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 하나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는 것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요10:10).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었는가? 그것은 어떻게 우리 안에 분배되고 있는가? 이미 우리에게 분배된 생명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지키고 보존할 수 있는가? 누구의 말대로 한 번 받은 영생은 주의 은혜로 영원히 보존되기에 안전한 것인가? 참으로 놀라운 생명의 신비들이다. 우리도 이 땅에 살 때에 이 생명을 잘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 자만 생명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사실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속죄가 필요하며, 또 하나는 생명의 분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범죄하여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기에 그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속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일들을 수행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으로 속죄사역을 행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생명을 나눠주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주려고 했던 "생명"이란 대체 어떤 것을 뜻하는가? 그리고 이 생명을 사람들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이 생명을 받은 자가 이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하여 다음의 세상에서도 누리려면 또한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러한 생명을 주시려고 한 것인가? 생명은 물건인가 아니면 어떠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가? 생명을 사실 볼 수가 없다. 어느 누구도 생명이 실체에 대해서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생명'과 '목숨'은 같은 개념인가?
생명이나 목숨은 서로 비슷한 단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단어다. 먼저 헬라어로 볼 때, '생명'은 '조에'라는 단어이고, '목숨'이라는 것은 '프쉬케'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말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심지어 목숨(프쉬케)를 생명(조에)라고 번역함으로써, 둘을 서로 혼돈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는 요12:25이다. "자기의 생명(프쉬케)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프쉬케)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5)" 이 문장에 나오는 '생명'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쉬케(목숨)'이란 단어다. 예수께서는 사람은 자기의 목숨(혼)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 이 세상에서 어찌하든지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자가 될 때에 그것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프쉬케'란 타락한 옛사람의 목숨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형제들은 죽기까지 자신의 목숨(프쉬케)를 아끼지 아니함으로 사탄마귀를 이긴 것이라고 사도요한은 증언하고 있다(계12:11).
2)예수께서는 왜 인류에게 '생명'을 주셔야만 했는가?
요10:10에 보면, 예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조에)"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눠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생명은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에게만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분은 "독생자"라고 불리었다. 왜냐하면 홀로 생명을 가진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속에 생명을 가지고 계셨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오직 아들에게만 주었고(요5:26), 예수께서 그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 이유는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생명을 나눠주시기 위함이었다(요10:10).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했던 것은 "목숨"이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나눠주시려고 우선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놓으셨다(막10:45). 예수께서 인류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공급하시려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생명을 인류에게 공급하셨는가? 그것은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통해서 공급하는 것이었다(롬8:1,고전15:45). 생명주는 영이 되어 사람들 속에 바람처럼 호흡처럼 들어가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생명을 소유하신 성령께서는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주하심으로 생명을 공급하고 계신다. 고로 성령을 받은 자는 그분과 동시에 생명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3)생명의 속성이 영원하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생명에 대해 가장 많은 말씀을 기록한 사도는 요한이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를 통하여 생명에 대한 많은 말씀들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생명'이라는 단어와 '영생(영원한 생명)'이라는 단어를 상호교차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왜냐하면 '생명'이라는 속성이 영원하다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떤 이들은 생명의 속성이 영원하다는 것을 사람이 영생을 받으면 영원무궁토록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왜곡된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려는 생명의 속성이 "영원하다"는 것을, 사람이 받은 생명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가르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바로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여기서 "영원하다(아이오니오스)"는 단어는 생명은 결코 파괴될 수도 없고 없어질 수도 없고 계속해서 보존되는 성질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영생을 한 번 소유하게 되었다면, 아무도 그에게서 생명을 파괴하거나 없애거나 할 수가 없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으로서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4)생명이 "영원하다"는 것과 "영원히" 산다는 것을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요10:28의 말씀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많은 분들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이 한 번 영생을 받으면 영원토록 잃어버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분은 지금 2가지를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파괴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가 얻는가를 잘못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들(그것들)"에 준다고 하셨다. 그들(그것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 앞구절을 보면 "양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떤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했는가?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 자들이라고 하셨다(요10:27). 둘째, "영원히"라는 단어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영원히"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이스 톤 아이오나"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 시대까지(till the age)"이다. 왜냐하면 '아이오나'의 원형은 "아이온"인데, '아이온'은 '시대(age), 세대(generation), 세상(world)'으로 번역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톤'은 정관사(the)이며, "에이스"는 영어로는 "into(~안으로)"라는 뜻으로서, 이것이 시간명사와 결합되면, "~하는 동안, ~할 때까지"라는 뜻으로 바뀐다. 고로, "에이스 톤 아이오나"는 "그 시대까지, 그 세대까지, 그 세상의 때까지"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번역자들은 "에이스 톤 아이오나"를 "영원무궁토록, 세세토록"이라는 의미로서 "forever"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헬라어로 "영원무궁토록" 혹은 "세세토록"이라는 단어는 "에이스 톤 아이오나"가 아니다. 그것은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이라는 문구로서(계4:10), 영어로 표현하자면, "till the ages of the ages"라는 것이다. 이는 "그 시대들의 시대들까지"라는 뜻이다. 고로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이야말로, "영원무궁토록, 세세토록"이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요10:28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한다. "내가 그것들(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혹은 주고 있다). 그것들은 결코 스스로 그 시대까지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것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한 번 주님께서 양들에게 주신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서 결코 파괴할 수 없고 없앨 수도 없는 생명인 것이다. 그러나 그 생명이 주어진 시기는 "그 시대가 올 때까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그 생명을 잘 보존해야 한다. 만약 "에이스 톤 아이오나(그 시대까지)"를 "영원무궁토록, 세세토록"이라는 의미였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제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신 경우가 있는데, 그 의미 역시 "그 시대까지"라는 의미였던 것이지, 결코 "세세토록"이라는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 요11:25~26의 말씀을 예로 보자."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에이스 톤 아이오나=그 시대까지)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만약 "에이스 톤 아이오나"가 "영원무궁토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면, 예수님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주님에게 우리에게 주시려는 생명은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고 죽일 수도 없는 영원한 생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생명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는 기간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까지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지만 그것을 받아서 잘 보존하고 있다가 다음 세상에서도 영생을 누릴 것인지는 우리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5)생명은 사망과 각각 어떻께 다른가?
