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2가지 명령(계2:8~11)_2017-06-11

by 갈렙 posted Jun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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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5J4nM68DU0
날짜 2017-06-11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2:8~11(신약 400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서머나교회,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충성하라,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 충성의 축복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참된 진리를 알고 있는 자들이 항상 주의해야 할 2가지 사실이 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 그것은 첫째,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둘째,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알고 있는 자는 왜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되는 것인가?그리고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인가? 오늘은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주시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에 대해 살펴보자.

 

1. 들어가며

  교회란 무엇인가? 사도바울에 의하면 교회는 부름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공동체 곧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생명공동체를 가리킨다(엡1:23,2:20~22, 고전12:27). 그런데 그 구성원을 살펴보면, 목회자와 성도들(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는 목회자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하고, 성도들(교인들)은 성도로서 그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직무란 무엇인가? 교단헌법에 의하면 총 4가지 일이다. 말씀을 선포하는 일, 성례전을 집행하는 일, 성도들을 축복하는 일, 잘못 행하는 자를 치리하는 일그의 직무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행동하면 목회자의 직무는 다 끝난 것일까? 아니다. 참다운 목회자의 직무는 뭐니뭐니해도 성도들을 천국에 보내는 데에 있다. 만약 어느 누가 목회자의 책무를 잘 감당했다 하더라도, 성도들을 지옥에 보내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 목회자는 목회자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떤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은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목회자의 직무와 평신도의 직무를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떻게 잘 감당하여 축복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2. 당시 서머나 도시와 서머나 교회는 어떠했는가?

  서머나교회, A.D.95년 당시 소아시아(오늘날 터키) 지역에 실제했던 교회 가운데 하나였다. 아마도 이 교회는 바울의 3차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복음을 들었던 이들이 서머나로 돌아가서 세웠던 교회로 보인다(행19:10). 그런데 그때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어느날, 주 예수께서 밧모섬에 있는 사도요한에게 나타나 서머나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2:8~11에 나오는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교회가 당시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그대로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2가지를 명령하셨다. 현재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앞두고 그들을 위해 2가지 처방책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것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과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서머나교회 상태는 우리 주님의 명령을 받아들일만 했을까?

 

3. 서머나교회가 처한 2가지 현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는 먼저 서머나교회가 어떤 상태가 있는지 진단해주셨다. 하나는 그 교회가 그때도 큰 환난 가운데 있었지만, 앞으로도 큰 고난이 또 기다리고 있어서, 그 교회 구성원 가운데 몇 사람 정도가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계2:9~10). 그리고 또 하나는 그 교회가 경제적으로 큰 궁핍에 처해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렇다면, 서머나 교회가 겪고 있는 환난이 무엇인지부터 먼저 살펴보자. 그때 서머나교회는 두 종류의 환난에 처해 있었다. 하나는 유대인들로부터 당하는 핍박이었고, 또 하나는 로마정부로부터 받는 핍박이었다. 우선, 서머나교회는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나 그들은 사탄의 회당(모임)이라고 강력하게 책망하셨다(계2:9).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서머나교회 성도들을 박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이처럼 박해한 것일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리스도인들이 유일신앙을 갖지 않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결코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정부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당시 로마정부는 자기가 통치하는 도시의 사람들에게서 황제숭배를 강요하고 있었는데, 유독이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년에 한 번은 모든 시민들이 다 가이사 제단에 나아가 분향을 해야 했다. 그러면 증명서를 써주었고, 그것이 있어야 이동이 자유로워 상업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오직 예수님만이 주인이며 예수님만이 신인 것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결국 서머나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과 로마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장차 로마정부로부터 받을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다. 서머나교회는 신앙적인 고난과 아울러 경제적인 고난과 동시에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서머나 성도들을 향해, 고난을 절대 두려워하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령하셨다.

 

4. 서머나교회를 위한 2가지 처방전과 그 의미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고난과 궁핍함의 원인을 제거해주시지도 않으면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충성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그들에게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고 또한 고난중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분이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계2:8에 의하면, 서머나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신 예수께서 과연 누구신지를 2가지로 말씀하셨다. 하나는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것이었다.

