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성령강림으로 생겨난 초대교회는 산헤드린공회의 무소불휘의 권력에 의해 제자들의 생명까지 위협받았으나 어떻게 해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우리들도 초대교회와 같이 담대하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무엇이 필요할까? 그 해답은 사도행전에 있다. 사도행전 3~5장을 읽어가다보면, 거기에 2가지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들어가며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영적 유기체이므로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되 질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양적인 성장도 같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것은 그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여 영혼을 추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교회는 내적으로 바른 신앙관을 확립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을 산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날마다 복음을 증거하여 믿는 자들을 산출해 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여 믿는 자들을 얻을 수가 있을까?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가 복음전파를 통해 수많은 성도들을 얻어 양적인 성장을 이룩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산헤드린공회로부터 생명을 위협받았던 초대교회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먼저, 초대교회는 산헤드린공회로부터 온갖 위협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해서 부흥성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초대교회는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탄생된 예루살렘 교회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교회는 당시 무소불휘의 권력을 가진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강한 위협을 받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면 산헤드린은 그들을 감옥에 쳐넣을 것이고 죽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나가서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를 담대히 전했고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렇다. 초대교회가 부흥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자기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담대하게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3. 초대교회가 담대한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었던 3가지 이유
그렇다면 대체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디로부터 이런 담력이 생긴 것일까? 그들은 대체 무슨 백이 있어서 산헤드린공회 앞에 가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하였으며, 그들에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주장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제자들 중에서는 산헤드린공회의 상층부에 어떤 사람을 알고 있어서,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무죄언도를 받을 수 있는 어떤 루트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놓는다해고 어떻게든지 감옥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특별한 기술들을 다 소유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다. 둘 다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감옥에 갇히게 되거나 심지어 죽는 데에 넘겨진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은 어떤 믿음들이 있었던 것이다. 대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도 그들을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인가임에 분명하다. 사람의 권력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것을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3장부터 5장까지 읽어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이유가 나온다. 그것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았다는 것이다(행2:36).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 자기를 대신하여 보내주시는 성령을 받았고 성령의 선물 곧 방언까지 받았다는 것이다(행2:4). 즉 그들은 예수께서 이제는 성령으로 자기 안에 계시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든 잡혀간다도 그시에 말씀해주시는 성령이 있었기에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들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초자연적인 기적과 표적을 행할 수 있는 전능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할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서 사도들이 산헤드린공회에 붙들려 심문을 받을 때에는 그 옆에서는 성전미문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증인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러니 뭐가 두렵겠는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으로 자기들과 함께 있었으며, 예수님 대신 오신 성령을 받았고 동시에 선물까지 받았으니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더욱이 자기들도 공생애 기간의 예수님처럼 나사렛예수의 이름을 사용했더니, 진짜 병든 자가 벌떡 일어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 귀신들을 내어쫓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오늘날 우리들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특별히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자신을 무장하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들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그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들도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것이고, 표적과 기사까지 얻어 그것으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나만의 간증을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나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다(갈2:20). 다시 말해 내 인생의 주인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바꾸는 것이다(롬10:9, 고전12:3, 골2:6~7), 그래서 나만의 간증을 나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주인이자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였던가?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이었을 것이다. 내가 주인으로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마귀와 귀신이었으며, 내 안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작 나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사도바울도 이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 전까지, 우리의 아버지는 마귀였다고 말이다(요8:44). 그리고 죄된 본성이었다고 말이다(롬7:20). 그렇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사실은 사탄마귀였고 내 안의 죄된 본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뒤돌아서 생각해보라. 내 인생을 마귀와 죄된 본성에게 맡겼을 때, 우리가 맺었던 열매들은 대체 무엇이었나? 그것은 온통 아픔과 패배와 낙망과 좌절, 슬픔과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억압과 괴로움이었고, 죽음 앞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자신의 주인으로 모셔들임으로 그들의 삶이 달라지게 되었다(계3:20). 그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각종 억압요소들이 하나둘씩 다 그들에게서 떠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자기의 주인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바꾸자, 놀라운 변화를 나타나는 사례가 있다. 그것은 춘천 한마음교회의 경우다. 그 교회는 2001년부터 자기의 주인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바꾸는 것을 시작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정말 기적같은 간증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들이 오직 한 가지 자기 인생의 주인을 자기에게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그랬더니 그들이 각종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정신적인 장애나 컴플렉스에서 탈출하게 되었으며, 귀신의 억압과 눌림에서 자유케 되었고 간증하고 또 간증하고 있다. 