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성경을 읽다보면 영적인 세계에 통용되고 있는 놀라운 진리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대부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다. 물론 이것들 중에는 어떤 것은 이 세상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진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마20: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2)" 그런데 세번째에 나오는 선언은 좀 이상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는 것이 좀 더 공평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잘 되는 자는 더욱 잘되게 하시고 망할 사람은 아예 망하게 하시는 분이신가? 우리는 세번째의 영적인 진리를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만나게 되고, 천국비유에서도 만나보게 된다. 이 둘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2. 달란트의 비유와 천국비유에 동시에 나오는 영적인 진리는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
예수께서는 마25장에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3가지 비유를 들어말씀하셨다. 첫째는 열처녀의 비유다(마25:13). 이것은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깨어있으라는 비유말씀이다. 둘째는 달란트비유다(마25:14~30). 이것은 받은 달란트에 충성해야 주인이 올 때에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신다는 비유다. 그리고 셋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다(마25:31~46). 다시 오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어떤 기준에 따라 심판하시며 또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가에 관한 말씀이다. 그런데 두번째 비유말씀에서 주님께서는 당신만의 특유의 영적인 진리를 선포하셨다. 그것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는 말씀이다. 그런데 한글성경으로 보면, 마25장의 달란트비유에 나오는 영적인 진리와 마13장의 천국비유 중간에 나오는 영적인 진리가 꼭같이 보인다. 자, 다음의 말씀들을 비교해보라.
마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
마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2)
그렇다면, 이 둘의 진리는 똑같은 말씀인가? 아니면 다른 말씀인가? 그리고 주님께서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신 근본의도는 어떤 것인가?
3. 달란트의 비유와 천국비유에 동시에 나오는 영적인 진리는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참으로 감사하게도 오늘날 우리들은 성경을 원문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정확히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영적인 진리를 비교해보면, 다음의 2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는 시기(때)의 차이가 있다. 마25장의 달란트비유에서 주신 말씀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미 종들에게 달란트를 주셨고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는데도 그때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이미 주님이 주셔서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 것이요 만약 무엇인가를 남긴 사람이 되었다면 충성도에 따라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마13장의 천국비유에서는 다르다. 이때는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파악하여 만약 자신이 가지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회개하여 앞으로 갖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둘째, 가진 것에 대한 내용의 차이가 있다. 달란트비유는 재능이나 물질 더 나아가서는 사명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하지만 천국비유는 천국말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달란트비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물질 그리고 사명에 대해 얼마나 충성했느냐를 판단하고 있다면, 천국비유는 지금 선포되고 있는 말씀을 듣는 각 사람이 어떻게 그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 나중(미래)에는 엄청난 차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빨리 점검해보고, 천국말씀듣기를 더 사모하여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는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더욱이, 달란트비유는 가진 것에 대한 차이가 서로 있다. 하지만 천국비유는 그때 듣고 있는 것은 말씀으로서 사람들마다 차이가 없다. 똑같은 말씀을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장소에서 듣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는 천양지차가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 왜 말씀에 있어서 빈익빈 부익부가 발생하는가?
그렇다면 똑같은 말씀에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장소에서 듣고 있는데, 왜 그들에게는 빈익빈 부익부가 발생하는 것일까? 주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국의 비밀[들]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마13:11)" 혹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꼭 예정론처럼 들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들어도 처음부터 말씀을 잘 들려지는 사람이 정해져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치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에 나오는 "허락되었다"는 말은 원문에, "이미 주어진 채 있다"는 말로서, "주다(디도미)"라는 동사의 직설법 완료 수동태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13:11을 직역하면 이렇다. "천국의 비밀들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 이미 주어진 채 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주어진 채 있지 않다(마13:11)" 그렇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우리는 누구든지 천국의 비밀들을 아는 것이 주어진 채 있는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본문에 나오는 "너희들"과 "그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여기서 "너희들"은 말씀을 이미 가지고 있고 현재도 듣고 있는 자들로서, 예수님의 12제자들을 가리킨다(마13:10).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말씀을 듣고 있기는 하나, 전혀 듣고 있는 않는 자들로서, 그때 당시 예수님을 찾아나온 "많은 무리들"을 가리킨다(마13:2). 그렇다면 왜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들과 똑같이 천국말씀을 들었는데,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그들이 그 자리에 나온 이유부터가 달랐기 때문이요, 그리고 그들은 그 당시 주님이 들려주고 있는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5. 왜 군중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있었으나 전혀 듣지 못한 채 있었는가?
그렇다면, 많은 군중들은 그때 무슨 이유로 바닷가에 나온 것인가? 그것은 마12장부터 보아야 한다. 마12:15에 보니, 그들은 예수께서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는 것을 알고 주님으로부터 무엇인가 고침받겠다고 하면서 나온 자들이다. 또한 마15:22에 보니까, 소경과 벙어리된 자가 주님 앞에 갔는데 주님께서 그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쫓아주심으로 그가 보고 듣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자리에 나온 자들이다. 심지어, 그날은 예수님께서 희안한 능력을 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까지 그 자리에 나오던 날이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묶고 있는 가버나움 집을 둘러쌌고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르치시려고 바닷가로 나가셨으며 배를 올라타신 후에 바닷가에 서있는 많은 군중들을 향하여 비유로 말씀을 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군중들의 관심사는 어서 빨리 설교말씀이 끝나는 것이었다. 빨리 설교말씀이 끝나야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말씀을 듣고는 있으나 전혀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이것이 오늘날 은사집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현재의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받고자 그 자리에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질병도 치료해주셨다. 그러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치유사역은 메시야로서 해야 할 주된 사역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어찌하든지 그들에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들려주셔야 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예수님을 찾아온 자들에게 주님은 천국말씀을 증거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씀을 전혀 듣지 않으려 하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천국비유의 영적 진리였던 것이다.
6. 나오며
사람은 누구나 귀가 달려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귀가 달렸다고 해서 모든 소리를 다 듣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까지 오셨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맹인이요 들어도 듣지 못하는 소경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고 싶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가 바라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면 주님의 말씀은 결코 귀에 들려올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가 듣고 싶고 바라고 있는 것을 잠시 내려놓으라. 그분이 들려주고 싶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그래야 우리는 받을 수 있고 더 풍족히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우리가 죽어서 영원히 살 곳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마련해 둔 저 천국이며, 천국에서 더 큰 영광을 얻는 자가 되려면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천국말씀을 듣지 않는데 어찌 천국에 대한 소망이 생기겠으며, 천국에서 더 영광을 얻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겠는가? 그냥 이 세상의 것이나 어떻게 해결해보고 끝내려 할 것이다. 아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서 소유할 천국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분량만큼 우리는 천국에서 30배, 60배, 100배로 받게 되고, 그것을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2019년 01월 06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