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주님께서 드린 중보기도(눅22:31~34)_2018-03-25(설교영상)

by 갈렙 posted Mar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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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WP8EgKjLjmg
날짜 2018-03-25
본문말씀 누가복음 22:31~34(신약 13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지도자의 품성, 중보기도, 중보기도의 정의, 중보기도의 효력, 베드로의 회개와 중보기도의 능력

예수께서도 과연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하셨을까? 성경의 기록들을 다 찾아보면 예수께서도 딱 한 번 제자들과 베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눅22:31~32).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셨을까? 그것은 사탄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처음부터 거래에 능한 자였다. 그래서 구약시대만해도 자신의 꾀를 이용하여 세상의 지도자들에게 권세와 능력과 정보를 알려주고는 자신이 하나님으로 경배받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의 공생애의 초기에도 찾아와서 거래를 시도하였다.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절하면 그걸 넘겨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단호히 그것을 거절하셨다. 하지만 이제 예수께서 공생애를 끝마칠 무렵에 다시 사탄마귀가에게 직접 예수님에게 찾아와 제안을 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 일로 말미암아 제자들을 위하여 특히 장차 지도자가 되어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중보하시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중보의 모습을 통해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중보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알 수 있다. 오늘은 그것을 살펴보자.

 

1. 들어가며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밤, 예수께서는 성찬식과 세족식을 마치신 후에 따로 기도하러 가셨다. 그런데 그때가 되었어도 제자들은 누가 크냐는 다툼 가운데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신 예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하늘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일러주셨다. 그리고 베드로를 따로 불러내어 그에게 당신께서 드린 기도와 중보기도의 내용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그가 회개하고 돌이킨 후에 해야 할 사명까지도 말씀해주셨다. 그렇다면 그때 예수님께서는 무슨 중보기도를 드렸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베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우리는 오늘은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도자는 과연 어떤 덕목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지상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탄은 그날 주님께 무엇을 요청했던 것인가?

  따로 기도하신 후 돌아오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베드로를 위한 중보기도에 관한 말씀이었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22:31~32)" 그런데 이때 사탄이 주님께 대체 무엇을 요청하였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 사탄의 제안을 받으시고 그것을 들어주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라고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그러나 그것은 전혀 가당치 않은 말이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탄이 그때에 예수님에게 무슨 요청을 했으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지 않고 대강 넘어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미래의 제자들의 사역을 이해하는데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한다.

 

3. 구약시대에 사탄은 누구였으며 예수님께 무슨 제안을 했을까?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그때 사탄으로부터 어떤 제안을 받았던 것일까?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에 사탄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아본 후에, 그가 무슨 이유로 예수님에게 제자들에게 관해 어떤 제안을 했는지를 알수 있어야 한다.

  먼저 구약시대에 사탄은 어떤 존재였을까? 구약시대에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심부름꾼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사탄은 하늘의 천사장들 3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부턴가 악한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이 세상에 내려와 이 세상의 권력자들과 어떤 모종을 거래를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내용은 사탄의 타락을 두로왕의 타락으로 묘사하고 있는 에스겔27~28장의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때 사탄은 지혜가 출중한 자로서 이 세상에 내려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서 못된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장의 일을 하다보니, 자신도 하나님처럼 찬양을 받고 경배를 받아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세상에 내려올 때에 그는 인간의 지도자들(왕들, 지배자들)과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된다. 사탄이 그들에게 어떤 정보를 알려주고 또한 그들에게 권세와 능력을 공급해 주는 대신에 그들에게 뭔가를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땅의 지도자들(왕들)로부터 사탄 자신을 하나님으로 숭배할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러자 땅의 왕들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거래가 성사되었는데 그것이 아주 많았다는 사실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겔28:15~16). 그러므로 전혀 하나님을 몰랐던 이방인들이 왜 구약시대에 우상을 그토록 잘 숭배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즉 이방인들이 섬겼던 신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거래를 통해 알게된 사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명칭으로는 블레셋사람들은 "다곤" 신을, 모압과 암몬족속은 "그모스"와 "몰록(몰렉)"신을,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레"를, 그리고 바벨론사람들은 "마르둑(벨)"과 "느브(마르둑의 손자)"를 신으로 섬겼지만 사실 그들은 다 사탄을 섬겼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이러한 불의한 거래를 아시고 그를 하늘에서 쫓아버리신다. 이처럼 사탄은 처음부터 거래에 아주 능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이미 거래에 능숙했던 사탄은 이제 예수님에게도 접근하여 2번씩이나 거래를 시도하려 했다. 첫번째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였고 또 한 번은 공생애를 마치기 하루 전날밤이었다. 먼저 사탄은 예수의 공생애 시작에 예수님에게 찾아와 어떤 제안을 했다. 천하만국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을 하기만하면 그것을 예수님에게 남겨주겠다는 제안이었다(눅4:5~6). 하지만 주님께서는 사탄과의 거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탄은 물러갔지만 얼마동안 떠나가 있었다(눅4:13).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기 하루 전날밤, 다시 사탄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어떤 모종의 거래를 제안했다.

