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강해(11)] 아이 성 전투의 패배가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수7:1~13)_2025-08-24(주일)

by 갈렙 posted Aug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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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DaW3JzgzFDg
날짜 2025-08-24
본문말씀 여호수아 7:1~13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8-24(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여호수아 강해(11)] 아이 성 전투의 패배가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수7: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DaW3JzgzFDg

 

1. 들어가며

  큰 승리 뒤에는 종종 교만과 방심이라는 위험한 적이 도사리고 있다. 기적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의 감격에 취해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작은 아이 성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만심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인구 1만 2천에 불과한 작은 아이 성과의 첫 전투에서 36명의 전사자를 내며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군대가 전장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물같이 녹아내리게 했다. 불과 며칠 전, 하나님의 능력으로 견고한 여리고를 무너뜨렸던 그들의 믿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절망과 원망이 그 자리를 채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군대가 어찌하여 작은 성읍 앞에서 이토록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 있었는가? 아이 성의 패배는 단순한 군사적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깊이 파고든 죄의 바이러스가 그들의 영적 면역 체계를 무너뜨렸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였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가 어떻게 공동체 전체의 패배로 이어졌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아간과 그의 모든 자녀들, 그리고 소유물까지 진멸하시는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는 죄의 심각성과 그 파괴적인 영향력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개인의 죄가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며, 가정과 교회, 그리고 민족 공동체 전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 성의 패배라는 뼈아픈 교훈을 통해, 우리 안에 숨겨진 아간의 죄를 발견하고 온전히 제거함으로써,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다시 서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 이스라엘 민족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했던 일차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수 7:1-5)
  이스라엘 민족이 작은 아이 성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1차적으로 2가지 때문이다.

  첫째, 이는 이스라엘의 교만과 오판 때문이었다. 즉 앞전에 있었던 여리고 성과의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만했다. 왜냐하면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이 성은 아주 작은 성이었고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얕잡아 본 것이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정탐하도록 정탐꾼들을 보냈다. 그랬더니 정탐을 다녀온 그들은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수 7:3)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 성을 쉽게 정복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정예부대 3만명 가운데 1/10인 3천명만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셨는가? 이스라엘 백성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갈 여호수아인가? 그러나 인간적인 계산에 근거하여 여호수아는 오판을 하였다. 이전에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했다. 그것은 사실 비상식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순복했다. 하지만 이번에 여호수아의 그 백성은 이 전쟁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들의 뜻과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다. 그것이 기본적인 실수였다. 가나안 땅의 모든 전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동행함으로 이루어질 일인데, 그것을 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것이 패망을 가져왔다. 

  둘째,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쟁 앞선 여리고 성 전투와 다른 점은 이 전쟁에 관하여 하나님의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이 전쟁을 놓고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아니한 것이다. 그들이 아이 성을 치는 전쟁은 다 그들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뜻을 묻는 대신, 자신들의 경험과 판단을 의지하였고 그것을 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3천 명의 군사만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 성 백성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패퇴하였고 무려 36명이나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수 7:5).

수 7: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전쟁의 패배로 단순히 군사적 손실만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무적의 하나님의 군대가 아주 작은 가나안 족속에게 패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의 사기를 완전히 꺾여버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가나안 정복이라는 위대한 과업마저 포기하게 만들 만큼 충격적인 일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처럼 전쟁에서 교만과 오판 그리고 기도의 부재는 영적인 전쟁을 결코 승리로 이끌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교만과 방심 그리고 기도의 부재가 오히려 가장 무서운 적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전에 승리가 내게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장 작은 적 앞에서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3. 이스라엘 민족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했던 긍극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가?(수 7:1, 20-21)
  그러나 이스라엘이 패배한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군사 전략의 실패로 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 안에 숨겨진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떠나시고 말았다. 그리고 원수들을 이길 수 없게 하셨다.

  그렇다면, 여리고 성 전투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유다 지파 갈미의 아들 아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야 할 여리고 성의 전리품(헤렘)에 손을 대었던 일이 있었다(수 7:1). 

수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간 ‘한 사람’의 범죄를 일개인의 탈선으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들’ 전체의 범죄로 간주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죄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첫 열매에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를 어긴 것이 되었을 때에는 한 사람의 범죄로 끝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죄를 공동체의 죄로 여기셨는가? 그것은 여리고 성의 전투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헤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헤렘'이라는 것은 대적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의 전리품 중에서 하나라도 취하면 아니되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수 6:17~19). 그러면 진멸되어야할 것이 자신이 되어 오히려 자신이 진멸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헤렘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이 가나안 땅에서 벌이는 첫 번째 전쟁이었기에 이 전쟁을 헤렘전쟁으로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의 그 어떤 것이라고 손을 대서는 아니 되었다. 먼저, 생명있는 모든 것은 다 죽여야 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대는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과 가축을 다 죽였다. 단지 정탐꾼을 살려두었던 기생 라합과 그녀의 집에 모여 있는 사람은 예외였다. 그리고 불에 타는 모든 것은 다 불에 태워서 없애야 했다. 그러므로 곡식이며 가옥이며 할 것 없이 불에 타는 모든 것은 불살라졌다. 다만 불에 타지 않는 것들로서 금이나 은, 동이나 철, 기구들은 여호와의 곳간에 들여야 했다. 

