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사람은 어떻게 죄사함을 받게 되는가?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면 그냥 죄사함을 받게 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영접할 때 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과거에 지은 죄들을 회개할 때에 용서를 받게 되는가? 이것인지 저것인지 알송달송하다. 왜 그런가? 그것은 속죄가 정확히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전자의 말씀도 들어보았고 후자의 말씀도 들어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정확히 말씀은 무엇인가? 오늘은 특히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하고 있는 말씀과 더불어 육신을 입고 오셨던 전능하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 과연 어떻게 말씀하셨을까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부분은 구원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역하므로 이 부분이 명확하게 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명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구원도 요원할 것임을 잘 명심하고, 죄사함에 관한 바른 성경적인 진리를 붙들도록 해보자.
2. 구원파의 한 부류인 박옥수목사는 사람이 어떻게 죄사함을 받는다고 주장하는가?
구원파의 한 부류인 박옥수목사는 줄기차게 수 십 년간을 죄사함의 비밀에 대해 가르쳐왔다. 지난 주에도 온라인으로 <박옥수목사성경세미나>를 개최하고는 그것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였다. 그는 권신찬(유병언), 이요한(이복칠)과 함께 구원파의 3대 지도자들 중에 해당하는데, 그는 지난 주에 이렇게 말했다. "그날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졌으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을 우리가 믿고 있다면 그는 이미 죄사함을 받은 것이다" 여러분은 혹시 이 말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동의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말은 보면,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듯하나 사실은 거짓된 가르침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부분에 관하여 성경적인 진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박옥수목사와 같은 자에게 속아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옥수 목사의 말대로 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믿을 때에 죄사함을 받는가? 그래서 믿은 후에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함을 받는가? 그리고 한 번 믿었으면 그때 모든 죄들이 다 용서되었으니 더이상 회개하지 않아도 우리는 용서를 받은 것인가?
3.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속죄제사와 관련하여 어떤 말씀을 들려주었는가?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사람의 속죄에 관련하여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것은 히10:18~19의 말씀에 나온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와 불법들을 사하여 죄를 기억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인데, 그때가 되면 더이상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어떻게 들릴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했으니, 그날 우리 모두의 죄는 용서받은 것이며, 그날이후에는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기억하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속죄를 믿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은 것이다"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박옥수목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날 피흘리심으로 이미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했으니, 이것을 믿는 자는 더이상 죄용서를 받기 위해 회개하거나 혹은 자백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한다. 과연 이 말은 진실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박옥수목사의 말이 솔깃하게 들리는 것인가? 그것은 그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제사를 마지막으로 드리신 일과 우리의 죄사함은 분명 다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속죄제사가 곧 우리의 죄사함이라는 도식을 믿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그러한 도식이 없는데도 말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박옥수목사가 했던 말들을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의 모든 죄들도 사함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히브리서를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우리말 번역이 조금 미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먼저, 히10:17~18의 말씀을 우리말 개역개정성경으로 먼저 읽어보자. 우리말 개역개정에는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의 말씀만 얼핏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를 위한 마지막의 속죄제사를 드렸으니 그때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그때 우리가 지은 죄들을 하나님께서도 기억하지 아니하신다고 했구나. 그러니 내 죄는 다 사함받았구나 하고 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헬라원문에서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헬라어원문을 보면 이렇다. "그리고 그들의 죄들과 그들의 불법들을 내가 결코 더이상 장차 기억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죄들과 불법들)의 용서가 있는 곳에는 더이상 죄에 대하여 [희생제물을]을 바침이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헬라어직역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2가지 사실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죄와 불법들이 사라져 기억하게 되지 않는 시점을 십자가 사건의 때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사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장차 미래의 어떤 시점에 그렇게 된다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둘째로 죄들이 용서가 있을 때에는 더이상 죄에 대하여 희생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때가 십자가 사건이라고 말하지도 않으며, 모든 인류의 죄들이 그날 예수님의 피로 용서되었으니 더이상 속죄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 결단코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이뤄졌다고 믿고 있는 것이이다. 아니다. 우리를 구별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속죄제사를 드린 것과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 것에는 그 시점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이 둘의 싯점은 같기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후에 좀더 살펴보자.