  그런데 이때 사탄이 예수님에게 내밀었던 제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예수님에게 어떤 것을 해 줄테니까, 12제자들만큼은 자기에게 넘겨 그들을 체질(시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탄이 내밀었던 제안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예수여, 나는 지금 유대교의 모든 종교지도자들을 다 붙잡고 있다. 그러니 내가 그들의 마음을 바꿔 당신을 죽이지 않도록 만들어줄 테니까, 대신 당신의 제자들을 나에게 넘기시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체질할 수 있도록(시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오."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4. 영적인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은 무엇인가?

  하지만 주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첫째로, 지도자는 자신의 안일이나 안전을 위해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안전이나 목숨을 내평개쳐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안전이나 목숨 때문에 결코 제자들을 사탄이 체질하도록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특히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중보기도하셨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이어 많은 형제들의 지도자가 되어 초대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두번째 덕목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둘째로,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의 미래와 사역을 위해서 지도자는 항상 중보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미래와 안전을 위해 그날도 간절히 기도하셨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비록 사탄에게 제자들을 체질하도록 허락하지 않아도, 사탄은 틀림없이 제자들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는 시도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랬다. 그래서 베드로가 넘어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주님을 버리리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베드로는 그만 그 다음날 새벽에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이르자 그만 주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그것도 두번째는 맹세하면서 모른다고 하였고 세번째는 저주하면서 맹세하여 모른다고 하였다(마26:72,74). 이처럼 인간은 약하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만약 그날 주님의 중보기도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베드로도 가룟유다처럼 사탄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죄지은 것을 가지고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어버리고, 주눅들게 만들어 아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중보하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베드로를 위한 기도를 거기에서 끝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분은 자신이 부활승천하시어 하늘에 오르신 다음에도, 기도의 중보사역을 계속 하셨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사실은 사도요한과 히브리서 기자가 알려준다. 우리가 비록 범죄한다고 할지라도 아버지를 향하여 계속해서 보혜사로서 간구하시는 주님이 있다는 것이다(요일2:1~2).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자들을 위해 지금도 중보자로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다(히7:25). 우리는 여기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세번째 덕목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셋째로, 지도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자기들의 사역을 끝마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중보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내가 중보기도하는 대상이 지금은 좌절하고 있고 낙심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절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중보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한 그를 위한 우리의 중보기도는 그를 살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5. 예수님의 중보기도 후에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후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사탄의 시험을 받았지만 베드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었다. 또한  그때 베드로의 믿음이 약간 떨어지기는 했어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으며 다시 회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었는가? 베드로는 지도자로서 일을 거뜬히 잘 감당하였고 자신의 사명에 충성하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생겨난 줄 아는가? 그것은 단 하나, 예수님의 중보기도 덕분이었다. 지도자의 제자들을 향한 간절한 중보기도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6. 나오며

  그렇다. 주님을 현저하게 부인했던 베드로였지만 주님의 중보기도 덕분에 베드로는 실패의 자리에서, 좌절의 자리에서 헤쳐나올 수가 있었다. 또한 예수님의 뒤를 이은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 먼저 믿었으며, 먼저 직분을 받은 자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제 갓 믿으려는 자들과 약한 자들을 위해 누가 기도해 줄 것인가? 누가 손내밀어 줄 것인가? 그것은 바로 먼저 알게 되었고 먼저 믿게 되었고 먼저 직분을 받은 자들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질병에 시달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범죄 가운데 빠져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누가 기도해주어야 하겠는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었다면, 우리는 더욱 더 기도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먼저 알고 믿저 믿은 자, 먼저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자의 아름다운 모범이 아니겠는가? 당신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투를 빈다.

 

2018년 3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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