인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 했는가? 조금 더 견고한 교회를 세운 다음에 전도하려고 했는가? 아니면 자기의 선교사역을 지원해 줄 재정이 채워진 다음에 전도하려고 했는가? 아니다. 그는 즉시로 사람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전해주었다(행9:20). 그렇다. 전도는 즉시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 흩어짐을 면하는 것이요, 훗날 없어짐을 면하는 것이다.

  그렇다. 전도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가 행하는 가장 고귀한 행위다. 전도란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인 것을 아는 자가 행하는 영혼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예수께서 그 그리스도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 자신인 것을 당신은 정말 알고 있는가? 그러면 나가서 전하라. 대상에 제한을 두지 말고 누구에게든지 가서 복음을 전해주라. 복음을 듣지 않고 죽으면 저들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러면 왜 가만히 있는가? 가서 복음을 전해주라. 그들을 찾아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의 몸을 입으셨고,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셔야했는지를 전해주라. 그것이 교회가 이 세상에 있는 존재목적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6-06-05 주일낮예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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