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하는 이유(호6:1~3)_2017-01-15(설교영상)

by 갈렙 posted Jan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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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4icKhOhac2A
날짜 2017-01-15
본문말씀 호세아 6:1~3(신약 1261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북이스라엘의 신앙관, 혼합주의의 위험성, 미신적인 신앙, 여로보암2세, 호세아선지자

신앙생활을 해보지만 왜 자신의 인생은 잘 풀려지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의 신앙이 견고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에게도 북이스라엘민족의 신앙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호세아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을 알되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외쳤다. 우리도 무엇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이것을 바로 잡지 않는 한 우리의 신앙도 그대로이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북이스라엘민족이 가진 잘못된 신앙관, 오늘은 그것이 내게 있는지 살펴보록 하자.


1. 들어가며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자기딴에는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은 풀리지 않고 내 인생은 이리 고달프며,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만큼은 이리도 가혹하게 대하시는가하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신앙이 잘못된 신앙인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오늘도 자기의 기도가 부족한 것을 탓하고, 자기가 예물을 적게 드린 것이 문제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아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은 내가 생각해 낸 신앙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의 생각의 잣대로 세워놓은 기준에 맞는 신앙은 아닌 것이다. 그 신앙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신앙이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신앙이라는 것이 내 기준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필히 혼합주의적인 신앙형태 내지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흐르고 말 것이다. 지금 나의 신앙은 과연 어떠한가? 순수한 신앙인가 아니면 미신적인 신앙인가?


2. 하나님의 강력한 권고

  북이스라엘의 후반기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어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권고하셨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신앙이 뭣인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신앙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열심을 낸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요구하시늕 신앙을 가져야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시 북이스라엘 사람 중에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신 것이다.


3.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는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얼핏 표면적으로는 북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주변의 환경적인 요소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내면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우상이나 이방신을 더 섬기려는 마음이 그들에게 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상이나 이방신을 섬기기가 훨씬 쉬웠고 그리고 그것이 매력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북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알되 힘써야 알아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던 것이다.


4.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하나님을 알라는 뜻의 의미는?

  이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곧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알라는 뜻은 대체 무엇일까? "알다"는 뜻의 히브리어는 "야다"라는 동사다. 야다라는 동사는 알기는 알되 인격적으로 알고 소상하고 친밀하게 아는 것을 가리킨다. 즉 북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석 자 정도를 아는 것이 아니다. 혹여 여호와께서는 신이다는 정도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정도도 아니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만 들어도 그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릴 정도의 앎을 가리킨다. 당신도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5. 힘써서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면 안 되는 이유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백성이 왜 힘써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과 실제의 여호와 하나님은 달랐기 때문이다. 실상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신앙은 혼합주의적 혹은 미신적인 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랬다. 그들에게 주어진 순수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린 채 이방신이나 우상도 하나님으로 섬기는 이상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도 하나님처럼 섬기는 미신적인 신앙, 혼합주의적인 신앙을 갖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참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환경적인 요소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먼저는 10개 지파가 살고 있는 북이스라엘에는 남유다와 같은 참된 성전도 없었고 참된 제사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율법말씀도 없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B.C.931년경 북이스라엘의 제1대 여로보암 왕의 잘못된 신앙정책 때문이었다. 통일왕국의 3번째왕이었던 솔로몬의 통치를 이어받은 르호보암왕의 등극 초기때의 일이다. 북쪽지파의 대표자인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왕께 찾아가 물어보았다. 솔로몬왕은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고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르호보암왕은 솔로몬왕 때보다 더 강력한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여로보암과 10개의 지파가 등을 돌렸고, 그래서 북쪽에 10개 지파로 구성된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였다. 북쪽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왜냐하면 북쪽에는 남유다처럼 성전도 없었고 제사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로보암왕은 북쪽지역의 두 장소인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송아지형상을 만들어놓은 뒤, 그 형상을 애굽땅에서 자기들을 이끌어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말았다.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을 섞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레위계통의 제사장이 없으니 일반 평민중에서 제사장을 세웠다. 그리고 혹시 북쪽사람들이 절기를 지키러 남쪽 예루살렘에 갈까봐 7월 15일이 아닌 8월 15일이 절기로 바꾸어 그 날을 지키라고 가르쳤다. 결국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단에 가서 거기에 세워져 있는 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거짓 제사장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웠으니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송아지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고, 그러한 신앙관은 자기동네의 동산이나 높은 산 위에도 신상을 만들어놓고 섬기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여로보암2세 때의 일이다. 놀랍게도 이 시기는 북왕국이 창건된 이래 가장 큰 경제적 부흥과 정치적인 성장을 이룬 시기가 되었다. 그것은 사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대외적인 요소가 작용한 것이었지만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다시 말해, 자기들이 산당이나 동산에 세워두고 섬긴 신들이 자기들에게 복을 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신들을 섬기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에는 포도나무의 수많은 열매처럼 수많은 제단들을 만들어 섬겼고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호10:1~2). 그러면서 우상들을 여호와라고 섬기는 자들도 있었고, 우상들인데도 그것을 여호와와 동급의 신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결국 절대주권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여호와하나님도 다른 신들과 동급의 신으로 전락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이방인들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신은 그들에게 더욱더 매력적이었으니 이 신들은 음행을 권장하는 신이었기에, 포도주에 취한 채 한 번 음행에 맛을 본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급격히 이방신들에게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산당의 푸른나무 아래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음행을 저지르는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하게 되었다(호4:13).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두고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자 B.C.722년경 이제 심판의 시기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눈치챈 호세아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강력히 외치게 되었다. 이제 곧 있으면 절대주권자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이방신을 숭배하고 음행을 저지른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2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혼합주의적인 신앙을 버리고 절대주권자인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과(호6:1~2) 둘째는, 이제부터라도 힘써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호6:3).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몰라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기만 하면 과거의 잘못은 다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힘써 알려고 하면 그분은 그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줄 것이고 풍성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했다.


6. 힘써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의 결과

  하지만 그후에 북이스라엘은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 놀라지 말라.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이 누군지 아는 것을 거부하고 말았다. 그냥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것이 좋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결국 그뒤로 몇 십 년이 지나기도 전에 개선의 여지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게 된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패망하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 두 번 다시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 영원히 안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기 생각과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멸망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제사를 잘 드리고 번제를 잘 드리는 자를 복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여전히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그분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시건만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호4:6). 그렇다. 우리도 무턱대고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게 섬기다보면 끝내는 북이스라엘 꼴이 날 것이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록된 성경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길 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분을 섬겨야 한다. 예를 들어, 그분은 우리에게 무조건 헌금을 요구하시기보다는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신다. 인간은 어리석기에 그리고 사탄의 미혹에 늘 넘어지기에,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 용서해주시는 그러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내 가정과 내 육신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만 하지말고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파악하고 빨리 회개부터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순서요 하나님의 마음이다.


7. 나오며

  오늘날 우리들도 자칫 잘못하면 북이스라엘처럼 미신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혼합주의적인 가짜신앙을 하고 있는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미신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10년 20년 아니 50년을 신앙생활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모른채, 빗나간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미신적으로 믿어서 아니 된다. 자기 방식대로 믿어서도 더욱 아니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있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면 성경을 보라. 성경을 그대로 가르쳐주는 목회자를 만나라. 그래야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른 신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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