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서로 역전되지 않으려면?(마20:24~27)[2부예배]_2021-01-31(주일)

by 갈렙 posted Jan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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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JHyq1X7FVfc
날짜 2021-01-31
본문말씀 마태복음 20:24~27(신약 3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섬기는자,천국에서큰자,천국에서종으로살아갈자,섬기는자와종이받을복,역전되는두사람,이자익목사와조덕삼장로

마20:26~27은 헬라어원문성경과는 좀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왜냐하면 원문에는 천국에서 사는 성도들 중에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로 그리고 종으로 사는 자도 있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 정말 천국에 들어가서도 남을 섬기는 하인처럼 사는 자가 있을까? 만약 정말 있다면 대체 누가 그러한 사람이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1. 들어가며

  왜 사람은 거듭나야 하는가? 그 이유는 그래야 그 사람의 영이 비로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미 영이 작동되기 시작한 사람이라도 혼으로 인하여 자신의 혼을 사용하면서도 영을 사용한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육신이 가진 이기적인 욕망과 허영심을 경건한 열심에 붙여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세베대의 두 아들들의 요청과 제자들의 격분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과 제자들의 격분으로 인하여 주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국에서 성도들이 얻게 되는 신분에 관한 중요한 말씀이 들어 있다. 

 

2.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와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의 격분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A.D.29년경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지 약 3년이 지나가던 어느날, 예수께서는 이제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되면,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제자들도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마19:28).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자고 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에 예수께서 이제 드디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어 다윗과 같은 나라를 세우시려는가보다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아서 다스릴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를 야고보와 요한이 탐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님과 친인척관계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꼬드겨 그 자리를 약속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의 격분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자기들도 말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위치를 탐내는 개인적인 욕망과 시기질투심이 발동한 것이다.

 

3.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천국의 신분에 관한 말씀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모아서 들려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장차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그곳에서 얻게 될 신분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그 내용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매우 생소한 것이다. 다만 제대로 번역된 원문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대체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은 한글개역성경과 헬라어원문성경에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 먼저 무엇이 다른지 서로 비교해보도록 하자. 

마20:26-27[개역]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0:26-27[헬라어직역] 너희 중에는 [장차] 이와 같은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만약 너희 중에 누구든지 [단번에] 크게 되기를 [계속] 원한다면, 그는 [장차] 너희들의 섬기는 자(디아코노스)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너희 중에 누구든지 [계속해서] 첫째이기를 [계속] 원한다면, 그는 [장차] 너희들의 종으로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번역본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지 잘 분간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본문의 뜻은 정반대로 천국의 신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개역한글성경을 보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천국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땅에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헬라어원문은 누구든지 이땅에서 크게 되기를 계속해서 원하고, 으뜸이 되기를 계속해서 원한다면, 그는 장차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다른 형제를 섬기는 자로 있게 될 것이고, 다른 형제의 종으로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섬기는 자 혹은 종의 신분으로 사는 시기가 서로 다른 것이다. 개역성경의 본문은 이 땅에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번역이고, 헬라어원문성경은 저 천국에서 그렇게 되는 자가 있다는 번역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른 두 본문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 성경을 번역할 때에 사용한 대본이 본문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개역성경의 본문은 헬라어소문자사본을 가지고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고, 오늘 사용된 헬라어원문은 헬라어대문자사본을 가지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둘째, 헬라어대문자사본을 가지고 번역하면 익히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내용이 나오는데, 성도라도 그것을 쉽게 수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번역자들은 헬라어소문자사본을 가지고 번역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한글성경번역본들이 그런가? 그렇다. 수십종에 달하는 모든 한글성경은 다 개역성경처럼 번역하였다. 하지만 영어성경은 약간 다르다. 헬라어소문자사본에서 번역한 성경도 있고(NIV, KJV, ESV), 헬라어대문자사본에서 번역한 성경도 있기 때문이다(ASV, NASB, 다비, 위클리프).

