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세 종류의 경배자들(마2:1~12)_2019-12-22(주일)

by 갈렙 posted Dec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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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rh0i9jPmdk
날짜 2019-12-22
본문말씀 마태복음 2:1~12(신약 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동방박사,헤롯대왕,목자들,파르티아제국,3,200km,참된경배자,

누가 과연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볼 수 있고 경배할 수 있었는가? 예수님 탄생 때에 아기예수를 경배하기를 원했던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누가 과연 예수님을 만나뵙고 경배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딱 두 종류의 사람이었다. 하나는 심령이 가난한 자였고 또 하나는 그것을 간절히 사모하였던 자였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어떻게 되어서 메시야를 경배할 수 있었는지 지금 살펴보자. 그리고 나는 과연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어떤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1. 들어가며

  성탄절을 예전에는 "크리스마스"라고 불렀다. "크리스마스"란 용어는 중세 로마카톨릭의 성탄미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는 예배를 가리키는 말인데, 옛날 찬송가(1946년, 합동찬송가) 제96장에도 "첫번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이 나온다. 그렇다면, 누가 첫 번째로 크리스마스를 지켰을까? 그것은 바로 "목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목자들 외에도 크리스마스를 지켰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과연 누가 아기예수의 탄생을 맞이하여 경배자로서 참여하려 했었는지를 살펴보면서, 나는 과연 주님을 경배하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2. 메시야를 경배하러 예루살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메시야의 탄생을 알고서 예루사렘을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에 대한 많은 정보가 사실상 없다. 중요한 것들은 단지 성경에 기록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나라 사람들이 아니었고 잠깐 방문하다가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동방에서 온 사람들인 것임에는 분명하다. 여기서 "동방"이라 함은 예수께서 탄생하실 무렵의 동쪽지역을 가리킨다. 또한 성경은 그들을 "박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박사'라 함은 오늘날의 박사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헬라어로는 "마고이"라는 사람들로서, 천문점성술사 내지는 천문역학자들을 일컫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별을 연구하여 길흉화복의 점을 치던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A.D.1세기 경 동방에 살던 전문천문역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마도 당시 로마제국의 동쪽에 위치했던 파르티아제국(B.C.247~A.D.226)의 왕궁자문위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곳에서 유대나라에 찾아온 것인가? 마2:2의 말씀을 의하면, 우리는 그들에 관하여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정보를 알고 예루살렘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둘째, 그들이 그것을 알아낸 방법은 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다가, "그의 별" 곧 메시야의 별을 보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가진 2가지 정보는 하나는 유대인들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정보였고 또 하나는 자기고유의 전문분야에서 얻은 정보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메시야의 별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대인들이 말해온 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3. 왜 동방박사들은 머나먼 순례의 길을 자처해야만 했는가?

  그런데 왜 동방박사들은 머나먼 순례의 길을 달려온 것인가? 그들이 달려온 거리를 계산해보면, 그들은 무려 3,200km나 되는 먼 거리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루살렘까지 별을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찾아온 것이다. 그럼, 당시 그들은 어느나라 사람이었는가? 그들은 당시 파르티아제국 사람이었고, 아마도 그들이 살던 곳은 파르티아의 수도 니사(Nisa)였을 것이다. 오늘날 니사(Nisa)는 그 흔적만 조금 남아 있는 장소이지만, 오늘날 닛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아슈하바트"라는 지역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머나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사실 그들은 그 머나먼 거리를 오가다가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강도의 위험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고, 독사나 맹수의 위험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풍토병과 강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것이다. 더욱 그들이 살아서 다시 자기가 살던 지역으로 온다고 해도 그들에게 다시 천문역학자로서 일할 수 있을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니, 니사를 떠나려할 때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은 과연 허락해주었겠는가? 또한 그들은 자기나라의 왕이 될 인물 즉 자기 나라의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는 지금 남의 나라의 왕의 아들의 탄생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정보는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메시야가 탄생할 장소가 어딘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구약성경같은 정확한 정보가 없었기에, 그들은 장차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에 찾아간 곳은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험악한 순례의 여정을 기꺼이 자처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것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직업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었으며, 그들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견했던 특별한 별은 그들의 평생동안 아니 수세기 동안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당시 메시야의 별의 출현과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러한 별의 출현은 약 800년만에 한 번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들이 발견한 메시야의 별을 그들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활을 건 순례의 길을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4. 아기예수께 경배하기 원했던 세 종류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그런데 아기예수께 경배하기를 원했던 사람은 동방박사뿐만 아니었다. 다른 두 종류의 사람이 더 있었다. 하나는 헤롯대왕이었고 또 하나는 목자들이었다.

