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풍랑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마8:23~27)-2017-08-06(설교영상)

by 갈렙 posted Aug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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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WWDoKZ3jZhM
날짜 2017-08-06
본문말씀 마태복음 8:23~27(신약 1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작은 믿음 책망, 바람과 풍랑, 제자들의 반응, 자연만물명령능력, 천사명령권, 기도의 가치성

제자들이 거센 풍랑을 만나 우왕좌왕하며 두려워하자,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다. 예수께서 주무실 때에 그러한 일이 발생했으니, "이제는 안심하라"고 말씀해야 하지 더 옳지 않을까?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후에 "이제 보았느냐?"라고 말씀하면서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신 것이 더 옳지 않을까?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제자들의 작은 믿음을 책망하셨다. 그렇다면 당시 제자들에게 어떤 믿음이 부족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예수께서 풍랑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진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1. 해마다 무서운 태풍은 왜 발생하는가?

  해마다 여름철이면 동남아시아에 찾아오는 손님이 하나 있다. 그것은 '태풍'이다. 태풍은 한 번 지나가면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와 인명피해를 안겨다준다. 그러므로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태풍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태풍이 영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태풍은 수자원의 주요공급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부족현상을 원천적으로 해결해준다. 뿐만 아니라, 저위도 지방의 축적된 에너지를 고위도지방으로 운반하여 지구의 남북의 온도를 맞춰주는 역할을 하며, 해수를 뒤집어 순환시켜줌으로 해양에서 사는 생명체에게 산소를 공급해 준다.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엄청난 양의 산소를 만들어 공급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태풍이 폭군이기는 하지만 생명의 유지와 존속에 매우 필요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가끔씩 태풍이 몰아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만나는 폭풍우는 태풍과는 달리 우리 인간에게 백해무익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 유익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또한 무엇인가? 그리고 태풍이 몰아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인생에 불어닥치는 폭풍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사건이라 하겠다.

 

2. 제자들이 배타고 가다가 무슨 일을 만났는가?

  A.D.27년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어느날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타고 건너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폭풍을 만나게 된다. 그러자 뱃사람으로 살아왔던 7명의 제자들이 거기에 있었음에도 혼비백산에 빠졌고 어쩔줄 몰라 했다. 사실 바다에서 바람과 거대한 파도를 만나 배가 뒤집힐 상황에 이르게 되면, 사람은 모두 두려워할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갈릴리바다가 비록 민물호수라 할지라도 그 둘레가 약 52Km나 되는 넓은 곳이어서, 돌풍이나 폭풍이 일어나면 위험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래서 7명의 어부들마저 놀라서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날은 만년설로 뒤덮힌 헬몬산의 찬 바람이 광야의 뜨거운 바람과 만나 엄청난 파도를 일으킨 것 같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자 제자들은 황급히 주님을 깨웠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셨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셔야했던 것일까?
  우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직후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다. 그리고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하셨다(막5:39). 마태복음에서는 먼저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다고 하지만, 마가복음에서는 바람과 바다를 먼저 꾸짖고 명하신 후에 제자들을 책망하셨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그때 바람과 바다는 잔잔케 되었고 제자들을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3. 예수께서 거대한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왜 책망하셨을까?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제자들이 큰 놀을 만나 허둥지둥대는 것을 책망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통해 그분이 누군지를 알았을 텐데, 예수님이 자기 곁에 있었지만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책망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또 어떤 이는 제자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적어도 바람과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할 수도 있었거나, 자기를 수호하는 천사를 시켜, 바다와 바람을 잔잔케 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것을 하지 않아서 책망한 것이라고도 말한다.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왜 예수께서는 그때에 제자들이 믿음이 작다고 책망한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제자들이 자연만물에게 어떤 명령을 한다거나, 천사를 시켜 바다를 잔잔케 하지 못한 것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런 것을 가르쳐주신 일도 없고, 또한 제자들이 그렇게 교육받은 일도 없으며, 예수께서 그러한 것을 아직 한 번도 제자들에게 보여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어떻게 말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그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는지를 살펴보고 그리고 12사도들이나 초대교회에서 그러한 사례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예가 없다면, 그것을 우리가 함부로 시도해서는 아니 된다. 좀전의 말씀처럼, 자연만물에 대해 과연 믿는 성도가 어떤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자기를 수호하는 천사를 무슨 일을 명할 수 있을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일이 없으며, 또한 그러한 사례가 사도들과 초대교회에서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2가지 정도는 명령할 수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믿는 이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것의 하나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며, 또 하나는 병든 자를 치유할 때 질병을 꾸짖는 일이다. 이 두가지만은 예수님께서 이미 예수님께서 명하셨다. 그렇지만 자연만물에게 무엇인가 하도록 명령하거나, 천사를 시켜 일을 하도록 할 수는 없다.

