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제사장으로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출29:4~6,20~21)_2019-04-14(주일)

by 갈렙 posted Apr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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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nMT1hIoHWaM
날짜 2019-04-14
본문말씀 출애굽기 29:4~6,20~21(구약 12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제사장위임식,왕같은제사장,옷과피와관유,제사장의직무,제사장의자격조건

과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왕같은 제사장들인가? 루터는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그가 성경말씀을 잘못 인용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벧전2:9의 말씀을 인용하여, 모든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다 "왕같은 제사장들(히에류스)"이라고 명명했었다. 하지만 헬라어성경원문에서는 "왕의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히에라튜마)"라고 씌여 있다. 성도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받을 날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죽은 다음에 천국에 들어갔을 때이기 때문이다(계5:10,20:6). 그러므로 예수믿고 세례받은 성도는 지금 자신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합당한 자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자로 삼으실 때에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과연 나는 거기에 합당한 자인지를 살펴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려면 2가지 요소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이 더 중요한 요소로 나온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이 자신의 삶에서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2가지 요소는 무엇일까? 오늘은 그것을 찾아보자.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들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는 종교개혁자가 주장한 말이다. 중세시대에 사제계급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죄사함을 받을 수도 없다는 주장에 맞서서, 로마 카톨릭 신부였던 루터가 교황권에 대항하여 그들의 교리에 반박하면서, 이제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루터의 주장처럼 정말 왕같은 제사장인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의 근거가 되는 성경말씀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최초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자를 세울 때에 어떻게 세웠는지를 통해서 오늘날 나는 과연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합당한 자인지도 살펴보려고 한다.

 

2.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이 과연 성경에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이 있을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이다"는 말은 종교개혁의 교리 가운데 분명히 들어 있다. 왜냐하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1502년에 "독일 민족의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문서에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주장이 과연 성경에 있는 것일까? 모두들 그러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루터가 벧전2:9의 말씀과 계5:10의 말씀을 인용하여, 모든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다 제사장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루터는 성경말씀을 잘못 사용한 것이다. 성경에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그렇게 알고 믿고 있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것은 루터가 사제계급을 부정하면서, 이제는 누구든지 사제들의 도움 없이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고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용서받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그의 과도한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제 헬라어원문을 통해서 과연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문구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와전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성도는 진짜 왕같은 제사장인가?

  성도는 정말 왕같은 제사장이 맞는가? 아니다. 성도는 왕같은 제사장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성도는 왕의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일 뿐이다. 성도가 정말 제사장이 되는 것은 그가 죽고나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이기 때문이다. 사실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왕의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제사장의 직무를 얻기 위한 준비의 시작일 뿐 진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려면 2가지 조건이 더 성취되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조금 있다고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예수믿고 세례받은 성도가 제사장이 아니며,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벧전2:9에 나온다. 우선 벧전2:9의 말씀을 한글개역개정성경으로 보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그렇다. 벧전2:9에 대한 한글성경의 번역본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왕같은 제사장들인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을 보면, "왕의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헬, 히에라튜마)"라고 되어 있다. 먼저, "왕같은"이라는 단어는 "왕의"라는 단어이며, "제사장(헬, 히에류스)"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헬, 히에라튜마)"라고 되어 있다. 만약 베드로가 여기서 정말 "제사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었다면, 거기에는 "히에류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야 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성도를 비유하여 제사장과 연결시킨 단어는 사실 벧전2장 5절과 9절에 두 번 나오고(그것도 정확히 "제사장"이라는 용어는 여기에 안 나온다), 나머지는 다 요한계시록에만 나올 뿐이다. 그런데 벧전2:5,9에 나오는 단어는 "제사장(히에류스)"라는 용어가 아니며,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히에라튜마)"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이니까 그는 제사장이 맞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도 그는 제사장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아닌 자라도 일시적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사장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언급한 것은 성도가 "왕의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둘째, 요한계시록에는 "제사장(히에류스)"라는 단어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에게 주어지는 신분으로 나올 뿐, 이 땅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성도들이 제사장으로서 활동하는 장소가 지금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천국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계5:10, 계20:6).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들은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들로서, 둘째사망이 다시 그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는 곳에서 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루터는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을 그만 제사장이라고 말해버렸다. 이 세상에서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맡아서 수행하는 자들 중에 주님께서 심판하여 죽을 때에 그들 중에서 제사장으로 삼을 자가 있는 것인데, 예수믿고 세례받은 자라면 다 제사장이라고 말해버린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떤 자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세운 것일까?

