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빌립집사를 광야로 보내신 이유(행8:26~40)_2016-06-12

by 갈렙 posted Jun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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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3gWaPZPgPqA
날짜 2016-06-12
본문말씀 사도행전8:26~40(신약 201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복음전도자,전도방법,빌립집사,에디오피아내시전도,한민족전도,성령의지시,스바여왕과 메넬리크,아프리카전도

  하나님께서는 왜 빌립집사를 광야로 내보내셨을까?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에서 어떤 잘못이라고 한 것일까? 하지만 실제는 그런게 아니다. 그런 흔적이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러셨을까? 사마리아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잘 감당하고 있는 빌립집사를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들 찾아보기가 힘든 광야의 길로 보낸 것일까? 기왕 누군가를 전도하기 위해서 보내실려면 다른 사람을 찾아 보내실 것이지 왜 굳이 빌립집사를 보낸 것일까?

  에디오피아, 인구 9천7백만명의 상당히 큰 나라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커피로 잘 알려진 나라다. 그런데 1950년 6.25동란 때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참전용사를 보낸 고마운 나라가 이 나라라는 사실을 아는가? 안타깝게도 1974년에 이 나라가 공산화가 되면서부터 나라가 급속히 기울고 말았다. 오늘 이 시간에는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았던 빌립집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까 한다.

  전도자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전도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저마다 어떤 환경에서 살다보면 거기에 쭈욱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다. 누구나가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자로 부름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는 세상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관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에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직접 현장에 가서 큰 표적과 기사를 매개체로 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러한 방법이 쓰여졌다. 하지만 빌립은 예전부터 큰 표적과 기적을 행하는 자가 아니었다. 다만 사마리아 지역에 살면서 하나님 흉내를 내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거짓 예언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빌립집사에게 더 큰 능력과 기적을 허락하신 것이다. 또 하나는 누군가에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전도방법이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이것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된다면 그가 속한 공동체를 이 한 사람을 통해서 변화시킬 수도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늘 사도행전 8장 26절부터 나오는 에디오피아 내시 전도는 후자에 속하는 전도방법이다.

  에디오피아, 사실은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국가다. 그러나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시던 그때까지 에디오피아는 숨겨진 아프리카의 유대나라였다. 아니 어찌 흑인들이 유대인들이 될 수 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팔라샤'를 검색해보라. 흑인 유대인들을 뜻하는 이 단어 속에는 1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유대인의 숨은 역사가 들어있다. 예수께서 어느날 표적보여주기를 원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적이 있으셨다. 그때 예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심판 때에는 남방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의 사람들을 책망할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가 궁금해서 땅끝에서부터 유대나라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었다. 그렇다. 여기에 등장하는 남방여왕은 열왕기상의 기록(왕상10:1~13)에 의하면, '스바여왕'을 가리킨다. 오늘날 아라비아반도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예멘이라는 나라가 당시에 스바나라였다. 그런데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원하여 갖가지 진귀한 보물을 싸들고 솔로몬을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는 그만 솔로몬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다. 그래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 메넬리크인데, 이는 '현자의 아들' 곧 '솔로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는 그들의 야사에 의하면, 메넬리크가 20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그를 솔로몬에게 보내었다. 왕은 그에게 왕위를 주려고 하였지만 메넬리크는 한사코 뿌리친다. 그러자 솔로몬은 자기의 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잊지 않도록,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1,000명을 선발하여 그에게 딸려보내니, 그가 돌아서가 홍해 건너편에 있는 지금의 에디오피아땅의 북쪽에 제국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1860년 어느날이었다. 영국인 선교사가 에디오피아의 북쪽지방인 곤다르(Gondar)에 위치한 마을들을 방문하여 선교하다가 마을 한 중앙에 위치한 회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회당의 천정에  다윗의 별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일천년동안 유대인처럼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고, 절기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흑인 유대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100년이 지나기 전인 1974년에,  안타깝게도 에디오피아나라는 공산화가 되어버린다. 그러자 이스라엘에서는 흑인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여 그들을 이스라엘로 실어나르는데, 벌써 수십만명이 이스라엘에 들어왔고, 동일한 시민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A.D.34년경 하나님께서는 주의 천사를 보내, 빌립집사를 광야로 보내셨다. 왜냐하면 지금 메넬리크의 후손 중 유력한 한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고 나서 자신의 고국 에디오피아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체하면 영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천년동안 메시야를 기다려온 또 하나의 유대민족의 거물급 인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 가서 그 흑인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줄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고 계셨다. 그리고 그에게 갈 사람으로서 이내 빌립집사가 당첨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목회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빌립집사를 지목하여 그곳에 보낸 것일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그가 헬라어를 잘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요, 같은 피부색이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그에게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라. 고국으로 내려가고 있는 에디오피나 내시(고위관리)가 마차를 타고 가면서까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아는가? 그것은 그 와중에도 헬라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메시야에 관한 가장 많은 예언이 기록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천사의 지시로 광야의 길까지 나갔던 빌립집사, 이번에는 주의 영의 지시에 따라 마차 가까이 따라붙는다. 그랬더니 헬라어성경을 읽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자 빌립집사가 즉시 물었다. "읽은 것을 깨닫습니까?" 그가 왈 "가르쳐주는 이가 없으니 어찌 알겠습니까? 이리 올라와 앉으시고 그 뜻을 나에게 가르쳐주겠소?" 결국 마차에 올라탄 빌립집사는 사53장에 나오는 고난받는 메시야가 누군지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파하였다. 결국 복음을 다 들은 에디오피아 내시, 일천년을 기다려온 메시야를 믿기로 결단한 그는 길가에 있는 물웅덩이에 내려가서 빌립집사에게 세례를 받는다.