이러한 간증의 사례들은 그 교회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언제부터 간증을 공개했을까? 그것은 지난 2013년 10월 24일부터다. 그때부터 지난주까지 약 3년 6개월동안 간증을 쏟아내고 있는데 지금은 무려 688차례나 되었다. 대체 그들은 어떻게 되어서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자신의 주인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주인을 나 자신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바꾸게 되면 내게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우선, 1차적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시게 된다(계3:20). 그리고 그분이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이 세상 끝날까지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마28:20). 세상 끝날까지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시며, 나를 지켜주시며, 나를 위험으로부터 건져주신다. 그리고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억압과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신다. 그래서 나에게 하늘에 속한 평강을 가져다주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부터 이제 나의 주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만의 간증을 얻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려면, 둘째로,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부활승천하신 후의 예수님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까지 예수믿는 사람들은 보통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같을 것이다. 그분이야말로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마16:16). 하지만 이러한 신앙고백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예수님은 이내 죽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원 위치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후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복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을 이제는 전능자,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원래 처음부터 전능자이셨고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사9:6). 우리 죄를 담당하시려고 잠깐 사람이 되신 것 뿐이다. 구약성경 사9:6을 보라. 그는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분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 이제는 우리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요 전능자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왔다 가셨다고 생각하지 말고, 전능자가 왔다 가셨다고 생각하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가 죽고 다시 하늘로 가셨다고 생각하라. 예를 들어보자. 세종대왕은 누군가? 그는 처음부터 세종대왕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원래 '이 도'라는 이름이었는데, 그가 왕족이었기에 그에게는 '충녕군'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하지만 그가 셋째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자로 책봉된 이후에는 그를 '장헌세자'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세종'이라고 불렸고, 그가 죽고 난 뒤에 후손들에 의해 그는 '세종대왕'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이 도'사라는 사람은 세종대왕이라로 불려지고 있다. 그를 오늘날에 와서 충녕군이나 장헌세자로 부르는 자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부른다. 이상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에, 그분이 죽고 부활하시기 전에 사용된 칭호에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 뿐이신 것이다. 아니다. 그분은 부활승천 후에 원래의 하나님 자리에 되돌아가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 전능자이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이상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만 고백하는 차원을 벗어나야 한다. 그분을 전능자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적으로 생각할 것은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서 자기 대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했으니(요14:18~19), 이제 우리들 속에 들어오시는 이를 '성령'이라고 말하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서 '전능자'라고 부르라. 그분은 이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오순절교단은 한 때 약 30년동안 한국교회의 부흥성장의 기수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오순절교단의 성도들 대부분은 천국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고 있다는 간증이 수도 없이 나온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기들 안에 모신 분을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성령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안에 계신 분을 성령님이라고 하다보니까, 어느새 귀신들이 성령님을 사칭하여 자신을 성령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도 보이지 않지만 귀신도 보이지 않으며, 성령도 은사와 능력을 주시만, 귀신들도 그런 것들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에 들어와서 오순절교단 성도들도 다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도 이렇게 말하라. "내 안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들어와 계신다"고.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능자로 믿고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으면, 우리의 신앙에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믿었더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먼저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들을 그들이 받았다는 사실이다. 다 방언으로 말하게 된 것이다(행2:4). 그리고 초자연적인 기적도 경험하게 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전능자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했더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벌떡 일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걸어다니게 되었다. 그렇다. 예수님을 우리가 전능자요 하나님으로 믿어보라. 그러면 우리에게서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적도 같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해보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라. 그러면 그들 중에 믿는 자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교회도 자동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5. 나오며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되어 무소불휘의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전파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자기만의 간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자기 안에 들어와 계심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안에 들어오시는 분을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분을 전능자로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령으로 자기들들 안에 들어오셨다고 믿은 것이다. 그렇다. 전능자가 이 세상에 오셨다 가셨다. 지금 믿는 자들 안에는 누가 계시는가? 성령이신가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가? 둘 다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분을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고백해보자. 그리고 또한 그분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만으로 보지 말고, 전능자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우리에게서도 그때부터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경험한 나만의 간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것으로 간증하면서 전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에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면 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교회는 예수님을 전능자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함고 회개함으로 양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