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어디에 드려야 하는가?(약2:1)_2017-09-03(설교영상)

by 갈렙 posted Sep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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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C5vmx4sPPjU
날짜 2017-09-03
본문말씀 야고보서 2:1(신약 37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야고보서, 외모로 취하지 않음, 예수님의 부활, 부활후현현,주님께헌신함

여러분은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로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는 적어도 예수님과 25년에서 28년 정도를 함께 살았던 인물이다. 자신의 형인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뛰놀며 함께 일하며 회당에도 같이 다녔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며,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 나중에는 초대교회의 가장 큰 핵심적인 인물로 급부상하여 쓰임받게 된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예수님을 영광스러운 주님이자,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요, 심판하실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던 것일까?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숨겨진 역사가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간증이 될 수도 있다.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요1:18). 아니 그분은 전능한 하나님이시다(사9:6).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전능자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가셨다는데, 그냥 왔다가 가셨겠는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흔적을 남기시지 않았겠는가? 그가 오심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최종적인 단계의 행동이신데 모르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전능자가 오셨다가 가신 것을 인류가 알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능자께서는 자신이 오셨다가 가신 것을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도록 어떤 증거들을 남기셨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 전능자이신 그분을 만나 기적을 체험하고 문제해결을 받은 사람들이 일차적인 증거가 된다. 하지만 육신을 입고 오신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에 대하여 어느 누구가 반증할 수 없는 증거까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바로 그분의 부활이었다. 사람은 죽었다가 결코 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어디에서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사건을 통해서 예수께서 전능자이시며,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이 확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부활을 목격한 자들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부활사건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완전히 변화된  한 사람을 소개할까 한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온전히 깨닫게 될 때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우리가 잘 몰랐던 초대교회의 핵심적인 인물,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인물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다. 성경에는 여러명, 최소한 4명에서 6명의 야고보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로서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가 있고,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있다. 요한의 친형제인 야고보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상당히 비중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그때는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하지만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그는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로 등장한다. A.D.49년경 이방인의 율법준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모였던 예루살렘공의회에서 야고보가 의장격으로 나오기 때문이다(행15장). 그리고 스데반집사의 죽음으로 인하여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 여러지역에 나가서 사역하고 있을 때, 예루살렘교회의 빈자리를 채웠던 자가 바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와 그리고 사도들이었던 베드로와 요한을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는 야고보를 사도들보다 앞에 위치시켰다(갈2:8~9). 그렇다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어떻게 되어서 갑자기 초대교회의 핵심인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일까?

 

3.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는 누구인가?

  우선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의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가 누구인 줄 알면, 그의 신앙이 어떤 자인지를 알 수 있고, 그가 바로 야고보서의 저자인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인지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의 저자인 야고보는 대체 어느 야고보일까?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쓴 저자는 적어도 4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는 회당예배에 익숙한 사람이며(약2:2), 하나님을 만군의 주(여호와)라고 칭하고 있고(약5:4), 하나님을 한 분으로 알고 있으며(약2:19), 아브라함을 자신의 조상으로 둔 야고보다(약2:21). 둘째 그는 적어도 야고보서가 쓰여질 당시(A.D.62)에 살아 있어야 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흩어진 믿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곳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약1:1). 셋째, 그는 무엇보다도 욥기서와 잠언 뿐만 아니라 구약의 율법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자라야 한다. 넷째, 더욱이 그는 야고보서를 쓰고 있을 당시(A.D.62) 예수님을 영광스런 주님이자 약속된 메시야로 믿고 있으며, 자신은 그분의 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자다. 그리고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심판주라고 믿고 있는 자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의 저자인 그는 누구인가? 위의 4가지 특징들을 요약해보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밖에 없다. 왜냐하면 요한이 형제인 야고보는 A.D.44년에 가장 먼저 헤롯아그립바왕에 의해 순교했기 때문이다.

