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의 아름다운 퇴장(요3;22~36)_2016-09-25

by 갈렙 posted Sep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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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Mr_F3lYFvIc
날짜 2016-09-25
본문말씀 요한복음 3:22~36(신약 146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선구자, 세례요한의 사명, 준비하는 자요 소개하는 자요 넘겨주는 자, 아름다운 퇴장, 제자훈련의 병폐

1. 들어가며

  세례요한에게는 3가지의 사명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세례요한의 2가지 사명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세번째의 사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사명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서도 실수할 때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제자훈련과 G12나 D12에서 말하는 12명을 제자삼는 제자시스템이다. 대체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명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오늘날 제자훈련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는가?


2. 세례요한에게 먼저 주어진 2가지 사명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 두 곳 다 나온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같은 공관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의 첫번째 사명에 대해서 잘 기술되어 있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첫번째 사명은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해주는 선구자로서 일을 감당하는 것이었다(마3:1~12, 막1:1~8, 눅3:1~18). 이것은 이미 B.C.690년 이사야에 예언에 따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더불어 B.C.430년경 말라기의 예언에 따라, 메시야 앞서 보낸 전령이자 자녀와 마음을 아비에게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말3:1,4:5~6). 그런데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두번째 사명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즉 소개하는 일이다(요1:31). 그런데 이 두 번째 사명은 세례요한이 언제까지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지 그 기간까지 말해준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요1:31)"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어야 할 기간은 그가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할 때까지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이제 세례주는 일을 그쳐야했다. 이미 예수님을 천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소개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3. 세례요한에게 주어진 세번째 사명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때 세례요한에게 세번째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공관복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의  핵심은 요3:29~30이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증가되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감소되어야) 하리라(요3:29-30)". 여기에서 신부를 취하는 '신랑'은 '예수님'을 뜻하며, 신랑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하는 '친구'는 '세례요한'을 뜻한다. 그리고 '신부'는 회개와 믿음을 통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곧 '교회'를 지칭한다. 이 본문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명은 그분(그리스도)은 증가하게 하고 자신은 축소시키는 것이다.


4. 예수님은 흥해야하고, 세례요한 자신은 쇠해야 한다는 말의 참된 뜻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의 참된 뜻은 무엇일까? 이 말을 얼핏보면, 이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나타나셨으니 자신이 물로 세례주는 사역을 그만두고 그 사역을 예수님에게 넘기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말은 그러한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증가되어야 하고 자신은 감소되어야 한다는 말의 본 뜻은 29절에 그 힌트가 나와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해야 할 일이 신부를 취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분이 신부를 취하는 일은 증가되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세례를 주는 사역은 감소되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자신을 위대한 선지자 혹은 메시야로 생각하고 따라오고 있는 자신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에게 인수인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제자들도 결국에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세례요한의 사역은 점차 감소되어야 하겠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점차 증가되어야 한다고 했다.


5. 예수께서 흥해야하고 세례요한 자신은 쇠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

  그래도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자 세례요한의 증언을 듣고 세례요한으로부터 예수님께로 옮겨갔던 두 명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요한은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해설을 덧붙혔는데, 그것이 바로 요3:31~36의 말씀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이렇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오신 전능자로서 만물 위에서 통치하는 주권자이다. 그렇지만 세례요한은 땅(흙)에서 난 존재이기에 땅에 속한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영생을 줄 수 없다. 오직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은 메시야이신 예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자신을 위대한 선지자나 메시야쯤으로 알고 따라오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했어야 했다. "나는 결코 메시야가 아니다. 너희들이 비록 나를 따라온다 하더라도 너는 너희에게 영생을 줄 수 없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실천한 것 같지 않아보인다. 그 뒤로도 자신을 따라오는 제자들이 그가 죽기까지 그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내면에는 자기도 사람인 이상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는 것이 싫지는 않았을 테고, 자신의 가르침을 믿고 평생 제자로 살겠다는 이들을 예수님께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사도요한은 세례요한에 대해 한 마디 덧붙힌다.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요3:24)"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아직 그가 옥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세례주는 사역을 계속하고 있고, 제자들이 자기를 따르도록 놔두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만약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산다면 그는 차디찬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6.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실상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가? 교회의 지도자들의 경우를 보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게 되면 그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리고 그들을 예수님께 인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끝까지 붙들어두려고 한다. 즉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해야 함에도 자신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오늘날 성도들의 경우를 보자. 누군가를 통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소개받았으면, 그때부터는 예수님에게 자신을 내어드려 그분이 증가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욱이 자신의 못된 성질마저도 자신의 사역을 위해 사용하려는 자들까지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라. 만약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증가만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면, 그도 아마 감옥에 갇히게 될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


7.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명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믿음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시작할 때가 언제이며 끝낼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의 직임과 사역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만물의 주권자이자 통치자이시며 모든 자들에게는 영생을 주시는 전능하신 예수님을 붙잡도록 인도하며 자신은 점점 줄여가는 것이다. 좀더 적게 적용한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면 이제는 그분이 나에게서 나타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양보해드리고 그분이 나의 삶의 영역에서 증가되게 하는 것이다.


8. 나오며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역에 담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실로 이 세상의 어떤 사람치고 세례요한의 이 세번째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다 욕심이 있고 야망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죄된 본성이 자기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요3:36). 그분이 내 삶에서 증가되게 하고 나 자신은 감소되게 하는 것이 영생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영생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내 사역을 통해 나를 찾아온 자들이라도 어찌하든지 그들을 예수님에게 붙이고 예수님에게 인수인계해 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나도 살고 그들도 살게 하는 방법이요, 결국에 영생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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