4.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과연 몇 가지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대체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한 가지인 것 같지만 실은 2가지다. 하나는 죄(원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요, 또 하나는 죄들(자범죄들)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앞의 것은 그날 완료되었지만 뒤의 것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다시 말해, 앞 뒤과 바뀌었지만 예수께서 그날 십자가에서 피흘신 일이 한 가지 있고, 그날 죽으신 일이 또 한 가지 있는 것이다. 피흘린 것은 죄들(자범죄)들의 용서를 위한 것이요, 그날 돌아가신 것은 죄(원죄)의 값을 치르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그날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셨으며(롬5:12, 6:23), 자범죄들을 용서를 위해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날 예수님께서 우리 죄[들]를 대신하여(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를 섞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날 예수께서 우리의 자범죄들을 용서하기 위해 피를 흘리셨으며, 또한 우리의 죄(원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문제는 예수님의 이러한 속죄제사가 모든 죄를 사(용서)했다고 말해버린다는 것이다. 더욱이 더 나쁜 것은 박옥수목사처럼 그날 우리의 모든 죄들이 다 사해졌으니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날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죄까지도 하나님께서 지워버렸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그 죄를 기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싯점이 잘못되어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날에 우리의 죄가 다 사해진 것이 아니요, 그날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피가 흘려진 것이요, 우리가 회개할 때에 지금도 흐르는 피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5. 만약 예수께서 그날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사하셨다면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가?
만약 그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사하셨다면, 왜 부활하신 예수께서 왜 믿는 자가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겠는가? 만약 그날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했지만, 그날 모든 인류는 다 구원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날 인류는 다 구원받지 않았다. 만약 그날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모든 인류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파내서 버려야 한다. 자, 다음의 성경구절을 읽어보라. 첫째, 계22:14의 말씀을 보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고 있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렇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요한에게 쓰게 한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자기의 더러워진 겉옷을 세탁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래야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이야기이다. 둘째, 계2:16의 말씀을 보자. "그러므로 회개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렇다. 만일 사람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수께서 친히 오셔서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으로 그들을 죽이시겠다고 하셨다. 한 번 예수님을 믿었으면 더이상 회개를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만약 그래도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주님께서 그를 지옥보내시겠다는 뜻이다. 셋째, 계3~5의 말씀을 보자. 여기에서는 예수께서 사데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회개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래서 흰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흰 옷을 입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이름도 지워질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 그렇다. 한 번 회개하고 믿었으면 그때에 모든 죄를 다 용서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라면 계속해서 지은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어떻게 당부하셨는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때 무엇을 전하라고 하셨는가? 그 내용에는 "회개"를 전파하라고 하셨다. 즉 "또 그(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로다(눅24:47~48)"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죄사함을 받으려면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반드시 회개도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자라도 죄를 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를 해야 한다(막1:14~15, 마4:17).
6. 예수께서 이루어놓으신 속죄를 믿기만 하면 회개를 안 해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그런데도 구원파의 박옥수 목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미 완성하신 속죄제사를 믿기만 하면 자신은 죄사함을 받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속죄제사가 분명 인류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사였던 것은 분명하나, 그 제사로 인해 죄사힘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속죄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날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계속해서 살아있어, 회개하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날 예수께서 흘리신 피는 모든 인류가 죄사함을 받게 하기 위하여 새롭게 속죄의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날 드려진 속죄제사는 모든 인류의 죄를 끝내버린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로 모든 믿는 자가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피로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심으로 속죄가 완전히 끝났으니 더이상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날로 우리의 속죄의 길이 열렸으니 누구나 회개하여 그 속죄의 피로 인해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7. 죄사함과 관련하여 성도들이 지금도 속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죄를 용서받는 것과 관련하여 오늘날 성도들이 속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제사]를 믿기만 하면 자신의 모든 죄들 곧 과거의 죄와 현재의 있는 죄와 미래에 지을 죄들까지도 다 용서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아니다. 그러한 말은 성경에 없다. 죄사함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더불어 회개하는 자 곧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해 자백하는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속죄에 관하여 분명한 계시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요일1:9의 말씀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렇다.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죄된 본성이 살아있고 미혹하는 영들이 주변에 있기에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때에는 자신이 죄를 범했음을 우선 자백해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도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대로 우리가 만일 죄를 범하고도 자백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내가 지은 그 죄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 죄를 용서함받지를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가 죄가 깨끗함을 받지도 못했으니까.