   먼저 첫째로,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실 이 말은 2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이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로 나타나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시간과 역사의 주권이 오직 당신의 손에 있으니 고난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내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진술은 하나님의 독특한 자기선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누군지를 선언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거기에는 "나는 여호와니라." "나는 구원자니라", "나는 그니라(스스로 있는 자니라)"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선언 가운데 가장 독특한 선언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는 선언이다(사41:4,44:6,48:12). 이 말씀은 사실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 외에는 결코 쓸 수 없는 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이사야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주권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를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러한 여호와의 자기선언을 그대로 사용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여호와를 사칭하는 새빨간 사깃꾼이든지, 아니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하나님이든지일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안식일에 회당에 모일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을 저주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사탄의 회당(모임)이라고 강력하게 책망하셨던 것이다. 그렇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다(요8:44). 하지만 예수님은 진리이시다(요14:6). 그분께서 서머나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바로 구약시대에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한 하나님으로서, 내가 바로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이 선언은 무엇을 뜻하는가? 서머나교회 성도들이 비록 현재는 유대인들과 로마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아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이 모든 주권이 예수님에게 있으니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분이 시작했으니 그분이 끝낼 것임을 믿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또한 둘째로, 그분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자.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에 쓰인 동사는 둘 다 과거동사다. 그런데 "죽었던"이라는 동사는 중간태디포 형태다. 이는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 사람들이나 마귀에 의해 죽임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죽음에 내준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를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시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스스로 사람이 되어오신 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한계시록2:8에서는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살아나신"의 동사는 능동태구문이 쓰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를 더욱더 놀라게 한다. 왜냐하면 능동태동사가 쓰였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살아나다"는 동사는 다 수동태로 쓰였다. 예수께서 아들로서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혹은 성령께서 그를 살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사는 "살리심을 받은"이든지, "일으키심을 받은"이든지다(롬4:25, 7:4, 8:34, 고전15:4,12). 그러나 단 하나 요한계시록2:8에서만큼은 능동태 구문으로 나온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사실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로 인하여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나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하심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하심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만이 사망권세를 이기고 스스로 부활하신 분으로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죽어도 결코 죽지 않게 하실 것이며, 죽어도 다시 사는 생명을 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서머나교회 성도들 가운데 몇 명이 감옥에 갇히거나 혹 죽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이나 죽음 앞에서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핍박을 받게 되는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그분의 주권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난을 끝내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 그분이 단칼에 끝내실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하신 이후 이미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시기에, 그분 안에 있으면 죽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에베소에 왔다가 사도요한의 제자가 되었던 폴리갑이라는 청년도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나중 서머나교회의 감독이 되었는데, 오직 예수님이 주님이요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 때문에 로마정부에 붙잡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부인하도록 종용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분을 86년간 섬겨왔지만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소. 지금 내가 그분을 나의 주인이요 나의 왕이요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 때문에 잠시 내게 고통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결코 그분을 부인할 수가 없소." 그리고 담대히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기도하면서 밝은 미소로 숨을 거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서머나교회에게 한 가지를 더 주문하셨다. 그것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이다. 사실 충성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엄청난 고난과 핍박 속에서 서머나교회 성도들은 그 맡겨진 일에 충성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충성할 것을 주문하신 것이다. 아마도 서머나교회가 환난과 궁핍함에 있었는데, 그것을 이기는 방법으로서 두려워하지 말 것과 충성을 부탁하셨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궁핍함을 해결하는 자를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충성된 자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즉 교회를 위해 충성된 자는 하나님께서는 채워주신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충성된 일꾼은 넘치는 물질적인 복을 받게 된다.

 

5. 주님께서 목회자와 성도들(교인들)에게 주신 2가지 명령

  한편 여기에서 주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목회자에게 주신 명령과 성도들(교인들)에게 주신 명령으로 나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진리를 믿고 선포하는 자는 대부분 목회자에 해당되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선포하고 죽임당하는 사람으로서 목회자는 결코 불의와 타협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지금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진리의 말씀을 타협해서 전하다보면 타락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들(교인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에 충성하기를 바란다. 충성하는 자는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다 축복을 받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모든 일에 충성하라. 그러면 궁핍함이 당신의 인생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6. 나오며

  결국 우리가 믿음의 지조를 지켜서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맡은 일에 충성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복을 누리게 될까? 그것으로는 3가지 복이 있다. 첫째는, 생명의 승리관을 쓰게 되는 일이다. 둘째, 죽은 후에 둘째사망 곧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셋째, 부수적으로 충성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을 얻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여,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고난받는 것과 죽는 것도 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알라.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맡은 일에 충성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영육간에 복이 임하게 될 것이니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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