 

4. 믿는 자가 과연 자연만물에게 명령할 수 있으며, 천사에게 명령하여 어떤 일을 시킬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성경을 통틀어 사람이 자연만물에게 명령하거나 천사를 시켜 어떤 일을 하게 한 일이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러한 일이 많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에 보면 그러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런데 단 한 번, 여호수아 시대에 자연만물에게 여호수아가 직접 명령한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때는 전쟁의 기간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모리왕 다섯방백을 넘겨주실 때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아뢴 후에, 태양과 달에게 멈춰서라고 명령한 적은 있다(수10:12). 하지만 이것도 사람의 말에 권세가 있어서 해와 달이 순종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명령을 들으시고, 여호수아의 말대로 해와 달을 멈춰서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수10:14). 그렇다. 해와 달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다. 어느 누가 태양과 달의 운행을 멈출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비록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을 멈춰서라고 명령했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실제적으로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명령한다고 해서 자연만물이 순종할 것이라고 쉽게 착각하지 말라. 또한 믿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수호천사가 있기는 하지만(마18:10, 행12:15),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천사에게 어떤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천사는 분명히 구원얻을 후사를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보낸 종인 것은 분명하나, 우리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일 뿐임을 잊지 말라. 천사는 우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이유가 제자들이 바람과 파도를 멈추도록 명령하거나 천사를 부리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일까? 그것은 앞뒤문맥을 보게 되면, 크게 2~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면서 심지어 자신의 배와 그물과 가족까지 버려둔 채 주님을 따라나섰는데, 잠시잠깐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고 해서 제자들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건 직전에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겠다면서 여러가지 각오와 결단을 했었기 때문이다. 둘째,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비록 풍랑을 만나서 어려움에 처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께서 곁에 계시니 그들의 안전에는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계셔도 풍랑은 일어난다. 그것은 갈릴리 바다의 생존과 이스라엘의 수자원의 생성에 필요하며, 갈릴리 바다에서 서식하고 있는 물고기들의 보존과 이스라엘 민족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우리 곁에 있는 한, 풍랑은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의 목숨에서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고 아우성을 쳤다.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특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다스리는 주관자가 곁에 계시며, 앞으로 제자들이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어찌 그날 비명횡사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러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

 

6. 우리 인생에서 풍랑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이렇듯 우리를 집어삼킬 것 같은 풍랑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그것은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계시는 주님을 찾으면 된다. 그분에게 기도로서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내 목숨이 끝났다고 스스로 판단하지 말라. 오히려 그분에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요청하라. 그러면 주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께서 직접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라고 명령하시든지, 아니면 구약시대처럼 천사를 보내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결정하실 일이다. 자연만물과 천사들에 관해서는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명령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알라. 마치 여호수아의 선포를 들으셨지만 해와 달을 멈추게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말이다. 고로 제자들이 믿음이 작다고 책망을 받게 된 것은 주님을 섬기겠다고 따라나선 그들의 각오가 너무나 쉽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이 거기에 자신들과 함께 계시므로 자기들의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텐데도, 그들은 자기들이 죽을 것 같다고 아우성을 쳤기 때문이다. 아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주요 주관자되시는 분이 거기에 함께 계시고, 아직도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그날 자신의 운명이 끝날 것이라고 야단인 것인가? 아니다.

 

7. 나오며

  성도들이여, 세상에서 풍랑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풍랑을 보고 결코 두려워하지는 말라.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쉽게 헤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풍랑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의 배를 전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실 것이기 때문이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전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결코 우왕좌왕하지 말라. 그러한 때에는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된다.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주께 구하면 된다. 비록 우리가 자연만물에 대고서 어떤 명령을 내리지는 못하더라도, 또한 천사마저 부리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얼마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하늘로 떠나시기 전에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그러므로 폭풍우가 몰려온다고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우왕좌왕하지 말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만나더라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손길을 힘입을 수 있는 기도의 시간은 남아 있음을 믿으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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