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중요한 영역은 대체 무엇인가?(요3:1~15)_2016-09-18(설교영상)

by 갈렙 posted Sep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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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b1wLPMnswV8
날짜 2016-09-18
본문말씀 요한복음 3:1~15(신약 14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거듭남(중생), 물과 성령의 의미, 회개와 거듭남의 상관관계, 거듭남의 의미, 거듭남의 핵심요소, 회개와 믿음과 생명

1. 들어가며

  사람에게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이 세상에 짓는 대부분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하는 죄도 있다. 그런 죄에는 '자살죄'와 '성령훼방죄'가 있다. 자살죄는 자기가 자기를 살인한 죄인데 이런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훼방죄도 용서받을 수가 없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한다면 죄를 깨달을 수도 없고,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 중에 거듭남에 관련된 매우 중요한 요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이 거듭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느날 예수께서는 밤중에 찾아온 유대인의 관원 즉 산헤드린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요3:3).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다(요3:5). 정말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꼭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인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믿고 선하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거듭남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3. 유대인들이 말하는 구원의 조건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속의 아브라함의 혈통을 지닌 자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최고의 석학이었던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육으로 태어난 것으로는 안 되고,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구원관을 뒤집은 것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일 뿐 영이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3:6).


4. 거듭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거듭(다시)'이라는 말과 '(태어)난다'는 말의 합성어로서, 사람이 위로부터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은 육적인 출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거듭난다는 말속에서 우리는 영의 탄생은 육의 탄생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의 육체가 태어나는 것도 물과 성령으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사람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자궁이라는 물 속에서 자라서 다 크게 되면 양수를 터트리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는 인간의 육체는 사람이 키우는 것이 아니다. 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도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람의 영이 다시 태어나는 것도 물과 성령으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물'은 실제적인 마시는 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이 거듭태어나는 것이 물질적인 어떤 것으로부터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 거듭남의 도구인 '물'과 '성령'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거듭남의 도구인 물과 성령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물은 '물세례'요, 성령은 '성령세례'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물과 성령을 따로 구분해서 보는 해석이다. 또한 어떤 이는 물은 '말씀'을 뜻하며(엡5:26), 성령은 '생명'을 뜻한다고 말한다(고전15:45). 곧 사람이 말씀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는 것이 거듭남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어떤 이는 물과 성령은 같은 것이라고도 말한다. 과연 어떤 것이 바른 해석일까? 물과 성령은 과연 같은 말의 반복으로서 강조의 표현인가? 아니면 정말 전혀 다른 표현인 것인가?


6. 성경을 해석하는 3가지 원칙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단어를 해석하는 원칙부터 정리해보자. 성경의 단어를 해석하려면 대개 3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그 단어가 그 문맥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둘째, 다른 성경에서 이 단어가 어떤 용례로 쓰였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셋째, 그 단어가 상징 혹은 비유이든지 아니면 실체이든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문맥을 보자. "물과 성령으로부터"라는 문구는 본문의 문맥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을까? 그것은 8절에 보면 나와있는데, 예수께서는 그것을 "성령으로부터 태어남"이라고 말씀하셨다. 고로, "물과 성령으로부터"라는 문구는 곧 성령으로부터라는 문구의 확대요 강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슷한 용례가 또 있을까? 있다. 그것은 세례요한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설명하는 중에 나오는데,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서 마태복음기자는 그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이(마3:11)"로 묘사하고 있지만, 요한복음 기자는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요1:33)"로 묘사하고 있다. 곧 "성령과 불"에 대한 세례는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번째, 이 단어가 상징인가 실체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물과 성령' 혹은 '불과 성령'이라는 단어 중에서 '물'이나 '불'은 상징이며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성령'은 실제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부터 거듭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사람이 성령으로부터 거듭태어나기는 하는데, 그때에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의 핵심이 물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7. '물'의 의미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비유적 표현인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문맥에서 보면, 11절에 나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증언"이라는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의 '우리'라는 표현은 이미 천국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딱 둘 뿐이었다. 하나는 세례요한이었고(마3:2) 또 하나는 예수님 자신이었다(마4:17). 그러므로 여기서 '물'는 죄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인 것을 알 수 있다(막1:4). 곧 성령으로부터 거듭태어난다는 말은 회개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사람이 거듭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8. 성령의 3가지 역할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역할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그가 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이다(요16:8).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심으로 회개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요14:26), 예수님 자신을 증언하는 일을 하신다(요15:26).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께서는 이와같은 일을 행하는 자에게 어느날 갑자기 그 속에 들어오시어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 그리하여 물과 성령으로 온전히 거듭나게 하신다. 결국 사람이 거듭태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물과 같은 성령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데 그 방법이 곧 회개였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그분이 누군지를 믿는 자는 어느날 성령께서 그 사람의 영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9. 거듭남의 핵심요소

  그런데 어느 선교단체에서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믿기만 하면사람은 거듭태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사람은 거듭나지 않는다. 거듭남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거듭남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성령께서 사람의 죄를 책망하실 때에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거듭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결국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회개없이는 결코 거듭남이 없다는 것이며, 거듭남이 있어야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있고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10. 거듭남의 싯점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는 그 시점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고 하셨다(요3:8). 성령이 사람에게 거듭나게 하시는 시점은 바람이 불지만 어디서 불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잘 알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다만 그 바람 때문에 나뭇잎이 펄럭이는 것을 통해서 바람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훗날 사람도 그렇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거듭나지 않으면'고 하는 동사의 형태를 살펴보면, 가정법 과거 수동태구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거듭태어나는 것이 인간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설명한 후에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한 사람에게 즉시 "당신은 거듭 태어났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인 것이다. 거듭남의 결정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듭남의 최종적인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넋놓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게 들어와 당신의 생명을 분배하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하되 철저히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듭남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11. 나오며

  마지막으로, 회개를 통해 어느순간 자신에게 거듭남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구원이 계속해서 안전한가 하는 것을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래도 그 사람의 구원은 안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셨다고 치자. 만약 그 이후로 사람이 죄를 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는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그 사람의 죄를 책망하실 것이다(요16:8). 하지만 고의적으로로 성령의 책망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으려 하는 자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 자는 성령훼방죄에 걸리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영영 회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것에 대해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했다(요일5:21). 이는 성령의 회개케하는 사역을 계속해서 거부하거나,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한채 이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에게 해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을 얻기를 원하는 자나 이미 거듭난 자라도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실 때에는 항상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회개하지 못한 것 때문에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되었든 우리는 회개하는 일을 목숨걸고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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