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마25:29~30)_2018-12-30

by 갈렙 posted Dec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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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kD52Q0qF1I0
날짜 2018-12-30
본문말씀 마태복음 25:29~30(신약 4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달란트비유, 주인의 뜻,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받은 책망의 원인, 회계와 결산, 믿음직함과 충성도, 분량의 강화

회개에도 기한이 있다. 그 기간을 놓쳐버린 자는 자신이 맞이한 운명 때문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뿐인 우리의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 후회없는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것은 마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들을 말씀은 우리가 그동안 들어왔던 일반적인 말씀은 아니다. 이 본문을 헬라어원문으로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말씀들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왜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땅 속에 감추어 둘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것이다. 그에게는 그만한 2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일에 착수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삶은 비단 그의 삶뿐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요소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잘못된 판단은 우리의 미래를 사실 어둡게 하고 있다. 그는 사실 자신의 주인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국 그를 악하고 게으른 자가 되게 했고, 결국에 바깥 어둠 속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대체 왜 그는 일하지 않았을까? 그는 왜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이 올 때에 돌려드려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10년 20년 다녀도 영적인 진보가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1. 들어가며

  연말이 되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 해를 맞이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해를 어떻게 마감해야 하는가? 한 해를 마감하는 데에 소홀한 사람은 다음 해를 맞이하기는 하겠지만 또 한 해를 그냥 흘려보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은 한 해를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한 해를 다시 뒤돌아볼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한 해를 뒤돌아볼 때에 정말 후회없는 삶을 살아왔다면 그는 분명 놀라운 영적인 진보 가운데 새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해 두 해를 지내왔지만 자신에게 영적인 진보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오늘 이러한 의문을 가진 자들에게는 생수와 같은 말씀이 기다리고 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음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동안 달란트의 비유 가운데 한 달란트를 가진 자가 책망들어야 했던 이유를 어떻게 들었는가? 그것은 그가 악하고 게을렀기 때문이었다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왜 악하고 게으른 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듣게 될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적인 구원론과 인간론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헬라어원문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값진 말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달란트의 비유에 감춰진 놀라운 영적 사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할까? 오늘 그 해답을 한 달란트받은 자의 삶을 통해 발견하기를 바란다.

 

2. 우리가 알고 있는 달란트의 비유는 어떤 것인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달란트비유에 관한 말씀(마25:14~30)을 익히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멀리 여행을 떠나는 주인과 그 주인의 종들 가운데 3명이 종들이 등장하고 있다. 주인은 자신의 소유를 종들의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르게 주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그런데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고 주인은 종들을 불러 결산을 하였다. 앞의 두 종은 칭찬을 들었지만 한 달란트받았던 종은 책망을 들었다. 그것은 그가 "악하고 게으른 자"라는 것이었다(마25:26). 그는 자신이 땅 속에 감추어두었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겼다. 그리고 바깥 어둠 안으로 던져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빨들을 갈게 될 운명에 처해졌다. 그렇다면 대체 한 달란트받은 종은 왜 주인이 그에게 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감추었다가 주인에게 돌려준 것인가? 그가 처음부터 악하고 게을렀던 종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주인이 그를 너무 홀대하여 한 달란트밖에 주지 않았던 것에 불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그런데 오늘 달란트비유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좀 다르다. 그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3.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왜 일을 하지 않은 것일까?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왜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놓은 채 있다가 그것을 주인에게 되돌려 준 것일까? 성경원문을 보니,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로, 한 달란트받은 종은 주인이 자신에게 준 한 달란트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주인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마25:25). "나는 당신의 달란트를 땅속에 감추어두었나이다. 보소서, [이제] 당신은 당신의 것을 가지소서(마25;25)" 그러므로 그는 주인이 돌아오면 한 달란트를 되돌려주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주인이 자신에게 주었던 한 달란트는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니 그것으로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보았자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열심히 일해보았자 다 주인에게 돌아갈 것인데 무어라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는가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눠줄 때에 한 번도 맡긴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예 넘겨 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성경으로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러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번역하는 자가 이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기에 그렇게 번역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다르다. 우선 14절을 보자.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마25:14)" 그러나 헬라어원문은 이렇다. "왜냐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멀리] 여행을 떠나고 있을 때에, 자기자신에게 속한 종들을 불렀고, 그가 그들에게 자기의 소유물을 넘겨주었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맡긴 것과 넘겨준 것은 다르다. 맡긴 것은 도로찾아가기 위해서 준 것이지만, 넘겨준 것은 아예 넘겨준 것이므로 소유주가 바뀐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칭찬을 받았던 두 명의 종들은 주인이 그것을 자신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주인이여, 당신은 내게 다섯(혹은 두) 달란트를 넘겨주셨는데...(마25:20,22)" 그러나 우리말성경에는 다 "주셨다'고만 되어 있다. 아니다. 헬라어원문을 보면, 14절의 "맡겼다"는 말씀과 20절과 22절의 "주셨다"는 말은 다 동일하게 "파라디도미(넘겨주었다)"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글성경을 수십번 수백번을 읽는다고 해도 이 말씀의 본 뜻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른 두 명의 종들과는 달리 그것을 자신에게 맡긴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한 달란트받았던 종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약 주인의 것을 장사하다가 잘못해서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것을 물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주인의 돈을 가장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그것은 땅 속에 몰래 감추어두었다가 주인이 오면 돌려주는 것이었다.

