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선 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눅23:39~43)_2016-11-27

by 갈렙 posted Nov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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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7Ssq-B4q1aQ
날짜 2016-11-27
본문말씀 누가복음 23:39~43(신약 13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한 편 강도의 죽음 앞에서의 회개, 행악자이자 강도인 열혈당원, 주요관심사, 회개와 예수님과 천국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저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중에서도 우리가 가져야할 중요관심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특히 사람이 죽음 앞에서 설 때에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그것을 줄이고 줄이면 3가지다. 오늘은 죽음 앞에 선 자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도록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가져야 할 중요관심사 세 가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죽음 앞에 선 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름답게 인생을 마감하는 일인가?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일인가? 아니면 죽음 후에 자신을 위해 처리해야 할 뒷 일인가? 사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일까? 취미생활인가 아니면 은퇴후 노후보장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인가? 아니면 학생이나 청년들처럼 공부 잘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자가 되는 것인가? 그리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뭔가 한가지 일을 하는 것인가?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무슨 일에 종사하든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인생의 최대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두 강도가 나눈 대화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사로서 살다간 사람들도 더러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극우정당단체인 열심당(열혈당)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가입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쟁취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이 성경에 나온다. 그들 중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에 좌우에 매달린 두 명의 강도도 있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직전에 둘 사이에 나눈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문장의 주인공이 예수님에게서 두 명의 강도로 바뀌게 때문이다(눅23:39~43). 그런데 같은 일에 종사하다가 죽음을 눈앞에 둔 두 사람의 대화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 과연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그리고 그 대화의 핵심주제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3. 두 강도의 신분과 직업

  먼저, 이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 사람은 행악자였다(눅23:39). 악을 행하되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의하면 이 두 사람은 강도였다(마27:38, 막15:27). 그런데 단순 강도가 아닌 것 같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강도에 대해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이 두 강도는 헬라어로 '레스테스'라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로마통치에 대항하여 싸우는 열심당원(열혈당원, 젤롯인)으로서, 이들은 예수님 을 대신하여 풀려났던 바라바와 같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마에 대항하여 방화와 약탈과 살인을 일삼던 자들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붙잡혀 지금 사형장에 와 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때 누구나 다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지는 않는다. 십자가형이 아주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형벌인지라 십자가형은 본보기로 죽일 때에만 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로마에 대항하면 이렇게 죽이겠다고 본보기로 보여주는 사형방법이 바로 십자가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본다면, 이 두 명의 행악자는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하다가 붙잡힌 자들로서 아마도 약탈과 방화와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4. 같은 직업을 가졌던 두 강도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말하다.

  이제 두번째로 살펴볼 것은 이 두 명의 강도가 처형장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표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자신과 예수님 그리고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예수님을 조롱했던 한 편 강도(왼편강도라고 치자)부터 살펴보자. 그는 자신의 죽음이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단지 자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했을 뿐인데, 십자가형을 당하는 것은 매우 억울한 죽음이라는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 행하신 사람의 구원방식에 대해서는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진정 메시야라면 자기를 구원해보라고 조롱했다. 그리고 죄수들인 자기들도 구원해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을 결코 메시야로 믿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행하던 방식으로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로마로부터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의 강도(오른편의 강도라고 치자)는 정반대였다. 그는 자기자신의 죽음은 자기가 지은 죄에 따른 당연한 처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했던 자라도, 방화를 하고 약탈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였다면 그것은 엄연한 재산손괴와 인명살상의 죄에 해당하니, 제8계명(도둑질하지 말라)과 6계명(살인하지 말라)을 어긴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두 강도는 분명 유대인이었다. 그러니 이 둘은 율법과 십계명에 대해 잘 아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오른편 강도는 자신이 약탈을 저지르고 살인을 저지른 것은 범법행위라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받는 십자가형의 처벌은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그 다음이 더욱 중요하다. 왼편 강도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지만 오른편 강도는 달랐다. 자기는 지은 죄에 대한 형벌로서 사형당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지만, 예수님은 사형당할 아무런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단정하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독립투쟁을 하면서도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쭉 지켜보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행하시는 구원방식이 자기들이 행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죽음은 매우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또한 그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진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예수께서 전파하신 말씀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 어떠한 죄인이라도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회개하기만 하면 하늘에 준비된 왕국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순간에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믿음을 겸손히 고백했다. 예수님에게 자신의 영혼을 부탁한 것이다. "예수님, 당신의 왕국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좀 기억해주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도 진리라고 믿고 있었으며, 천국이 있음을 믿고 있었기에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그날 오후에 오른편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5. 오른편 강도는 어떻게 되어서 죽음의 현장에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을까?

  셋째, 그렇다면 오른편 강도는 어떻게 이러한 진리들을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의 중요관심사가 바로 죄문제의 해결과 예수님과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비록 열혈당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항상 지은 죄를 어떻게 용서받는지, 예수님이라는 분이 대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이 말한 천국이 대체 어떤 곳인지이었다. 그렇다. 그가 비록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는 틈나는 대로 예수님이 누군지, 무엇을 전파하는 분인지를 살펴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단체가 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민족과 백성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오른편 강도는 어떻게 투쟁해 왔는가? 자기들은 살인과 약탈과 방화 등을 통해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자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하셨다. 더욱이 자기들은 분노와 파괴를 통해 자기 민족을 구원하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사랑과 용서로서 사람을 구원하려 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씨름하는 밤이 많았다. 하지만 예수님을 쭉 지켜본 결과 자신의 일평생 과제였던 나라의 독립투쟁에 있어서 자기의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눈을 감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바르게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을 소망한다는 것을 표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갖고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요관심사가 죄문제의 해결과 예수님과 천국이 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왼편의 강도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기에 메시야요 구원자이신 분을 옆에 두고도 구원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6. 나오며

  성도들이여, 우리는 알아야 한다. 모든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붙들게 되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어떤 직업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인생의 최대의 관심사가 죄용서와 예수님과 천국이어야 한다. 그래야 죽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당신도 이런 은혜를 입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자신이 지은 죄를 토설하고 자신이 죄인됨을 시인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그 메시야이시며, 나의 구원자임을 고백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있을 때에, 내 육체만을 위해 일하지 말고, 다음 세상에 들어갈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시간을 투자하기를 바란다. 건투를 빈다.

2016-11-27 주일낮예배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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