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성도는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벧전2:5,9)_2020-01-19(주일)

by 갈렙 posted Jan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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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M4Rm1V_zNVU
날짜 2020-01-19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2:5,9(신약 37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목회자,성도,목사,제사장,제사장의직무를행하는자,만인제사장,목회자의직무,성도의직무,십일조,봉사,말씀사역

교회 안에는 목회자와 일반 성도들이 있다. 이중에서 목회자만이 제사장인가? 아니면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인가?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은 다 제사장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 것을 분명하게 언급했다(벧전2:5,9). 그런데 이 말은 과연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는 뜻이었을까? 베드로는 대체 무슨 뜻으로 제사장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성도라고 언급했을까? 그 뜻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목회자의 할 일은 무엇이며, 성도의 할 일은 무엇인가? 이것을 알면 교회가 세워진다. 목회자와 성도가 가장 아름다운 협력을 이루는 것이다.

 

1. 들어가며

  오늘날 교회 안에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다. 목회자는 보통 "목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 목회자가 군림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목회자만이 제사장이라고 하는 시대는 끝났기에 교회에 십일조를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모든 사람이 다 제사장이 되었는데, 왜 목사에게 십일조를 내야 하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예수님 이후에 제사장직은 없어졌도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 되었는가?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다는데, 그가 주장했던 "만인제사장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목회자와 성도에게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이 둘은 어떤 협력관계를 유지할 때에 가장 아름답게 교회를 성장시킬 수가 있는가?

 

2. 목회자 혹은 목사라는 직책은 어떤 직책을 가리키는가?

  목회자란 "기독교교회 안팎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여 신도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주는 사람"이라고 국어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목회자"라는 직함은 없다. "목사"라는 직함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단에서는 목사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는가? 교단헌법책(통합측)을 보니, 목사는 6가지 신분을 가진 자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목사는 "목자요, 종이자 사자이며, 장로요, 교사요, 전도자이며 그리고 청지기다"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교단헌법책 어디에서도 목회자(목사)를 "제사장"이나 "선지자"라고 칭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목사는 오늘날 교회에서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닌 것이다. 목회자는 말씀사역을 통해서 진리의 길로 성도를 이끌어 주며, 성도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도록 안내하는 자인 것이지, 제사장도 아니며 선지자도 아닌 것이다.

 

3.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인가?