 

4. 그러나 실제 주인은 어떤 분이었나?

  그러나 실제로 주인은 어떤 분이었을까? 주인은 첫째, 아주 공평한 분이었다(15절). 왜냐하면 능력이 부족한 종에게는 그가 감당할 분량만큼 나눠주었고, 능력이 큰 종에게도 그가 감당한 분량만큼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주인은 악덕업주나 고리대금업자가 아니었다(14절).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준 것은 다시 돌려받으려고 준 것이 아니라 아예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셋째, 주인은 종들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었다(21,22절). 왜냐하면 종들에게 달란트를 넘겨준 것은 종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종들이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통하여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아예 넘겨준 것은 지금 종들의 믿음직스러움과 충성심을 본후 그들에게 더 큰 것을 맡기려고 했던 것 뿐이지 종들을 시켜 노동력을 착취하여 돈을 벌려고 자신의 소유물을 나눠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5. 영적인 빈익빈 부익부는 왜 발생하는가?

  오늘 본문 말씀의 결론은 29절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해보면 좀더 의미가 분명해진다.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자에게는 그것이 주어질 것이며 풍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지 않는 자의 경우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될 것이다" 확실히 빈익빈 부익부에 관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빈익빈과 부익부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사실 오늘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흑수저와 금수저는 처음부터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말씀은 이와는 다르다. 빈익빈과 부익부가 이미 결정된 상태가 아니라 얼마든지 자신의 하기 나름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실 29절과 30절의 말씀이 뒤바껴있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대한 책망의 말씀(30절)은 28절 다음에 바로 나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유말씀의 핵심요절인 29절이 먼저 나오고, 한 달란트받은 종에 대한 운명이 30절에 뒤이어 나온다. "이 무익한 종을 바탙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25:30)"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29절의 말씀은 한 번으로 끝날 말씀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필요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는 칭찬들었던 종이 되느냐 책망받았던 종이 되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국에 계속해서 책망받은 종으로 살아왔지만 끝까지 자신의 삶을 회개하지 않고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종은 30절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넘겨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활용하지도 않은채 게으른 삶을 산다면, 그는 주님이 오실 때에 바깥 어둠 안으로 내던져져 슬피 울며 이빨을 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의 결산이 딱 한 번 있는 일로 판단해서는 아니된다. 아니다. 그것은 매년 계속되는 결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자는 결국 30절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6. 이 비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비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왜 오늘날 5년 아니 10년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영적인 진보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 그가 한 달란트받은 자의 자세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보았자 내 것도 되지 않을 뿐더러,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축나는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해서 실패하게 되면 그 책임은 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비유 말씀의 진짜 내면을 들여다 보라. 첫째, 주인이 달란트를 넘겨준 순간부터 그 달란트는 주인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된다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것을 주인이 도로 찾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전도한 결과는 다 내가 갖게 되는 것이지 그것을 주님이 빼앗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고 투자해야 한다. 둘째, 혹시 일하다가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내가 감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자본금은 내 것이 아니었다. 주인이 내게 넘겨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돈으로 장사하다 실패했어도 그 책임을 주인은 결코 나에게 묻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주인의 자본금이 날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은 애가 닳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주의 일을 하는 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정작 하나님의 나라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자본금이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이 것이었고 주인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7. 나오며

  영적인 빈익빈 부익부는 지금도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빈익빈이 아니라 부익부가 될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얼마인가를 먼저 계산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투자하고 도전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없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라. 그래서 연말이 되었을 때 남긴 자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또 그것을 자본금으로 내게 투자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온전히 내게 또 넘겨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또 그것으로 장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주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남기게 되면 그것은 다시 주인의 자본금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내가 죽거나 아니면 주님이 오시는 때가 되면, 그것은 영원히 천국에서 내가 누리게 될 상급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주님께 드리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는 그만 못드린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봉사하면서 남들은 봉사하지 않는데 나만 손해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봉사를 주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속는 것이다. 그것은 손해가 아니라 내 것의 분량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투자인 것이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주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모아 상을 주신다. 그리고 더 큰 것을 내게 넘겨주시는 것이다. 오 이 놀라운 신비를... 내가 왜 그동안 빈한했는지를 살펴보라.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라. 건투를 빈다.

 

2018년 12월 30일(주일)

정병진목사(allete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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