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의 조상 다윗이 들려주는 족보 이야기(마1:6)_2019-12-08(주일)

by 갈렙 posted Dec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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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JSjJGi1-PvM
날짜 2019-12-08
본문말씀 마태복음 1:6(신약 1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메시야의조상,다윗,메시야,다윗의자손,메시야의족보,수치르러운과거,우리야의아내,다윗왕,밧세바

다윗은 무명의 시골목동이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왕이 되게 한 인물이자, 그의 후손에게는 자자손손 왕위를 물려받게 약속해준 인물이다. 다윗이 그렇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가? 아니다. 그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축복의 명단에서 제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윗은 자신의 범죄 앞에서 어떻게 처신한 것인가? 거기에는 나와 내 후손이 정말 복을 받고, 축복의 명단에서 내 이름이 제거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비결이 들어 있다.

 

1. 들어가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을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복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나 자신이 받아야 할 복이 있고 내 자식이 받아야 할 복이 있다. 그런데 내가 받아야 할 복에는 육체가 받을 복과 영혼이 받을 복이 있다. 사실 사람이 받아야 할 궁극적인 복은 내 영혼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천국,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천국이 실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했을 때에, 내 육체가 복을 받는 것을 보게 될 때다. 그때에 사람은 점차 천국이 실재하다느 것을 믿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고서 육체가 복을 받아 건강하게 살게 되고, 열심히 일한대로 수확을 얻게 되는 것을 볼 때에 사람들은 저마다 천국은 실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 자신이 복을 받게 된다면, 아무래도 내 자식도 복을 받을 확률이 그토록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내가 복을 받고 내 자식이 복을 받는 비결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더불어 내가 이미 복을 받았지만 실수하여 복을 잃어버리게 생겼지만 이미 받은 복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메시야의 족보에 등장하고 있는 다윗의 생애 가운데 나온다.

 

2.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족보의 특징은 무엇인가?

  마태복음에 1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족보는 구약에 나오는 족보들과는 다른 어떤 특징이 있다. 그것은 대체로 4가지다. 첫째, 족보에 여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오직 한 사람에게만 "왕"이라는 직분을 같이 기록했다는 것이다. 셋째, 구약성경에는 나오지만 메시야의 족보에는 등장하지 않는 조상들이 여러 명이 있다는 것이다. 넷째, 메시야의 족보를 다윗의 이름의 숫자값(14)에 따라, 14대씩 3기에 걸쳐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들 중에서 세번째의 말씀은 지난 주에 함께 나누었다. 오늘은 첫째와 둘째에 관련된 말씀으로, 메시야의 조상들 가운데 다윗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이며, 다윗이 솔로몬을 낳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다윗에 관한 족보 기록이 다른 여타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기술되었다는 점이다. 첫째, 이새가 다윗왕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접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이름 옆에 "왕"이라는 신분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새가 다윗왕을 낳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왕이 된 다윗을 낳았던 것이다. 둘째, 다윗이 그냥 솔로몬을 낳았다고 기록하지 않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윗을 아주 나쁘게 평가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으니, 얼핏 보기에 다윗은 남의 아내를 빼앗아 자식을 낳은 파렴치한 인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3. 메시야의 족보에 보면, 왜 다윗에게만큼은 "왕"이라는 칭호가 붙어있는가?

  그렇다면, 다윗에게는 왜 "왕"이라는 칭호를 붙혀서 기록했을까? 신약성경은 사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단어 하나라도 빼거나 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왕"이라는 칭호도 그 단어를 빼거나 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마태복음서의 기자는 다윗에게 만큼은 "왕"이라는 칭호를 붙혀서 기록한 것인가? 그 이유는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하다. 그것은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즉 그것은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약속된 구약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예수에게서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원래 마태복음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복음서였고, 이 복음서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복음서였기에, 족보를 귀하게 여기는 히브리인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께서 조상도 근본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왕의 가문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장차 하나님께서 메시야로서 보낼 사람은 다윗의 씨 가운데 태어날 것이는 예언들이 구약에 여러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 몇 가지만 보자. 이사야 9:6~7의 말씀에서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는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B.C.730년경 예언)"라고 했다. 이는 장차 태어날 메시야는 아기이자 아들로 태어나실 것인데 그는 다윗의 왕좌에 앉을 것이며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 23:5에서도 "내(여호와)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B.C.599경 예언)"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예언에 따라서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 땅에 오셨으며, 그가 왕이 되어 다스리게 되었다. 또한 에스겔37:24~25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B.C.586년경 예언)"라고 예언되었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처럼 왕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때가 되매,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임신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가르쳐주었으며,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실 것이라고까지 알려주었다(눅1:31~32). 예수는 다윗왕의 후손으로 와야 하기 때문이다.