  그런데 그만 아간이 범죄하여 노획물에 손을 댄 것이다. 그때 아간은 아무도 모르게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그리고 오십 세겔 무게의 금덩이를 보고 탐심을 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훔쳐 자기 장막 땅속에 몰래 숨겨 두었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제비를 뽑아 그 사람을 찾아내게 했다. 그런데 단 네 번의 제비뽑기를 통하여 아간이 뽑히게 되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했느냐고 말이다. 그때 아간은 대답했다.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범죄하여 불태워야 할 외투 한 벌과 여호와의 곳간에 들여야 할 것은 은과 금덩이를 훔쳤다고 말했다.  

수 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그렇다면 아간의 범죄는 무엇인가?(수 7:10~11) 그것의 첫째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다. 이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특별명령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저버린 행위였다. 둘째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건에 욕심을 낸 죄다. 십계명 중에 10번째 욕심을 품은 죄이다. 셋째는 그가 도둑질을 한 것이다. 십계명 중 8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다. 넷째는 거짓말로 사람을 속인 죄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는 그 죄를 감추어둔 죄이다. 그러므로 아간에게 있어서 죄는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되었다. 이는 ‘보고(see)’, ‘탐내어(covet)’, ‘가졌나이다(take)’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와(창 3:6)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다윗이 밧세바를 범할 때 나타난 범죄의 공식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눈으로 들어온 탐심이 마음에 죄를 잉태하게 되고, 결국 행동으로 나타남으로 최후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아간은 그때 자신의 작은 탐심이 자신의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게 될 줄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 전체를 패배와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처럼 죄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파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죄를 지를 당시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켜보고 계시고 그 이후에 반드시 그 죄값을 물으시기 때문이다. 

 

4. 아골 골짜기의 비극, 아간과 그의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일어날 일인가?(수 7:24-26)
  패배의 원인이 아간의 죄 때문임이 밝혀지자,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를 심판했다. 그러나 그 심판은 개인의 범죄에 대한 대가라 고 보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아간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과 딸들과 모든 가축, 그리고 재산까지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었고 불에 살라졌기 때문이다.

수 7:24-25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25 …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왜 하나님께서는 연대 책임을 그에게 물어 이토록 무서운 심판을 내리신 것일까?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보여준다. 특별히 가나안 정복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마치 신약의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될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즉시 심판하심으로써(행 5장)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셨던 것과 같은 원리가 여기에 적용된 것이다.

  죄는 사실 누룩과 같아서 아주 작은 양이라도 온 덩이에 퍼져 전체를 부패시킨다(고전 5:6).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죄악이 이스라엘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시는 극약 처방을 내리신 것이다. 이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은 사소한 죄라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기대를 저버린 것이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아간과 그의 자녀와 가축과 모든 물품들이 뭍힌 그곳을 '아골 골짜기'라고 불렀다. 여기서 ‘아골’이라는 말은 ‘괴로움’이라는 뜻으로, 이곳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영원히 장소가 되었다.

  

5. 마 치는 말
  아이 성의  패배와 아골 골짜기의 심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영적 경고를 준다. 첫째, 영적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이나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즉 ‘거룩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숨겨두고서는 결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나의 죄는 결코 나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숨겨놓은 죄가 가까운 미래에 내 가정과 자녀, 그리고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실감나게 해 준다. 그런데 반대로 한 사람 곧 아간의 범죄가 그의 가정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엄청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왔듯이, 나 한 사람의 거룩한 삶은 나의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축복의 통로로 만들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죄에 대해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내가 행한 것이 실수요 죄임을 발견했을 때에 빨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죄를 토설해야 한다. 그러면 나도 용서하고 내 자식들도 살릴 수가 있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거룩성을 지킬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범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곧바로 그 죄를 회개할 때 우리는 심판이 아니라 긍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회개만이 죄의 뿌리를 뽑아내어 다음의 미래를 아름답게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나의 장막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아간의 범죄는 없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의 외투, 은과 금은 내게 진정 없는가? 그것을 찾아내어 아골 골짜기로 가져가서 그것을 돌로 치고 불사르지 않는 한, 내 삶에는 계속해서 원인 모를 패배와 실패가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된다. 지금이라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악을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내려놓고 철저히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내 자녀를 지켜주실 것이고, 악한 영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러면 괴로움의 아골 골짜기에도 소망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호 2:15). 

호2: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2025년 08월 24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본 설교는 여리고 성 승리 후 겪은 아이 성의 패배를 통해 죄의 파괴적인 영향력과 공동체적 책임에 대한 영적 교훈을 탐구한다. 이스라엘의 패배 원인은 군사적 방심을 넘어, 아간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을 훔친 죄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 개인의 죄를 공동체 전체의 범죄로 간주하셨고, 그 결과 공동체는 전쟁에서 패했다. 아간과 그의 가족 전체를 심판하신 아골 골짜기 사건은, 공동체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단호함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숨겨진 죄가 가정과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경고하며,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만 영적 승리를 회복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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