 

4. 구약시대에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자를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했는가?

  어떤 사람을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로 세워야 하는지는 구약에 나온다. 구약시대에 최초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출애굽시대에 있었던 인물들로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나납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을 지명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세우라고 하셨다(출29:1,4). 그렇다면 모세는 그들을 어떻게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세웠던 것인가? 그것은 3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다.

  첫째는, 우선 그들의 몸을 물로 씻긴 다음에 옷을 입게 함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게 했다(출29:5~6,8~9). 그때 입을 옷은 대제사장은 대제사장의 옷(에봇)을, 제사장은 제사장의 옷을 입는 것이었다. 그렇다. 제사장이 되려면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에 합당하게 제조된 옷을 입어야 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이 비록 제사장으로 쓰임받을지라도 그들이 다 죄인들이기에 자신을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 입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들의 신분을 제사장이라는 것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는, 번제단의 피를 가져다가 제사장의 몸과 제사장의 의복에 뿌려서 그들을 거룩하게 함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게 했다(출29:21, 레8:30). 두번째 세번째 조건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먼저 위임식제사에 드려지는 희생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거룩함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때에 희생제물의 피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귓부리와 오른손엄지와 오른발엄지에 바르라고도 했다(출29:20).

  셋째는, 특별히 제조된 붓기 위한 기름(관유)을 그들의 머리에 붓고 몸에 발랐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도 바름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게 했다(출29:7,21, 레8:30,12).

  그렇다. 한 사람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맡기려 함에는 그 사람의 더러움을 덮고 신분을 바꾸기 위해, 제사장으로서 합당한 옷을 입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고 바르며, 관유를 붓과 바르라고 한 것이다.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옷을 입어야 했지만 옷을 입는 것보다더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거룩하게 해 줄 피와 관유였다. 이것이 없이는 그들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오늘날은 성도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갈3:27). 고로 보통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 그에게는 제사장의 의복이 입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자신이 우리들의 의복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다(갈3:27).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옷을 입음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첫번째 조건이 충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고 특별히 제조된 관유를 발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둘째로, 성도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려면 그리스도의 피를 자신의 영혼에 뿌려야 한다(히10:22). 여기의 희생제물의 피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피흘려 죽으신 어린양의 피를 상징한다(마26:27~28, 벧전1:19).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를 통해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서 씻겨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거룩해질 수 있다. 거룩해져야 비로소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내적인 외적인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요일2:27). 여기서 "관유(붓는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사도 베드로로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사렛예수에게 성령을 기름붓듯 하셨다고 말했으며, 예수님께서도 나사렛 회당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가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4:18). 그렇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시게 되었기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고,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이때 루터의 실수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아직 제사장이 되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세례받은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서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감당할 자격을 얻기 위해 첫 출발을 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루터는 그만 여기에서 멈춰버렸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이라고 명명해버렸기 때문이다. 아직 아닌데도 말이다. 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제사장의 직분인데도 불구하고, 루터는 사람이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맡기 위해 첫 출발 한 것을 그만 이미 제사장이 다 된 것처럼 선언해 버렸다. 아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아니 되었다. 제사장이 되려면 제일 처음으로 옷을 입어야 했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피와 관유를 적용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거룩한 자가 되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 그래서 죄사함을 받지 못해 더럽혀진 채 있는 자는 결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 아니 감당해서도 아니 된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지 아니한 자, 그 사람도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서는 아니 된다. 거룩한 영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더럽혀진 죄된 본성을 따라가고 있으며,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는 자는 결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서는 아니 된다.

 

7. 나오며

  큰 일이다. 자신이 불량품인데도 자신은 온전한 완전품이라고 속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제사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하나님에게 이끌고 있다. 그러니 그의 뒤를 따라오는 자도 불량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먼저 믿은 자는 자신의 죄를 늘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한 삶을 사는 자가 결국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죄를 회개하지도 않는 자, 아니 죄를 회개하기를 잃어버린 자 그리고 성령의 인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교회다. 그러니 종교개혁 500년 이후 교회는 나아지는 것 같았으나 죄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니 그런 자의 삶은 불신자의 눈에 보기에도 잘못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그만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자들 중에서 죽을 때에 천국에 불러들여 제사장을 삼으실텐데, 과연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어서 제사장이 될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지금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지 않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자. 그래도 우리에게는 지금 그리스도의 의의 겉옷이 입혀있으니까 말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4월 14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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