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를 찾은 한 여인의 간절한 기대(요4:27~30,39~42)_2016-10-02

by 갈렙 posted Oct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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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bcMIVYWx9L0
날짜 2016-10-02
본문말씀 요한복음 4:27~42(신약 14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메시야를 찾는 사마리아 여인의 간절한 갈망, 창녀인가 기구한 운명의 여인인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전도의 방법

1. 들어가며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창녀인가 아니면 부도덕한 여인인가? 당시 예수께서는 유대인이 보통 이용하는 길로 가지 않았다. 충돌이 예상되는 길이었지만 일부러 그리 가신 것이다. 그 길은 사마리아를 관통하는 길이었다. 대체 예수께서는 불필요한 마찰이 예상되는 그 길을 왜 굳이 가시려고 했던 것일까? 오늘은 그동안 잘못 알려진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과연 누가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되며 그리고 누가 전도자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은 창녀 내지는 부도덕한 여인이었을까?

  우리에게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창녀 내지는 부도덕한 여인으로 알려져 왔다. 왜냐하면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녀가 한낮에 물을 뜨러 왔다는 것이며(6절), 또 하나는 그녀가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현재 살고 있는 사람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18절).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적어도 그녀는 창녀는 아니었다. 왜 그런가? 요4장에는 그녀가 창녀가 아니라는 이유가 무려 4가지나 나온다.

  첫째, 그녀는 한낮에 물을 뜨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6절). 그녀는 여섯 시에 물을 뜨러 왔는데, 그 시간은 정작 오후6시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공관복음서의 시간기록법과 요한복음의 시간기록법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공관복음서의 시간기록법이 유대시간법을 따른 것이라면, 요한복음은 로마시간법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공관복음서는 유대인인 그리스도인을 염두해 두고 쓴 것이기에, 유대인시간계산법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시간은 거기에서 6시간을 더하든지 빼든지 해야 한다. 한편 더할 것인지 뺄 것인지는 문맥의 정황을 보면 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방인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과 그리고 구원받아야 할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쓴 복음서이기 때문에 당시의 로마시간법을 따르고 있다(요19:14). 그러므로 이 여인이 물을 뜨러 온 여섯시(6절)는 오전6시이든지 오후6시이든지가 된다. 그런데 이 시간이 오후6시인 것은 첫째,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지쳐서 우물가에 앉아 있을 때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요(6절), 당시에 이 여인의 전도를 받고 나온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성에 유하시기를 청했기 때문이며(40절), 무엇보다 저녁때쯤은 당시 고대근동의 여자들이 물을 뜨러 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창24:11). 그러므로 이 여인이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한낮에 물을 뜨러 왔었기에 창녀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그녀는 남편이 다섯을 가진 정상적인 여인이었기 때문이다(17~18절). 창녀는 정식으로 결혼한 남편을 둔 여인을 일컫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어찐 연고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여인은 정식으로 다섯 번씩이나 결혼했던 여인이었다. 창녀와 함께 결혼하지 않고 사는 남자를 결코 남편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어떻게 되어서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2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남편과 사별한 경우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남편으로부터 수치되는 일이 발견되어 이혼을 당한 경우다(신24:1). 아니 둘 다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여인이 남편을 다섯이나 맞이하게 된 것은 결코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많은 말들이 그녀에게 쏟아졌을 것이다. "저 여자는 남자를 죽이는 역마살이 끼어 있는 여자인가봐!", "저 여자에게는 저주의 피가 흐르고 있어!" 등등 말이죠. 그러므로 이 여인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이지 결코 창녀는 아닌 것이다.

  셋째, 그녀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가 그녀가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녀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의 중심주제는 '영생'을 얻는 방법이었고(13~14절), 예배의 장소와 방법에 관한 것이었으며(20~24절), 오실 메시야에 관한 것이었다(25절).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건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넷째, 그녀가 전한 간증을 듣고는 온 동네사람들이 다 예수께서 나아왔기 때문이다(20절,39~42절). 그것도 1.6km나 떨어진 곳에서 동네사람들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메시야를 만나보기 위해 걸어나왔다. 그것은 그녀가 적어도 창녀는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이 여자는 경건한 여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이 많은 여인이었던 것이다.


3. 이 여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경건한 여인이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얼마나 영적인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지를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살펴 보자. 첫째, 그녀는 처음에 예수님을 상식과 관습도 모르는 유대인으로 생각했다(9절).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여인과 상종하려 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녀는 생수에 관한 대화를 하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주실 수 있는 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보다 생각했다(10절, 13~15절). 셋째, 그녀는 예수님을 자신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선지자라고 생각했다(16~19절). 그녀가 남편이 다섯 있었는지를 바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째, 이 여인은 예수님을 참된 예배의 장소와 방법에 대한 능통한 율법선생님으로 생각했다(20~22절). 왜냐하면 그녀에게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의 그리심산 성전과 예루살렘의 시온산 성전 중에 어떤 것이 진짜 성전인지를 분명하게 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방법까지 일러주었기 대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여인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부러진 인생을 펴 줄 수 있는 그분 곧 메시야요 하나님으로 생각했다(25~26절).


4. 예수께서 그녀에게 알려준 자신의 신분은 무엇이었나?

  특별히 예수님은 그녀와 마지막 나눈 대화에서 당신이 누군지를 분명히 그녀에게 알려주셨다. 당신이 그녀와 가졌던 대화의 주제의 모든 것을 다 아는 메시야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4:26). 사실 모세오경을 경전으로 믿고 있는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신18:15에 나오는 장차 모세와 같은 자로서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그리고 26절에서 "네가 말하는 내가 그라(나는~다)"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인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나는~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이야말로 출3:14에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 자신인 것을 말해 준다. 결국 그녀가 그렇게 만나기를 사모했던 사람은 그녀의 모든 과거를 다 알고 있을 메시야였다. 그녀는 자신의 구부러진 인생이 그녀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동네사람들의 시각을 바꾸어줄 메시야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줄 전능한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러자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둔 채 동네로 뛰어들어갔고 동네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내가 행해왔던 모든 일들을 내게 말했던 사람을 와서 보십시오.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겠소?(요4:29)"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그녀로부터 평소 때 그녀의 억울한 하소연을 들었던 동네사람들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예수님께 나오되 계속해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30절, 헬라어원문참조).


5.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시려고 애쓰신 이유

  왜 예수께서는 다른 길들을 놔두고 굳이 유대인의 관습을 어기면서까지 사마리아로 통행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것은 오직 한 사람, 한 여인의 간절한 절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간절히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던 그 여인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야가 오셔야만 자신의 구겨진 운명 곧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던 자신의 인생이 자신만의 잘못이 아닌 것을 밝혀줄 수 있기에 그녀는 정말 간절히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다. 구약에서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간절한 호소 때문에 주님은 발걸음은 사마리아를 향해야 했던 것이다.


6. 나오며

  전도란 무엇인가?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찾아내어 메시야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후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메시야이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뵙게 되었으며, 자신의 구겨진 인생을 펼 수 있게 되었다. 동네사람들도 이제는 그녀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식구처럼 맞이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로 인하여 동네사람들까지 메시야를 만나게 하였고, 그들도 메시야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기에 이르게 되었다. 전도란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찾아내어 그에게 메시야를 만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도 같이 메시야를 만나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런 사람이 지금도 당신의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 가보라. 어서 가서 찾아보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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