  그렇다면,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이라는 말은 과연 옳은 것인가? 보통은 다 그렇다고들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루터가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도는 "제사장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부름받은 자"라고 해야 정답이다. 그 이유는 만인제사장의 근거가 되는 말씀으로 제시되고 있는 구절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모든 성도가 제사장인 것은 벧전2:5,9에 나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구절들을 보면, 우리말 성경에서는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혹은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벧전2:9)"라고 되어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둘 다 "제사장(히에류스)"가 아니라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히에라튜마)"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어떤 분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이면 그가 곧 제사장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도 제사장이 아닐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무엘선지자다. 그는 에브라임지파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나실인처럼 구별되어 제사장으로 쓰임받았는데, 그는 빈 틈에 들어가 타락한 엘리제사장의 가문의 빈 공간을 채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성도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는 자이지 제사장은 아닌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진정한 제사장이 되는 때는 사실 천국에 들어가서다(계1:6,5:10,20:6). 성도는 천국에 들어가면 그때 진정한 제사장이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만이 제사장이라는 주장도 잘못된 것이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는 말도 사실은 틀린 말이다. 목회자나 성도나 다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부름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4.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제사장설"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루터는 왜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는가? 그것은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 되었으니, 성도들도 교회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나도 제사장이 되었으니 설교도 할 수 있고, 성례전도 집례할 수 있고, 축도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라고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루터는 꼭 사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해야만(고해성사)를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사도들의 중보를 통해서만 미사도 드리고 중보기도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리기 위해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최종적인 제사를 드린 후에 둘째휘장이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는 누구든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고, 죄를 고백해서 용서받을 수도 있고, 누구든지 직접적으로 예배드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니까 평신도도 설교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거나, 만인이 다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는 목사에게 십일조를 바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라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5. 교회 안에 목회자와 성도는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그럼, 예수님 이후 모든 교회에서 목회자나 성도는 다 제사장적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자로서 부름을 받았으니, 둘은 아무런 구별이나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러나 둘은 똑같이 거룩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구약시대에는 오직 레위인들과 제사장들만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예수님 이후부터에는 달라졌다. 누구든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베드로는 성도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자(히에라튜마)라고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 그것은 이렇다. 먼저는 모든 성도들은 어둠 가운데 처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 가운데 나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하였다(벧전2:9). 그리고 둘째로 모든 성도들은 거룩한 교회를 세우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하였다(벧전2:5). 다시 말해, 베드로 사도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거룩한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로서 성도를 "제사장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는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둘 다 거룩한 부르심(제사장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데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목회자와 성도는 서로 다른 사역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다. 목회자는 말씀과 기도사역에 전념하도록 부름받은 자요(행6:4), 성도는 구제나 헌금같은 봉사의 직무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행6:2~3). 고로, 목회자와 성도가 분명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불신자를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은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쓰임받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목회자도 분명 교회를 세우도록 부름받은 것이나,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고 성도들을 사탄마귀로부터 지켜내어서 천국으로 안내하도록 부름받은 것이며, 성도들도 역시 교회를 세우도록 거룩한 부르심을 받았으나 교회의 구제나 헌금 등의 봉사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6. 오늘날의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는 어떻게 쓰임받고 있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목회자가 곧 교회를 세우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고, 성도들이 거기에 동참하여 식당봉사, 차량봉사, 안내봉사, 청소봉사를 하는 것을 가리켜, 목회자가 성도들을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성도들이나 목회자나 다 교회를 세우도록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다만 목회자와 성도가 다른 영역에서 서로를 섬김으로 교회를 건축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목회자는 말씀사역과 기도사역에 전념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성도는 구제와 헌금과 봉사 등의 사역을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청소를 한다고 천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설령 교회에서 주차안내를 해도 다 왕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7. 목회자와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협력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목회자와 성도 간의 가장 아름다운 협력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부름받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도는 성도로서 부름받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 그렇게 하고 있는 교회가 많이 줄어들고 있거나 그렇게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개척교회들의 상황들을 아는가? 개척교회들로서 미자립상태에 있는 교회가 한국에서는 적어도 30%이상이 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그렇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는 이중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목회자 자신이 직업전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목회자의 사모가 직업전선에 직접 나가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마냥 부끄럽게만 생각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목회자도 사람인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을 때에는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목회자가 자립이 안 된다고 직업전선에 뛰어들다보니, 피곤하고 지쳐서 말씀을 연구하고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러면 주일이라도 함량미달의 설교가 선포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그것은 누구에게 손해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성도들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직업전선에 나가 시달릴수록 영혼을 살리는 말씀, 충분히 준비된 말씀, 영양가 있는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빈익빈 부익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목회자들이 마음놓고 말씀사역과 기도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한 개의 교회에서 10~20가정 정도만 십일조를 드리면, 얼마든지 재정자립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목회자들이 본연의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한편 목회자는 성도들이 자신을 배려해 준 것만큼 그들에게 양질의 양식을 전달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다. 성도들이 그렇게 산업현장에서 힘을 쓰는데, 적당히 설교를 준비하고 적당히 기도하는 자가 되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나오며

  교회는 목회자가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교회는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함께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벧전2:5,9). 구약시대와는 달리 신약시대에는 교회를 세우는 모든 사역을 다 거룩한 사역이라고 부른다. 교회를 세우려면 복음을 전파해야 하고, 성도들을 잘 양육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중에서 목회자를 구별하여 따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역하는 봉사자인 것이다. 이들은 말씀와 기도사역에 전념하여 성도들을 구원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러한 목회자를 도와 구제와 헌금 그리고 여러가지 교회 봉사에 힘을 써야 한다. 그럴 때에 새로운 식구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잘 정착하여 교회가 점점 더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교회에서 청소하는 것은 천한 일이요 목회자가 설교하는 것은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세우기 위해 행하는 모든 일은 다 거룩한 부르심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역의 분야만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성도는 성도로서 최선을 다할 때에 아름다운 교회가 건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한만큼 천국에서도 자신의 상을 받게 될 것이다(계22:12). 한 사람이 패하지만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으며, 세 사람이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전4:12). 우리는 서로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교회가 교회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여 구원얻는 백성을 더 많이 산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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