생명은 예수 안에 있다고 하였다(요일5:11).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요(요14:6), 그분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1:25). 그런데 사망은 사탄마귀가 가지고 있는 세력이다. 왜냐하면 사탄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이기 때문이다(히2:14).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실 때가지만해도, 이 세상에는 사망을 세력을 잡고 있는 마귀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히2:15). 사실 이 세상에는 생명이 없었고 사람들은 목숨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예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대속제물로 내주셨다. 그리하여 사망의 값을 지불하셨다. 그리고 죄없는 예수님을 불법적으로 죽인 사탄마귀를 심판하여, 음부에 가두어버리셨다. 앞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잠깐 내놓으실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탄마귀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빼았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지금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주님에게 주어져 있다(계1:17~18).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오지를 않았다(요5:40). 그런데 제자들이 그분에게 가까이 나아왔고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있는 생명을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나눠주신 것이다.
6)생명이란 무엇인가?
고로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정의할 수 있다. 곧 "생명"이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더이상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있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오직 예수님으로 통하여 인류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서, 영원히 파괴될 수 없고 없앨 수도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3.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과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과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둘 다를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과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말씀하셨다(요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어 그의 독생자를 주셨는데, 그를 믿고 있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으며 영생을 계속해서 얻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자기 속에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요일5:13). 그런데 더불어 예수께서는 사람이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마19:17). 이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마18:8). 고로,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과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영생을 얻는 곳은 이 세상에서부터이지만,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은 다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생을 얻는 것은 우리 속으로 영생을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얻은 영생은 우리 안에 하나의 원소처럼 들어왔지만, 우리가 영생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우리 자신이 영생 안에 하나의 원소처럼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천국이 바로 생명의 나라요 영생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더이상 사망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계21:4).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사망과 음부를 불못에 던져버리고,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인 마귀도 불못에 던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생명이 가장 풍성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망이 전혀 없기 때문이요, 오직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계시며, 생명을 나눠주고 계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생명과 관련이 있다. 그곳에 있는 물은 "생명수"이며, 그곳에 있는 강도 "생명강"이다. 그리고 그생명강의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생명책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망을 이기고 자신의 목숨을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것이다.
4. 받은 영생을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믿음으로 받은 영생을 지켜서 다음 세상에서까지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받은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럼, 영생은 대체 언제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죽는 그 날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이는 보혜사 성령이시다.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시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롷다면 보혜사 성령께서는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구속의 날까지"다(엡4:30). 고로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사도요한은 요일5:11~12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지만 그 생명은 그의 아들 안에 있다고 정확히 말했다. 인격체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영생이 있는 것인데, 영생은 하나의 물건처럼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는 날 성령께서 떠나가셔서 소멸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안에 영생을 가지고 들어오신 예수님을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날에 성령께서 우리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볼 지도 모른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그렇다.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신지 아니 계신지를 잘 모르는 자는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아니 계실 수도 있다. 아니 이미 예수님을 모신 자였으나 실격자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령께서는 우리가 구속받는 그날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에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가실 수가 있다. 그러면 하늘에 기록된 생명의 책에서 우리의 이름도 지워질 것이다(계3:5). 고로 우리는 항상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예수님 곧 우리를 성전삼고 거하시는 성령을 주의해야 한다. 죄를 짓고도 그분을 계속해서 근심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분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영생하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죄를 지었으면 즉시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분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내 목숨을 앗아가려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목숨도 내어놓을 수가 있어야 결국 생명을 지켜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이 세상은 사실 사망과 생명이 공존하고 있는 장소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있을 때에만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려는 생명을 얻지 못한 채, 그냥 죽게 된다면 우리는 영영 이 생명을 얻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 살아있을 때에 이 생명을 얻지 못했다면 그는 생명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생명은 사실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도록 열려져 있다. 그가 믿는다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께서 속죄를 위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 다음이 중요하다. 생명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이 생명을 지키고 보존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 이 생명을 받게 되면 영원히 잃어버지 않을 것이라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성령께서 이 생명을 책임지는 날은 구속의 날까지이기 때문이다(엡4:30).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약화되지 않게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풍성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을 소멸시켜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잘못했다가는 그날에 성령께서 우리 곁을 떠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0년 08월 09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