 

4. 야고보의 놀라운 신앙고백, 그것은 어떻게 터져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인 것이 확실해진다. 그런데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우리의 눈을 의심할만한 성경구절이 등장한다. 그것은 야고보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약1:1)과, 예수님을 "영광의 주님"이자, 구약의 약속된 메시야요, 재림하실 심판주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약2:1). 정말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서 이 야고보서를 썼다면,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친동생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12지파에게 문안하노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을 종의 위치로 낮추어 그분을 주인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주님이라고 표현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주님"이라는 표현은 오직 여호와를 대신하는 용어이기에, 야고보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을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었다고 결론이다. 그러기에 그분을 심판주라고까지 표현하지 않았겠는가!(약5:8)

 

5. 메시야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몰라본 야고보

  그럼, 대체 야고보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일까? 신약성경에 기록된 분명한 사실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그는 예수님의 바로 밑의 친동생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친동생으로는 야고보 외에도 유다와 요셉과 시몬 및 2명 이상의 여동생들이 있었다(막6:3). 둘째,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2번정도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예수님을 걱정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공생애2년의 초막절이 가까운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더이상 갈릴리 촌구석에서 사역하지 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독촉하고 있기 때문이다(요7:3~4). 그때만 해도 야고보는 자신의 형인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했던 메시야이며, 사람이 되어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형제들마저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함일러다(요7:5)"

  그렇다면, 적어도 25~28년동안 함께 살았던 형 예수가 메시야인지 왜 야고보는 몰라보았던 것일까? 예수께서는 전능자이시지만 자신의 전능성을 다 쓰지 않고 거기에 제한을 두셨기 때문이다. 그가 메시야인 것을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만 사용하였다. 그랬다.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인정을 받은 메시야라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자신을 제한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야고보는 자신의 형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눈여겨 보았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3년반이 지난 어느날 자신의 형이 산헤드린공회에 붙들려가서 사형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자 그의 마음도 같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내심 자신의 형이 비록 메시야는 아닐지라도 뭔가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만 형이 신성모독죄로 죽임을 당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야고보는 식음을 전폐하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한다(이것은 유대 역사가의 전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하는 소문이 들려온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열한사도들도 보았다는 소식이 듣게 된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다. 어느날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에게도 나타나신 것이다(고전15:7). 그때 주님은 야고보에게 "형제여, 보라! 이제 내가 부활했으니, 이제 나를 보고 너의 떡을 먹으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자 야고보는 그때까지 의심했던 모든 잘못을 회개하면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결국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였기 때문이다.

 

6. 야고보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

  결국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부활과 현현은 야고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그분이 부활했으니 그분이야말로 죽음을 정복하는 영원한 생명이심이 증명되었으며, 언제라도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 있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또한 그순간에 이전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모든 말씀이 다 거짓이 아니라 진짜라는 것도 믿어지게 된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되니, 예수님은 자신의 친형이 아니라, 잠시 사람의 몸을 입었던 전능자인 것이 믿어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감람산에서 돌아온 후, 어머니의 고백은 또 한 번 야고보를 놀라게 하였는데, 그것은 예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자라는 자기 어머니의 고백이었다. 그녀가 18살(?)이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 이제 곧 임신을 하게 될 것인데, 마리아에게 잉태될 자는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성령으로 되는 것으로서, 나실 바 되는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받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메시야에 관한 가장 큰 의구심의 하나였던 메시야의 출생의 비밀이 순식간에 다 풀려버리게 된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삶은 다 구약에 나와있는 예언과 일치한 것이었는데, 그분의 출생만큼은 비밀에 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가 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임마누엘하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7. 야고보의 놀라운 변화

  그러므로 그때부터 야고보는 더이상 예수님을 자신의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신은 예수님의 종일 따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약1:1). 더욱이 흩어진 믿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의 주님 곧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외모로 취함 안에서 가지지 말라.(직역)"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사람들을 외모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헬라어원문은 예수님을 외모로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충고의 말씀이다. 자기도 약25~28년동안 예수님을 외모로만 보았기에 그를 메시야야 나타난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이상 자기처럼 예수님을 외모로만 잘못보아 의심하고 무시했던 죄를 범치 말라는 것이다.

  그후 야고보는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시어 한 일을 증거하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얻도록 돕는 일에 드린다. 그러니 베드로가 빈 자리였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을 크게 전도하여 예루살렘교회로 하여금 수만명이 되게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8. 나오며

  그렇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가난한 청년이자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게 자신의 전생애를 기꺼이 바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야고보처럼 그분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가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데에 전 생애를 바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생활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야고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가 되어 오시어 한 일을 증거하여 다른 사람도 구원얻게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라는 말씀이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나중에는 하늘에 있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자가 되어있을 것이다(약1:12).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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