 

4.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되고 후손까지 왕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가? 분명한 사실은 이새가 다윗왕을 직접적으로 낳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장차 왕이 될 다윗을 낳은 것이다. 그러하면, 다윗은 어떻게 되어 왕이 될 수 있었는가? 놀랍게도 그것은 하나님의 지명에 의해서였다(삼상16:11~12, 행13:22). 사울왕을 폐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유대땅에서 왕 될 자를 찾아다니셨다. 그래서 찾아낸 사람이 바로 소년 다윗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때 나이 약 15세 때였고, 그때에 하나님의 지명을 받아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장차 왕이 될 자로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럼, 왜 하나님은 이새의 막내아들(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곱번째 아들로 기록됨)에게 기름부으라고 한 것인가? 그것은 사도바울에 전언에 의하면, 소년으로서의 그의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15살 때에 막내로서 들판에 나서 양떼를 치는 목동으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아버지를 양떼를 정말로 잘 쳤다. 왜냐하면 가끔씩 사자나 곰이 나타나 양을 움켜서 물고 갈때면 뒤쫓아가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에서 어린양들을 구해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용기와 무용이 출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삼상16:18). 더불어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을 잘 찬양하던 자였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악기를 하나님을 찬양했으니, 그의 소년시절 찬양이 바로 시편23편으로 "여호와의 나의 목자시니"라는 시편 찬송이다. 그는 자기가 목자였지만 진짜 목자는 하나님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기가 사자와 곰에서 구출해 낸 것도 자기의 실력으로 구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셔 하나님이 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그러한 사실을 노래로 만들어 악기로 연주하며 지냈던 것이다. 결국 무명의 시골 목동 다윗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그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긴 일에 충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며 찬양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의 자손들이 계속해서 왕직을 수여할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었던 사건이 무엇이었나를 살펴보자. 그것은 삼하7장에 나온다. 그것이 그가 그만 하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즉 다윗은 나라가 안정을 이루자, 곧바로 나단선지아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것은 시온산성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그만 감동해버리신다. 왜냐하면 출애굽이후 하나님께서는 여태껏 펄럭이는 휘장과 장막 안에 거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누구에게 '언제 내 집을 지어줄 것이냐'고 부탁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이라는 이름을 최고의 영예스러운 이름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이는 그의 후손을 세워라도 다윗의 왕국이 영원히 견고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또한 범죄한다고 할지라도 선왕에게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동시킴으로 왕직을 수여받았으며, 자기의 후손도 계속해서 왕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5. 메시야의 조상인 다윗의 족보에 왜 "우리야의 아내"라는 수치스러운 수식어가 붙어 있는가?

  무명의 목동 다윗이 왕이 된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다윗의 영광의 기록 다음에 마태복음 기자는 그의 수치스러운 사건을 곧바로 기록한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다윗의 수치의 기록이 적나라하다. 왜냐하면 "다윗은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하지 않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장에 있는 메시야의 족보를 보면, 여자의 이름이 4번 나온다. "다말, 라합, 룻, 마리아". 그런데 다윗에게는 여자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명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기록하였다. 원문에 의하면, "우리야의 여자"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마태복음의 기자는 다윗이 밧세바가 아니라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윗의 수치를 더 드러내기 위함이다. 남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의 여인이 되게 한 파렴치한 인간이었음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야의 아내"라는 말을 통해서, 다윗의 장수였던 "우리야"는 나라와 왕을 위해 충성하는 사람이었는데, 왜 다윗은 자신의 부하만도 못하는 사람이냐고 꾸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렀던 다윗은 메시야의 족보에서 탈락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메시야의 족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6. 족보에서 지워질 위기에 처했던 다윗은 어떻게 족보에서 지워지지 않게 되었는가?

  메시야의 족보책에서 지워질 뻔했던 다윗의 이름은 왜 지워지지 아니했을까? 그것은 그가 눈물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을 저질렀고 그리고 그의 남편을 전장의 최전선에 보내 죽게 한 자였다. 하지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의 죄를 지적했을 때 그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즉시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아니하고 자복하였다. 그리고 통곡하면서 눈물로 회개하였다. 시늉만 낸 것이 아니다. 밤마다 침상을 띄우며, 요를 둥둥 떠다닐 정도로 참회의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그것은 곧 메시야의 족보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은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랬다. 이러한 사실은 메시야의 족보에 이름이 들어간 자라도 범죄했을 때에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에 빠진 자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족보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7. 다윗이 받은 복은 무엇이며, 그가 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택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다윗이 받은 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명의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이다(행13:22). 그렇다면 다윗의 후손까지도 복을 받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삼하7장). 그렇다면 족보책에서 다윗의 이름이 지워질 위기 앞에서 다윗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실로 회개했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우리는 여기서 내가 복을 받고 내 후손이 복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작은 행동이라도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하고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고 있고 그분을 감동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축복의 명단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위기에 처해졌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은 죄들이 있음을 즉시 시인하고 진실로 그 죄들을 통회자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축복의 명단에서 이름이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다윗이 큰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죄는 범하지 않았다. 그 죄는 우상숭배의 죄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죄다. 그렇다면 오늘날 만약 우리가 우상숭배의 죄를 저지렀거나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치자.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용서받을 수가 있는가? 그것은 다윗이 행했던 통회자복보다 수십배 수백배의 통회와 자복이 필요할 것이다. 나의 지금의 회개생활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나의 회개기도는 진정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을만한가?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나와 내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늘 간절히 회개하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19년 12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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