8. 속죄의 메카니즘은 어떻게 일어나며, 예수님의 피에 관한 효능과 그분의 제사장되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속죄를 받아 죄사함을 받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가? 그것은 첫째로, 예수님의 피흘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왜냐하면 죄를 속하려면 속죄의 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히9:22). 그것도 흠없는 제물의 피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흠없는 피를 흘리시고자 아들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는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 계속해서 살아있는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해주고 씻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피는 영원히 살아 있다. 그날 예수께서 흘리신 피는 염소와 황소의 피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피였기 때문이다. 아니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피였던 것이다(행20:2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생명 그 자체이자 영원히 살아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날 당신이 흘리신 피도 그 효력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피인 것이다. 또한 사람이 지은 죄를 사함 받으려면 흠없는 제물의 피만 있으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속죄제사를 드려줄 제사장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는 유다지파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셨으니, 예수께서는 일시적인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시고, 영구히 살아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셨기 것이다(히7:14~17). 그러므로 제물로 영원히 그 효과가 지속될 있으며, 제사장도 영원히 제사를 드려줄 수 있으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한다면 그분은 당신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실 것이다.
9. 진정 죄사함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고로 진정 사람이 죄를 사함받으려면, 첫째, 그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 인류의 죄들을 용서해주시기 위해 흘린 피였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지금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어김으로 죄를 지었다고 자백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지금도 흐르고 있는 흠없는 어린양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 예수님께서 치르신 희생제사가 온 인류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제사로 드렸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효력있는 제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가 회개할 때에 그의 흐르는 피가 내 죄들를 씻어준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로 우리는 우리가 믿을 때에는 그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이요, 우리가 회개할 때에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그분의 피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10. 나오며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수십년이 넘도록 박옥수목사는 사람이 죄를 용서받으려면 회개하거나 고백해서 안 된다고 말한다. 그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속죄의 요건은 "오직 믿음"뿐이다. 믿음만 있으면 속죄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믿음은 속죄함을 받기 위해 전제조건이기는 하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으려면 그때에는 자신의 죄를 자백함이 필요하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요 사도요한이 들려주는말씀이다(요일1:9). 그러므로 박옥수목사는 요한일서 1:9의 말씀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매도한다.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함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다고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성경구절에 집어넣어 그렇게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씀을 부정하는 박옥수목사의 주장을 따라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회개란 깨닫는 것으로서 머리로만 동의하는 것을 가리키지 아니하고,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심히 애통해하며, 죄를 짓고 있던 길에서 돌이켜(돌아와) 하나님께로 나와야 하는 전인격적인 변화요 능동적인 변화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다. 그렇다. 그날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최종적인 제사이지만 그 기능과 효능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는 제사인 것이다. 그분의 피가 살아있고 그분의 제사장되심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통 처음 믿을 때에는 회개하면서 믿는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믿음에 따른 속죄가 동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믿고 난 이후에는 회개를 해야 한다.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서 지은 죄를 지금도 흐르는 예수님의 피로 씻어내야 용서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의 과정을 시작하지만, 마지막 죽을 때에도 회개함으로써 그 여정이 끝이나게 된다. 고로 죽는 그날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눅23장에 보면 한 편 강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람도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서 낙원(오늘날의 천국)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못받고는 죄를 지었으냐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용서를 구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회개없이는 천국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회개란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행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최종 관문인 것이다.
2021년 05월 16일(주일)
정병진목사