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탈락에 관한 히브리서의 세 번째 경고(히6:4~12)_2020-03-29(주일)

by 갈렙 posted Ma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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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XT4xfO5vkY
날짜 2020-03-29
본문말씀 히브리서 6:4~12(신약 35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히브리서기자, 구원탈락가능성,변절가능성,한번구원영원한구원,히브리서의5대경고말씀,누가구원을잃을수있나,열매로알리라,성숙,대제사장이신예수,중보자

과연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가? 히브리서 6:4~6의 말씀을 가지고,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주장을 따라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때에는 성경을 따라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은 구원탈락에 대해 경고하는 있는 히브리서의 5가지 말씀들 중에 3번째로 나오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지난주 새벽기도회에 시간에 전했고, 오늘은 그 세번째 시간이다. 놀라운 진전이 있을 것이다.

 

1. 들어가며

  최근 들어와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보다 조주빈 사건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성 착취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했던 바, 텔레그램의 n번방의 운영자가 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멈추게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지만 점차 그 활동반경이 커지자 자기도 그 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다. 자칫 잘못하다가 한 두 번쯤 신앙생활에 게을러지고 태만하다가 어느 날 교회출석을 못하게 되면 그는 다시는 스스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어떤 사람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지에 관한 히브리서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어떤 측에서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에서 절대 탈락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듣고 있으면 어떤 주장이 옳은지 헷갈리기도 한다. 물론 안다. 사실 이 말씀은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는 본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떤 말씀이 논란이 있다고 모른 채 덮어둘 수만은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구원탈락에 관한 히브리서 6:4~6의 말씀을 가지고 성경적인 구원관을 나누고자 한다.

 

2. 히브리서는 누가 누구에게 어디에서 쓴 책인가?

  히브리서는 어쩌면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논리적고 신학적인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바울의 신학사상과 복음서의 내용에 대해 꿰뚫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며, 유대교의 율법과 제사문제에 대해서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고, 헬라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그리스도를 다른 무엇과 비교분석해내는데 탁월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히브리서의 헬라어원문을 보면 사도바울을 뛰어넘는 문장실력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까지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쩌면 오리겐의 주장처럼 하나님만이 아실른지 모른다. 어떤 이는 그가 사도바울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실라, 누가, 아볼로, 바나나일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트라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들은 사도바울보다는 후대 사람인 것임에는 분명하다(히2:3). 그리고 적어도 A.D.70 성전 멸망이후 A.D.100년 이전에 로마나 로마근교에 있는 믿음의 성도들을 위해, 바울시대 이후의 어떤 사역자가 그곳을 떠나 있으면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인 듯이 보인다(히13:19). 왜 이것에 대해 먼저 나누게 되는지는 조금 후에 알 수 있을 것이다.

 

3. 히브리서는 어떤 책인가?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어떤 책인가? 히브리서는 왜  쓴 것인가?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 중에서 구원에서 떨어져나가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히브리서 기자(아마도 당시 로마의 어떤 공동체의 지도자였을 것이다)가 그들로 하여금 하늘에 중보자로서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한 구원에서 떨어져나가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주의할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쓴 책이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서는 "하늘에 계셔서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주제이지만, 보조주제로서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4. 히브리서 6:4~6의 말씀은 정말 구원탈락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말씀인가?

   히브리서 6:4~6의 말씀은 과연 구원탈락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말씀인가? 사실 히6:4~6의 말씀은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히브리서의 5대 경고의 말씀 중에 한 중간에 위치해 있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히브리서에서는 배교의 위험성을 알리는 5가지 경고의 말씀이 나오는데(히2:1~4, 3:7~4:13, 5:11~6:12, 10:26~31, 12:1~29), 그중에서 세번째에 해당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아주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으로서 구원은 안전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이 본문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이 본문은 얼핏 보아도 잘 믿고 있었던 자라도 그들 중에 타락한 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려고 한다. 즉 이 말씀에 나오는 타락한 자는 "처음부터 안 믿었던 자"라는 것이다. 단지 이름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결국 배교하게 될 자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타락한 자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뿐 실제는 예수님을 안 믿는 자라고 해석해버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주장은 옳은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과연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타락한 성도들" 곧 "배교자들"이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고 말씀이 해석해 주고 있는 곳으로 가보자.

 

5. 히브리서 6:4~6에 나오는 "타락한 성도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우리는 앞에서 이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편지는 이 책의 수신자에게 보낸 것이 분명하다. 히브리서의 기자가 그들에게 해 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수신자인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깨우쳐주고 그들에게 경계하고자는 목적을 가지고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6:4~6의 말씀도 역시 이 책을 읽어야 할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우리"라고 쓰고 있는 이 책의 저자와 이 책의 수신자로 알려진 "너희"에 대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우리"와 "너희"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브리서 기자는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히6:4~6의 말씀을 왜 쓴 것인가?