  또 하나, 빌립집사가 광야로 보내어진 이유는 빌립집사야말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에 관한 많은 성경말씀을 익히 배워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그것을 사도들에게 직접 배운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사마리아에 가서 전한 것들을 살펴보니, 그는 메시야에 관한 것을 고스란히 전했으며(행8:5),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다면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예수의 이름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세례를 받아야 함을 전했던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행8:12).

  그렇다. 알고보니 에디오피아의 유력한 신하이자 흑인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줄 자로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빌립집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급히 빌립집사를 불러내어 광야의 길로 가도록 하신 것이다. 만약 그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더라면, 일천년을 기다려온 에디오피아 나라에 복음을 전해줄 기회가 아예 없었을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지극히 관심이 크시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유대지역과 사마리아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데, 아직 아프리카에 숨겨놓은 흑인 유대인에게도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파 유대인 중에는 아무도 그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 일에 뛰어들지도 아니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이방지역에서 살다가 주 예수님을 믿은 성도로서, 헬라어에 능통하면서 이방인들에게도 열린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서 빌립집사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해줄 가장 적합한 전도자였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빌립집사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아니 나도 바쁘다면서 그리고 아니 내가 놀고 있느냐면서 핑계나 이유를 대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자를 보내시기 때문이다또한 우리를 누군가에 보낼 때에는, 모든 영혼을 사랑하시어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이 들어있음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빌립집사가 당첨된 것이다. 그때 빌립집사도 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했었다. 그랬더니 직접 아프리카에 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를 바꿀만한 한 명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채 3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고, 기독교 국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나는 아니라고, 아니면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보내시려거든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할른지 모른다. 아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자를 보내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내가 바로 그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인 것을 또한 잊지 말라. 왜냐하면 사실 오늘날 우리만큼 구원관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는 자들이 또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믿음과 회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안다(막1:15). 그리고 행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구원을 향하여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약2:14,26).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도 추도예배나 장례예배와 같은 우상숭배를 하면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가운데 누가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아는 자인 우리들인 것이다.  참된 진리의 복음을 아는 자가 가서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인 것이다. 이제 당신에게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가? 그러면 일어나 복음을 전하러 가자. 그래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해주자. 우상숭배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 3대까지 저주를 안겨다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 것을 알려주도록 하자(출20:5, 계21:8).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는 것을 가서 알려주자(빌2:12). 건투를 빈다.

2016-06-12 주일낮예배1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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