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진정 바라시는 회개의 또 다른 방면(계2:5,3:19)_2016-11-06

by 갈렙 posted Nov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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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D8x1XaSdB1o
날짜 2016-11-06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2:5, 3:19(신약 400, 403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회개, 소극적인 회개, 적극적인 회개, 통회자복, 회개의 두 방면, 에베소교회, 라오디게아교회

오늘날 성도들은 어떻게 회개하고 있는가? 그리고 회개란 대체 어떤 것이며, 그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회개와 구원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이 잃어버린 회개의 다른 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인가?


1. 들어가며

  십계명에는 아홉번째 계명이 있다. 그것은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그런데 이 계명은 단순히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거짓증언은 그냥 말이 아니라 법적 책임이 들어 있는 증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단순히 거짓말하지 말라는 의미보다 한층 더 무거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곧 자신이 말한 것이 위증이라고 판단된다면, 자신이 말한 그대로 그 벌을 받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신19:18~19). 그러므로 성도들은 함부로 거짓증거 곧 위증을 하지 말아야 한다.


2. 회개와 구원의 상관관계

  그런데 거짓증언 곧 위증이 혹 사람들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 벌을 자신이 받음으로 끝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어서 잘못하면 지옥형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가 흔히들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죄사함을 받게 된다거나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서 구원을 얻게 되는가? 그것은 이렇게 말해서 위증이 되지 아니한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이 지었던 죄들을 용서받게 되며, 진실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죄된 본성에 따라 죄를 짓기에 지은 죄들을 계속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 마지막으로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회개해야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요일1:8~9).

  이처럼 회개는 구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니 회개는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마4:17).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회개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단지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요, 회개할 때에 비로소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이다.


3. 회개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우선 회개의 기본적인 개념을 살펴보자. 회개란 자신이 지은 죄를 통회하고 자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죄인인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회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처리하는 방법으로서 소극적인 회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것 말고도 회개의 다른 방면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처음으로 나온다.


4. 회개의 두 가지 방면 - 소극적인 회개와 적극적인 회개

  이처럼 회개에는 소극적인 회개가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회개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적극적인 회개는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처음으로 가르쳐준 회개의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인정하고 끝내는 회개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진정 나에게 바라시는 것을 행하는 회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나에게 진정 바라시고 소망하는 것을 내가 살아드리는 것이 적극적인 회개인 것이다.

  어느날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요한에게 소아시아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일곱교회에서 편지를 써보내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예수께서 소극적인 회개와 적극적인 회개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예수께서는 소아시아의 2개의 교회 곧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에게 소극적인 회개를 주문하셨다. 하지만 다른 3개의 교회 곧 에베소교회와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는 적극적인 회개를 주문하셨다.


5. 소극적인 회개의 예

  먼저, 버가모교회와 두아디라교회에게 주문하신 소극적인 회개부터 살펴보자. 먼저 예수께서는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에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회개할 것을 주문하셨다. 그것은 지도자가 성도들에게 우상숭배를 하도록 유도하고 음행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니골라당의 가르침과도 유사한 것으로서 오늘날 칼빈주의자들의 잘못된 구원론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었으면 그는 죄로부터 벗어나서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우상을 숭배해도 자신의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음행을 한다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상숭배를 저지르며 간음죄를 저질러 지옥가는 죄가 되기에 주님께서는 그러한 죄를 반드시 회개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두라디아교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름만 다른 것일 뿐 동일한 것으로서 소극적인 회개를 주문하신 것이다.


6. 적극적인 회개의 예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와 사데교회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문하신 적극적인 회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에는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주문하셨다(계2:5). 그리고 사데교회는 그들이 이미 받았었고 들었던 것을 기억하여 그것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리고 깨어있으라고 주문하셨다(계3:3). 이어 라오디게아교회에는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 차든지 더웁든지 열심을 내라고 주문하셨다(계3:19). 그런데 이것이 바로 그들에게 필요한 회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지은 죄들을 처리하는 회개가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님이 바라시는 것을 실천하는 회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를 우리는 적극적인 회개라고 말하는 것이다.


7. 나는 지금 적극적인 회개의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다. 자신이 지은 잘못을 통회하고 자백하는 것은 소극적인 회개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삶을 살아드리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것은 뜨거웠던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내가 주님의 말씀에 충성하지 못했음을 알고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기도하는 것도 회개이며, 봉사하는 것도 회개이며, 주일성수하는 것도 회개이며, 주님 앞에 헌물을 바치는 것도 회개인 것이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님이 바라시는 것을 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8. 나오며

  당신은 진정 주님이 바라시는 적극적인 회개를 하고 있는가? 우리들 중에는 뜨거웠던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할 사람도 있고, 주님 말씀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순종해야 할 사람도 있고, 영적인 일에 보다 더 열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말씀을 듣는 일에도 열심을 내야 하거나 중보기도에 뛰어들거나 전도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야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회개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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