  우리는 앞에서 히브리서가 구원탈락을 경계하기 위한 5가지 경고가 소주제로 들어가 있음을 배웠다. 특히 그 내용을 살펴보면, 히6:4~6에서 말씀하고 있는 "타락한 성도들"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제1차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자(히2:1~4). 첫번째 경고의 말씀에 보면 "너희"라는 대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만이 등장한다. 그런데 저자를 포함하고, 히브리서의 수신자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단호하게 외친다. 만약 우리가 이전에 들었던 것에 더욱 주의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흘러떠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이다(히1:2). 그 말은 구약시대에 성도들이 천사와 같은 중보자들의 손에 의해 주어진 율법을 제대로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서 공정한 보응을 받았는데, 하물며 마지막에 와서 아들을 통해 주신 복음을 듣고 얻었던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이다(히2:2~3). 이 말씀은 이미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복음을 들었 또한 복음 안에서 살고 있는 참된 신자인 것을 말해준다.

  이제는 두번째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자(히3:7~4:13). 우리는 히브리서의 두번째 경고의 말씀을 통해서 히브리서 수신자의 정체와 상태를 더 많이 알 수가 있다. 두번째 경고의 말씀 중에 히3:12~14의 말씀을 보면 이렇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고 있으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2-14)" 이 말씀에 따르면, "너희"는 다름 아닌 "형제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믿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시작할 때에 들었언 말씀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될 수 없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기자는 "너희들 중에 혹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자가 있으므로 주의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떨어져나갈 위험성을 가진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번째 경고의 말씀(히5:11~6:12)에 나오는 "너희"는 이미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받은 상태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번째 경고의 말씀 중에서 히6:9의 말씀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들] 곧 구원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노라(확신한 채 있다)(히6:9)"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우선 히브리서 기자(과거에 그들 공동체의 지도자였을 것이다)는 그들에게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너희")은 자기보다 더 좋은 것들 곧 구원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한 채 있다고 언급한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구원받을 수밖에 없는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상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히6장에 나오는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가진 대상이 "너희"를 포함한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공동체를 떠나 있기는 하나, "우리"나 "너희"나 다 말씀에 주의하지 않으면 모두가 구원으로부터 탈락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로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지닌 자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자들"이라거나 "가짜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또한 앞으로도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져나갈 위험성을 가진 성도들이 원래는 큰 은혜를 받았던 자들임을 오늘 본문은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히브리서 6:4~5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가 결국 회개하지 못하고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사람들이 누군지를 더 확실하게 말해준다. 그들은 과거에 5가지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들은 "한 번 빛을 받았던 자들"이다. 이 문장의 동사는 동사 분사 과거 수동태 문장이다. 과거에 이미 하나님의 의해서 빛비춤을 받게 되었던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럼, 여기서 "빛비춤"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자신이 얼마나 어둠에 속해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어, 참 빛이신 예수님께 돌어온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은 히브리서 10:32~33이 말해준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히10:32~33a)". 그렇다. 어떤 칼빈주의자들은 이들이 한 번만 빛을 받았기에 무엇을 알고 있었겠느냐면서 강변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비방과 환난가운데서 구경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그것을 참고 견뎌내었다면, 이들은 분명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인 것이지, 이들을 허당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그들은 하늘의 은사(선물)을 맛본(체험했던) 자들이다. 하늘의 선물은 당연히 성령의 은사들일 것이다. 고로 이들은 방언의 은사, 치유의 은사, 능력의 은사 등을 체험했을 것이다. 셋째, 이들은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던 자들"이다. 원문에 의하면, 이들은 "이미 성령의 참여자들이 되었던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이들은 성령에 의해 예수님이 누군지를 깨달아 회개하고 믿어서 거듭나게 되었으며, 인침을 받았고, 또한 그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다.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던 자들이었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을 두고 어찌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넷째, 이들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레마)를 맛본(체험한했던) 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마음에 부딪혀서 그 말씀의 깊고 오묘함을 체험했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체험했던 말씀은 단순히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말씀이 아니라 주관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부딪혀 반향을 일으켰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가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이들은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다. 원문에 의하면, "장차 오려고 하는 시대의 능력을 체험했던 자들"이다. 즉 천국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체험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의 능력으로 귀신들을 이겼던 자들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보다 차원이 다른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고로, 우리는 이 5가지 조항들을 통하여, 이들은 이미 예수믿고 성령을 체험하고 말씀의 은혜까지 체험한 성도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6. 히브리서 6:6의 "타락했다"는 말의 뜻과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런데 위의 5가지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타락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피상적으로 "타락했다"라고 하면, 그가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으로 돌아가버렸고 허랑방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원뜻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파라핍토"라는 동사로서, "옆으로 떨어지다"는 단어가 결합되어 생긴 파생동사인데, 그 뜻은 "떨어져나가다. 잘못 행하다. 길을 잃고 헤매다. 넘어지다. 무너지다. 엎드려지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동사의 번역을 "타락한 자들"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떨어져나간 자들"이라고 번억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이들이 원래 구원의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이겨낸 자들이요, 그들의 수고를 하나님께서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인데(히6:10), 어떤 이유로 인하여 따로 떨어져 나간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결코 다시 새롭게 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다시 회개하여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있으면서 동시에 공개적으로 수치를 드러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구원받은 자가 믿음에서 떨어져나가게 되면, 그는 다시는 못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요, 이는 곧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끝에 가서는 불살라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히6:8). 곧 이들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7. 따로 "떨어져 나간 자들"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타락한 자들"이라는 말의 뜻을 아주 나쁜 것이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떨어져나간 자들"을 뜻한다. 이는 이들이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따로 "떨어져나간 자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땅의 산출에 관한 비유를 통해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히6:7~8). 땅이 땅위에 [현재] 자주 내리고 있는 비를 흡수한 후에 경작하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생산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겠지만, 만약 땅이 똑같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했음데도 불구하고 가시와 엉컹퀴를 내고 있다면 그는 저주함으로 점점 가까이 가다가 결국에 마지막에는 불사름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삶 속에서 맺고 있는 결과물들이 과연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자들"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심판 때에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이 누군지를 알아볼 것이다"고 심판의 기준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마7:16,20). 왜냐하면 사람이 자주 내리는 은혜의 단비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열매들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계속해서 죄된 본성에 머물러 있는 자일 것이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 변화를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열매를 지금도 맺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이 선한 열매(채소)를 맺지 못하고 악한 열매들(가시와 엉겅퀴)을 맺고 있다면, 그는 지금 떨어져나가고 있는 자들에 속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  무슨 큰 죄를 저질러야만이 "타락한 자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자들"인 것이다. 만약 이들이 그런 상태에서 계속 방치된다면 이들은 저주함으로 점점 더 가까이 나어가다가 죽게 될 때에는 불사름이 되고 말 것이다.