  그러면 두 본문은 실제로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동사의 차이다. 먼저, 헬라어소문자사본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에스토)...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에스토)"고 나와 있지만, 헬라어대문자사본은 "너희의 섬기는 자로 있을 것이요(에스타이)...너희의 종으로 있을 것이다(에스타이)"라고 되어 있다. 소문자사본의 Be동사가 현재, 명령법, 능동태 구문이지만, 대문자사본은 미래, 직설법, 능동태구문이다. 그러므로 현재명령법 문장은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명령형으로 번역하였고, 미래직설법 문장은 장차 그렇게 될 것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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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국에서 정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종으로 살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이제 개역성경본문(소문자사본)과 헬라어본문(대문자사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본문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것은 역시 대문자사본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소문자사본(TR, 베자...)은 11세기 이후에 등장한 사본이며, 대문자사본(네슬알란트, 티센토르프, 비잔틴...)은 4~5세기에 벌써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서, 대문자사본이 훨씬 더 원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그토록 크게되기를 계속해서 원하는 자가 천국에서는 다른 형제를 섬기는 자가 된다는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누가 누구를 섬기는 것인가? 그것은 이 땅에서 큰 자가 되어서 약하고 힘없는 자를 억누르고 군림하고 부리고 권세를 행사했을 때에, 이 땅에서 권세부리는 자가 천국에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5. 천국에서 성도는 어떤 신분은 갖게 되며, 그중에서 "섬기는 자" 혹은 "종"는 어떤 종류의 신분인가?

  그렇다면, 천국에 있는 성도들 중에 누가 큰 자가 되고 누가 섬기는 자가 되는가? 그것은 천국에 있는 성도들을 부르는 명칭을 통해서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을 부르는 명칭에서는 대략 7가지 정도가 나온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련성에서 볼 때, 천국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요(계21:3), 하나님의 아들들이며(계21:7b), 하늘나라의 상속자요(계21:7a), 하나님의 종(계22:3)이다. 그리고 둘째, 예수님과의 관련성에서 볼 때, 천국성도는 정결한 처녀이자(요14:4),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다(계21:9). 그리고 마지막으로서 그곳에서 갖는 신분에 따라서는 천국성도는 왕들과 민족들이 있고(계21:24~27,2:26~27), 제사장(계5:10)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마20:26~27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섬기는 자" 혹은 "종"이란 대체 이들 중에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민족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천국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명칭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섬기는 자"란 천국에서 다른 성도를 섬기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족들은 천국에서 다른 형제인 왕을 섬기는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땅의 왕들은 그들이 여러 민족들 위에 권세를 갖고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6~27). 그런데 그렇다손치더라도 천국에서 왕들과 민족들의 관계는 이 땅에서의 같이 상명하복의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왕들은 자원함으로 민족들을 돌보는 자를 가리키며, 섬기는 자 혹은 종이란 기쁨으로 다른 형제를 주인처럼 섬기는 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들은 이 땅에서의 집권자들이나 대인처럼, 자기를 섬기는 자에게 권세를 부리거나 직권을 남용하고 압제하지 않는다. 왕들은 섬기는 자와 종을 목양하기 때문이다(계2:27). 여기서 "목양한다(포이마이노)"는 말은 목자로서 섬기는 자들을 양떼들을 돌보듯이 돌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들은 결코 민족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천국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다. 

 

6. 천국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종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진짜 있을까?

  지금까지 알려진 천국과 지옥의 간증을 다 들어보면, 천국성도들 중에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는 천국성도가 있더라고 간증한 사례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은 비유적인 표현이요 경고하는 말 정도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 중에는 손과 발의 어느 한쪽이 잘리거나, 어느 한쪽 눈이 없는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말씀이 나온다. 물론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므로, 마20:26~27의 말씀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더욱 더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도 그리 나쁜 것을 아닐 것이다. 아니 소문자사본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의 차원에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에서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천국에 갔다온 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들이 천국에 가서 천국을 다 보고왔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이 몸을 빠져나가 천국에 다녀온 성도들은 사실 천국의 모든 것을 다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것만 보고 온 것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의 전 인류가 230억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중에 10% 정도가 천국에 간는 것으로 친다면, 천국성도는 약 23억 정도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 현재 살아있는 분들을 뺀다면, 적어도 14억 정도가 천국에 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천국에 있는 14억이나 되는 천국성도를 다 보고 왔을까? 그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천국지옥 간증에서, 아직까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이 있다는 간증이 없다고 해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정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7. 나오며

  나는 과연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어떤 신분으로 살게 될까? 왕노릇할 자로 살 게 될 것인가 아니면 섬기는 자로 살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참으로 우리에게는 무거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 중에 어느 누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도 시기질투하지 않고 축하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천국에서 진짜로 다른 형제를 섬기는 종으로서 살 자가 있다면, 나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은 진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삶의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신분 혹은 직분은 영원히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원히 갖게 될 신분과 직분을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차려야 한다. 언제나 남을 부리려고만 하고 군림하려고 했던 우리 자신이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내려놓아야 한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종된 신분처럼 살아야 한다. 마치 머슴을 주인처럼 섬긴, 김제의 금산교회의 조덕삼장로처럼 말이다(https://blog.naver.com/hjh044/221939981861). 건투를 빈다. 

 

2021년 01월 31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