  첫째, 헤롯대왕은 왜 아기예수를 경배하기를 원했는가? 그것은 아주 나쁜 의도였다. 사실 헤롯대왕(재위, B.C.37~A.D.4)은 정치권력에 야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에 가서 황제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정치적인 수완을 발휘하여, 유대인의 왕의 자리를 꿰 찬 장본인이다. 그는 에돔족속의 후예인 이두메사람이었지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였고, 유대인들을 위하여 스룹바벨을 성전을 화려하게 개축하는 공사를 해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헤롯대왕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야심과 정치권력의 욕망은 끝이 없었으니, 심지어 자신의 부인과 장모까지 가차없이 죽였으며, 자신의 아들도 세 명씩이나 죽이는 잔인무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고 알려준 것이다. 그러자 그는 그를 당장 없애버릴 각오를 다지면 공손히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다. 그리고 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자신에게도 알려주도록 했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 아기를 경배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술수였다. 그는 나중에 동방박사들이 자신에게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돌아가자 베들레헴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 살 아래의 사내아기를 다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롯대왕이 아기예수를 경배하길 원한 이유는 자신의 권력욕심에 방해되는 아기예수를 죽여없애려는 뜻에서였던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메시야를 경배하기를 원하지만 실은 자기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메시야도 다 죽여없애고자 하는 인물의 전형이다.

  둘째, 아기예수를 경배하려고 했던 두번째 사람은 있다. 그들은 예수탄생 당시 밖에서 밤에 자기의 양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이었다(눅2:8~14). 그들은 느닷없이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들은 자들이다. 그들은 다만 밖에서 밤에 양떼를 치고 있었을 뿐인데, 아무도 메시야의 탄생을 축하해주는 이가 없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서, 목자들에게 메시야탄생소식을 알려주게 했다. 그래서 갑자기 천사의 방문을 받은 목자들이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어떤 사람들은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는 천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는데, 그것은 주후5세기경의 문헌에 따른 것이지, 예수님 탄생 당시의 목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신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목자들은 사회적으로 권력이나 돈을 가지지 못한 부류에 속한 사람인 것이지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는 그러한 부류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헤롯대왕과는 달랐다. 헤롯대왕은 권력을 차지하고 있어서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목자들은 세상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는 자들이다. 양떼를 치면서 하루하루를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천사가 천해준 소식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빨리 가서 천사가 말해준 소식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한 자였기 때문이다. 단, 하나 그들은 갑작스런 천사의 방문으로 인하여 메시야를 경배하러 갔기에 아기예수께 드릴 선물은 없었다는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아까 공부했던 동방박사들이 있다. 그들은 메시야 경배를 미리 준비한 사람들의 전형이 되는 인물이다. 이들은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정보를 일찌감치 알고 찾아온 자들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사(Nisa)에서 예루살렘을 지나 베들레헴까지 찾아왔던 이방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무려 3,200km나 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그들의 손에는 비록 미흡한 정보만이 들려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가진 정확한 천문학적인 정보를 동원하여, 그 별의 출현이 메시야의 탄생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의 출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분을 직접 뵙고 경배드리고자 니싸에서 짐을 꾸려 수만리 길을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기예수를 만나면 드릴 예물도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그들의 보물상자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5. 과연 어떤 사람이 주님을 만나뵐 수 있고 그분께 경배할 수 있는가?

  과연 어떤 사람이 주님을 만나뵐 수 있고 그분에게 경배를 드릴 수 있는가? 자신의 야망이나 권력욕을 위해서는 자기가족도 가차없이 없애버리는 헤롯과 같은 자는 주님을 만나볼 수도 없고 그분을 경배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목자들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메시야를 만나볼 수도 있고 그분께 경배를 드릴 수도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이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이스라엘 구원할 메시야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만나보기를 원한다면 세상에 대한 욕심과 야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혹 느닷없이 예수님에 대하여 정보를 들었어도 그것을 하나님에 관한 것이라면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메시야를 보고 그분을 경배하기를 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치 동방박사들처럼 말이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야를 직접 만나뵙고 경배하기 위해서 자신의 안정적인 직업까지도 포기했었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메시야를 뵙고 경배하려고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은 그후 어떻게 되었는가? 맹수와 독사에 물려 죽었는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강도를 만나 예물을 빼앗기도 말았는가? 전부 다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의 그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보시고 그들의 순례의 여행길에 동행자가 되어주었다. 어떤 위험에도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주셨다. 그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자신의 직업과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고 메시야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오늘날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그날을 느닷없이 준비할 자도 있겠지만, 미리 준비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참으로 더 복된 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이 뜻밖에 다가오지 않도록 날마다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동방박사들의 메시야 방문은 그래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메시야에게 드릴 경배를 자신의 직업과 목숨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일정과 삶을 돌아보셨던 것이다. 그들은 비록 메시야가 탄생할 장소를 잘 몰랐어도 정확히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뵈옵고 경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미 출발할 때부터 준비해온 예물 곧 보물상자 안에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님께 드릴 수가 있었다. 그렇다. 우리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조금 있으면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께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준비한 만큼 나중에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2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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