 

8. 우리도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미 얻은 구원의 반열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할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종국에 가서 구원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오늘 본문의 앞뒤 문맥에 살펴보면, 다음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말씀의 초보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해서 성숙하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히5:11~6:2).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구원이 완성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아니다. 이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자라가야 한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어떠한 훈계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달게 받고 이겨내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품은 달라져야 하고 언어도 달려져야 하고, 추구하는 목표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도 공부해야 하고, 기도도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함이 나의 안을 채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어떠한 환난과 유혹에도 인내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히6:11b~12). 어려운 일이 불어온다고 해서 그만 믿음을 포기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래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내가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늘 점검하면서 그것에 합당한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이다(히6:7~8).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피려면, 그는 자신게서 옛사람의 열매가 맺히고 있느냐 아니면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된 새 사람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음에 넘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선한 아름다운 열매를 맺힐 날이 오게 될 것이다.

 

9. 나오며

  그렇다. 구원은 어느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경주와도 같은 것이다(고전9:24~27, 빌3:13~14, 딤후4:7~8).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는 이제 경주자가 된 것이다. 구원의 경주의 트랙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선수가 그 경주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면, 그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트랙에 들어서지도 않은 자(불신자)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도 구름깥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처럼 날마다 죄와 싸우고 회개하여 죄를 벗어던지고, 인내함으로 자기 앞에 있는 경주를 경주해야 한다고 독려한다(히12:1). 그러면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 그 목적지에 잘 도착하게 될 터인데, 예수님에게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우편이었다(히1:3,8:1,12:1).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쉬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결코 트랙에 올라와서 경주하고 있는 우리들을 본체만체 할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오늘도 보혜사로서 일하신다(요일2:1~2). 특히 대제사장으로서 말이다(히3:1). 고로 그분이 승천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직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무슨 일을 하시는가? 첫번째는 우리가 회개할 때 그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다(히2:17, 요일1:9). 그리고 두번째는 우리가 요청할 때에 즉시 전능자로서 응답하여 우리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신다. 모세가 여호수아의 승리를 위해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한 것처럼 말이다(출17장).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된 본성을 이기고, 악한 귀신들과의 싸우는 현장에 결코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분이 지금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라. 그리고 간구할 때 즉시 그분이 개입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지혜를 열어 우리에게 주시고 능력도 부어주시고 ,용기도 부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것이 대제사장으로서 예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3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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