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창세기 이야기는 모든 것의 시작을 알려준다. 만물의 시작이 어떻게 있었으며 인간은 어떻게 창조되었고 뿐만 아니라 죄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인간구원의 약속은 어떻게 주어졌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던 아담과 하와는 과연 천국에 들어갔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대체 무엇이며, 그리 죄의 어떤 결과가 그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구원의 조건이 아담과 하와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것일까?
2.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어떤 상태에 있는가?
우리 주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나누신 대화를 살펴보면 깜짝 놀랄만한 기록이 나온다. 그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2천년간 할례를 받아왔으며, 모세 때부터 약 1,500년간 율법을 지켜왔던 유대인들을 두고 예수께서 "너희 아버지는 마귀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8:44). 더욱이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서는 "뱀들아, 독사의 소생들아"(마23:33)라면서 엄하게 질책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죄된 본성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되어서 나면서부터 뱀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우은 롬5:12에서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도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는 모든 인류의 범죄였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그의 허리에 씨의 형태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담이 지은 죄는 대체 무엇인가?
3. 아담이 지은 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담은 대체 무슨 죄를 저지른 것인가?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아담이 저지른 죄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세기 3장이 가르쳐주고 있는 죄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죄의 시작과 근본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이 가르쳐주는 죄란 결국 마귀의 말을 들은 것으로서, 마귀의 말을 듣고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가 된 것이다.
그럼,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인가? 사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선악과을 두신 것은 그 나무의 실과도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먹게 하기 위해 둔 것이지, 그것을 영원히 먹지 못하게 하려고 거기에 두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먹는 우선순위가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순서를 뒤집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그렇게 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죄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 곧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전과 먹은 후의 차이점은 단 한 가지 그것 뿐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눈이 수치스럽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되어서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것이 수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도 그는 벌거벗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수치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고 나니 그것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이 자기 안에 선과 악을 먹어 선악을 자기 안에 받아들인 것이 죄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선과 악의 의지가 우리의 몸을 끌고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때 악이 시키는데로 하여 그것의 소원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게 되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선악과는 하와가 먼저 따먹었다. 하지만 그것을 죄라고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담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담이 하와가 건네준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범죄하게 된 것이다.
4. 구원의 조건은 무엇인가?
사람이 구원받는 조건이란 무엇인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과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가장 확실한 구원받는 방법이기 때문이다(막1:15, 마4:17, 7:21). 여기서 믿음이란 예수께서 누구시며 그분이 인류를 위하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것을 가리키며, 회개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지금까지 죄를 짓고 살아왔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가 동반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5. 하와와 아담은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갔는가?
그렇다면 죄를 지은 하와와 아담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이들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갔을까? 아담과 하와를 각각 나누어서 살펴보자.
첫째, 아담은 천국에 들어갔는지부터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담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간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왜냐하면 그가 천국에 들어간 것인지에 대한 몇 가지 증거들이 성경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첫째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메시야의 족보책에 아담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법률적인 부친에 관한 족보책이요, 누가복음 3장은 예수님의 혈통적인 모친에 관한 족보책이다. 그런데 족보에 원래 들어가 있어야할 이름들이 빠져 있는 것이 상당히 보인다. 즉 애굽에 들어가서 살던 많은 세대의 이름들이 빠져 있으며, 사사시대 340년간의 이름들도 족보책에 빠져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부분 우상숭배하다가 회개하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 중에서 여호람왕의 후대인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가 빠져 있으며, 요시야왕의 후대인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왕도 빠져 있다. 그리고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의 후손들로서 5대(하나냐, 스가냐, 스마야, 느아랴, 에료에네)도 역시 빠져 있다. 그런데 가장 의아한 것은 남유다 왕들 중에 가장 우상숭배를 많이 하고 자기자식을 몰렉신에 바쳐 죽이고 이사야 선지자를 죽었던 므낫세왕이 족보책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역대하 33장에 보니, 그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크게 겸손하여 기도를 드렸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리 죄를 많은 지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틀 알려준다. 또한 메시야의 족보에는 엉뚱하게 여자들의 이름도 들어가 있다. 왜 그런가? 유다의 며느리이었다가 부인이 된 부정한 여인 "다말"이 들어 있고, 보아스의 아내가 된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 다윗의 아내가 된 우리야의 아내였던 과부 "밧세바",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이 된 헬리의 딸 "마리아"가 들어 있다. 이들 중에서 마리아를 제외한 다른 여인들은 부정하여 이방인이자 흠이 있는 여인들이지만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은 이들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하여 메시야의 조상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신분이나 직업이나 혈통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사도바울은 아담을 "오실 자의 모형"으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아담이 구원받은 증거가 된다(롬5:14). 이는 곧 아담이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약인물로서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인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셋째로, 아담의 천국행이 확실한 이유는 아담이 범죄한 후에 여자의 씨 곧 구원자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자기의 후손에게 전해주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그가 그동안 자기의 아내로 주어진 여자의 이름을 짓지 않았다. 하지만 범죄 후 하나님의 책망을 들은 다음, 그녀의 이름을"하와"로 지어주었다는 점에서 아담은 회개하고 믿음을 붙잡은 증거가 된다. 또한 그는 자신의 경건한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었다는 점에도 들어 있다. 사실 "하와"라는 이름은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담은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아내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었으나, 나중에 그는 철저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한 "여자의 후손"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아내가 그러한 사람을 반드시 낳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그의 아내의 이름을 "생명"이라고 지은 것이다. 고로 경건한 믿음의 계보를 잇는 후손들은 아담으로부터 회개와 믿음을 전수받가 믿음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담이후 경건한 자손으로 셋, 에노스, 에녹, 노아 등등의 이름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하와는 천국에 들어갔는가? 하와에 천국에 들어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창세기 3~4장에만 그녀에 대한 언급이 나올 뿐이고, 신약성경에서는 단 두 구절만 나온데, 양쪽의 성경을 다 살펴보더라고 그녀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천국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먼저, 구약성경의 기록은 창3~4장에 나오는 것이 전부인데, 그녀가 "여자의 씨"라고 여겨지는 아들은 낳았는데 매우 실망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첫째아들 가인을 낳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얻음"이라고 지었지만 둘째아들 아벨을 낳고는 "허무"라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자기 딴에는 가인이 뱀의 머리를 박살내줄 사람으로 보았는데 그가 그런 인물이 못 되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가인은 살인자가 되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만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로 하기 위해 다른 씨를 주셨으니 그가 바로 "셋'이라는 아들이다. 그녀는 또 얼마만큼의 아들이 더 산출되어 흘러가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있을른지 걱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사도바울에 의해 딱 2번 언급되는데 그때마다 그녀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로 그녀는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한 자의 예표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며(고후11:3), 둘째로 그녀는 아담보다 먼저 뱀에게 속아 죄를 지은 장본인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만일 그녀를 따르는 여자들(교회를 지칭함)이 정숙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할 때에만이 자신의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딤전2:14). 또한 신구약의 말씀에 따르면 그녀는 머리가 되는 남편의 철저한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구원문제는 여전히 조건적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므로 그녀가 구원받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6. 나오며
하와는 먼저 죄를 지음으로 인류 가운데 죄를 가지고 들어온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범죄한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엄히 책임을 물으셨다. 그래서 그녀는 자식을 낳되 고통 속에서 수고로이 자식을 낳게 되었다(창3:16a). 그리고 그때 이후부터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사모하게 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다(창3:16b). 결국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에 대한 기사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구원에 관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지만 구원의 여부는 본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느냐 그리고 동시에 주께서 이미 십자가상에서 이루어놓으신 속죄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여전히 조건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서 받아들였던 여자의 후손인 여자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다. 이제 주께서 다시 오심으로 인하여 인류를 구속할 날이 그리 많이 남아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구속이 눈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계2:7). 죄와 마귀를 이기는 자만이 결국 천국에 들어가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되고 문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서는 정말 철저한 회개가 날마다 필요하며(계22:14), 죽음의 고통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붙드는 것이 필요하다(마10:22). 저와 여러분은 꼭 회개하고 믿음을 끝까지 붙드는 자들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를 바란다.
2021년 03월 07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